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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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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장공長公 作禪林悟景하니 千年以來絶調니라
하니 由於愛境하야 有逆有順하야 而生喜怒하야 하나니라
하야 至千萬하니 本所從來하면 唯有一愛 更無餘病이라
대의왕大醫王 對病爲藥호되 唯有一舍 更無餘藥하니 常以此藥으로 而治此病하면 如水救火하야 應手當滅이어늘
云何衆生 不滅此病
非衆生咎니라
何以故
衆生所愛 無過身體어늘 父母有疾이면 割肉刺血하야 初無難色호되 若復隣人 從其求乞이면 一爪一髮이라도 終不可得이라
有二導師하니 其一淸淨하야 不入하고 能知衆生 生死之本하야 能使衆生으로 了然見知
하니 是處安樂하야 堪永依怙하야 無異父母
支體可捨어든 而況財物이리오
其一導師 하야 縱不求利 卽自求名하니 譬如隣人 求乞爪髮 終不可得이어든 而況肌肉이리오
以此觀之하면 愛吝不捨 是導師過니라
設如有人 無故取米하야 投坑穽中이면 見者皆恨호되 若以此米 施諸鳥雀하면 見者皆喜하나니
鳥雀無知하니 受我此施 何異坑穽이리오마는
而人自然하야 有喜有慍이라
如使導師 有心有爲 則此施者 與棄何異리오
以此觀之하면 愛吝不捨 非衆生咎니라
四方之民 皆以勤苦 而得衣食하야 所得毫末이나 其苦無量이로되
獨此之民 貿遷重寶하야 坐獲富樂하야 得之也易하고 享之也愧
是故其人 以愧故捨하나니라
海道幽險하야 死生之間 曾不容髮이어든
而況飄墮하야 呼號神天 佛菩薩僧하야 以脫須臾하나니 當此之時하야 身非己有어든 而況財物 實同糞土
是故其人 以懼故捨하나니
愧懼二法 助發善心이라
是故남월 輕施樂捨 甲於四方하니라
古邑 자복선사資福禪寺 有老하니 조당祖堂其名이라
未嘗戒也로되 而律自嚴하고 未嘗求也로되 而人自施
人之施조당 如物在衡하야 了然覺知하고 조당之受施 如水涵影하야 雖千萬過 無一留者
조당以是故 創作하야 하야 壯麗之極 實冠남월南越이라
동파거사東坡居士 하노라
五百大士栖此城하니
皆東傾이라
衆心回春柏再榮하니
未到先通靈하니
誰敢爭
層簷飛空俯日星이라
海波不搖颶無聲하고
大風徐來韻流鈴이라
一洗瘴霧氷雪淸하야
人無南北壽且寧이어다


03. 광주 자복사廣州 資福寺 나한각羅漢閣에 대한
장공長公선림禪林오경悟景을 지으니, 천년 이래로 뛰어난 격조이다.
중생衆生들은 애정(사랑하는 감정) 때문에 로 들어가니, 사랑하는 경지로 말미암아 이 있고 이 있어서,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감정이 생겨 여러 가지 업보를 만들어낸다.
육취六趣(육도六道)를 전전하여 천만겁에 이르니, 소종래所從來를 근본해보면 오직 애정만 있을 뿐이요 다시 다른 병통이 없다.
대의왕大醫王이신 부처님이 병에 따라 약을 짓되, 오직 한 가지 버림만 있고 다시 다른 약이 없으니, 항상 이 약을 가지고 이 병을 치료하면 물로 불을 끄는 것과 같아서 손에 따라 마땅히 소멸된다.
그런데 어째서 중생衆生들은 이 병을 없애지 못하는가?
이것은 도사導師의 잘못이요 중생衆生들의 잘못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중생衆生들이 사랑하는(아끼는) 것은 신체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부모가 질병이 있으면 살점을 떼어내고 몸을 찔러 피를 내어서 애당초 조금도 난색을 표하는 일이 없으나, 만일 또 이웃 사람이 이것을 요구하면 손톱 하나와 머리카락 하나도 끝내 〈주지 않아〉 얻을 수가 없다.
여기에 두 도사導師가 있으니, 그중에 한 명은 청정淸淨하여 제상諸相에 들어가지 않고 중생衆生의 살고 죽는 근본을 알아서, 중생衆生들로 하여금 분명히 이것을 보고 알게 한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서 윤회輪回하는 곳을 벗어나니, 이곳은 안락하여 영원히 의지할 만해서 부모父母와 다를 것이 없다.
지체肢體도 버릴 수 있는데 하물며 그깟 재물이겠는가?
