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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1)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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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육지陸贄주의奏議를 교정하여 임금에게 올릴 것을 청한 차자箚子
長公所最得意識見이요 亦最得意條奏니라
소장공蘇長公(蘇軾)이 가장 득의得意식견識見이고 또한 가장 득의得意상주문上奏文이다.
臣等 猥以空疎 備員講讀이나 聖明天縱하사 學問日新하시니
등은 외람되이 공허하고 허술한 재능으로 강독講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폐하의 성명聖明하심은 하늘이 내신 것이어서 학문學問이 날로 새로워지십니다.
臣等 才有限而道無窮이라 心欲言而口不逮하니
등의 재주는 한계가 있는데 는 무궁하니, 마음에 말씀드리고 싶어도 입이 미치지 못합니다.
以此自愧하야 莫知所爲로소이다
이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竊謂人臣之納忠 譬如醫者之用藥하야 雖進於醫手 多傳於古人하니 若已經效於世間이면 不必皆從於己出이니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인신人臣이 충성스러운 말씀을 올리는 것은 비유하면 의원이 을 쓰는 것과 같아서, 은 비록 의원의 손에 의해 올려지지만 의 처방은 대부분 고인古人에게서 전해오니, 만일 이미 세간世間에서 효험이 입증된 것이라면 굳이 다 자기에게서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伏見 唐宰相陸贄 才本王佐 學爲帝師
엎드려 보건대, 나라의 재상 육지陸贄는 재주가 본래 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하고 학문이 황제皇帝의 스승이 될 만하였습니다.
論深切於事情하고 言不離於道德하야 하고 하야 上以格君心之非하고 下以迪天下之志하니이다
의논은 사정에 매우 간절하고 말은 도덕道德을 떠나지 아니하여, 지혜는 자방子房(張良)과 같으나 문장은 그보다 뛰어나고 언변은 가의賈誼와 같으나 방법은 허술하지 않아서, 위로는 군주 마음속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래로는 천하 사람들의 뜻을 인도하였습니다.
但其不幸仕不遇時하야 德宗以苛刻爲能이어늘 而贄諫以忠厚하고 德宗以猜忌爲術이어늘 而贄勸以推誠하고 德宗好用兵이어늘 而贄以消兵爲先하고 德宗吝用財어늘 而贄以散財爲急하니이다
다만 불행히도 벼슬한 것이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해서, 덕종德宗은 까다롭고 각박한 것을 함으로 삼았는데 육지陸贄충후忠厚함으로써 간하였고, 덕종德宗은 남을 시기하는 것을 방법으로 여겼는데 육지陸贄는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대할 것을 권하였고, 덕종德宗용병用兵을 좋아했는데 육지陸贄는 전쟁을 그치는 것을 우선하였고, 덕종德宗은 재물을 쓰는 것에 인색하였는데 육지陸贄는 재물을 흩어 백성을 구휼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至於用人聽言之法 治邊馭將之方 罪己以收人心하고 改過以應天道하며 去小人以除民患하고 惜名器以待有功하야 如此之流 未易悉數니이다
인재를 등용하고 남의 좋은 말을 경청하는 방법과 변경邊境을 다스리고 장수將帥를 어거하는 방법에 있어서와, 군주가 자신을 책망하여 인심을 수습하고 잘못을 고쳐서 천도天道에 응하며 소인小人을 제거하여 백성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명기名器(벼슬)를 아껴서 이 있는 이를 대우함에 이르렀으니, 이와 같은 일을 쉽게 다 셀 수가 없습니다.
可謂이니 使德宗盡用其言이면 可得而復이리이다
그는 “입에 쓴 약석藥石을 올리고 몸에 해로운 고황膏肓을 치료했다.”고 이를 만하니, 만일 덕종德宗이 그의 말을 다 따랐더라면 정관貞觀의 훌륭한 정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臣每退自하야 卽私相告호되 以陛下聖明으로 必善贄議論하시리니 但使聖賢之相契 卽如臣主之同時라하니이다
은 매번 서합西閤에서 물러나와 곧바로 사사로이 말하기를 “폐하처럼 성명聖明하신 군주는 반드시 육지陸贄의 의논을 좋게 여기실 것이니, 오직 성스러운 군주와 어진 정승이 서로 의기가 투합하는 것을 곧바로 신하와 군주가 동시대에 만난 것처럼 하여야 한다.”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옛날 풍당馮唐염파廉頗이목李牧의 어짊을 논하자 나라 문제文帝는 크게 탄식하였고, 위상魏相조조晁錯동중서董仲舒대책문對策文을 조목조목 아뢰자 효선제孝宣帝가 이로써 중흥을 이룩하였습니다.
