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교화를 돈독히 해야 한다
看他行文하면 紆徐婉轉하야 將言不言處하니라
동파東坡행문行文한 것을 보면 매우 여유가 있고 완곡하여, 장차 말하지 못할 부분을 말하려 하였다.
夫聖人之於天下 所恃以爲牢固不拔者 在乎天下之民 可與爲善이요 而不可與爲惡也니이다
성인聖人천하天下에 대해 견고하여 뽑힐 수 없다고 믿는 것은 천하天下의 백성들이 더불어 은 할 수 있고 더불어 은 할 수 없는 데에 있었습니다.
昔者 三代之民 見危而授命하고 見利而不忘義하니 非必有爵賞勸乎其前하고 而刑罰驅乎其後也
옛날 삼대三代의 백성들은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로움을 보고도 를 잊지 않았으니, 이는 반드시 관작과 이 앞에서 권면하고 형벌이 뒤에서 몰아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其心 安於爲善하고 而忸怩於不義 是故 有所不爲하니이다
그 마음이 선행善行을 하는 것을 편안히 여기고 불의不義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 않는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夫民知其所不爲하면 則天下不可以敵이요 甲兵不可以威 利祿不可以誘하야 可殺可辱可飢可寒이로되 而不可與叛이니 三代之所以享國長久而不拔也니이다
국민國民들이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바를 안다면 천하天下가 그 나라를 대적할 수 없고 갑옷과 병기로도 위협할 수 없고 이익과 녹봉으로도 유혹할 수 없어서, 마음대로 죽일 수 있고 욕보일 수 있고 굶주리게 할 수 있고 추위에 떨게 할 수 있으나 더불어 반란할 수는 없으니, 이는 삼대시대三代時代가 나라를 장구히 보유하여 뽑히지 않은 이유입니다.
及至秦, 漢之世하야는 其民 見利而忘義하고 見危而不能授命이라
그런데 한시대漢時代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이 이익을 보면 를 잊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고도 목숨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法禁之所不及이면 則巧僞變詐 無所不爲하고 疾視其長上하야 而幸其災하니 因之以水旱하고 加之以盜賊이면 則天下蕩然하야 無復天子之民矣니이다
그래서 법과 금령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공교롭게 거짓말하고 임기응변으로 속이는 짓을 하지 않는 바가 없고, 장상長上을 미워하고 원망하여 그에게 재앙이 일어나기를 바랐으니, 이로 인해 수해와 한해가 뒤따르고 겸하여 도적이 일어나면 천하天下 사람들이 다 없어져서 다시는 천자天子의 백성이 없게 되었습니다.
世之儒者 嘗有言曰 三代之時 其所以敎民之具 甚詳且密也
세상의 유자儒者들이 항상 말하기를 “삼대시대三代時代에는 백성을 가르치는 도구가 매우 자세하고 또 치밀하였다.
學校之制 射鄕之節 冠婚喪祭之禮 粲然莫不有法이러니 及至後世하야는 敎化之道衰하야 而盡廢其具
학교의 제도와 향사례鄕射禮향음주鄕飮酒의 예절과 가 찬란하여 모두 법도가 있었는데, 후세에 이르러서는 교화하는 방도가 쇠하여 그 도구를 모두 폐지하였다.
是以 若此無恥也라하니이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이와 같이 염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나 世之儒者 蓋亦嘗試以此等으로 敎天下之民矣로되 而卒以無效하야 使民好文而益婾하고 飾詐而相高 則有之矣 此亦儒者之過也니이다
그러나 세상의 유자儒者들 또한 일찍이 한번 이러한 제도와 예절을 천하天下의 백성들을 가르쳤지만 끝내 효험이 없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문식文飾만 좋아하여 더욱 구차하고 속임수를 꾸미면서 서로 높이는 것만 있게 하였으니, 이 또한 유자儒者들의 잘못입니다.
臣愚以爲 若此者 皆好古而無術하고 知有敎化而不知名實之所存者也라하노이다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이와 같이 된 까닭은 모두 옛것을 좋아하나 올바른 방법이 없고, 교화가 있는 줄은 알지만 이 보존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여깁니다.
實者 所以信其名이요 而名者 所以求其實也 有名而無實이면 則其名不行하고 有實而無名이면 則其實不長이니
을 믿게 하는 것이고 을 찾는 것이니, 만 있고 이 없으면 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만 있고 이 없으면 이 장구하지 못합니다.
