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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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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석종산石鍾山에 대한 기문記文
風旨 亦自水經來
풍지風旨 또한 《수경水經》에서 왔다.
이나 多奇峭之興하니라
그러나 기이하고 빼어난 흥취가 많다.
之口 有石鍾山焉이라하니 以爲 下臨深潭하야 微風鼓浪이면 水石相搏하야 聲如洪鍾이라하니 是說也 人常疑之
수경水經》에 “팽려彭蠡의 어귀에 석종산石鍾山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역도원酈道元이 말하기를 “석종산石鍾山은 아래로 깊은 못에 임하여 미풍이 물결을 치면 물과 돌이 서로 부딪쳐서 소리가 마치 큰 이 울리는 것 같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이 말을 항상 의심하였다.
今以鍾磬置水中하면 雖大風浪이라도 不能鳴也어든 而況石乎
지금 종과 경쇠를 물 가운데에 놓아두면 비록 큰 풍랑이 일더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데, 하물며 돌에 있어서이겠는가?
至唐하야 始訪其遺蹤하야 得雙石於潭上하고 扣而聆之하니 호되 枹止響騰하야 餘韻徐歇하니 自以爲得之矣
그런데 나라 이발李渤이 처음으로 그 유적을 찾아 못 위에서 두 개의 돌을 발견하고는 두들겨보고 소리를 들어보니, 남쪽에서 나는 소리는 매우 웅장하여 크고 북쪽에서 나는 소리는 깨끗하고 높았는데, 북채가 멈추자 소리가 비등하여 여운이 천천히 그치니, 이발李渤은 자기가 석종산石鍾山을 찾아냈다고 생각하였다.
이나 是說也 余尤疑之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더욱 의심하였다.
石之鏗然有聲者 所在皆是也어늘 而此獨以鍾名 何哉오호라
돌이 땡땡 하고 소리가 나는 것은 어디나 다 그러한데, 유독 이것만 이라고 이름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元豐七年六月丁丑 러니어늘 送之至湖口하야 因得觀所謂石鍾者
원풍元豐 7년 6월 정축일丁丑日에 내가 제안齊安에서 뱃길로 임여臨汝로 갔는데, 큰아들 요주饒州덕흥위德興尉로 부임하러 떠나기에 나는 그를 전송하여 호구湖口에 이르렀다가, 인하여 이른바 석종石鍾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寺僧 使小童持斧하야 於亂石間 擇其一二하야 扣之하니 硿硿焉이어늘 余固笑而不信也로라
사찰의 승려가 어린 동자로 하여금 도끼를 잡고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 가운데에서 한두 개를 골라 두드려보게 하니 소리가 쿵쿵 울렸으나, 나는 참으로 이것을 비웃고 믿지 않았다.
至莫(暮)夜月明하야 獨與邁 乘小舟하고 至絶壁下하니
밤중에 달이 밝을 때를 당하여 나는 홀로 아들 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절벽 아래에 이르니,
大石 側立千尺하야 如猛獸奇鬼 森然欲搏人하고
큰 돌이 천 길이나 비스듬히 서 있어 마치 맹수와 기이한 마귀가 우뚝 서서 사람을 치려는 듯하였고,
而山上栖鶻 聞人聲하고 亦驚起하야磔磔雲霄間하야 又有若老人欬且笑於山谷中者하니 或曰 此鸛鶴也라하니라
산 위에 서식하고 있는 송골매가 사람 소리를 듣고는 놀라 일어나 높은 하늘 위에서 꽥꽥 소리를 질러, 또 마치 노인이 산골짝 가운데에서 기침하고 웃는 듯하였는데, 혹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구욕조(왜가릿과의 새)이다.”라고 하였다.
余方心動欲還이러니 而大聲 發於水上하야噌吰如鍾鼓不絶하니 舟人 大恐이라
나는 막 마음이 두려워져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큰 소리가 물가에서 일어나 마치 종소리나 북소리처럼 끊임없이 쿵쿵 울리니[쟁굉噌吰], 뱃사람도 크게 두려워하였다.
徐而察之호니 則山下皆石穴罅 不知其淺深이요 微波入焉이면 涵澹澎湃而爲此也
내가 서서히 살펴보니 산 밑이 모두 바위 굴인데, 그 깊이는 알지 못하겠고 작은 파도가 바위 굴로 들어가면 물결이 크게 일어 부딪치면서 이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舟廻至兩山間하야 將入港口할새 有大石當中流하야 可坐百人하니
배가 돌아와 두 사이에 이르러서 항구로 들어가려 하는데, 중류에 백 명이 앉을 만한 넓은 돌이 있었다.
空中而多竅하야 與風水相呑吐하야 有窽坎鏜(鎝)[鞳]之聲하야 與向之噌吰者 相應하야 如樂作焉하니라
그런데 돌 중간의 비어 있는 곳에 구멍이 많아서 바람과 물을 삼켰다 토했다 하여 구멍[의감窽坎]에 부딪쳐 종소리와 북소리가 나서[당탑鏜鞳], 앞서 크게 울리는 소리와 서로 응하여 마치 풍악이 일어나는 듯하였다.
因笑謂邁曰 汝識之乎
나는 인하여 웃으면서 에게 “너는 알고 있느냐?
噌吰者 窽坎鏜鞳者 古之人 不余欺也라호라
쟁굉噌吰나라 경왕景王무역無射이라는 종소리이고, 구멍에서 나는 당탑鏜鞳나라 장자莊子(위강魏絳)가 노래하던 종이니, 옛날 사람들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事不目見耳聞하고 而臆斷其有無 可乎
일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고서 사실의 있고 없음을 억측으로 결단해서야 되겠는가.
