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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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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상청저상궁上淸儲祥宮에 대한
應制之文 非公之至者로되 而其所見與議 亦自有典刑하니라
황명皇命에 응하여 지은 글은 장공長公의 지극한 것이 아니나, 그의 소견과 의논은 본래 전형典刑이 있다.
하니 記事之成 職也
이 글을 쓰라는 명령을 받고 북문北門에서 대죄待罪하고 있으니, 일을 기록하여 완성하는 것이 본래 의 직무입니다.
이나 臣愚不知宮之所以廢興 與凡材用之所從出하야 敢昧死請이러니 乃命有司하사 具其事以詔臣軾하시니라
그러나 어리석은 은 이 궁궐이 폐해지고 일어난 이유와 모든 재용材用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를 몰라서 감히 죽을죄를 무릅쓰고 물었더니, 성상聖上께서 마침내 유사有司에게 명하사 그 일을 자세히 구비하여 신 소식臣 蘇軾에게 명하셨다.
하시고 旣卽位 盡以太祖所賜金帛으로 作上淸宮朝陽門之內하야 旌興王之功하시고 且爲五代兵革之餘 遺民赤子하야 請命上帝하야元年正月 宮成하니 民不知勞하야 天下頌之러니
처음에 태종황제太宗皇帝께서 스러운 문덕文德과 신묘한 위무威武태조太祖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시고, 즉위하신 다음에는 태조太祖께서 하사한 금백金帛을 모두 내어서 상청궁上淸宮조양문朝陽門 안에 지어 왕업王業을 일으킨 을 표하시고, 또 오대시대 병란五代時代 兵亂의 뒤에 유민遺民적자赤子를 위하여 상제上帝을 청하셔서 지도 원년至道 元年(995) 정월에 상청궁上淸宮이 이루어지니, 백성들은 집을 짓는 수고로움을 몰라서 천하 사람들이 칭송하였습니다.
三年十二月하야 有司不戒于火하야 一夕而燼하니 自是 爲荊棘瓦礫之場 凡三十七年이니이다
그러나 경력慶曆 3년(1043) 12월에 유사有司가 불을 조심하지 않아서 하룻저녁에 불타 없어지니, 이로부터 가시나무와 기왓장과 자갈의 마당이 된 지 모두 37년이었습니다.
二年二月 神宗皇帝始命道士하야 居宮之故地하야하시니 民趨歸之어늘 稍以其力으로 修復祠宇하니이다
원풍元豐 2년(1079) 2월에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처음으로 도사 왕태초道士 王太初에게 명하여 상청궁上淸宮의 옛터에 거주하면서 법록法籙부수符水로 백성들을 위해 재앙을 물리치고 기도하게 하시니, 백성들이 달려와 모여들었으므로 차츰 그 재력을 가지고 사우祠宇를 수리하고 복구하였습니다.
詔用하야 以宮之所在 爲國家子孫地라하야
성상聖上께서는 일자日者의 말을 따라 “이 이 있는 이유는 국가國家자손子孫을 위해서이다.”라 하시어,
乃賜名上淸儲祥宮하고 且賜 與佛廟神祠之遺利하야 爲錢一千七百四十七萬하고
마침내 ‘상청저상궁上淸儲祥宮’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시고, 또 도첩度牒불묘佛廟(사찰寺刹)와 신사神祠의 남은 이익을 하사하여 1,747만 을 장만하시고,
又以官田十四頃給之하며 刻玉 如漢하고
또 국가의 토지 14을 떼어주셨으며, 도장을 나라 장도릉張道陵이 사용하던 과 똑같이 새기시고,
及所被服冠佩劍履 以賜太初하야 所以寵之者甚備
또 황제께서 입고 쓰시던 패옥佩玉과 신발을 왕태초王太初에게 하사하시어, 그를 총애한 것이 매우 지극하셨습니다.
宮未成者十八이러니 而太初卒하니이다
그러나 이 열에 여덟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왕태초王太初가 죽었습니다.
聞之하시고 喟然歎曰 民不可勞也 兵不可役也 不可發也 而先帝之意 不可以不成이라하시고
태황태후太皇太后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위연喟然히 탄식하시기를 “백성들을 수고롭게 할 수 없고 병사들을 부역시킬 수 없고 대사도大司徒의 돈을 지출할 수 없으나, 선제先帝의 뜻을 이루지 않을 수 없다.”라 하시고,
乃勅禁中하사 供奉之物 務從約損하고 斥賣珠玉하야 以巨萬計
마침내 금중禁中에 명하여 자신을 공양하고 받드는 물건을 되도록 절약하고 줄이도록 하고 주옥珠玉을 팔아서, 그 돈이 거만巨萬으로 헤아려졌습니다.
