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 由於愛境
하야 有逆有順
하야 而生喜怒
하야 하나니라
하야 至千萬
하니 本所從來
하면 唯有一愛
요 更無餘病
이라
佛대의왕大醫王이 對病爲藥호되 唯有一舍요 更無餘藥하니 常以此藥으로 而治此病하면 如水救火하야 應手當滅이어늘
衆生所愛는 無過身體어늘 父母有疾이면 割肉刺血하야 初無難色호되 若復隣人이 從其求乞이면 一爪一髮이라도 終不可得이라
有二導師
하니 其一淸淨
하야 不入
하고 能知衆生
의 生死之本
하야 能使衆生
으로 了然見知
라
其一導師
는 하야 縱不求利
나 卽自求名
하니 譬如隣人
이 求乞爪髮
에 終不可得
이어든 而況肌肉
이리오
設如有人이 無故取米하야 投坑穽中이면 見者皆恨호되 若以此米로 施諸鳥雀하면 見者皆喜하나니
四方之民이 皆以勤苦로 而得衣食하야 所得毫末이나 其苦無量이로되
獨此
之民
은 貿遷重寶
하야 坐獲富樂
하야 得之也易
하고 享之也愧
라
而況飄墮
國
하야 呼號神天
과 佛菩薩僧
하야 以脫須臾
하나니 當此之時
하야 身非己有
어든 而況財物
은 實同糞土
라
古邑
의 자복선사資福禪寺에 有老
하니 조당祖堂其名
이라
未嘗戒也로되 而律自嚴하고 未嘗求也로되 而人自施라
人之施
조당堂은 如物在衡
하야 를 了然覺知
하고 조당堂之受施
는 如水涵影
하야 雖千萬過
나 無一留者
라
조당堂以是故
로 創作
하야 하야 壯麗之極
이 實冠
남월南越이라
03. 광주 자복사廣州 資福寺 나한각羅漢閣에 대한 비碑
장공長公이 선림禪林의 오경悟景을 지으니, 천년 이래로 뛰어난 격조이다.
중생衆生들은 애정(사랑하는 감정) 때문에 생生과 사死로 들어가니, 사랑하는 경지로 말미암아 역逆이 있고 순順이 있어서,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감정이 생겨 여러 가지 업보를 만들어낸다.
육취六趣(육도六道)를 전전하여 천만겁에 이르니, 소종래所從來를 근본해보면 오직 애정만 있을 뿐이요 다시 다른 병통이 없다.
대의왕大醫王이신 부처님이 병에 따라 약을 짓되, 오직 한 가지 버림만 있고 다시 다른 약이 없으니, 항상 이 약을 가지고 이 병을 치료하면 물로 불을 끄는 것과 같아서 손에 따라 마땅히 소멸된다.
그런데 어째서 중생衆生들은 이 병을 없애지 못하는가?
이것은 도사導師의 잘못이요 중생衆生들의 잘못이 아니다.
중생衆生들이 사랑하는(아끼는) 것은 신체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부모가 질병이 있으면 살점을 떼어내고 몸을 찔러 피를 내어서 애당초 조금도 난색을 표하는 일이 없으나, 만일 또 이웃 사람이 이것을 요구하면 손톱 하나와 머리카락 하나도 끝내 〈주지 않아〉 얻을 수가 없다.
여기에 두 도사導師가 있으니, 그중에 한 명은 청정淸淨하여 제상諸相에 들어가지 않고 중생衆生의 살고 죽는 근본을 알아서, 중생衆生들로 하여금 분명히 이것을 보고 알게 한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서 윤회輪回하는 곳을 벗어나니, 이곳은 안락하여 영원히 의지할 만해서 부모父母와 다를 것이 없다.
지체肢體도 버릴 수 있는데 하물며 그깟 재물이겠는가?
