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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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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희우정喜雨亭에 대한 기문記文
公之文 好爲滑稽하니라
의 글은 골계滑稽(해학)를 좋아하였다.
亭以雨名 志喜也
정자를 ‘’로 이름한 것은 기쁜 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古者 有喜 則以名物하니 示不忘也
옛날에 기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물건의 이름을 지었으니, 이는 잊지 않음을 나타내려 해서이다.
하시고 하고 하니 其喜之大小不齊 其示不忘 一也
주공周公은 아름다운 벼를 얻고는 그것으로 책의 이름을 지었고, 한 무제漢 武帝보정寶鼎을 얻고는 그것으로 연호年號를 지었고, 숙손득신叔孫得臣은 오랑캐를 이기고는 그것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으니, 기쁨의 크고 작음은 똑같지 않으나 잊지 않음을 나타냄은 똑같다.
始治官舍하야 爲亭於堂之北하고 而鑿池其南하고 引流種樹하야 以爲休息之所러니
내가 부풍扶風에 부임한 다음 해에 처음으로 관사를 수리하여 (동헌)의 북쪽에 정자를 짓고 남쪽에 못을 파고는, 물을 끌어오고 나무를 심어 휴식하는 장소로 삼았었다.
是歲之春 雨麥於하니 其占이라
이해 봄에 기산岐山의 남쪽에 보리를 위해 단비가 내리니, 그 점괘가 풍년이었다.
旣而 彌月不雨하야 民方以爲憂러니
얼마 후 한 달이 넘도록 비가 오지 아니하여 백성들이 막 걱정하고 있었다.
越三月乙卯 乃雨하고 甲子 又雨호되 民以爲未足이러니 丁卯 大雨하야 三日乃止
그러다가 석 달이 되던 을묘일乙卯日에 비가 왔고, 갑자일甲子日에 또다시 비가 내렸으나 백성들은 아직도 부족하게 여겼었는데, 정묘일丁卯日에 큰비가 내려 3일 만에 그쳤다.
官吏 相與慶於庭하고 商賈 相與歌於市하고 農夫 相與抃於野하야 憂者以樂하고 病者以愈어늘 而吾亭 適成하니라
이에 관리들은 뜰에서 경하하고 상고商賈(상인)들은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농부들은 들에서 손뼉을 쳐서, 근심하던 자들이 즐거워하고 병든 자들이 병이 나았는데, 내 정자가 이때 마침 이루어졌다.
於是 擧酒於亭上하야 以屬客而告之曰
이에 나는 정자 위에서 술잔을 들어 손님들에게 권하며 말하였다.
五日不雨 可乎
“5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하겠는가?”
曰 五日不雨 則無麥하리이다
“5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농사가 안 될 것입니다.”
十日不雨 可乎
“10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가하겠는가?”
曰 十日不雨 則無禾하리이다
“10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될 것입니다.”
無麥無禾하면 歲且荐饑하야 獄訟繁興하고 而盜賊滋熾하리니 則吾與二三子 雖欲優游以樂於此亭이나 其可得耶
보리가 없고 벼가 없으면 연사年事가 장차 거듭 흉년이 들어 옥송獄訟이 크게 일어나고 도적이 더욱 성할 것이니, 내 그대들과 비록 이 정자에서 한가롭게 놀면서 즐기려 하나 될 수 있겠는가?
今天 不遺斯民하사 始旱而賜之以雨하야 使吾與二三子 得相與優游而樂於此亭者
이제 하늘이 이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어 처음에 가물다가 비를 내려주셔서 나와 그대들로 하여금 서로 더불어 이 정자에서 한가롭게 놀며 즐겁게 지내게 하였다.
皆雨之賜也 其又可忘耶
이는 모두 비의 은혜이니, 이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旣以名亭하고 又從而歌之曰
이윽고 ‘희우喜雨’로 정자 이름을 짓고, 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使天而雨珠라도 寒者不得以爲襦 使天而雨玉이라도 飢者不得以爲粟이니 一雨三日繄誰之力
가령 하늘에서 진주가 쏟아지더라도 추운 자가 이것으로 저고리를 만들지 못할 것이요, 가령 하늘에서 이 쏟아지더라도 굶주린 자가 이것을 곡식으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니, 한 번에 3일 동안 비가 내린 것이 누구의 공력인가?
民曰 라하니 太守不有하고 歸之天子
백성들은 “태수이다.”라고 하였는데, 태수는 이를 소유하지 않고 천자天子에게 돌렸다.
