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 請去三族
하고 而以鄭爲內臣
이어늘 公將許之
러니 管仲不可
라
公曰 諸侯有討於鄭이나 未捷하니 苟有釁이면 從之不亦可乎아 管仲曰 君若綏之以德하고 加之以訓辭하고
而率諸侯以討鄭이면 鄭將覆亡之不暇하리니 豈敢不懼리잇고
齊可以王矣
로되 恨其不學道
하야 不自
하야 使
하고 而
라
吾讀春秋以下史하야 而得七人焉하니 皆盛德之事로 可以爲萬世法이요 又得八人焉하니 皆反是하야 可以爲萬世戒라
太公之治齊也에 擧賢而尙功한대 周公曰 後世에 必有簒弑之臣이라하사 天下誦之하니 齊其知之矣라
하야 皆知其當有齊國也
하니 簒弑之疑 蓋萃於敬仲矣
라
然이나 桓公, 管仲이 不以是廢之하고 廼欲以爲卿하니 非盛德이면 能如此乎아
故
로 吾以謂
하고 하고 하고 하고 은 皆盛德之事也
어늘
而世之論者는 則以爲此七人者 皆失於不殺하야 以啓亂이라하니 吾以謂不然이라하노라
秦之
와 漢之
와 唐之
之流
는 皆蕃種也
로되 何負於中國哉
이완대 而獨殺元海, 祿山乎
아
且夫自今而言之하면 則元海, 祿山이 死有餘罪어니와 自當時而言之하면 則不免爲殺無罪하니 豈有天子殺無罪하고 而不得罪於天者리오
上失其道하면 塗之人이 皆敵國也니 天下豪傑을 其可勝旣乎아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니 世皆以爲非也
로되 此八人者
는 當時之慮 豈非憂國備亂
이 與憂元海, 祿山者同乎
아
故
로 夫嗜殺人者
는 必以
하나니 以鄧之微
로 無故殺大國之君
하야 使楚人擧國而仇之
면 其亡
이 不愈速乎
아
吾以謂 爲天下는 如養生이요 (愛)[憂]國備亂은 如服藥이라
養生者는 不過愼起居飮食, 節聲色而已니 節愼은 在未病之前이요 而服藥은 在已病之後라
하고 憂
면 則病未作而藥殺人矣
리니 彼八人者
는 皆未病而服藥者也
니라
자첨子瞻(소식蘇軾)은 주아부周亞夫 이하 여덟 사람이 제명에 죽지 못한 것을 서글퍼하였다.
정鄭나라 태자 화太子 華가 은밀히 제 환공齊 桓公에게 ‘자기 나라에 있는 세 집안을 제거하고 정鄭나라를 내신內臣으로 삼을 것’을 청하자, 환공桓公이 이것을 허락하려고 하였는데 관중管仲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제후諸侯들이 정鄭나라를 토벌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만약 정鄭나라에 틈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관중管仲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정鄭나라를 덕德으로써 편안하게 해주시고 정鄭나라를 훈계하는 말로써 가르치소서.
그러고 나서 〈이렇게 하는 데도 정鄭나라가 배반할 경우〉 제후諸侯들을 거느리고 정鄭나라를 토벌하신다면 정鄭나라는 장차 전복하여 멸망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감히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죄인인 태자太子를 거느리고 정鄭나라에 임하신다면 정鄭나라는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환공桓公이 정鄭나라 태자 화太子 華의 요청을 거절하였는데, 정백鄭伯(정鄭나라 임금 문공文公)이 마침내 제齊나라의 맹약盟約을 받아들였다.
자화子華(태자 화太子 華)의 요청을 거절하고 조말曹沫의 맹약을 어기지 않은 것은 모두 성덕盛德의 일이다.
제齊나라는 충분히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었는데, 한스럽게도 관중管仲이 도道를 배우지 아니하여 스스로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으로 제齊나라를 다스리지 못해서, 자기 집안에는 삼귀三歸의 병폐가 있고 제齊나라에는 육폐六嬖의 화禍가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환공桓公이 왕王 노릇하지 못하여 공자孔子께서 관중管仲의 기국器局을 작게 여기신 것이다.
그러나 관중管仲을 인정해주심이 또한 지극하였다.
그리하여 말씀하시기를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를 규합하되 병거兵車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공이었으니, 누가 그 인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 인仁만 하겠는가?”라고 하셨으니, 맹자孟子가 ‘중니仲尼(공자孔子)의 문도門徒들은 제 환공齊 桓公과 진 문공晉 文公의 일을 말한 자가 없다.’고 한 것은 말씀이 지나친 것이다.
나는 《춘추春秋》 이하 역사책을 읽고서 일곱 사람을 얻었으니 이들은 모두 성덕盛德의 일로 만세萬世의 모범이 될 만하였으며, 또 여덟 사람을 얻었으니 이들은 반대로 만세萬世의 경계가 될 만하다.