凡所謂以天下養者 悉歸之儲祥하야 積會所賜하니 爲錢一萬七千六百二十八萬 而宮乃成이라
그리하여 이른바 ‘천하로써 봉양한다.’는 것을 모두 저상궁儲祥宮에 돌려서 하사한 것을 모아 계산해보니 1억 7,628만 이 되었는데, 이에 이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內出六千三百餘兩하야 以爲하고 召道士하야 嗣行太初之法하고 命入內供奉官하야 典領其事하시니이다
내탕內帑에서 백금白金 6,300여 냥을 내어서 향화香火와 오이와 과일 등의 비용으로 삼게 하시고, 도사 유응진道士 劉應眞을 불러서 왕태초王太初을 이어 행하게 하셨으며, 내공봉관內供奉官진연陳衍을 불러들여 이 일을 맡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하니 爲三門兩廡하고 中大殿三이요 旁小殿九 鍾經樓二 石壇一이며 建齋殿于東하야 以待臨幸하고 築道館于西하야 以居其徒하니 凡七百餘間이라
그리하여 공사工事원우元祐 4년 봄에 시작하여 6년 가을에 끝났는데, 세 개의 문과 두 개의 행랑채를 만들고, 중앙에 큰 궁전이 셋이요 옆에 작은 궁전이 아홉이요 종루鍾樓장경각藏經閣이 둘이요 석단石壇이 하나이며, 재전齋殿(재계하는 집)을 동쪽에 건립하여 황제의 임행臨幸에 대비하고 도관道館을 서쪽에 건축하여 도사道士들을 거주하게 하니, 모두 7백여 칸이었습니다.
雄麗靖深하야 爲天下偉觀이로되 而民不知하고 有司不與焉하니 嗚呼
웅장하고 화려하고 조용하고 깊숙하여 천하의 장관이 되었으나 백성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유사有司가 관여하지 않았으니, 아!
其可謂至德也已矣니이다
지덕至德(지극한 덕)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臣謹按 道家者流 本出於黃帝, 老子하니 其道以淸淨無爲爲宗하고 以虛明應物爲用하고 以慈儉不爭爲行하야
이 삼가 살펴보니, 도가자道家者는 본래 황제黃帝노자老子에서 나왔으니, 그 청정淸淨하여 무위無爲를 종주로 삼고, 허명虛明하여 사물에 대응하는 것을 으로 삼으며, 인자하고 검소하여 다투지 않는 것을 으로 삼습니다.
合於 하니 如是而已니이다
그리하여 《주역周易》의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말과 《논어論語》의 “인자仁者는 고요하고 장수한다.”는 말에 부합하니, 이와 같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시대漢時代 이래에 처음으로 방사方士들의 말을 따라 마침내 날아서 신선神仙이 되는 변화술과 《황정黃庭》․《대동大洞》의 태상太上천진天眞목공木公김모金母라는 칭호와 연강延康적명赤明용한龍漢개황開皇연기年紀천황天皇태일太一자미紫微북극北極에 대한 제사祭祀가 있고, 아래로는 단약丹藥의 신기한 기술과 부록符籙의 작은 술수에 이르러서도 모두 도가道家로 돌리니, 배우는 자들이 이것이 참으로 있는지 없는지를 기필하지 못합니다.
이나 臣嘗竊論之하니 黃帝, 老子之道 本也 方士之言 末也 修其本而末自應이라
그러나 이 엎드려 논하건대, 황제黃帝노자老子는 근본이요 방사方士의 말은 지엽이니, 근본을 닦으면 지엽이 절로 응하는 것입니다.
仁義不施 不能以降天神이요 忠信不立이면
그러므로 인의仁義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소호韶濩의 음악이 천신天神을 내려오게 하지 못하고, 충신忠信이 확립되지 못하면 향사례鄕射禮가 형벌을 버리고 쓰지 않는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漢興 하니 以謂治道 貴淸淨而民自定이라하야
나라가 일어났을 적에 개공蓋公의 학문을 하였는데, 조참曹參이 그의 말을 따르니, 그가 이르기를 “정치하는 방도는 깨끗하고 그윽함을 귀하게 여기면 백성들이 스스로 안정된다.”고 하였습니다.