凡今儒者之所論 皆其名也니이다
오늘날 모든 유자儒者들이 논하는 것은 모두 뿐입니다.
武王旣克商하시고 하야 使天下知其不貪하고 禮下賢俊하야 使天下知其不驕하고 하야 使天下知其仁하고 하야 使天下知其義하시니 如此 則其敎化天下之實 固已立矣
옛날 무왕武王나라를 이기시고는 재물을 베풀고 곡식을 내어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탐하지 않음을 알게 하셨고, 어진 자와 준걸스러운 사람들에게 로 낮추어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교만하지 않음을 알게 하셨고, 선성왕先聖王의 후손을 봉해주어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자함을 알게 하셨고, 비렴飛廉악래惡來를 죽여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로움을 알게 하셨으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天下를 교화하는 실제가 진실로 이미 확립된 것입니다.
天下聳然하야 皆有忠信廉恥之心하니 然後 文之以禮樂하고 敎之以學校하며 觀之以射鄕하고 而謹之以冠婚喪祭
이에 천하天下 사람들이 분발하여 모두 충신忠信염치廉恥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그런 뒤에야 예악禮樂으로써 문채를 내고 학교로써 가르치며 향사례鄕射禮향음주鄕飮酒로써 예절을 보여주고 를 삼가게 하였습니다.
民是以 目擊而心諭하고 安行而自得也러니
이 때문에 백성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편안히 행하여 스스로 체득하였던 것입니다.
及至秦, 漢之世하야는 專用法吏하야 以督責其民이라
그런데 한시대漢時代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법조문을 적용하는 관리를 등용하여 백성들을 독책督責하였습니다.
至於今千有餘年 而民日以貪冒嗜利而無恥어늘
그리하여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 백성들이 모두 날마다 염치를 무릅쓰고 이익을 좋아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儒者乃始以三代之禮所謂名者而繩之하니
이에 유자儒者들이 비로소 삼대三代에 이른바 이라는 것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彼見其登降揖讓盤辟(躄)俯僂之容하면 則掩口而竊笑하고 聞鍾鼓管磬하면 則驚顧而不樂하나니 如此 而欲望其遷善遠罪 不已難乎잇가
그런데 저 백성들은 관리들이 오르내리고 읍하고 사양하고 발을 서리고 몸을 구부리는 용모를 보면 입을 가리고 속으로 비웃고, 종과 북과 관악기와 석경石磬의 조용하고 여유있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 돌아보면서 좋아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데도 백성들이 으로 옮겨가고 죄를 멀리하기를 바란다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臣愚以爲 宜先其實而後其名하야 擇其近於人情者而先之니이다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마땅히 을 먼저 하고 을 뒤로 하여 인정人情에 가까운 것을 가려서 먼저 시행하여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今夫民不知信이면 則不可與久居於安이요 民不知義 則不可與同處於危 平居則欺其吏하고 而有急則叛其君이라
백성들이 을 알지 못하면 백성들과 함께 오랫동안 편안함에 거처할 수 없고, 백성들이 를 알지 못하면 백성들과 함께 위태로움에 대처할 수 없으니, 〈백성들이 을 모르고 를 모르면〉 평상시에는 관리를 속이고 위급한 일이 있으면 군주를 배반합니다.
敎化之實 不至 天下之所以無變者 幸也니이다
이는 교화의 실제가 지극하지 못해서이니, 천하天下에 변란이 없는 것이 다행입니다.
欲民之知信이면 則莫若務實其言이요 欲民之知義 則莫若務去其貪이니이다
백성들이 을 알기를 바란다면 윗사람이 말을 진실하게 하려고 힘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백성들이 를 알기를 바란다면 윗사람이 탐욕을 제거하려고 힘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往者河西用兵 而家人子弟 皆籍以爲軍호되
지난번 하서河西 지방에서 전쟁할 적에 민가의 자제들을 모두 장부에 올려서 군인을 만들었는데,
其始也 官告以權時之宜 非久役者 當復爾業이라하더니
처음에 관청에서 이들에게 말하기를 “임시방편으로 하는 것일 뿐, 너희들을 장기간 부역시키려는 것이 아니니, 이 일(전쟁)이 끝나면 마땅히 너희의 직업을 회복해주겠다.”라고 하였는데,
少焉 하야 無一人得免하며
조금 있다가 모두 이마에 자자刺字하여 한 사람도 면한 자가 없었습니다.
