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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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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 남성南省주문主文구양내한歐陽內翰에게 사례한
蘇長公中榜後 士論喧嚷一番이라
소장공蘇長公이 급제한 뒤에 사론士論이 한 차례 비등하였다.
其謝啓如此하니라
그러므로 사례하는 가 이와 같은 것이다.
右軾啓하노이다
소식蘇軾은 아룁니다.
竊以 天下之事 難於改爲하니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천하의 일은 변경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自昔之餘 文敎衰落하고 風俗靡靡하야 日以塗地러니 聖上慨然太息하사 思有以澄其源, 疏其流하야
옛날 오대五代 이후로 문교文敎가 쇠락하고 풍속이 나빠져서 날로 땅에 떨어졌는데, 성상께서 크게 개탄하시어 그 근원을 맑게 하고 흐름을 소통시킬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明詔天下하사 曉諭厥旨하시니 於是 招來雄俊魁偉敦厚朴直之士하고 罷去浮巧輕媚叢錯綉采之文하야 將以追兩漢之餘하고 而漸復三代之故하니이다
그리하여 천하에 분명하게 조칙을 내려 그 뜻을 밝게 깨우쳐주시니, 이에 준걸스럽고 건장하고 돈후하고 질박하고 정직한 선비들을 불러오고, 실속이 없고 경박하고 난삽하고 겉이나 아름답게 꾸미는 문장을 파하여, 장차 양한兩漢의 뒤를 따르고 점점 삼대三代의 고풍을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士大夫不深明天子之心하고 用意過하야 求深者 或至於迂하고 務奇者 怪僻而不可讀하니 餘風未殄하고 新弊復作이라
그런데 사대부들은 천자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고 마음을 지나치게 써서, 심오함을 구하는 자는 혹 오활함에 이르고, 기이함을 힘쓰는 자는 문장이 괴벽怪僻하여 읽을 수 없으니, 지난날의 나쁜 풍조가 끊이지 않고 새로운 폐단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大者 鏤之金石하야 以傳久遠하고 小者 轉相模寫하야 號稱古文하야 紛紛肆行이로되 莫之或禁이니이다
그리하여 크게는 이런 글들을 금석金石에 새겨 장구한 후세에 전하고, 작게는 서로 이것을 모사하여 고문古文이라고 칭하며 분분하게 멋대로 유행시키는데도, 이것을 혹시라도 금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蓋唐之古文하니 其後 學韓而不至者이요 學皇甫湜而不至者 自樵以降으론 無足觀矣니이다
나라의 고문古文한유韓愈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뒤에 한유韓愈를 배웠으나 이르지 못한 자는 황보식皇甫湜이고, 황보식皇甫湜을 배웠으나 이르지 못한 자는 손초孫樵이고, 손초孫樵 이후로는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
伏惟 內翰執事 天之所付以收拾先王之遺文이요 天下之所待以覺悟學者
엎드려 생각하건대 내한집사內翰執事께서는 하늘이 선왕先王유문遺文을 수습하도록 맡겨주고, 천하 사람들이 배우는 자들을 깨우쳐줄 것을 기대하는 분입니다.
恭承王命하야하시니 意其必得天下之奇士하야 以塞明詔니이다
왕명을 공손히 받들어 문병文柄을 친히 잡으시니, 생각하건대 반드시 천하의 기이한 선비를 얻어서 천자의 밝은 조칙에 부응하실 것입니다.
軾也 遠方之鄙人으로 家居碌碌하야 無所稱道하고 及來京師 久不知名이라
소식蘇軾은 먼 지방의 비천한 사람으로 집에 있을 적에는 평범하여 알려진 바가 없고 경사京師에 와서도 오랫동안 이름이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將治行西歸러니 不意執事擢在第二하시니이다
장차 행장을 챙겨 서쪽 고향(서촉西蜀)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뜻밖에 집사께서 저를 발탁하여 두 번째 등급에 두셨습니다.
惟其素所蓄積 無以慰士大夫之心이라
다만 제가 평소 쌓은 학문이 사대부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是以 群嘲而聚罵者 動滿千百이로되 亦惟恃有執事之知 與衆君子之議論이라
이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비난하고 무리 지어 비웃는 자들이 걸핏하면 천 명과 백 명으로 헤아렸으나 저는 오직 집사의 알아주심과 여러 군자들의 공정한 의논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恬然不以動其心이러니 猶幸御試 不爲有司之所排하야 使得搢笏跪起하야 謝恩於門下하니이다
그러므로 태연하여 마음이 동요되는 바가 없었는데, 다행히 어시御試에서 유사有司의 배척을 받지 아니하여 을 꽂고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 집사의 문하에 사은謝恩하게 되었습니다.
聞之古人호니 士無賢愚 惟其所遇라하니이다
옛사람에게 들으니 “선비는 어질거나 어리석거나에 상관없이 오직 그 대우하는 대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去燕 不復一戰하고去越 亦終不能有所爲하니이다
악의樂毅나라를 떠나자 다시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범려范蠡나라를 떠나자 또한 끝내 큰 일을 한 것이 없었습니다.