以此爲政한대 天下歌之曰 爲法 顜(講)若畫一이러니 曹參代之하야 守而勿失이로다
조참曹參이 이대로 정사政事를 하자, 천하 백성들이 칭송하여 노래하기를 “소하蕭何을 만들 적에 ‘’자를 그은 것처럼 엄정하였는데, 조참曹參이 대신하여 정승이 되어서 이것을 지키고 잃지 않는도다.
載其淸靜하니 民以寧壹이라하니이다
청정淸靜함을 계승하니, 백성들이 이 때문에 편안하고 한결같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문제文帝경제景帝의 정치는 대체로 를 따르고 근본으로 삼아,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일을 줄이며 세금을 적게 거두고 옥사獄事를 느슨히 하여, 병사兵事를 말하지 않아서 천하가 부유해졌습니다.
臣觀上與太皇太后所以治天下者호니 可謂至矣니이다
성상聖上태황태후太皇太后께서 천하를 다스리시는 것을 살펴보니,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셨습니다.
檢身以律物故 不怒而威하고 捐利以予民故 不藏而富하고 屈己以消兵故 不戰而勝하고 虛心以觀世故 不察而明하시니 雖黃帝, 老子라도 其何以加此리잇고
자신을 검속하여 남을 다스리셨기 때문에 노하지 않아도 두려워하였고, 이익利益을 덜어서 백성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재물을 쌓아두지 않아도 부유하셨고, 자기 몸을 굽혀서 병란兵亂을 없애셨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셨고,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관찰하셨기 때문에 살피지 않아도 밝으셨으니, 비록 황제黃帝노자老子라도 어떻게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本旣立矣어늘 則又惡衣菲食하고 卑宮室, 陋器用하사 斥其贏餘하야 以成此宮하사 上以終先帝未究之志하고 下以爲子孫無疆之福이라
근본이 확립되었는데 게다가 또 나쁜 옷을 입고 나쁜 음식을 드시며 궁실宮室을 낮게 짓고 기용器用을 누추하게 하시어 남은 것을 덜어 이 을 이루시어, 위로는 선제先帝께서 마치지 못한 뜻을 끝마치시고 아래로는 자손의 무궁한 복록을 만드셨습니다.
宮成之日 民大和會하야 鼓舞謳歌하니 聲聞于天이라
이 이루어지는 날에 백성들이 크게 화합하고 모여서 북치고 춤추고 노래하니, 그 좋아하는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립니다.
天地喜答하야 神祇來格하니 無求로되 福祿自至하야 時萬時億하야 永作神主
이에 천지天地가 기뻐하고 화답하여 천신天神지기地祇가 강림하니, 축사祝史들이 굳이 복을 바라지 않아도 복록이 스스로 이르러서 국운이 만년을 지내고 억년을 지내어서 영원히 백신百神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曰 修其本而末自應이라하니 豈不然哉잇가
그러므로 이 말하기를 “근본을 닦으면 지엽이 절로 응한다.”라고 말한 것이니, 어찌 옳지 않겠습니까?
臣旣書其事한대 皇帝若曰 大哉
이 이 사실을 쓰자, 황제皇帝께서 말씀하시기를 “위대하다!
太祖之功 太宗之德 神宗之志成之하시니 汝作銘詩하라
우리 태조太祖태종太宗신종神宗의 뜻을 우리 성모聖母께서 완성하셨으니, 너는 명시銘詩를 지어라.
而朕書其首하야 曰上淸儲祥宮碑라호리라하시니
은 그 위에 ‘상청저상궁비上淸儲祥宮碑’라고 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臣軾 拜手稽首하야하노이다 銘曰
신 소식臣 蘇軾은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명시銘詩를 올립니다.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이 바른 인가 아닌가?
其視下也 亦若斯耶
저 천상에서 내려다볼 때도 이와 같을 것인가?
我作上淸하니 儲祥之宮이라
내(황제)가 상청궁上淸宮을 지으니 상서祥瑞로움을 모으는 이로다.
無以來之 其肯我從이리오
궁을 지어서 상제上帝를 오시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기꺼이 나를 따르겠는가?
원우元祐 연간의 정사政事상천上天하민下民들을 기쁘게 하니,
何修何營
무엇을 닦고 무엇을 경영하였는가?
曰是四者
바로 아래의 네 가지이다.
民懷其仁하고 吏服其廉하며
백성들은 그 을 생각하고 관리들은 그 청렴함에 감복하며
鬼畏其正하고 神予其謙이라
귀신들은 그 바름을 두려워하고 신령들은 그 겸손함을 좋아하였네.
