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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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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제거옥국관提擧玉局觀에 복관된 것을 사례한
一驚一喜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쁜 것이다.
遠謫 不意自全이러니 萬里生還 適有天幸하야 驟從縲絏하야 復齒縉紳하니이다
7년 동안 멀리 귀양 가서 스스로 보전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만 리 밖에서 살아 돌아오자 마침 하늘의 은총이 있어 갑자기 포승줄의 몸에서 다시 사대부士大夫 사이에 끼게 되었습니다.
伏念 臣 才不逮人하고 性多忤物이라
엎드려 생각하건대 은 재주가 남만 못하고 성질이 남들과 거슬림이 많습니다.
剛褊自用 可謂小忠이나 猖狂妄行하야 乃蹈大難하니 皆臣自取 不敢怨尤니이다
강하고 편협한 제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작은 충성이라고 이를 수 있으나 멋대로 행동하고 망령된 행실로 마침내 큰 환란에 빠졌으니, 이는 모두 이 자초한 것으로 감히 남을 원망하고 탓하지 않습니다.
하야 與萬物而更始어늘 而臣獨在幽遠하야 最爲冥頑하니이다
마침 진인眞人께서 성대히 일어나시어 만물과 함께 새 출발을 하셨는데, 은 홀로 외지고 먼 곳에 있어서 가장 어둡고 무지하였습니다.
迨玆起廢之初하야 倍費生成之力하사 終蒙記錄하야 不遂棄捐하니이다
그런데 이 버려진 것을 일으키는 초기를 당하여 생성生成하는 힘을 곱절이나 쓰셔서 끝내 을 기억해주시어 마침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此蓋伏遇皇帝陛下 하고 하사
이는 황제 폐하께서 천자의 지위에 바르게 오르시어 용처럼 하늘을 나시고 때를 맞아 범처럼 변화하심을 만나서입니다.
神武不殺하시니 孰非受命之符리잇고
신무神武하여 죽이지 않으시니, 어느 것인들 천명天命을 받는 상서가 아니겠습니까?
淸淨無爲하야 坐獲銷兵之福하니이다
청정하여 작위作爲함이 없으시면서 가만히 앉아 병란을 사라지게 하는 복을 얻으셨습니다.
聰明不作호되 邪正自分하야 使臣得同草木之微하야 共沾雷雨之澤하시니 臣敢不益堅素守하고 深念往愆이리잇고
자신의 총명을 드러내지 않으시나 간사한 자와 바른 자가 저절로 구분되어, 으로 하여금 초목과 같은 미물들과 함께 우레와 비의 은택을 함께 입게 하시니, 이 감히 평소 지키던 마음을 더욱 견고히 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沒齒何求리오
죽을 때까지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不厭飯蔬之陋하고 蓋棺未已 猶懷結草之忠호리이다
거친 밥을 먹는 누추함을 싫어하지 않겠으며, 죽어 관 뚜껑을 덮기 전까지 결초보은하려는 충심을 품겠습니다.
역주
역주1 謝復官提擧玉局觀表 : 이 글은 徽宗 元符 3년(1100) 말에 쓰여졌다. 65세의 蘇軾은 이해 대사면령으로 비로소 海南島의 유배에서 풀려나 廉州로 옮겨 안치되었다. 8월에 舒州團練副使를 제수하고 永州에 거주하라는 조칙이 내려졌으며, 11월에 英州에 이르자 朝奉郞 提擧成都玉局觀에 임명되고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蘇軾은 사례하는 이 글을 올렸다. 提擧玉局觀은 본래 道敎의 宮觀을 관리하는 관직인데, 연로한 신하를 예우하여 녹봉을 주기 위해 이름만 있는 祠祿의 관직이다.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臣先自昌化軍貶所 奉勅廉州安置 又自廉州 奉勅授臣舒州團練副使 永州居住 今行至英州 又奉勅授臣朝奉郞 提擧成都玉局觀 在外州軍任便居住者’라는 61字가 있다.
역주2 七年 : 蘇軾은 59세인 紹聖 1년(1094)에 惠州로 좌천되었는데, 元符 3년인 이해까지 모두 7년의 유배생활을 하였다.
역주3 眞人之勃興 : 徽宗의 즉위를 이른 것이다. 眞人은 본래 道敎에서 도를 얻어 神仙이 된 사람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徽宗을 가리킨다.
역주4 正位龍飛 : 황제의 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周易》 乾卦에 이르기를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大人을 보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고 하였는데, 孔穎達의 疏에 “聖人이 龍德이 있으면 날아올라서 天位를 차지한다.[若聖人有龍德 飛騰而居天位]”라고 보인다. 天位는 天子의 자리를 이른다.
역주5 對時虎變 : 황제가 새로 즉위해서 時宜에 맞게 제도를 損益하여 훌륭한 법을 만들면 찬란하게 문채가 난다는 의미이다. 《周易》 革卦 九五爻辭 〈象傳〉에 이르기를 “大人이 虎變함은 그 문채가 빛남이다.[大人虎變 其文炳也]”라고 하였는데, 孔穎達의 疏에 “前王의 제도를 損益하여 새롭게 법을 만드니, 문장의 아름다움이 찬란히 볼 만하여, 마치 범이 변화하는 듯 문채가 빛난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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