酈元之所見聞 殆與余同이로되 而言之不詳하고 士大夫終不肯以小舟夜泊絶壁之下 莫能知 而漁工水師 雖知而不能言하니 此世所以不傳也
역도원酈道元이 보고 들은 것은 거의 나와 같았는데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사대부士大夫들은 끝내 작은 배를 가지고 밤중에 절벽의 아래에서 정박하여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알지 못하였으며, 뱃사공과 수사水師들은 비록 알더라도 말로 표현하여 형용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이유이다.
而陋者乃以斧斤考擊而求之하고 自以爲得其實이라
그런데 누추한 자가 도끼와 자귀를 가지고 두들겨서 그 소리를 내고는 스스로 그 실제를 얻었다고 한다.
余是以 記之하니 蓋歎酈元之簡이요 而笑李渤之陋也로라
내 이 때문에 이것을 기록하니, 역도원酈道元의 간략함을 탄식하고 이발李渤의 누추함을 비웃는 것이다.
역주
역주1 石鍾山記 : 元豐 7년(1084) 6월 東坡가 黃州에서 汝州團練副使로 부임할 적에 江西를 경유하였는데, 이때 이 글을 지었다. 石鍾山은 지금 江西省 湖口縣에 있다.
역주2 水經 : 중국의 河川과 水系를 기록한 지리서이다. 《新唐書》 〈藝文志〉에 “漢나라의 桑欽이 《水經》 3卷을 지었다. 일설에는 晉나라의 郭璞이 撰하였다고 한다.[桑欽水經三卷 一作郭璞撰]”라고 보이며, 北魏 때의 酈道元이 《水經注》 40권을 저술하였다. 東坡가 말한 《水經》과 《水經注》의 내용은 지금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역주3 彭蠡 : 鄱陽湖를 이르는데 지금의 江西省 북부에 있다.
역주4 酈元 : 酈道元(?~527)으로 字가 善長인데, 北魏의 地理学者이자 문장가로 范陽 涿縣(지금의 河北省 涿州市) 사람이다. 벼슬이 御史中尉를 지냈다. 학문을 좋아하고 견문이 넓어서 각지의 많은 문헌을 모아 《水經注》 40권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저본인 《水經》의 약 20배의 분량으로, 中國에 산재한 총 1,250개의 물길의 원류 및 연안의 풍토와 경치에 관해 기술했으며, 아울러 《水經》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魏書》와 《北史》에 傳이 있다.
역주5 李渤 : ?~831. 唐나라 때의 문신으로 字가 澹之이다. 洛陽 사람으로 憲宗 元和 연간에 江州刺史를 지냈는데, 그의 글 가운데 〈辨石鍾山記〉가 있다. 《舊唐書》와 《新唐書》에 모두 傳이 있다.
역주6 南聲函胡 北音淸越 : 函과 胡는 모두 크다는 뜻으로 소리가 웅장하고 둔탁함을 의미하며, 淸은 맑은 소리이고 越은 높은 소리이다.
역주7 余自齊安 舟行適臨汝 : 齊安은 宋代의 지명으로 지금의 湖北省 黃岡縣 서북쪽에 있었으며, 臨汝는 지금의 江西省 臨川縣에 있었다. 施宿의 《東坡先生年譜》에 “東坡가 4월에 黃州를 출발하여 九江으로부터 興國에 이르렀고, 高安을 들러 子由를 방문하고 인하여 廬山을 유람하였으며, 九江을 출발해서 德興尉로 부임하는 장자 邁를 전송하여 6월에 湖口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역주8 長子邁 將赴饒之德興尉 : 이때 蘇邁가 饒州 德興縣의 尉로 부임한 것이다. 德興縣은 지금의 江西省 興賢이다.
역주9 周景王之無射 : 景王(재위 B.C. 545~B.C. 519)은 周 天王으로 이름이 貴인데 아버지 靈王이 죽자 대를 이어 즉위하였다. 無射은 본래 12律呂 중의 하나인데 여기서는 鍾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21년에 “天王이 無射을 주조하려 하였다.[天王將鑄無射]”라고 보이는데, 孔穎達의 疏에 “無射은 鍾의 이름인데, 그 소리가 律 가운데 無射의 管에 응한다. 그러므로 律의 이름을 가지고 鍾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無射鍾名 其聲於律應無射之管 故以律名名鍾]”라고 하였다.
역주10 魏(獻)[莊]子之歌鍾 : 《春秋左氏傳》 襄公 11년에 “鄭나라 사람들이 晉侯에게 악사인 師悝․師觸․師蠲과 한 쌍씩 맞춘 廣車․軘車 각 15乘과 갑옷과 병기를 갖춘 兵車 도합 1백 乘과 歌鍾 두 틀과 鎛과 磬과 女樂 16명을 헌상하니, 晉侯가 樂器와 樂人의 절반을 魏絳에게 하사하였다.[鄭人賂晉侯以師悝師觸師蠲 廣車軘車 淳十五乘 甲兵備 凡兵車百乘 歌鍾二肆 及其鎛磬 女樂二八 晉侯以樂之半賜魏絳]”라고 보인다.
魏絳은 晉나라의 大夫로 시호가 莊子이다. 歌鍾은 16개의 鍾을 한 틀[肆]에 달아놓고 鍾을 쳐서 노래의 節奏를 맞추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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