帝旣子民하야 維子之視하시니
상제上帝께서 백성들을 사랑하여 자식으로 여기시니
云何事帝하야 而瘠其子
어찌 상제上帝를 섬기면서 그 자식들을 피폐하게 하겠는가?
以公滅私하사
진실로 명철하신 문모文母께서는 으로 를 멸하시어
作宮千柱로되 人初不知
천 기둥의 큰 을 지으셨는데, 백성들은 애당초 알지 못하였네.
於皇祖宗 在帝左右하사
아! 위대하신 조종祖宗의 신령께서 상제上帝의 좌우에 계셔서
從帝來狩
바람 말과 구름 수레로 상제上帝를 따라와 순수巡狩하도다.
閱視新宮하고 察民之言하야
새로 지은 을 살펴보시고 백성들의 말을 살피시어
佑我文母 及其孝孫이로다
우리 문모文母와 그 효손孝孫을 도우시도다.
孝孫來饗하시니 左右耆耈로다
효손孝孫이 와서 제향하니 좌우에는 나이 많은 원로대신들이 있도다.
無競惟人하야 以燕我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인재로써 우리 후손을 편안히 하시도다.
多士爲祥하니 文母所培로다
많은 선비들이 상서祥瑞가 되니 문모文母께서 배양하신 바로다.
我膺受之하야 篤其成材
내 이것을 받아서 이루어놓은 재목을 돈독히 하리로다.
과 만 의 종틀에
相以銘詩하니 震于四海로다
명시銘詩로 도우니 그 소리 사해四海에 진동하리로다!
通篇 以私錢爲案하고 以爲民祈福爲幟하니 此等應制文 不得不如此니라
전편全篇사전私錢을 쓴 것을 제목으로 삼고 백성을 위하여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기치旗幟를 삼았으니, 이러한 응제應制의 글은 이와 같이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上淸儲祥宮碑 :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元祐 6년(1091) 6월 6일 丙午日에, 臣 蘇軾에게 詔書로 ‘上淸儲祥宮이 완성되었으니, 마땅히 그 일을 기록하여 돌에 새기라.’라고 命하셨습니다. 이에 臣 蘇軾은 손을 땅에 대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元祐六年六日丙午 制詔臣軾 上淸儲祥宮成 當書其事于石 臣軾拜手稽首言曰]”라고 표기되어 있다. 上淸儲祥宮에 대해서는 郎曄의 《經進東坡文集事略》 55권의 注에 “上淸境에 宮이 있는데 宮의 문 양쪽에 두 臺가 있는바, 좌측은 金闕이고 우측은 玉闕이다. 깃옷을 입은 도사가 이 문을 지키고 있다. 안에는 玉芝가 자라고 流霞가 흘러내리는 샘이 있으며 金으로 여러 眞人과 飛仙들의 명호를 새겨놓았다. 太宗이 이 이름을 하사한 뜻은 모두 여기에서 취했는데, 뒤에 神宗이 이 궁을 수리하고 다시 儲祥이라는 두 글자를 더해주었다.[上淸有宮 門有兩闕 左金闕 右玉闕 有羽衣守士 內有玉芝流霞之泉 刻金以題衆眞飛仙之號 太宗賜名之意 皆取諸此 其後神宗修宮 復加儲祥二字]”라고 보인다.
道家에서는 玉淸, 上淸, 太淸을 三淸이라 하는데, 모두 신선들이 사는 곳이다. 玉芝는 神仙이 먹는다는 神草이며, 流霞는 流霞酒로 神仙이 마신다는 좋은 술의 이름이다.
역주2 臣以書命 待罪北門 : 書命은 글을 쓰라는 어명을 이르는데, 당시 東坡가 翰林學士 겸 知制誥의 직위에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황제의 명령을 制라 하는데, 翰林學士는 內制를 관장하였고 知制誥는 外制를 관장하였다.
待罪는 신하가 황제의 명령을 받들 적에 쓰는 겸사로, 스스로의 능력이 모자라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여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北門은 翰林院을 가리킨다. 唐나라 때에 翰林院이 銀臺(승정원)의 북쪽에 있었으므로 여기에 소속된 학사들은 南門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北門으로 출입하였다. 이 때문에 翰林院을 北門으로 칭하였다.
역주3 太宗皇帝以聖文神武……定天下 : 太宗(939~997)은 宋나라를 창건한 太祖 趙匡胤(927~976)의 아우로 이름이 본래 匡儀였으나 뒤에 光義로 개명하였다. 太祖의 뒤를 이어 2대 황제로 즉위하여 당시 宋나라에 복속되지 않고 있던 南唐, 吳越, 北漢 등을 평정하여 천하를 통일하였다.