天子曰 不然하다하시고 歸之造物하시니 造物 不自以爲功하고 歸之하니 太空 冥冥하여 不可得而名이라
천자天子는 “그렇지 않다.”라 하시고는 조물주에게 돌리셨는데, 조물주는 스스로의 공으로 여기지 않고 태공太空에게 돌리니, 태공太空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명칭할 수가 없었다.
吾以名吾亭하노라
나는 이에 이것으로 내 정자를 이름하노라.
역주
역주1 喜雨亭記 : 東坡는 嘉祐 6년(1061) 12월에 鳳翔府 簽書判官으로 부임하였는데, 본편 가운데 “내가 扶風에 부임한 다음 해[余至扶風之明年]”라는 句가 있어 이 글이 嘉祐 7년(1062)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喜雨亭은 鳳翔府 城 동북쪽에 있다.
역주2 周公得禾 以名其書 : 이 내용은 《史記》 〈魯周公世家〉에 “하늘이 복을 내려 唐叔이 벼 이삭을 얻었는데, 두 줄기에서 하나의 이삭이 팬 것이었다. 唐叔이 이것을 成王에게 바쳤는데, 成王이 唐叔에게 명하여 벼 이삭을 동쪽에 있던 周公에게 보내게 하고, 唐叔에게 명하여 〈饋禾〉라는 글을 짓게 하였다. 周公은 成王이 내린 벼 이삭을 받고 天子의 명을 아름답게 여겨 〈嘉禾〉라는 글을 지었다.[天降祉福 唐叔得禾 異母同穎 獻之成王 成王命唐叔以餽周公於東土 作餽禾 周公旣受命禾 嘉天子命 作嘉禾]”라고 보인다.
唐叔은 唐나라에 봉한 叔虞이며 〈饋禾〉와 〈嘉禾〉는 모두 《書經》의 편들인데 현재는 佚失되었다.
역주3 漢武得鼎 以名其年 : 漢 武帝 元狩 6년(B.C. 117)에 汾陰 지방에서 寶鼎이 발견되자, 신하들이 이 솥을 길상한 보물로 여겨 새로운 연호를 제정해 사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武帝는 ‘元鼎’으로 연호를 고쳤다. 《史記 孝武本紀》
역주4 叔孫勝狄 以名其子 : 《春秋左氏傳》 魯 文公 11년에 “오랑캐인 鄋瞞이 침공해오자 叔孫得臣으로 하여금 이들을 막게 하였는데, 叔孫得臣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鄋瞞의 임금인 僑如를 사로잡고 그 기념으로 자신의 아들 宣伯의 이름을 僑如로 지었다.”라고 보인다. 鄋瞞은 狄의 國名이다.
역주5 余至扶風之明年 : 宋나라의 施宿이 지은 《東坡先生年譜》에 의하면, 東坡는 嘉祐 6년(1061)에 制科에 응시하여 3등으로 급제하고 大理評事 簽書鳳翔府節度判官을 제수받고 겨울 11월에 부임하였다. 그러므로 ‘余至扶風之明年’은 바로 嘉祐 7년(1062)이 되는 것이다. 扶風은 본래 漢나라 때 鳳翔府 일대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는데, 宋代 문장가들은 漢나라 때의 지명을 즐겨 썼다.
역주6 岐山之陽 : 岐山은 지금의 陝西省 岐山縣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정상의 모습이 마치 기둥과 같아서 흔히 天柱山으로도 불린다. 陽은 山의 남쪽, 江의 북쪽을 가리킨다.
역주7 有年 : 풍년을 이른다. 이 용례는 《詩經》 〈小雅 甫田〉에 “환한 저 큰 밭에 해마다 十千(넓이 10리의 땅)을 취하도다. 내 묵은 곡식을 취하여 우리 農夫들을 먹이니, 예로부터 풍년이로다.[倬彼甫田 歲取十千 我取其陳 食我農人 自古有年]”라고 보인다.
역주8 太守 :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4권에 “東坡가 嘉祐 8년(1063) 정월에 宋選이 鳳翔에서 면직되고, 京東轉運司 陳希亮이 대신 부임하였다.”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이 글이 쓰인 嘉祐 7년에 鳳翔太守는 宋選임을 알 수 있다. 宋選은 字가 子才이고 滎陽 사람이다.
역주9 太空 : 아득히 먼 하늘이란 뜻으로 우주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조물주를 포함하는 아주 근원적인 존재를 이른 듯하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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