그런데 그중에 한 도사導師유위有爲한 마음을 가지고 유위有爲한 법을 행하여, 비록 이익은 구하지 않으나 스스로 명성을 구하니, 비유하면 이웃 사람이 와서 손톱과 머리카락을 구할 적에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은데, 하물며 살에 있어서이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사랑하고 아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도사導師의 잘못인 것이다.
설령 어떤 사람이 까닭 없이 쌀을 가져다가 구덩이에 버리면 보는 자들이 모두 안타까워하나, 만약 이 쌀을 가지고 참새 따위의 작은 새들에게 베풀면 보는 자들이 모두 기뻐한다.
참새 따위의 작은 새들은 무지無知하니, 나의 베풂을 받는 것이 어찌 구덩이 위에 버리는 것과 다르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히 이에 대해서 기뻐함이 있고 성냄이 있는 것이다.
만일 도사導師유심有心한 마음으로 유위有爲의 법을 행한다면 이 베푸는 것이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사랑하고 아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중생衆生의 허물이 아닌 것이다.
사방四方의 백성들이 모두 수고로움으로써 의식衣食을 얻어서, 얻는 것이 털끝처럼 적지만 그 고통은 측량할 수 없다.
그러나 유독 이 남월南越 지방 영해嶺海의 백성들은 귀중한 보물을 판매하여 가만히 앉아서 부유함과 즐거움을 얻어, 재물을 얻기가 쉽고 재물을 누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희사喜捨를 하는 것이다.
바닷길은 깊고 험하여 죽고 사는 사이가 일찍이 머리털 하나도 용납하지 못한다.
더구나 나찰귀羅刹鬼(악귀惡鬼)의 나라에 표류하여 떨어져서 신명神明과 하느님(상제上帝), 부처와 보살菩薩과 승려를 부르짖어서 잠시 동안의 위기를 벗어나기를 바라니, 이때를 당해서는 자기의 몸도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하물며 분토糞土와 같은 재물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희사를 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이 두 법이 한 마음을 도와 유발한다.
이 때문에 남월南越 지방 사람들이 베풀기를 쉽게 하고 희사를 좋아하는 것이 사방에서 으뜸인 것이다.
옛 고을 동완東莞자복선사資福禪寺에 늙은 비구승이 있는데 이름이 조당祖堂이다.
일찍이 수계受戒를 하지 않았으나 율법律法이 본래 엄하고, 일찍이 재물을 구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주하였다.
사람들이 조당祖堂에게 시주하는 것은 물건이 저울대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더하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 알았고, 조당祖堂이 시주를 받는 것은 물이 그림자를 머금는 것과 같아서 비록 천만 번을 지나가나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조당祖堂이 이 때문에 5백 대아라한大阿羅漢의 엄숙하고 청정한 보각寶閣을 지어서, 지상에는 천 개의 기둥이 받쳐주는 큰 집이 솟아오르고, 공중에는 3층의 누각이 떠 있어서, 장엄하고 화려함의 지극함이 실로 남월南越 지방에 으뜸이었다.
동파거사東坡居士인 내가 보고 듣고 수희隨喜하여 다음과 같이 게언偈言을 말한다.
5백 명의 큰 선비인 아라한阿羅漢이 이 성에 머무니
남쪽 지방의 진주와 큰 자개가 모두 동쪽 지방으로 몰려왔네.
중생衆生의 마음, 봄이 돌아와 측백나무에 다시 잎이 피니
철력목鐵力木의 숲, 동쪽으로 실어와 이 비로소 이루어졌네.
사리舍利가 오기도 전에 먼저 신령이 통하니
붉은 뱀이 흰 구슬을 물고 와 야명주夜明珠가 이르렀네.
세 번 친 점 모두 길하니 누가 감히 다툴까?
층층의 높은 처마 공중에 나는 듯이 솟아 해와 별을 굽어보네.
바다에 파도 일지 않아 회오리바람 소리 없고
큰 바람 서서히 불어와 깨끗한 운치로 풍경風磬을 울리네.
장독瘴毒의 안개 한 번 씻어 빙설氷雪처럼 깨끗하여
남쪽과 북쪽 지방의 모든 사람들 장수하고 편안할지어다.


역주
역주1 廣州資福寺羅漢閣碑 :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44권에 “元符 3년(1100) 10월에 승려 祖堂이 와서 東莞 資福寺의 羅漢閣이 완성되었음을 告하자, 東坡가 記를 지었다.”라고 보인다. 本集에는 이 글의 제목이 〈廣州東莞縣 資福禪寺 羅漢閣記〉로 되어 있다. 東坡가 사면을 받고 海南島에서 북쪽으로 돌아올 적에 廣州를 경유하였다. 羅漢은 阿羅漢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이르는바, 菩薩의 바로 다음의 지위이다.
