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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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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책략策略 4
破庸俗之論하야 有奇氣하니라
용렬한 사람들의 세속적 의논을 깨뜨려 문장文章에 기이한 기운이 있다.
天子與執政之大臣으로 既已相得而無疑라야 可以盡其所懐하고 直己而行道하나니
천자天子집정대신執政大臣과 뜻이 서로 맞아 의심이 없어야만 대신大臣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계책을 다 말하고 자기 몸을 바르게 행하여 를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則夫當今之所宜先者 莫如破庸人之論하야 以開功名之門이니 而後 天下可爲也리이다
그렇다면 지금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은 용렬한 사람들의 의논을 깨뜨려서 공명功名의 문을 열어주어야만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천하天下를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夫治天下 譬如治水하니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은 비유하건대 홍수를 다스리는 것과 같습니다.
方其奔衝潰決하고 騰湧漂蕩하야 而不可禁止也 雖欲盡人力之所至하야 以求殺其尺寸之勢라도 而不可得이요
홍수가 치달려 충돌해서 둑을 무너뜨리고 위로 세차게 용솟음쳐 사람과 물건들을 떠내려 보내서 막을 수 없을 경우에는 비록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동원하여 한 치나 한 자의 수세水勢를 줄이고자 해도 될 수가 없습니다.
及其既衰且退也 駸駸乎若不足以終日이라
그러나 홍수의 형세가 줄어들고 또 물러갈 적에는 수세水勢가 급속히 약해져서 하루를 마치지 못할 듯합니다.
夫善治水者 不惟有難殺之憂 而又有易衰之患하야
그러므로 홍수를 잘 다스리는 자는 비단 수세水勢를 줄이기 어려움을 걱정할 뿐만이 아니요, 또 물이 너무 쉽게 줄어드는 것을 우려합니다.
導之有方하고 决之有漸하야 疏其故而納其新하야 使不至於壅閼腐敗而無用이니이다
그리하여 물을 인도함에 방법이 있고 물을 점진적으로 터놓아서 예전에 담겨져 있던 물을 소통시켜 쏟아내고 새로운 물을 받아들여서 물길이 막혀 물이 썩어서 쓸모없어지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합니다.
嗟夫
아!
人知江河之有水患也하야 而以爲沼沚之可以無憂 是烏知舟楫灌漑之利哉잇가
사람들이 강하江河에 수해가 있음만 알고, 작은 하천과 못들은 수해水害가 없다고 말한다면, 어찌 주즙舟楫관개灌漑의 이로움을 알겠습니까?
夫天下之未平 英雄豪傑之士 務以其所長으로 角奔而爭利하야 惟恐天下一日無事也
천하天下가 평정되기 전에는 영웅호걸들이 힘써 자신의 소장所長을 가지고 달려와 이익을 다투어 행여 천하天下가 하루라도 무사할까 염려합니다.
是以 人人各盡其材하야 雖不肖者라도 亦自淬厲而不至於怠廢
이 때문에 사람마다 각기 자신의 재능을 다하여 아무리 불초한 자라도 또한 스스로 분발하여 태만하고 황폐함에 이르지 않습니다.
其勇者相吞하고 智者相賊하야 使天下不安其生하나니
그러므로 용감한 자들은 서로 병탄倂呑하고 지혜로운 자들은 서로 해쳐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생업을 편안히 영위하지 못하게 합니다.
爲天下者 知夫大亂之本 起於智勇之士 爭利而無厭이라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자는 이 대란大亂의 근본이 지혜롭고 용맹한 선비들이 만족할 줄 모르고 이익을 다투는 데서 시작됨을 알았습니다.
是故 天下既平이면 則削去其具하야 抑遠天下剛健好名之士하고 而奬用柔懦謹畏之人하나니 不過數十年하야 天下靡然하야 無復往時之喜事也니이다
이 때문에 천하天下가 평정되고 나면 그들의 지혜와 용맹을 제거해서 천하天下강건剛健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선비들을 억제하여 멀리 하고, 나약하고 삼가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장려하고 등용하니, 이렇게 하면 불과 수십 년 만에 천하天下 사람들이 모두 그리로 쏠려서 다시는 예전처럼 일을 좋아하는 자가 없어지게 됩니다.
