云
之口
에 有
석종산石鍾山焉
이라하니 이 以爲 下臨深潭
하야 微風鼓浪
이면 수경水석종산石相搏
하야 聲如洪
석종산鍾이라하니 是說也
를 人常疑之
라
今以鍾磬置水中하면 雖大風浪이라도 不能鳴也어든 而況石乎아
至
당唐하야 始訪其遺蹤
하야 得雙
석종산石於潭上
하고 扣而聆之
하니 호되 枹止響騰
하야 餘韻徐歇
하니 自以爲得之矣
라
石之鏗然有聲者 所在皆是也어늘 而此獨以鍾名은 何哉오호라
원풍元豐七年六月丁丑
에 러니 而
어늘 送之至
호구湖口하야 因得觀所謂石鍾者
라
寺僧이 使小童持斧하야 於亂石間에 擇其一二하야 扣之하니 硿硿焉이어늘 余固笑而不信也로라
至莫(暮)夜月明하야 獨與매邁로 乘小舟하고 至絶壁下하니
而山上栖鶻이 聞人聲하고 亦驚起하야磔磔雲霄間하야 又有若老人欬且笑於山谷中者하니 或曰 此鸛鶴也라하니라
余方心動欲還이러니 而大聲이 發於水上하야噌吰如鍾鼓不絶하니 舟人이 大恐이라
徐而察之호니 則山下皆石穴罅니 不知其淺深이요 微波入焉이면 涵澹澎湃而爲此也라
舟廻至兩山間하야 將入港口할새 有大石當中流하야 可坐百人하니
空中而多竅하야 與風水相呑吐하야 有窽坎鏜(鎝)[鞳]之聲하야 與向之噌吰者로 相應하야 如樂作焉하니라
噌吰者
는 也
요 窽坎鏜鞳者
는 也
니 古之人
이 不余欺也
라호라
역도원酈역도원元之所見聞이 殆與余同이로되 而言之不詳하고 士大夫終不肯以小舟夜泊絶壁之下라 故로 莫能知요 而漁工수사水師는 雖知而不能言하니 此世所以不傳也라
余是以로 記之하니 蓋歎역도원酈역도원元之簡이요 而笑이발李渤之陋也로라
《수경水經》에 “팽려彭蠡의 어귀에 석종산石鍾山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역도원酈道元이 말하기를 “석종산石鍾山은 아래로 깊은 못에 임하여 미풍이 물결을 치면 물과 돌이 서로 부딪쳐서 소리가 마치 큰 종鍾이 울리는 것 같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이 말을 항상 의심하였다.
지금 종과 경쇠를 물 가운데에 놓아두면 비록 큰 풍랑이 일더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데, 하물며 돌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런데 당唐나라 이발李渤이 처음으로 그 유적을 찾아 못 위에서 두 개의 돌을 발견하고는 두들겨보고 소리를 들어보니, 남쪽에서 나는 소리는 매우 웅장하여 크고 북쪽에서 나는 소리는 깨끗하고 높았는데, 북채가 멈추자 소리가 비등하여 여운이 천천히 그치니, 이발李渤은 자기가 석종산石鍾山을 찾아냈다고 생각하였다.
돌이 땡땡 하고 소리가 나는 것은 어디나 다 그러한데, 유독 이것만 종鍾이라고 이름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원풍元豐 7년 6월 정축일丁丑日에 내가 제안齊安에서 뱃길로 임여臨汝로 갔는데, 큰아들 매邁가 요주饒州의 덕흥위德興尉로 부임하러 떠나기에 나는 그를 전송하여 호구湖口에 이르렀다가, 인하여 이른바 석종石鍾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찰의 승려가 어린 동자로 하여금 도끼를 잡고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 가운데에서 한두 개를 골라 두드려보게 하니 소리가 쿵쿵 울렸으나, 나는 참으로 이것을 비웃고 믿지 않았다.
밤중에 달이 밝을 때를 당하여 나는 홀로 아들 매邁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절벽 아래에 이르니,
큰 돌이 천 길이나 비스듬히 서 있어 마치 맹수와 기이한 마귀가 우뚝 서서 사람을 치려는 듯하였고,
산 위에 서식하고 있는 송골매가 사람 소리를 듣고는 놀라 일어나 높은 하늘 위에서 꽥꽥 소리를 질러, 또 마치 노인이 산골짝 가운데에서 기침하고 웃는 듯하였는데, 혹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구욕조(왜가릿과의 새)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막 마음이 두려워져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큰 소리가 물가에서 일어나 마치 종소리나 북소리처럼 끊임없이 쿵쿵 울리니[쟁굉噌吰], 뱃사람도 크게 두려워하였다.
내가 서서히 살펴보니 산 밑이 모두 바위 굴인데, 그 깊이는 알지 못하겠고 작은 파도가 바위 굴로 들어가면 물결이 크게 일어 부딪치면서 이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배가 돌아와 두 산山 사이에 이르러서 항구로 들어가려 하는데, 중류에 백 명이 앉을 만한 넓은 돌이 있었다.
그런데 돌 중간의 비어 있는 곳에 구멍이 많아서 바람과 물을 삼켰다 토했다 하여 구멍[의감窽坎]에 부딪쳐 종소리와 북소리가 나서[당탑鏜鞳], 앞서 크게 울리는 소리와 서로 응하여 마치 풍악이 일어나는 듯하였다.
나는 인하여 웃으면서 매邁에게 “너는 알고 있느냐?
쟁굉噌吰은 주周나라 경왕景王의 무역無射이라는 종소리이고, 구멍에서 나는 당탑鏜鞳은 위魏나라 장자莊子(위강魏絳)가 노래하던 종이니, 옛날 사람들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일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고서 사실의 있고 없음을 억측으로 결단해서야 되겠는가.
역도원酈道元이 보고 들은 것은 거의 나와 같았는데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사대부士大夫들은 끝내 작은 배를 가지고 밤중에 절벽의 아래에서 정박하여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알지 못하였으며, 뱃사공과 수사水師들은 비록 알더라도 말로 표현하여 형용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이유이다.
그런데 누추한 자가 도끼와 자귀를 가지고 두들겨서 그 소리를 내고는 스스로 그 실제를 얻었다고 한다.
내 이 때문에 이것을 기록하니, 역도원酈道元의 간략함을 탄식하고 이발李渤의 누추함을 비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