역주2 衆生以愛 故入生死 : 衆生은 불교 용어로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뜻하나, 일반적으로는 인간을 가리킨다. 愛는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愛情을 이르고, 生死는 태어났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輪廻를 이른다. 인간은 愛情 등의 欲情에 얽매어 輪廻에서 벗어나 解脫에 이르지 못한다 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造種種業 : 業은 業報의 의미로 쓰였다. 業은 미래에 善惡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으로서의 행위이며, 이 원인 행위에 따른 결과를 果報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합쳐 業報라고 한다. 인간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善業과 惡業은 동일한 善惡의 果報를 짓게 됨을 의미한다.
역주4 展轉六趣 : 六趣는 六道로 衆生이 輪廻의 과정에서 머무는 여섯 가지 세계인 地獄道, 餓鬼道, 畜生道, 阿修羅道, 人間道, 天上道를 이른다. 佛法을 닦아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중생들은 이 여섯 가지 세계를 전전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5 : 불교 용어로 梵語 ‘kalpa’의 음역인데, 梵天의 하루로 4억3천2백만 년의 1천 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혹은 하나의 우주가 생성하였다가 소멸하는 동안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일컫는다.
역주6 導師 : 佛法으로 衆生을 濟度하여 해탈로 이끄는 菩薩과 부처의 通稱이나, 여기서는 범연히 승려를 의미하였다.
역주7 諸相 :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고 사고나 느낌 등 관념적인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역주8 不生不死 出輪回處 : 佛家에서는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衆生들이 번뇌와 業에 의하여 三界와 六道의 세계를 죽고 살면서 계속 돌고 있다고 여기는바, 이것이 輪廻이다. 그러나 佛法에 의해 濟度되어 해탈에 이르면 더 이상 生死가 없어서 輪廻의 고리 속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回는 廻와 같다.
역주9 以有爲心 行有爲法 : 有爲心은 有爲法에 집착하는 마음으로, 이로 인해 緣起에 속박되고 세상에 대한 욕심과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이다.
有爲法은 緣起에 의해 조작되어 生, 住, 異, 滅의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른다. 有爲法의 본질을 깨달아 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를 넘으면 항상 존재하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데, 이를 無爲法이라 이른다.
無爲法은 바로 緣起에 의해 조작되지 않고 生, 住, 異, 滅이 없는 實相으로 존재하는 진리를 의미하는데, 이를 깨달아 輪廻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해탈이다.
《金剛經》의 “일체의 有爲法은 꿈과 같고 幻想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음을 보아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라는 말은 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역주10 南越嶺海 : 지금의 廣東省, 廣西省 일대를 이른다. 이 지역은 五嶺의 남쪽으로 南海에 인접해 있으므로 嶺海라고 부른다. 五嶺은 江西․湖南․廣東․廣西 네 省의 접경에 위치한 大庾嶺․始安嶺․臨賀嶺․桂陽嶺․揭陽嶺의 다섯 고개를 가리킨다.
역주11 羅刹鬼 : 佛敎에서 이르는 惡魔나 惡鬼의 통칭이다.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는 능력이 있어 동물이나 괴물로 변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역주12 東莞 : 宋代 縣의 이름으로 지금의 廣東省 深圳市에 있었다. 晉나라 때의 寶安縣을 唐나라 때에 東莞縣으로 개칭하였다.
역주13 比丘 : 梵語 ‘bhikṣu’의 음역으로 불교에서 출가하여 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를 이른다. 20세가 되기 전에 출가하여 十戒를 받고 수행하는 자를 沙彌라 하고, 20세가 되어 具足戒를 받은 자를 일러 比丘라고 한다.
역주14 損益銖黍 : 銖黍는 지극히 작은 것을 이른다. 黍는 기장 한 톨로 중량과 용량의 기본 단위가 된다. 중량에 있어서는 10黍를 1累라 하고 10累를 1銖라 하고 24銖를 1兩이라 하며, 용량에 있어서는 黍 2천4백 개를 1合이라 한다.
역주15 五百大阿羅漢 嚴淨寶閣 : 資福寺에 5백 명의 羅漢像을 모신 羅漢閣을 이른다. 五百大阿羅漢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에 衆生에게 그 뜻을 전하기 위해 먼저 濟度한 500명의 제자를 이른다.
역주16 涌地千柱 浮空三成 : 涌地千柱는 천 개의 기둥으로 세운 누각이란 뜻이나 누각의 규모가 매우 큼을 말한 것이고, 浮空三成은 누각이 삼층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7 見聞隨喜 而說偈言 : 隨喜는 불교 용어로 佛法을 듣고 기뻐하여 이를 즐겁게 수행함을 이르는데, 인신하여 菩薩이나 다른 사람의 善行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이를 따라서 善行을 행함을 이르기도 하며, 후대에는 佛寺(사찰)를 遊覽함을 이르기도 한다.