於是 能者 不自憤發하야 而無以見其能하고 不能者 益以弛廢而無用하니 當是之時하야 人君 欲有所爲 而左右前後 皆無足使者
이에 능한 자는 스스로 분발하지 못하여 자기 재능을 나타낼 수가 없고, 능하지 못한 자는 더욱 해이하고 황폐해져서 쓸모없게 되니, 이때를 당해서 군주가 비록 훌륭한 일을 하고자 하나 좌우와 전후에 모두 일을 맡길 만한 자가 없게 됩니다.
是以 綱紀日壊而不自知하니 此其爲患 豈特英雄豪傑之士趑趄而已哉리잇가
이 때문에 기강이 날로 무너져도 스스로 알지 못하니, 그 폐해가 어찌 다만 영웅호걸의 선비들이 멋대로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주저함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聖人則不然하야 當其久安於逸樂也 則以術起之하야 使天下之心으로翹翹然常喜於爲善이라
성인聖人은 그렇지 아니하여, 오랫동안 안일과 향락에 빠져 있을 적에는 방법을 만들어 이들을 진작시켜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분발하여 항상 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게 만듭니다.
是故 能安而不衰하니이다
이 때문에 능히 편안하면서도 쇠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且夫人君之所恃以爲天下者 天下皆爲而己不爲
또 군주가 믿고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방법은 천하天下 사람들이 모두 일을 하고 군주 자신은 일을 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夫使天下皆爲而己不爲者 開其利害之端하고 而辨其榮辱之等하야 使之踴躍奔走하야 皆爲我役而不自知하니이다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일하게 하고 군주 자신은 일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해利害의 단서를 열어주고 또 그 영화와 치욕의 차등을 분별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분발하여 달려와서 모두 군주 자신을 위해 쓰여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夫是以 坐而收其功也 如使天下皆欲不爲而得이면 則天子誰與共天下哉리잇가
이 때문에 군주가 가만히 앉아서 그 을 거두는 것이니, 만약 천하天下 사람들이 모두 일하지 않고 얻고자 한다면 천자天子가 누구와 함께 천하天下를 다스리겠습니까?
今者 治平之日 久矣 天下之患 正在此也
지금 나라가 다스려지고 평온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천하天下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曰 破庸人之論하야 開功名之門이니 而後 天下可爲也라하노이다
은 이 때문에 “용렬한 사람의 의논을 깨뜨려서 공명功名의 문을 열어주어야만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천하天下를 다스릴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今夫庸人之論 有二하니 其上之人 務爲寛深不測之量하고 而下之士 好言하나니
지금 용렬한 사람들의 의논은 두 가지가 있으니, 윗사람들은 되도록 넓고 깊어서 측량할 수 없는 큰 도량을 갖추려 하고, 아랫선비들은 중용中庸를 말하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此二者 皆庸人相與議論 舉先賢之言하야 而獵取其近似者하야 以自解説其無能而已矣니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용렬한 사람들이 서로 의논할 적에 선현先賢의 말씀을 들어서 그 비슷한 것들을 절취하여 스스로 자신의 무능함을 변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夫寛深不測之量 古人所以臨大事而不亂하야 有以鎮世俗之躁 蓋非以隔絶上下之情하야 養尊而自安也니이다
넓고 깊어서 측량할 수 없는 큰 도량은 옛사람이 대사大事에 임하여도 혼란하지 아니하여 세속의 조급함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요, 상하간上下間의 마음을 막고 끊어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스스로 편안히 한 것이 아닙니다.
譽之則勸하고 非之則沮하며 聞善則喜하고 見惡則怒 此三代聖人之所共也로되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칭찬해주면 권면되고 그르다고 비난하면 의기가 저상되며, 을 들으면 기뻐하고 을 보면 노여워하는 것은 삼대三代성인聖人들이 똑같이 하신 것입니다.
