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有以拂乎吾心이면 則吾言이 忿然而不平하고 有以順適乎吾意면 則吾言이 優柔而不怒하나니 天下之人의 其喜怒哀樂之情을 可以一言而知也라
此天下之人이 皆能辨之요 而至於聖人하야는 其言이 丁寧反覆하야 布於方冊者甚多하고 而其喜怒好惡之所在者 又甚明而易知也니라
然이나 天下之人이 常患求而莫得其意之所主하니 此는 其故何也오
天下之人이 以爲聖人之文章은 非復天下之言也라하야 而求之太過라
將以喜夫其人이로되 而加之以怒之之言이면 則天下且以爲病狂하리니 而聖人이 豈有以異乎人哉시리오
不知其好惡之情하고 而不求其言之喜怒는 是所謂大惑也니라
昔者
에 하사 上自商, 周之
으로 至於
失道之際
하고 而
하시니 自詩人以來
로 至於仲尼之世
히 蓋已數百餘年矣
라
大雅, 小雅之詩 當幽, 厲之時어늘 而稱道文, 武, 成, 康之盛德하고
此誰知其爲幽, 厲之詩而非文, 武, 成, 康之詩者리오
見惡而怒하고 見善而喜하니 則求其是非之際에 又可以求諸其言之喜怒之間矣라
今夫人之於事에 有喜而言之者하고 有怒而言之者하고 有怨而言之者하니 喜而言之면 則其言이 和而無傷하고 怒而言之면 則其言이 厲而不溫하고 怨而言之면 則其言이 深而不洩하니 此其大凡也라
夫喜之而和하고 怒之而厲하고 怨之而深은 此三者 無以加矣니라
夫日月之不知와 土地之不詳이 何足以爲喜며 而何足以爲怒리오
愚故曰 春秋者는 亦人之言而已니 而人之言은 亦觀其辭氣之所嚮而已矣라하노라
문장은 아주 아름다우나 식견은 통투하지 못한 듯하다.
일이 내 마음에 거슬리면 내 말이 노여워져서 불평해하는 기색이 드러나고, 일이 내 마음에 순하고 맞으면 내 말이 부드럽고 조용하여 노기를 띠지 않으니, 천하 사람들의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정情을 한마디 말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다.
기뻐하는 말이 어찌 노여워하는 말이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천하天下 사람들이 모두 분간할 수 있으며, 성인聖人에 이르러서는 말씀이 정녕丁寧(간절)하고 반복反覆해서 서책書冊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 매우 많으며,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들어 있는 부분은 또 매우 분명해서 알기가 쉽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이 성인聖人의 주장하신 뜻을 찾아도 이를 얻지 못함을 항상 염려하니, 이는 그 이유가 어째서인가?
천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성인聖人의 문장은 다시는 천하天下 사람들의 말이 아니다.’라고 여겨서 추구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한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의 말씀이 다시 심원해져서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또 천하天下 사람들은 어찌하여 자기 마음을 가지고 미루어보지 않는가?
장차 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면서 그 사람이 노여워할 말을 가한다면, 천하天下 사람들은 장차 그 사람을 미친병을 앓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니, 성인聖人이 어찌 일반인과 다름이 있겠는가?
성인聖人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정情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의 기뻐함과 노여워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이른바 큰 의혹이라는 것이다.
옛날 중니仲尼께서 쇠퇴한 주周나라의 말기에 시詩를 산삭刪削하시어 위로는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성왕盛王으로부터 도道를 잃은 군주인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즈음에까지 이르렀고 아래로는 진 영공陳 靈公에까지 미치셨으니, 시인詩人이 나온 이래로 중니仲尼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다.
〈대아大雅〉와 〈소아小雅〉의 시詩는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때를 당하였는데도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성왕成王․강왕康王의 거룩한 덕을 칭송하였고,
그 끝 편에 이르러서도 또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포학暴虐함을 비판한 것을 볼 수 없으니,
그 누가 이것이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시詩이고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의 시詩가 아닌 줄을 알겠는가?
그러나 말씀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깊이 근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뜻이 있다.
이 때문에 이것을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시詩에 붙이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춘추시대 242년 동안을 말하면 천하天下의 옳고 그름이 뒤섞여 있어 내 마음에 저촉된다.
악한 것을 보면 노여워하고 선한 것을 보면 기뻐하니, 옳고 그름을 추구하는 즈음에 또 그 말의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사이에서 천하의 옳고 그름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일에 있어서 기뻐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고 노여워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고 원망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기뻐하여 말하면 그 말이 화평하여 서글퍼함이 없고, 노여워하여 말하면 그 말이 거칠어서 온화하지 못하고, 원망하여 말하면 그 말에 원망이 깊어서 드러나지 않으니, 이것이 그 대체적인 것이다.
《춘추春秋》에 중손추仲孫湫가 왔을 적에 기록하기를 “제齊나라 중손仲孫이 왔다.”라고 하였고, 계우季友가 돌아왔을 적에 “계자季子가 내귀來歸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기뻐하는 말이란 것이요,
노魯나라와 정鄭나라가 밭을 교환할 적에 “정백鄭伯이 벽옥璧玉을 가지고 허전許田을 빌렸다.”라고 하였고, 진 문공晉 文公이 천왕天王을 부름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천왕天王이 하양河陽에서 사냥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노여워하는 말이란 것이요,
숙아叔牙가 독살되었을 적에 “공자 아公子 牙가 졸卒(죽음)하였다.”라고 하였고, 경보慶父가 도망갔을 적에 “공자 경보公子 慶父가 제齊나라에 갔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원망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기뻐하면 온화하고 노여워하면 거칠고 원망하면 깊어짐은 이 세 가지보다 더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아니하여 날짜와 토지土地를 모두 훈訓(해석)하였다.
일월日月을 알지 못하는 것과 토지土地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이 어찌 기뻐할 만한 것이 되며, 어찌 노여워할 만한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사기辭氣(문장)에 기뻐할 것도 없고 노여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춘추春秋》에 “융戎이 초구楚丘에서 범백凡伯을 정벌했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는 “위衛나라가 범백凡伯을 정벌했다.”라고 기록하였고,
《춘추春秋》에 “제齊나라 중손仲孫이 왔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는 “오吳나라 중손仲孫이다.”라고 기록하여, 심지어는 남의 나라를 뒤바꿔놓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은 또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말하기를 “《춘추春秋》라는 것도 사람의 말일 뿐이니, 사람의 말은 그 사기辭氣가 향하는 바를 살펴볼 뿐이다.”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