若陛下能自得師하시면 則莫若近取之贄니이다
만일 폐하께서 스스로 스승을 얻으려 하신다면 가까이 육지陸贄에게서 취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非無可觀하야 皆足爲治니이다
육경六經삼사三史제자백가諸子百家는 볼 만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모두 충분히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但聖言幽遠하고 支離하야 譬如山海之崇深하야 難以一二而推擇이어니와
다만 성인聖人의 말씀은 아득히 멀고 말학末學은 지루하여, 비유하면 산과 바다가 높고 깊어서 하나하나 미루어 가리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如贄之論 開卷了然하야 聚古今之精英하니 實治亂之龜鑑이니이다
그런데 육지陸贄의 의논과 같은 것은 책을 펴놓으면 내용이 분명해서 고금古今정영精英을 모아놓았으니, 실로 치란治亂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臣等 欲取其奏議하야 稍加校正하야 繕寫進呈하오니 願陛下置之坐隅하야 如見贄面하시고 反覆熟讀하야 如與贄言하시면 必能發聖性之高明하야 成治功於歲月하리이다
등은 이 주의奏議를 가져다가 약간 교정校正을 가하여 정서해서 올리고자 하오니, 원컨대 폐하께서 거처하시는 자리 주변에 이것을 두시고 육지陸贄의 얼굴을 보는 듯이 여기시며 반복하여 익숙히 읽어서 육지陸贄와 함께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기신다면, 반드시 성상聖上고명高明한 재주를 개발開發해서 1년이나 몇 달(짧은 세월) 사이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을 이룩하실 것입니다.
臣等 不勝區區之意하노이다
등은 구구區區한 뜻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取進止하소서
재량裁量하소서.
역주
역주1 乞校正陸贄奏議進御箚子 :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元祐八年五月七日 端明殿學士 兼翰林 侍讀學士 左朝奉郞 守禮部尙書 蘇軾 同呂希哲吳安詩豐稷趙彦若范祖禹顧臨札子奏’라는 51字가 있다. 이로써 이 글이 元祐 8년(1093)에 쓰여졌으며, 이때 蘇軾이 端明殿學士 兼翰林 侍讀學士 禮部尙書로 在任 中이었음을 알 수 있다. 陸贄는 唐나라 德宗 때의 名宰相으로 直諫을 잘하였는데, 陸贄奏議는 그의 奏議를 모은 《陸宣公奏議》를 가리킨다.
역주2 智如子房而文則過 : 子房은 張良의 字이다. 秦나라 말기에 漢나라 高祖 劉邦을 도와 秦나라를 격파하고 楚나라 霸王인 項羽와 垓下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漢나라를 일으키고 蕭何, 韓信과 開國三傑에 올라 지혜가 높기로 유명하였으나 그가 남긴 문장은 없는 실정이다.
역주3 辯如賈誼而術不疎 : 賈誼는 漢나라 文帝 때의 學者이며 政治理想家로 문장과 변설이 뛰어났으나 너무 급진적이어서 훈구파들에게 배척당하고 울분으로 일찍 죽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내용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므로 蘇軾 역시 本書에서 비판하고 있다.
역주4 進苦口之藥石이요 鍼(針)害身之膏肓 : 藥石은 약과 돌침으로 각종의 약과 치료법을 이르는데, 통칭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한다. 膏는 명치 끝, 肓은 심장과 청경맥 사이로 膏肓은 약효가 미칠 수 없는 부분을 말한다.
역주5 貞觀 : 唐나라 太宗의 年號(627~649)로 이 기간은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부유하여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역주6 西閤 : 서쪽 끝에 있는 궁전으로 端明殿을 가리킨다. 이때(1093)에 蘇軾이 端明殿學士 兼翰林 侍讀學士로 있었다.
역주7 馮唐論(李)[頗]牧之賢에 則漢文爲之太息 : 馮唐은 漢나라 文帝 때의 郎官이었으며, 頗牧은 廉頗와 李牧으로 戰國時代 趙나라의 명장들이다. 文帝가 匈奴의 침략 때문에 명장을 얻고자 하면서 趙나라 장수 李齊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자 馮唐은 “李齊도 戰國時代의 명장인 廉頗와 李牧만은 못합니다.”라고 하니, 文帝는 깊이 탄복하였다. 底本에는 頗牧이 李牧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역주8 魏相條晁董之對에 則孝宣以致中興 : 魏相은 漢나라 宣帝 때의 名相인데, 景帝 때의 정략가인 晁錯와 武帝 때의 학자인 董仲舒의 奏議를 시행할 것을 宣帝에게 건의하여 漢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역주9 六經三史와 諸子百家 : 六經은 《詩經》‧《書經》‧《易經》‧《春秋經》‧《禮經》‧《樂經》의 여섯 가지 經書를 이르고, 三史는 《史記》‧《漢書》‧《後漢書》의 세 가지 역사책을 이르며, 諸子百家는 先秦時代의 《老子》‧《莊子》 등 여러 책을 이른다.
역주10 末學 : 학문의 大體와 根本을 버려두고 章句나 천착하는 末梢的인 俗學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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