而後之君子 必曰 譽之不勸하고 非之不沮하며 聞善不喜하고 見惡不怒라야 斯以爲不測之量이라하니 不已過乎잇가
그런데 후세의 군자君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칭찬하여도 권면되지 않고 비난하여도 저상되지 않으며, 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을 보아도 노하지 않아야 이에 측량할 수 없는 큰 도량이 된다.”라고 하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夫有勸有沮하고 有喜有怒然後 有間而可入이요 有間而可入然後 智者得爲之謀하고 才者得爲之用이어늘 後之君子 務爲無間하니 夫天下誰能入之리잇고
권면됨이 있고 저상됨이 있고 기뻐함이 있고 노여워함이 있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고, 또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은 뒤에야 지혜로운 자가 군주를 위해 도모하고 재주 있는 자가 군주를 위해 쓰여질 수 있는데, 후세의 군자君子들은 되도록 틈이 없으려고 하니, 천하天下에 그 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古之所謂中庸者 盡萬物之理而不過
옛날에 이른바 중용中庸이라는 것은 만물의 도리를 다하여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亦曰이라하니 夫極 盡也니이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을 또한 황극皇極이라고도 하였으니, 이 은 극진하다는 뜻입니다.
後之所謂中庸者 循循焉爲衆人之所能爲하야 斯以爲中庸矣라하니
그런데 후세에서 말하는 중용中庸은 고분고분하여 보통 사람들도 행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이것을 중용中庸이라고 하니, 이는 공자孔子맹자孟子가 말씀한 향원鄕原이라는 것입니다.
한 지방 사람들이 모두 근신하는 사람[원인原人]이라고 칭하여 가는 곳마다 근신하는 사람이 되어서 유속流俗과 동화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말하기를 “옛사람은 어찌하여 행실을 외롭고 쓸쓸하게 하였는가?
生斯世也하야는 爲斯世也하야 善斯可矣라하니 謂其近於中庸而非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아서 남들이 하다고 하면 될 뿐이다.”라고 하니, 이는 중용中庸과 유사하면서도 중용中庸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曰 徳之賊也라하니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孔子, 孟子惡鄕原之賊夫徳也하사 欲得狂者而見之하시고 狂者 又不可得見하야 欲得獧者而見之하사
공자孔子맹자孟子께서 향원鄕原을 해침을 미워하여 광자狂者를 얻어 만나보고자 하셨고, 광자狂者를 또 만나볼 수가 없어서 견자獧者를 얻어 만나보고자 하셨습니다.
라하시니 今日之患 惟不取於狂者, 獧者하고 而皆取於鄕原이라
그리하여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광자狂者는 진취적이고 견자獧者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라고 하셨으니, 오늘날의 병통은 오직 광자狂者견자獧者를 취하지 않고 모두 향원鄕原을 취하는 것입니다.
是以 若此靡靡不立也니이다
이 때문에 이와 같이 나약하여 성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孔子 子思之所從受中庸者也 孟子 子思之所授以中庸者也니이다
공자孔子자사子思에게 중용中庸을 전수해주신 분이요, 또 맹자孟子자사子思에게 중용中庸을 전수받은 분입니다.
이나 皆欲得狂者, 獧者而與之하시니 然則淬勵天下而作其怠惰인댄 莫如狂者, 獧者之賢也니이다
그런데 공자孔子맹자孟子가 모두 광자狂者견자獧者를 얻어서 함께 하고자 하셨으니, 그렇다면 천하天下 사람들을 분발시켜서 나태함을 진작시키려 한다면 광자狂者견자獧者의 어진 사람을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曰 破庸人之論하야 開功名之門이니 而後 天下可爲也라하노이다
은 그러므로 말하기를 “용렬한 사람의 의논을 깨뜨려서 공명功名의 문을 열어주어야만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천하天下를 다스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唐荊川曰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此篇 前後各自爲段落하니 起伏 與決壅蔽篇同하니라
“이 편은 앞뒤가 각각 따로 단락이 되었으니, 기복起伏한 것이 〈결옹폐決壅蔽〉편과 같다.”
역주
역주1 策略 四 : 이 글은 仁宗 嘉祐 6년(1061)에 蘇軾은 올린 〈策略〉 5편 가운데 네 번째 편이다.
역주2 中庸之道 : 儒家에 있어서 최고의 道德 準則으로 여러 경전에 보인다.
《論語》 〈雍也〉에 “中庸의 德이 지극하다.[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라고 보이는데, 程伊川은 中庸을 해석하여 “치우치지 않음을 中이라 하고 변치 않음을 庸이라 하니, 中은 天下의 바른 道이고 庸은 天下의 정해진 理이다.[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라고 注하였으며, 朱子는 “中은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過와 不及이 없음의 이름이요, 庸은 平常함이다.[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 平常也]”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中庸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中立을 지키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였다.