역주4 至道 : 宋 太宗의 연호로 995년부터 997년까지이다.
역주5 慶曆 : 宋 仁宗의 연호로 1041년부터 1048년까지이다.
역주6 元豐 : 宋 神宗의 연호로 1078년부터 1085년까지이다.
역주7 王太初 : 누구인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역주8 法籙符水 爲民禳禬 : 法籙과 符水는 道家에서 禍를 제거하고 福을 기원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로, 法籙은 귀신을 쫓고 邪氣를 누르는 道家의 丹書을 이르고, 符水는 이른바 神水라는 것인데 부적을 태운 재를 물에 탄 것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禳과 禬는 질병이나 재앙을 막기 위한 제사나 푸닥거리를 이르는데, 대체로 禳은 사악함을 몰아내기 위한 제사이고 禬는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역주9 日者 : 陰陽術을 익혀 점을 치는 方士를 이른다.
역주10 度牒 :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관청에서 발급하는 出家許可狀을 이른다.
역주11 張道陵所用印 : 張道陵(34~156)은 後漢時代 道士로 道敎의 한 지파인 五斗米敎를 창시하여 제1대 天師가 된 사람이다. 그는 원래 이름이 陵이고 字가 輔漢이며 沛國 豐(지금의 江蘇省 豐縣) 사람이다.
明나라 曹學佺이 撰한 《蜀中廣記》에 “張道陵은 沛國 사람이다. 본래 太學의 書生으로 널리 五經에 능통했으나, 만년이 되자 ‘이런 일은 壽命에 있어서는 도움되는 바가 없다.’라고 탄식하고, 마침내 長生의 道를 배웠다. 黃帝의 九鼎丹法을 알았으나 靈丹을 調劑하려고 하니, 비용이 많이 필요하였다. 張道陵의 집은 본래 가난해서 생계를 위해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웠으나, 자신이 잘하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침내 아무런 성취도 없었다.
蜀 땅 사람들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아 敎化하기 쉬우며 名山도 많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과 蜀 땅으로 들어가 鶴鳴山에 가서 道書 24편을 저술하고 깊이 사색하며 수련하였다. 홀연히 하늘에서 天人들이 내려왔는바, 이들은 수많은 말과 깃일산으로 덮고 호랑이에 멍에하고 용을 참마로 맨 황금수레를 타고 왔는데,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혹자는 스스로 柱下史(老子)라고 칭하고, 혹자는 東海小童이라고 칭했는데, 마침내 張道陵에게 ‘新出正一名威之道’를 전해주었다. 張道陵은 이를 전수받고 난 뒤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스승으로 섬겼고 제자들이 수만 戶에 이르게 되었다.
張道陵은 제자들 중에서 祭酒를 세워 그 가호들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는데, 마치 官의 장관과 같았다. 여러 제자들로 하여금 일이 있을 적마다 비단과 기물, 종이와 붓, 땔나무와 집기 등을 바치게 하였다.[張道陵者 沛國人也 本太學書生 博通五經 晩乃歎曰 此無益於年命 遂學長生之道 得黃帝九鼎丹法 欲合之用藥 須糜費錢帛 陵家素貧 欲治生營田牧畜 非己所長 乃不就 聞蜀中人多純厚 易於敎化 且多名山 乃與弟子入蜀 住鶴鳴山 著作道書二十四篇 乃精思鍊要 忽有天人下來 乘萬騎 金車羽蓋 驂龍駕虎 不可勝數 或自稱柱下史 或稱東海小童 乃授陵以新出正一名威之道 陵受之 能治病 於是 百姓翕然奉事以爲師 弟子戶至數萬 卽立祭酒 分領其戶 有如官長 使諸弟子 隨事輪出綵絹器物紙筆樵薪什物等]”라고 보인다.
張道陵이 사용하던 여러 부절과 도장 등은 모두 龍虎山의 후손들에게 전해졌으므로, 太初에게 똑같은 도장을 새겨준 것이다. ‘九鼎丹法’은 寶鼎에 丹砂를 구워 靈藥을 만드는 방법이며, ‘新出正一名威之道’는 명예와 위엄을 바로잡는 새로 만든 방법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張道陵은 張天師로 높여지고 歷代 王朝에서 爵位를 세습하였다.
역주12 太皇太后 : 英宗의 王后인 宣仁聖烈高皇后이다. 哲宗이 太皇太后로 높였는데, 哲宗이 어린 나이로 등극하여 섭정을 하고 있었다.