以來 諸道以兵興爲辭而增賦者 至今皆不爲除去하니 夫如是 將何以禁小民之詐欺哉잇가
그리고 또 보원寶元 연간 이후로 여러 에서 전란을 구실 삼아서 세금을 더 올린 것을 지금까지도 모두 없애지 않고 있으니, 이와 같다면 장차 백성들의 속이는 것을 어떻게 금할 수 있겠습니까?
夫所貴乎之尊者 爲其恃於四海之富하야 而不爭於錐刀之末也 其與民也優하고 其取利也緩이니이다
현관縣官(천자天子)의 높음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사해四海의 부유함을 믿고서 송곳과 칼끝처럼 작은 것을 다투지 아니하여, 백성들에게 주기는 많이 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은 느슨하기 때문입니다.
古之聖人 不得已而取 則時有所置하야 以明其不貪하니이다
옛날 성인聖人들은 부득이하여 재물을 취하게 되면 때로는 버리는 바가 있어서 자신이 탐하지 않음을 밝혔습니다.
何者 小民 不知其說하고 而惟貪之知일새니이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그 내용은 알지 못하고 오직 탐하는 것만을 알기 때문입니다.
今鷄鳴而起하야 百工雜作하고 匹夫入市하야 操挾尺寸이어든 吏且隨而稅之호되 扼吭拊背하야 以收絲毫之利하니이다
지금 닭이 울어 날이 새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공인工人들이 어울려 작업을 하고 필부匹夫가 시장에 들어가서 한 자나 한 치 되는 물건을 팔려고 이것을 잡고 있으면, 관리가 따라와서 세금을 매기는데 백성들의 목을 조이고 등을 쳐서 털끝만 한 이익까지 다 징수합니다.
古之設官者 求以裕民이러니 今之設官者 求以勝民이라
옛날에는 백성을 여유롭게 하려고 관청을 설치하였는데, 지금은 백성들을 탄압하려고 관청을 설치하였습니다.
賦斂有常限이로되 而以先期爲賢하고 出納有常數로되 而以羨息爲能하며 天地之間 苟可以取者 莫不有禁하야 求利太廣하고 而用法太密이라
세금 거두는 것이 일정한 기한이 있는데도 기한보다 먼저 거두는 것을 훌륭하게 여기고, 재물을 내고 바치는 것이 일정한 액수가 있는데도 많이 거두는 것을 능함으로 여기며, 천지天地의 사이에 만일 재물을 취할 수 있는 것이면 모두 다 백성들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서, 이익을 구하기를 너무 넓게 하고 법을 적용하기를 너무 치밀하게 합니다.
民日趨於貪하니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날마다 탐욕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臣愚以爲 難行之言 當有所必行하고 而可取之利 當有所不取하야 以敎民信하고 而示之義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이행하기 어려운 말(약속)을 마땅히 반드시 행하고 취할 수 있는 이익을 마땅히 취하지 않아서 백성들에게 을 가르치고 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若曰 國用不足하야 而未可以行이라하면 則臣恐其失之多於得也니이다
만약 말하기를 “국가의 재용財用이 부족해서 이것을 이행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보다 많을까 두렵습니다.
東坡勸敦敎化어늘 而以罷西河之兵與寶元以來增賦爲案하니 其言 雖近長老 而其實則疏略矣니라
동파東坡가 교화를 돈독히 할 것을 권하였는데, 서하西河의 군대와 보원寶元 연간 이래에 세금을 늘린 것을 파하는 것으로 방안을 삼았으니, 말은 비록 후덕한 장로長老에 가까우나 실제는 소략하다.
역주
역주1 敦敎化 : 이 글은 〈策別 安萬民〉의 여섯 편 중의 첫 번째 편으로 본래의 제목은 〈策別 安萬民 一〉이다. 本集에는 편 머리에 “安萬民者 其別有六 一曰敦敎化”라고 표기되어 있다.