後漢 靈帝 때에 胡廣은 벼슬한 지 30여 년에 三公을 두루 거치고 여섯 명의 황제를 섬겼으며 벼슬이 太傅에 이르러 군주의 신임과 예우가 극진하였다. 또한 국가의 故事에 익숙하고 조정의 禮法을 분명하게 알았으므로 당시 수도인 洛陽의 속담에 “만사가 다스려지지 못하거든 伯始(胡廣의 字)에게 물어보라. 天下의 中庸은 胡公에게 있다.[萬事不理問伯始 天下中庸有胡公]”라고 하였다.
그러나 胡廣은 성품이 유순하며 온화하고 근신하여 항상 겸손한 말과 얼굴빛으로 세상에 영합하고 忠直한 풍모가 없으니, 天下가 이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蘇軾이 비판한 中庸 역시 이러한 부류들을 지적해 말한 것이다.
역주3 皇極 : 황제의 법칙을 이른다. 임금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모든 政事를 오직 中庸으로 至公無私하게 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됨을 말한다. 《書經》 〈周書 洪範〉에 이르기를 “皇極은 임금이 極을 세우는 것이니, 이 五福을 거두어서 백성들에게 福을 펴주면 여러 백성들이 너(군주)의 極에 대하여 너에게 極을 보존함을 줄 것이다.”라고 보인다.
역주4 孔子孟子之謂鄕原 : 鄕原은 겉으로는 근신하는 풍모를 지니고 있으나 실제로는 世俗에 영합하는 僞善者를 이른다.
孔子와 孟子가 鄕原을 비난하신 내용은 《論語》 〈陽貨〉에 “鄕原은 德을 해치는 자이다.[鄕原 德之賊也]”라고 보이며, 《孟子》 〈盡心 下〉에 “鄕原은 비난하려 해도 들어 비난할 것이 없고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것이 없어서 流俗과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居함에 忠信과 같고 행함에 淸廉潔白과 같아서 여러 사람들이 다 좋아하거든 스스로 옳다고 여기나 堯․舜의 道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德의 賊이라고 하신 것이다.[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라고 보인다.
역주5 一鄕皆稱原人焉……善斯可矣 : 이 내용은 蘇軾이 《孟子》 〈盡心 下〉의 鄕原에 대한 글을 편집한 것으로 원문은 아래와 같다.
“〈萬章이 말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 서운해 하지 않는 자는 오직 鄕原일 것이다. 鄕原은 德의 賊이다.」라고 하셨으니, 어떠하면 鄕原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鄕愿이 狂者를 비난하기를〉 「어찌하여 이처럼 말과 뜻이 커서 말은 행실을 돌아보지 않으며 행실은 말을 돌아보지 않고 말하기를『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하는가?」라고 하며, 〈鄕愿이 狷者를 비난하기를〉 「행실을 어찌하여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남들이 善하다고 하면 可하다.」라고 하여, 자신을 감추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鄕原이다.’[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 鄕原 德之賊也 曰 何如 斯可謂之鄕原矣 曰 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古之人 行何爲踽踽涼涼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역주6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 이 내용은 《論語》 〈子路〉에 孔子께서 “中行(中道)의 선비를 얻어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狂者와 狷者를 취할 것이다. 狂者는 진취적이고 狷者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라고 말씀하신 것이 보인다.
또 《孟子》 〈盡心 下〉에도 “孔子께서 ‘中道의 인물을 얻어 함께 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狂者와 獧者와 같이 하겠다. 狂者는 진취적이요 獧者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라고 하셨으니, 孔子께서 어찌 中道의 인물을 얻기를 원하지 않으셨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다음의 인물을 생각하신 것이다.[孔子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라고 보인다.
狂者는 큰 뜻을 품고 있으나 행실이 미치지 못하는 자이며, 獧은 狷과 통하는바 狷者는 의지가 곧고 고집스러워 不義한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는 자를 이르니, 狂者는 知는 충분하나 行이 미치지 못하는 자이고 狷者는 知는 부족하나 行이 유여한 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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