偈言은 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의 덕을 찬미하거나 불법의 깊은 뜻을 읊은 頌詞를 이르는데, 偈는 범어 ‘gāthā’의 音譯이다. 여러 가지 형식이 있으나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8言을 한 句로 하여 2개의 句가 하나의 行을 이루고, 다시 2개의 行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32言의 詩인데, 이를 首盧迦라 한다. 이것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는 四言이나 五言으로 한 句를 만들고, 4개의 句로 하나의 偈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偈는 운문만으로 된 것을 孤起偈라 하며, 특별히 산문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서술하고 다시 운문으로 산문의 내용을 집약하여 읊은 것을 重頌偈라 한다.
漢詩로 번역된 偈는 漢詩와 큰 차이가 없으나 押韻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禪偈는 禪宗에서 道를 깨우친 경지를 표현하여 노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偈言은 별다른 제약 없이 지은이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따라 창작되었다. 그러므로 偈言은 개인의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주18 南珠大貝 : 南珠는 合浦에서 나는 明珠를 이른다. 《抱朴子》 〈袪惑〉에 “明珠를 찾을 적에 合浦의 淵에서 찾지 않으면 驪龍의 夜光珠를 얻을 수 없다.[凡探明珠 不於合浦之淵 不得驪龍之夜光也]”라고 보인다.
또 《後漢書》 〈孟嘗傳〉에 “合浦郡은 곡식이 생산되지 않았으나 바다에서 질 좋은 진주가 나왔다. 이에 이웃에 경계한 交阯(趾)와 항상 진주를 교역하여 쌀을 사들여 양식으로 사용하였다.
앞서 부임한 宰守들이 모두 탐욕스러워 백성들에게 진주 채취를 끝없이 요구하니, 진주가 점차 交阯郡의 경계로 옮겨갔다. 이에 상인들이 오지 않아 백성들이 자뢰할 물자가 없어 가난한 백성들이 길에서 굶어 죽었다.
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자, 이전의 폐단을 혁파하고 백성들의 고통과 이익을 찾아내어 고통을 제거해주었다. 이에 해가 지나기 전에 사라졌던 진주들이 다시 돌아와, 백성들이 모두 생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郡不産穀實而海出珠寶 與交阯比境 常通商販 貿糴糧食 先時宰守竝多貪穢 詭人採求 不知紀極 珠遂漸徙於交阯郡界 於是行旅不至 貧者死餓於道 嘗到官 革易前敝 求民病利 曾未踰歲 去珠復還 百姓皆反其業]”라고 보인다.
合浦는 지금의 廣西省 合浦縣 서북쪽으로 이곳 바다에서 나는 천연 진주는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은 진주라 한다.
大貝는 큰 조개껍질인데, 고대에는 이를 寶物로 여겼다. 班固의 《白虎通》 〈封禪〉에 “天子의 德이 못과 샘에까지 이르면, 黃龍이 나타나고 醴泉이 솟으며 河水에서 洛書가 나오고 長江에서 大貝가 나오고 바다에서 明珠가 나온다.[德至淵泉則黃龍見 醴泉涌 河出洛書 江出大貝 海出明珠]”라고 보인다.
역주19 鐵林東(萊)[來]閣乃成 : 鐵林은 鐵力木의 숲을 이른다. 鐵力木은 鐵木이라고도 하는데, 키가 매우 큰 교목으로 목질이 단단하여 배를 건조할 때 쓰거나 큰 건축물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다. 이 나무는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데 中國에서는 廣東省에서 생산되므로 ‘東來’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萊’는 ‘來’의 오기로 本集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20 寶骨 : 佛骨로 바로 부처님의 眞身舍利를 이른다.
역주21 赤蛇白璧珠夜明 : 赤蛇와 白璧과 夜明珠는 모두 神物로 神靈스러움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22 三卜襲吉 : 三卜은 세 번 점친다는 말이다. 《春秋穀梁傳》 襄公 7년에 “여름 4월에 세 번 郊祭의 길흉을 점쳤으나 길하지 않아 희생을 놓아주었다.[夏四月 三卜郊 不從 乃免牲]”라고 보이는데, 楊士勛의 《春秋穀梁傳疏》에 “세 번 점치는 것이 禮이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한 것이다.[三卜 是禮而書之者]”라고 注하였다.
襲吉은 重吉(거듭 길함)이다. 《春秋左氏傳》 哀公 10년에 “일은 두 번 좋을 수 없고 점은 거듭 吉하지 않는 것이다.[事不再令 卜不襲吉]”라고 보이는데, 그 注에 “襲은 거듭함이다.[襲 重也]”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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