역주13 大司徒錢 : 나라의 國庫를 이른다. 大司徒는 周나라 六卿 가운데 하나로 敎化와 土地와 人民을 관장하였는데, 후세에는 戶部尙書로 칭해졌는바, 바로 朝鮮朝의 戶曹判書이다.
역주14 白金 : 銀을 이른다. 《爾雅》 〈釋器〉에 “白金은 銀을 이른다.[白金謂之銀]”라고 보인다.
역주15 香火瓜華之用 : 옛날 제사에 사용되었던 香火와 오이와 과일 등속에 들어가는 비용을 이른다.
역주16 劉應眞 : 누구인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역주17 陳衍 : 開封 사람으로 당시 內供奉官이었는데, 뒤에 벼슬이 左藏庫事, 文州刺史에 이르렀으나 元祐黨에 연루되어 白州로 좌천되었다가 朱崖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宋人傳記資料索引》
역주18 起四年之春 訖六年之秋 : 모두 哲宗 元祐 연간의 일인데, 元祐는 1089년에서 1091년까지이다.
역주19 周易何思何慮 : 이 내용은 《周易》 〈繫辭傳 下〉에 “易(咸卦 九四 爻辭)에 이르기를 ‘憧憧하게 왕래하면 벗만이 네 생각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니,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天下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天下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天下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易曰 憧憧往來 朋從爾思 子曰 天下何思何慮 天下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天下何思何慮]”라고 보인다.
역주20 論語 仁者靜壽之說 : 이 내용은 《論語》 〈雍也〉에 “智者는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山을 좋아하니, 智者는 動的이고 仁者는 靜的이며, 智者는 樂天的이고 仁者는 長壽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라고 보인다.
朱子의 《論語集註》에 “智者는 事理에 통달하여 두루 流通하고 막힘이 없어서 물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義理에 편안하여 重厚하고 옮기지 않아서 山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山을 좋아하는 것이다. 動과 靜은 體로 말하였고, 樂과 壽는 效果로 말하였다. 動하여 막히지 않으므로 즐거워하고, 靜하여 일정함이 있으므로 長壽하는 것이다.”라고 注하였다.
역주21 自秦漢以來 始用方士言 : 方士는 方術之士로 고대에 丹藥을 제련하는 등 神仙의 술법을 닦는 사람을 이르는데, 스스로 神仙이 되어 長生不死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전국시대 齊나라와 燕나라의 바닷가 지역에서 처음 발흥하였는데, 道家를 元祖로 하였으나 점차 미신적인 道敎로 빠졌는바, 秦․漢時代 이래로 점차 세력이 확산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22 飛仙變化之術 : 神仙이 되어 하늘로 날아 昇天할 수 있는 道術을 이른다. 《眞誥》에 “仙道에는 비행할 수 있는 깃이 있어 이로써 허공을 날 수 있다.[仙道有飛行之羽 以超虛躡空]”라고 보인다. 《眞誥》는 총 20권으로 된 道敎에 대한 사전류의 책인데, 眞誥는 ‘眞人이 입으로 고해준 말씀’이라는 뜻이다.
晉 哀帝 興寧 연간(363~365)에 神이 내려준 계시라고 칭탁하여 楊羲, 許謐, 許翽가 지었으며, 梁나라의 陶弘景이 편집하고 注를 달았는데, 〈運題象〉․〈甄命授〉․〈協昌期〉․〈稽神樞〉․〈闡幽微〉․〈握眞輔〉․〈翼眞檢〉의 7편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神仙과 眞人이 인간에게 도를 닦고 덕을 쌓는 공덕을 가르치는 일과 踏星․存神․按摩․服氣․服藥․養生 등의 方術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역주23 黃庭大洞之法 : 黃庭은 《黃庭經》으로 魏․晉時代의 道家(道敎)들이 養生과 수련의 원리를 가르치고 기술하는 데 사용했던 道敎의 경전이다. 원래의 명칭은 《太上黃庭外景玉經》, 《太上黃庭內景玉經》인데, 七言歌訣 형식으로 쓰인 초기 道敎 경전이며, 《抱朴子》 〈遐覽〉에도 기재되어 있다. 黃庭은 인간의 性과 命의 근본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뇌(上黃庭)․심장(中黃庭)․비장(下黃庭) 등을 말한다. 大洞은 《大洞眞經》으로, 이 또한 중요한 도교의 경전이다.