태공太公(여상呂尙)이 제齊나라를 다스릴 적에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공功이 있는 사람을 높이자, 주공周公이 말씀하시기를 “후세에 반드시 찬탈하고 시해하는 신하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천하 사람들이 이 말을 외고 있었으니, 제齊나라에서도 이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경중田敬仲이 처음 태어났을 적에 주周나라 사관史官이 시초점蓍草占을 쳤고, 그가 제齊나라로 망명왔을 적에 제齊나라 의씨懿氏가 거북점을 쳐서 그가 마땅히 제齊나라를 소유할 줄을 모두 알았으니, 찬탈하고 시해하리라는 의심이 아마도 전경중田敬仲에게로 집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환공桓公과 관중管仲은 이 때문에 그를 버리지 않았고 마침내 그를 경卿으로 삼고자 하였으니, 성덕盛德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이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건대, 초 성왕楚 成王이 진晉나라가 반드시 패자霸者가 될 줄을 알았으나 중이重耳를 죽이지 않았고, 한 고조漢 高祖가 동남 지방에서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았으나 오왕 비吳王 濞를 죽이지 않았고, 진 무제晉 武帝가 제왕 사마유齊王 司馬攸의 말을 들었으나 유원해劉元海(유연劉淵)를 죽이지 않았고, 부견苻堅이 왕맹王猛을 믿었으나 모용수慕容垂를 죽이지 않았고, 당唐나라 명황明皇(현종玄宗)이 장구령張九齡을 신용하였으나 안녹산安祿山을 죽이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성덕盛德의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 논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이 일곱 군주들은 모두 이들을 죽이지 아니하여 난亂을 열어놓는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하니, 나는 이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의 일곱 군주들은 모두 스스로 패망을 자초하였던 것이니, 일곱 사람을 죽이지 않은 잘못 때문에 패망한 것이 아니다.
제 경공齊 景公이 형벌을 번거롭게 하고 세금을 무겁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전씨田氏가 있었더라도 제齊나라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요, 초 성왕楚 成王이 자옥子玉을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진 문공晉 文公이 있었더라도 전쟁에 패하지 않았을 것이요, 한 경제漢 景帝가 오吳나라 태자太子를 살해하지 않고 조조晁錯를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비록 오왕 비吳王 濞가 있었더라도 스스로 군대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요, 진 무제晉 武帝가 효혜제孝惠帝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비록 유원해劉元海가 있었더라도 난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요, 부견苻堅이 장강長江 이남을 탐내지 않았더라면 비록 모용수慕容垂가 있었더라도 배반하지 못했을 것이요, 당唐나라 명황明皇이 이임보李林甫와 양국충楊國忠을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비록 안녹산安祿山이 있었더라도 또한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진秦나라의 유여由余와 한漢나라의 김일제金日磾와 당唐나라의 이광필李光弼, 혼감渾瑊의 무리는 모두 오랑캐 종족이었지만 언제 중국을 저버린 적이 있었기에, 어찌 홀로 〈죄가 드러나지도 않은〉 유원해劉元海와 안녹산安祿山을 〈오랑캐라고 하여〉 죽인단 말인가?
또 지금의 입장에서 말하면 유원해劉元海와 안녹산安祿山은 죽어도 남을 죄가 있지만, 그 당시로 말한다면 〈이들을 죽이는 것은〉 무고한 사람을 죽임이 됨을 면치 못하니, 어찌 천자天子로서 무고한 자를 죽이고도 하늘의 죄를 얻지 않는 경우가 있겠는가?
윗사람이 도道를 잃으면 길 가는 사람도 다 적국敵國이 되는 것이니, 천하天下의 호걸을 어찌 모두 없앨 수 있겠는가?
한 경제漢 景帝는 앙앙불락하고 원망한다 하여 주아부周亞夫를 죽였고, 조조曹操는 명망이 대단하다 하여 공융孔融을 죽였고, 진 무제晉 武帝는 와룡臥龍이라 하여 혜강嵆康을 죽였고, 진 경제晉 景帝 또한 명망이 대단하다 하여 하후현夏侯玄을 죽였고, 송 명제宋 明帝는 집안이 너무 번성하다 하여 왕욱王彧을 죽였고, 북제北齊의 후주後主는 동요童謠 때문에 곡률광斛律光을 죽였고, 당 태종唐 太宗은 도참설圖讖說 때문에 이군선李君羨을 죽였고, 측천무후則天武后 또한 동요童謠 때문에 배염裵炎을 죽였으니, 세상에서는 모두 이들의 잘못이라고 하나, 이 여덟 군주들이 당시에 후환을 염려한 것이 어찌 나라를 걱정하고 난을 대비하여 유원해劉元海와 안녹산安祿山의 후환을 걱정한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사람들이 성공과 실패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삼음이여.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은 반드시 등鄧나라 임금이 초楚나라 임금을 죽이지 않은 것을 가지고 구실을 삼는데, 약소한 등鄧나라가 만약 까닭없이 대국大國의 군주君主를 죽여서 초楚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온 나라가 등鄧나라를 원수로 삼게 했다면, 등鄧나라가 망하는 것이 더욱 빠르지 않았겠는가?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양생養生과 같고, 나라를 걱정하고 환난을 대비하는 것은 약藥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양생養生하는 것은 기거起居와 음식을 삼가고 음악과 여색女色을 절제함에 지나지 않으니, 음악과 여색女色을 절제하고 삼감은 병들기 이전에 있는 일이며, 약을 먹는 것은 이미 병든 뒤에 있는 일이다.
이제 내가 한질寒疾(감기感氣)을 걱정하여 미리 열성이 강한 오훼烏喙를 먹고, 또 열병熱病을 걱정하여 몸을 차게 하는 감수甘遂를 먹는다면, 병이 생기기도 전에 약藥의 독毒이 사람을 죽일 것이니, 저 여덟 군주들은 모두 병이 들기 전에 약을 복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