역주2 散財發粟 : 이 내용은 《史記》 〈周本紀〉에 “武王은 商나라 紂王의 아들인 祿父(武庚)를 殷나라 유민이 살던 곳에 봉해주었다.……南宮括에게 명하여 鹿臺의 창고에 있던 재물을 흩어주고 鉅橋의 창고에 있던 양식을 털어내어 가난하고 약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封商紂子祿父殷之餘民……命南宮括 散鹿臺之財 發鉅橋之粟 以振貧弱氓隷]”라고 보인다.
역주3 封先聖之後 : 이 내용 역시 《史記》 〈周本紀〉에 “武王은 先代의 聖王들을 追念하여 마침내 神農氏의 후손을 焦에 봉하고 黃帝의 후손을 祝에, 堯임금의 후손을 薊에, 舜임금의 후손을 陳에, 禹임금의 후손을 杞에 봉하였다.
그리고 功臣과 謀士들을 봉하였는데, 스승인 尚父(姜太公)를 첫 번째로 봉하여 尚父를 營丘에 봉하고 나라 이름을 齊라 하였고, 아우인 周公 旦을 曲阜에 봉하고 나라 이름을 魯라 하였으며, 召公 奭을 燕나라에 봉하고 아우 叔鮮을 管나라 봉하고 아우 叔度를 蔡나라에 봉하였다.[武王追思先聖王 乃褒封神農之後於焦 黃帝之後於祝 帝堯之後於薊 帝舜之後於陳 大禹之後於杞 於是 封功臣謀士 而師尚父爲首封 封尚父於營丘 曰齊 封弟周公旦於曲阜 曰魯 封召公奭於燕 封弟叔鮮於管 弟叔度於蔡]”라고 보인다.
역주4 誅飛廉惡來 : 飛廉은 蜚廉으로도 표기한다. 飛廉과 惡來는 부자지간으로 殷나라 紂王을 섬긴 신하들인데, 악명이 높았다.
《史記》 〈秦本紀〉에 “中衍의 玄孫 중에 中潏이란 자가 있었는데, 西戎의 땅에 살면서 西垂(陲)의 땅을 확보하였다. 中潏이 蜚廉을 낳고 蜚廉이 惡來를 낳았다. 惡來는 힘이 장사였고 蜚廉은 달리기를 잘하였다. 부자가 재능과 용력을 갖추어 殷나라 紂王을 섬겼는데, 周나라 武王이 紂王을 토벌할 적에 惡來를 함께 죽였다.
이때 蜚廉은 紂王의 石棺을 만들기 위하여 북방에 있었다. 蜚廉이 북방에서 돌아왔으나 紂王이 이미 죽어 보고할 사람이 없자 霍太山에 제단을 쌓고 자기가 그 동안 하고 온 일을 고하였다.……蜚廉이 죽자 그를 霍太山에 장사지냈다.[其玄孫曰中潏 在西戎 保西垂 生蜚廉 蜚廉生惡來 惡來有力 蜚廉善走 父子俱以材力事殷紂 周武王之伐紂 並殺惡來 是時蜚廉爲紂(作)石(棺於)北方 還無所報 爲壇霍太山而報……死遂葬於霍太山]”라고 하여, 武王이 飛廉을 죽이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孟子》 〈滕文公 下〉에는 “周公이 武王을 도와 紂王을 주벌하고, 奄나라를 정벌한 지 3년 만에 그 군주를 토벌하고, 飛廉을 바다 모퉁이로 몰아내어 죽이셨다.[周公相武王 誅紂 伐奄三年 討其君 驅飛廉於海隅而戮之]”라고 되어 있는바, 東坡가 이를 근거로 이렇게 말한 듯하다.
위의 원문 가운데 ( ) 속의 글자는 《通志》에 근거하여 보충한 것이다.
역주5 希夷嘽緩之音 : 음악의 소리가 은은하여 탈속한 듯하며 고요하고 여유가 있음을 형용한 말이다. 老子의 《道德經》에 “보아도 안 보이는 것을 夷라 하고, 들어도 안 들리는 것을 希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6 事已 : 저본에는 ‘如是’로 되어 있으나 本集을 따라 수정하였다.
역주7 皆刺其額 : 宋代에는 정식 兵士들에게는 이마에 자자하여 兵士임을 증명하였다.
역주8 寶元 : 宋 仁宗 때의 연호로 1038년부터 1039년까지 2년간이다.
역주9 縣官 : 때로는 州縣의 官長을 이르기도 하나, 여기서는 縣을 國都로 보아 天子를 이른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