역주24 太上天眞木公金母之號 : 太上은 太上老君으로, 道敎의 창시자로 불리는 老子에 대한 존칭인데, 본래의 칭호는 ‘混元皇帝太上道德老君’이다. 天眞은 道敎의 神 가운데 하나인 天皇眞人이며, 木公과 金母는 부부지간으로 남자 神仙을 관장하는 東王父(東王公)와 여자 神仙을 관장하는 西王母를 이른다. 東王父는 동해에 살면서 陽和의 기운을 주재하고, 西王母는 서쪽 곤륜산 瑤池에 산다고 한다.
《太平廣記》에 “漢나라 초기에 네다섯 명의 아이들이 길 위에 모여 놀았는데, 한 아이가 노래하기를 ‘푸른 치마를 입고 天門에 들어가면 金母에게 읍하고 木公에게 절한다.’라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는데, 張子房(張良)이 그 뜻을 알고 찾아가서 그들에게 절하고 말하였다. ‘이 아이들은 東王公의 玉童들이다. 이른바 金母는 西王母이고 木公은 東王公이다. 이 두 분 元尊은 바로 陰․陽의 부모이고 天地의 本源으로 모든 생령들을 화생시키고 만물을 기른다. 木公은 남자 神仙의 宗主이고 金母는 여자 神仙의 宗主이다. 長生하여 神仙이 되어 승천한 자들은 처음에 먼저 金母를 뵙고 뒤에 木公을 알현하고 太上에게 朝覲한다.’[漢初有四五小兒 路上群戱 一兒歌曰 着靑裙 入天門 揖金母 拜木公 時人莫知之 子房知之 往拜之曰 此東王公之玉童也 所謂金母者 西王母也 木公者東王公也 此二元尊 乃陰陽之父母 天地之本源 化生萬靈 育養群品 木公爲男仙之主 金母爲女仙之宗 長生飛化之士 昇天之初 先覲金母 後謁木公 然後昇三淸 朝太上矣]”라고 보인다.
《太平廣記》는 宋 太宗 太平興國 3년(978)에 李昉 등이 칙령에 의해, 漢나라부터 宋나라 초기까지의 소설류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총 5백 권으로 묶은 책이다. 神仙․方士․異僧․報應․名賢․貢擧․豪俠․儒行․書․畫․醫․相․酒․譮諧․婦人․情感․夢․幻術․神․鬼․요괴․再生․용․호랑이․여우․뱀․雜傳記 등 92개 항목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는바, 약 5백 종의 고대소설 및 소설집에서 채록하였는데, 현재 저본들이 절반이 실전되어 매우 귀중하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초기에 수입된 뒤 《太平廣記詳節》, 《太平廣記諺解》로 간행되어 널리 애독되었으며, 漢文 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주25 延康赤明龍漢開皇之紀 : 모두 道敎의 경전에 나오는 연호로 《雲笈七籖》에 보인다. 《雲笈七籖》은 宋 眞宗 때 張君房이 道家의 경전을 모아 편찬한 책으로 총 122권이다.
역주26 天皇太一紫微北極之祀 : 天皇은 天帝를 이른다. 太一은 신의 이름으로 泰一이라고도 불리는데, 《史記》 〈封禪書〉에 “天神 가운데 귀한 神이 太一이다.[天神貴者太一]”라고 보인다.
紫微는 紫微垣으로 천체에 있는 3垣 가운데 하나인데, 천체의 중심 구역으로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다. 나머지는 太微垣과 天市垣인데, 太微垣은 28宿 가운데 張, 翼, 軫 이북의 구역이며, 天市垣은 房, 心, 尾, 箕, 斗 이북의 구역이다. 北極은 北極星으로 北辰, 天樞라고도 불린다. 道敎에서는 이 별들을 모두 제사하는바, 이 내용은 《史記》 〈天官書〉에 보인다.
역주27 符籙小數 : 符는 부적을 이르고, 籙은 도가의 秘訣을 이르며, 小數는 하찮은 術數를 이른다.
역주28 韶濩(소호)之樂 : 韶濩는 湯임금의 음악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9년에 “吳나라 季札이 韶濩에 따라 춤추는 것을 보고는 ‘聖人의 위대함을 표현하면서도 오히려 慙德을 드러내었으니, 聖人 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였다.[見舞韶濩者 曰 聖人之弘也 而猶有慙德 聖人之難也]”라고 보인다.