願長在하야 與賓客之末하야 使區區之心으로 長有所發하오니 夫豈惟軾之幸이리오
저는 원컨대 오랫동안 하풍下風에 있으면서 빈객들의 말석에 참여하여 구구한 마음을 길이 발명하고자 하오니, 이렇게 되면 어찌 다만 저의 다행이겠습니까?
亦執事將有取一二焉하시리이다
또한 집사께서도 장차 저에게서 한두 가지를 취할 점이 있으실 것입니다.
不宣謹啓하노이다
이만 줄이고 삼가 아룁니다.
역주
역주1 謝南省主文與歐陽內翰啓 : 이 글은 仁宗 嘉祐 2년(1057)에 쓰여졌다. 이때 蘇軾은 22세로 禮部試에 응시하여 차석으로 급제하였다. 歐陽內翰은 歐陽脩를 말한다. 그는 당시 禮部侍郞으로 知貢擧(과거시험 위원장)의 직책을 맡았는데, 蘇軾이 제출한 〈刑賞忠厚論〉을 보고 그의 뛰어난 문장과 논리에 감탄하였으나, 혹 자신의 제자인 曾鞏의 작품인가 하여 차석으로 낮추었다. 南省은 尙書省을 이르는데 禮部가 尙書省에 속하므로 禮部를 南省이라 하였고, 主文은 文柄을 잡은 자로 과거의 출제와 선발을 주관함을 이르는데, 朝鮮朝의 大提學과 같은 자리이다.
역주2 五代 : 五代十國時代를 이른다. 唐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宋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五代)와 화중․화남과 화북의 일부를 지배했던 여러 지방정권(十國)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가리킨다. 五代는 朱全忠의 後梁, 李存勖의 後唐, 石敬瑭의 後晉, 劉知遠의 後漢, 郭威의 後周를 가리키며, 十國은 楊行密의 吳, 王建의 前蜀, 柳隱의 南漢, 王潮의 閩, 錢鏐의 吳越, 馬殷의 楚, 高季興의 南平(荊南), 孟知祥의 後蜀, 李昇의 南唐, 柳旻의 北漢이다.
역주3 韓愈 : 768~824. 唐나라의 대문호이자 정치가로 字는 退之이고 昌黎伯에 봉해져 韓昌黎라 하였으며 諡號는 文이다.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처음으로 四六騈儷文을 비판하고 古文復興運動을 주창하였으며 《昌黎先生集》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역주4 皇甫湜 : 777~835. 唐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字는 持正이고 睦州 新安 사람이며, 韓愈의 문인으로 古文復興運動에 동참하였다. 《皇甫持正文集》 등의 저작을 남겼다.
역주5 孫樵 : 唐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字는 可之이고 關東 사람이다. 생몰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宣宗 大中 연간(847~859)에 進士가 되어 中書舍人에 제수되었다. 韓愈의 문인으로 자처했으나 기교적인 문장을 다 버리지 못해 후대의 평가는 높지 않다. 《孫樵集》 등의 저작이 있다.
역주6 執文柄 : 文柄은 文士를 선발하는 권한으로, 이를 잡았다는 것은 知貢擧가 됨을 의미한다.
역주7 樂毅 : 戰國時代 燕나라의 명장이다. 戰國時代 중엽에 燕나라는 齊나라의 침공을 받고 燕王 噲가 죽었으며 나라가 거의 망하게 되었는데, 燕나라 사람들이 太子 平을 세우니, 이가 바로 昭王이다. 昭王이 齊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樂毅를 大將軍으로 등용하자, 齊나라를 공격하여 70여 城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웠다. 昭王이 죽고 태자인 惠王이 즉위하였는데 惠王이 齊나라의 反間計에 말려들어 樂毅를 의심하고 직위를 박탈하자, 樂毅는 趙나라로 망명하였다. 趙나라에서 樂毅를 등용하려 하였으나 樂毅는 끝까지 따르지 않았다. 《史記 樂毅列傳》
역주8 范蠡 : 春秋時代 越王 句踐을 섬긴 유명한 정치가이자 정략가로 字는 少伯이다. 越나라가 吳나라에게 패한 이후 句踐을 도와 각고의 노력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 결국 吳나라를 멸망시켰다. 范蠡는 吳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越나라를 떠나 齊나라에 가서 姓名을 鴟夷子皮로 바꾸고 재산을 수천만 금이나 모았으나 齊나라에서 그를 정승으로 삼고자 하자 齊나라를 떠났다. 그 후 陶 지방에 가서 스스로 陶朱公이라 이름하고 농업과 무역에 종사하면서 끝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역주9 下風 : 바람의 아래 방면에 있는 것으로, 下位에 있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 앞에서 자신을 겸양하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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