그런데 그중에 한 도사導師는 유위有爲한 마음을 가지고 유위有爲한 법을 행하여, 비록 이익은 구하지 않으나 스스로 명성을 구하니, 비유하면 이웃 사람이 와서 손톱과 머리카락을 구할 적에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은데, 하물며 살에 있어서이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사랑하고 아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도사導師의 잘못인 것이다.
설령 어떤 사람이 까닭 없이 쌀을 가져다가 구덩이에 버리면 보는 자들이 모두 안타까워하나, 만약 이 쌀을 가지고 참새 따위의 작은 새들에게 베풀면 보는 자들이 모두 기뻐한다.
참새 따위의 작은 새들은 무지無知하니, 나의 베풂을 받는 것이 어찌 구덩이 위에 버리는 것과 다르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히 이에 대해서 기뻐함이 있고 성냄이 있는 것이다.
만일 도사導師가 유심有心한 마음으로 유위有爲의 법을 행한다면 이 베푸는 것이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사랑하고 아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중생衆生의 허물이 아닌 것이다.
사방四方의 백성들이 모두 수고로움으로써 의식衣食을 얻어서, 얻는 것이 털끝처럼 적지만 그 고통은 측량할 수 없다.
그러나 유독 이 남월南越 지방 영해嶺海의 백성들은 귀중한 보물을 판매하여 가만히 앉아서 부유함과 즐거움을 얻어, 재물을 얻기가 쉽고 재물을 누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희사喜捨를 하는 것이다.
바닷길은 깊고 험하여 죽고 사는 사이가 일찍이 머리털 하나도 용납하지 못한다.
더구나 나찰귀羅刹鬼(악귀惡鬼)의 나라에 표류하여 떨어져서 신명神明과 하느님(상제上帝), 부처와 보살菩薩과 승려를 부르짖어서 잠시 동안의 위기를 벗어나기를 바라니, 이때를 당해서는 자기의 몸도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하물며 분토糞土와 같은 재물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희사를 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이 두 법이 선善한 마음을 도와 유발한다.
이 때문에 남월南越 지방 사람들이 베풀기를 쉽게 하고 희사를 좋아하는 것이 사방에서 으뜸인 것이다.
옛 고을 동완東莞의 자복선사資福禪寺에 늙은 비구승이 있는데 이름이 조당祖堂이다.
일찍이 수계受戒를 하지 않았으나 율법律法이 본래 엄하고, 일찍이 재물을 구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주하였다.
사람들이 조당祖堂에게 시주하는 것은 물건이 저울대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더하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 알았고, 조당祖堂이 시주를 받는 것은 물이 그림자를 머금는 것과 같아서 비록 천만 번을 지나가나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조당祖堂이 이 때문에 5백 대아라한大阿羅漢의 엄숙하고 청정한 보각寶閣을 지어서, 지상에는 천 개의 기둥이 받쳐주는 큰 집이 솟아오르고, 공중에는 3층의 누각이 떠 있어서, 장엄하고 화려함의 지극함이 실로 남월南越 지방에 으뜸이었다.
동파거사東坡居士인 내가 보고 듣고 수희隨喜하여 다음과 같이 게언偈言을 말한다.
5백 명의 큰 선비인 아라한阿羅漢이 이 성에 머무니
남쪽 지방의 진주와 큰 자개가 모두 동쪽 지방으로 몰려왔네.
중생衆生의 마음, 봄이 돌아와 측백나무에 다시 잎이 피니
철력목鐵力木의 숲, 동쪽으로 실어와 각閣이 비로소 이루어졌네.
붉은 뱀이 흰 구슬을 물고 와 야명주夜明珠가 이르렀네.
세 번 친 점 모두 길하니 누가 감히 다툴까?
층층의 높은 처마 공중에 나는 듯이 솟아 해와 별을 굽어보네.
큰 바람 서서히 불어와 깨끗한 운치로 풍경風磬을 울리네.
장독瘴毒의 안개 한 번 씻어 빙설氷雪처럼 깨끗하여
남쪽과 북쪽 지방의 모든 사람들 장수하고 편안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