이에 대해 孔穎達은 《春秋左傳正義》에서 “湯임금의 음악을 《周禮》에 大濩라고 하였는데, 鄭玄이 해석하기를 ‘大濩는 湯임금의 음악이다. 湯임금이 너그러움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사악함을 제거하여, 그 德이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리를 얻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 백성들을 보호하였기 때문에 護의 뜻을 취하여 濩라고 칭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한 韶濩는 舜임금의 음악이라는 韶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韶는 바로 잇는다[紹]는 뜻이니, 大禹를 계승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周禮謂之大濩 鄭玄云 大濩湯樂也 湯以寬治民 而除其邪 言其德能使天下得其所也 然則以其防濩下民 故稱濩也 此言韶濩 不解韶之義 韶亦紹也 言其能紹繼大禹也]”라고 疏하였다.
역주29 射鄕之禮 不能以致刑措 : 射鄕之禮는 鄕射禮를 이른다. 고대의 鄕射禮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州의 장관이 봄가을 두 계절에 禮에 따라 백성들을 모아 州의 序(학교)에서 활을 쏘는 禮’을 이르며, 또 하나는 ‘鄕大夫가 3년마다 어질고 재능 있는 선비를 王에게 천거할 적에 행했던 활 쏘는 禮’인데, 鄕射禮를 행하기 전에 먼저 鄕飮酒禮를 거행하였다. 《儀禮》에 〈鄕飮酒禮〉와 〈鄕射禮〉가 있다. 刑措는 죄를 범하는 자가 없어 형벌을 쓰지 않음을 이른다.
역주30 蓋公治黃老 而曹參師其言 : 蓋公은 漢나라 초기 사람으로 黃老의 無爲自然을 주장하였다. 曹參이 齊나라 國相이 되었는데, 膠西에 蓋公이라는 분이 있어 黃․老의 학설을 공부하였다는 말을 듣고 많은 폐백을 보내어 초청하였다. 蓋公이 와서 “정치하는 방도는 깨끗하고 그윽함을 귀하게 여기면 백성들이 스스로 안정된다.”라고 말하였는데, 曹參이 이를 따르니, 齊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史記 曹相國世家》 본서 25권 〈蓋公堂記〉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31 蕭何 : ?~B.C. 193. 漢나라의 개국공신으로 韓信, 張良과 함께 開國三傑로 꼽힌다. 劉邦이 漢王이 되어 項羽와 천하를 두고 싸움을 벌일 적에 蕭何는 關中을 지키면서 兵站과 募兵의 일을 완벽히 수행하여, 漢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다음 공을 논할 적에 천하제일의 칭호를 받았고 酇侯에 봉해졌다. 통일왕조 이후에도 승상이 되어 律令과 典制를 제정하여 나라를 안정시켰으며, 죽을 적에 曹參을 후임자로 천거하였다.
역주32 文景之治……不言兵而天下富 : 文景은 漢나라 3代 황제인 文帝 劉恒(B.C. 202~B.C. 157)과 그 아들 景帝 劉啓(B.C. 188~B.C. 141)의 병칭인데, 農桑을 장려하고 租稅를 감면하며 淸靜無爲를 주장하여,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순후해져 감옥이 텅 빌 정도로 천하가 태평하였으므로 至治의 시대로 일컬어졌다.
역주33 祝史 : 祝官과 史官으로 福을 기원하는 관원이다.
역주34 聖母 : 哲宗 당시 太皇太后인 英宗의 王后 宣仁聖烈高皇后를 높여 칭한 것이다.
역주35 天之蒼蒼 正色非耶 : 이 내용은 《莊子》 〈逍遙遊〉에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이 바른 色인가 아닌가? 멀리 떨어져서 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天之蒼蒼 其正色耶 其遠而無所至極耶]”라고 보인다.
역주36 元祐之政 媚于上下 : 元祐는 哲宗의 연호로 1086년부터 1094년까지이다. 元豐 8년(1085)에 神宗이 승하하고 哲宗이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太皇太后인 宣仁聖烈高皇后가 수렴청정하였는데, 高皇后는 王安石의 新法黨을 물리치고 司馬光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新法으로 인한 국정의 혼란을 수습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7 允哲文母 : 文母는 文德이 있는 어머니란 뜻으로, 여기서는 宣仁聖烈高皇后를 가리킨다.
역주38 風馬雲車 : 神仙들은 바람을 말로 삼고 구름을 수레로 삼는다고 전해진다.
역주39 千石之鍾 萬石之虡 : 石은 고대 중량의 단위로 120斤을 이른다. 千石之鍾은 매우 커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鍾을 이른다. 虡는 북이나 鍾, 磬 등의 악기를 매다는 틀을 이르는바, 萬石之虡는 매우 큰 악기를 매다는 틀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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