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盡言不諱는 蓋自敵以下受之라도 有不能堪者어든 而況於人主乎아
自
以來
로 至於
히 可謂天下大治千載一時矣
로되 而田公之言
이 常若有不測之憂 近在朝夕者
는 何哉
오
古之君子는 必憂治世而危明主하나니 明主는 有絶人之資하고 而治世는 無可畏之防일새라
夫有絶人之資면 必輕其臣하고 無可畏之防이면 必易其民하나니 此君子之所甚懼也라
方漢文時
하야 刑措不用
하고 兵革不試
어늘 而
라호되
後世不以是少漢文하고 亦不以是甚賈誼하니 由此觀之하면 君子之遇治世而事明主는 法當如是也니라
誼雖不遇
나 而其所言
이 略已施行
이러니 不幸
하야 功烈不著於時
라
然
이나 로되 文帝未及用
이러니 歷孝景, 至武帝
하야 而
하야 漢室以安
이라
今公之言이 十未用五六也하니 安知來世不有若偃者하야 擧而行之歟아
願廣其書於世하면 必有與公合者하리니 此亦忠臣孝子之志也니라
각박한 말을 하지 않고도 문장文章이 저절로 통달하였다.
이것은 사도司徒로 추증된 고 간의대부故 諫議大夫 전공 표성田公 表聖의 주의奏議 10편이다.
솔직하게 말씀을 다하여 숨기지 않은 것은 대등한 자 이하의 사람들이 받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군주에 있어서이겠는가!
나는 이 때문에 태종太宗과 진종眞宗 두 임금의 성聖스러움을 알겠다.
태평흥국太平興國으로부터 함평咸平 연간에 이르기까지 천하가 크게 다스려져서 천 년 만에 한 번 있는 좋은 시기라고 이를 만하였는데도, 전공田公의 말씀이 항상 측량할 수 없는 걱정거리가 가까이 조석에 있는 듯했던 것은 어째서인가?
옛날의 군자君子들은 반드시 치세治世를 걱정하고 명주明主를 위태롭게 여겼으니, 명주明主는 남보다 뛰어난 자품이 있고, 치세治世는 두려워할 만한 방비가 없기 때문이다.
남보다 뛰어난 자품이 있으면 반드시 신하를 가볍게 여기고, 두려워할 만한 방비가 없으면 반드시 백성을 함부로 대하니, 이는 군자君子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바이다.
한 문제漢 文帝 때에 형벌을 버려두고 쓰지 않았고 병기와 갑옷을 쓰지 않았는데도 가의賈誼의 말에 “천하에 탄식할 만한 것이 있으며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있으며 통곡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후세後世에서는 이 때문에 한 문제漢 文帝를 하찮게 여기지 않았고 가의賈誼도 심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군자君子가 치세治世를 만나 현명한 군주를 섬길 적에는 법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가의賈誼는 비록 불우하였으나 그가 말한 것이 대략 이미 실행되었는데,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나 공렬功烈이 당시에 드러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의賈誼가 일찍이 제후왕諸侯王의 자손들로 하여금 각기 차례로 영지領地를 나누어 받게 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문제文帝가 미처 그의 말을 쓰지 못하였는데, 효경제孝景帝를 지나 무제武帝에 이르러 주보언主父偃이 거행해서 한漢나라 왕실王室이 편안해졌다.
이제 공公의 말씀이 열 가지 가운데 대여섯 가지도 쓰여지지 못하였으니, 내세來世에 주보언主父偃과 같은 자가 있어 이를 거행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원컨대 이 글을 세상에 널리 반포하면 반드시 공公과 뜻이 합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이는 또한 충신忠臣과 효자孝子의 뜻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