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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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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석씨화원石氏畫苑》에 대한 기문記文
中多以文爲戱
이 글 가운데 문장을 가지고 장난(해학)한 것이 많다.
이나 亦自是佳品이니라
그러나 또한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石康伯 字幼安이요 眉之眉山人이니 故紫微舍人昌言之幼子也
석강백石康伯유안幼安이고 미주眉州미산眉山 사람이니, 고 자미사인故 紫微舍人 창언昌言의 막내아들이다.
擧進士不第한대 卽棄去하고 當以蔭得官이로되 亦不就하고 讀書作詩하야 以自娛而已 不求人知하니라
진사進士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자 즉시 벼슬을 포기하였고, 음직蔭職으로 벼슬을 얻게 되었으나 또한 직무에 나아가지 않고, 책을 읽고 를 지으면서 스스로 즐길 뿐,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獨好法書名畫古器異物하야 遇有所見이면 脫衣輟食求之하야 不問有無하니라
유독 법서法書(법첩法帖)와 명화名畫와 옛날 골동품과 기이한 물건을 좋아해서 이런 것들을 우연히 보게 되면 입은 옷을 벗어주고 먹던 음식을 치우면서 구하여 돈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았다.
居京師四十年 出入閭巷호되 未嘗騎馬하고 在稠人中 耳目謖謖然하야 專求其所好
유안幼安경사京師(개봉開封)에 산 지 40년에 여항閭巷을 출입하면서 일찍이 말을 타지 않았고, 사람들 속에 있어 남의 이목耳目이 집중되는 가운데에서도 오로지 자기가 좋아하는 바를 추구하였다.
長七尺이요 黑而髥하야 如世所畫道人劍客이로되 而徒步塵埃中하야 若有所營하니 不知者以爲異人也
신장이 7척이고 얼굴이 까맣고 수염이 나서 마치 세상 사람들이 그려놓은 도인道人검객劍客의 모습과 같았으나, 먼지가 자욱한 길거리에 도보로 다녀서 경영하는 바가 있는 듯하니,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인異人이라고 칭하였다.
又善滑稽하야 巧發微中하니 旁人 抵掌絶倒로되 而幼安 淡然不變色이라
또 익살과 농담을 잘해서 아주 교묘하게 말하여 은미하게 맞추니, 옆 사람들이 그 말을 들으면 박장대소하고 포복절도하였으나 유안幼安은 무덤덤하여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
與人游 知其急難이면 甚於爲己
사람들과 교유할 적에 상대방이 위급하고 어려운 것을 알면 자기 몸을 위하는 것보다도 더 심하게 돌봐주었다.
有客於京師而病者 輒舁置其家하야 親飮食之하고 死則棺斂之호되 無難色하니라
그래서 경사京師에 나그네로 와 있다가 병든 자가 있으면 번번이 가마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친히 음식을 먹고 마시게 하고, 죽으면 염습하여 관에 넣으면서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凡識幼安者 皆知其如此 而余獨深知之
유안幼安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와 같다는 것을 모두 알지만, 그중에도 내가 유독 깊이 그를 안다.
幼安 識慮甚遠이나 獨口不言耳
유안幼安은 식견과 사려가 매우 원대하였으나, 다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今年六十一 狀貌如四十許人하고 鬚三尺郁然하야 無一莖白者하니 此豈徒然者哉리오
지금 나이 61세에 얼굴 모습이 40세쯤 된 젊은 사람과 같고, 3이나 되는 수염이 길게 자랐는데 한 가닥도 흰 것이 없으니, 이것이 어찌 공연히 그러한 것이겠는가?
職官하야 其子夷庚也
박주亳州직관職官이 되어서 부정공富鄭公(부필富弼)과 함께 죄를 얻은 자는 바로 그의 아들 이경夷庚이다.
其家書畫數百이니 取其毫末雜碎者하야 以冊編之하고 謂之石氏畫苑이라
그의 집에는 수백 축의 서화書畫가 보관되어 있는데, 털끝만큼 작고 자잘한 것들을 취하여 책으로 엮고는 이것을 《석씨화원石氏畫苑》이라 이름하였다.
幼安 與文與可游하야 如兄弟
유안幼安문여가文與可(문동文同)와 교유하여 형제간처럼 친하게 지냈다.
得其畫爲多 而余亦善畫古木叢竹하야 因以遺之하야 使置之苑中이라
그러므로 그의 그림을 얻은 것이 많으며, 나 또한 고목古木총죽叢竹을 잘 그렸는데 문여가文與可를 통하여 그에게 주어서 하여금 화원畫苑에 두게 하였다.
子由嘗言호되 所貴於畫者 爲其似也 似猶可貴어든 況其眞者리오
자유子由(소철蘇轍)가 일찍이 말하기를 “그림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그 본모습과 유사함 때문이니, 비슷한 것도 귀하게 여길 만한데 하물며 그 진짜에 있어서이겠는가!
吾行都邑田野하야 所見人物 皆吾畫笥也 所不見者 獨鬼神耳 當賴畫而識이라
도읍都邑전야田野를 돌아다니면서 본 인물이 모두 나의 그림 상자이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유독 귀신일 뿐인데, 귀신은 마땅히 그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나 人亦何用見鬼리오하니 此言 眞有理
그러나 사람이 또한 어찌 귀신을 볼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일리가 있다.
今幼安好畫 乃其一病이니 無足錄者 獨著其爲人之大略云爾
지금 유안幼安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의 한 병통이니 기록할 만한 것이 못 되고, 나는 다만 그의 인품의 대략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역주
역주1 石氏畫苑記 : 本集에는 이 글의 말미에 ‘元豐三年十二月二日 趙郡蘇軾書’라는 14字가 있어 이 글의 저작 시기를 알 수 있다. 元豐 3년은 1080년이다. 東坡가 石康伯을 위하여 그가 편집한 《石氏畫苑》에 記文을 지은 것이다.
역주2 亳州 : 宋나라 때 州의 하나로 당시 淮南東路에 속했으며 치소는 譙縣인바, 지금의 安徽省 亳縣이다.
역주3 富鄭公俱得罪者 : 富鄭公은 富弼(1004~1083)로 英宗 때에 鄭國公에 봉해져 흔히 富鄭公으로 불린다. 富弼은 字가 彦國이며 河南 洛陽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范仲淹, 晏殊 등에게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고 晏殊의 사위가 되었다. 외교에 뛰어나 契丹과의 협상에서 공을 세웠으며 文彦博과 함께 재상에 올랐다.
神宗 熙寧 4년(1071)에 同平章事로 재임하면서 王安石의 신법에 극력 반대하다가 병을 칭탁하고 致仕하였다. 그러나 致仕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判亳州로 좌천되었는데, 亳州에서 靑苗法의 시행을 거부하여 마침내 관직에서 물러났다. 東坡가 ‘죄를 얻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4 : 卷軸(두루마리)으로 둥근 막대에 그림을 붙여 둥글게 말은 것인데, 당시 그림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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