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묵묘정墨妙亭에 대한 기문記文
却有一種 하니라
일종一種풍아風雅기미氣味가 있다.
熙寧四年十一月 이러니 其明年二月 作墨妙亭於府第之北, 逍遙堂之東하야 取凡境內自漢以來古文遺刻하야 以實之하니라
희령熙寧 4년(1071) 11월에 고우 손신로高郵 孫莘老광덕廣德에서 옮겨와 오흥吳興을 맡았는데, 다음 해 2월에 동헌東軒의 북쪽, 소요당逍遙堂의 동쪽에 묵묘정墨妙亭을 짓고는 경내에 있는 나라 이래의 고문古文유각遺刻을 모두 수집해서 여기에다 채웠다.
吳興 自東晉으로 爲善地하야 號爲山水淸遠하고 其民 足於魚稻蒲蓮之利하야 寡求而不爭하며 賓客 非特有事於其地者 不至焉이라
오흥吳興동진東晉 때부터 살기 좋은 지역으로 알려져 산수山水청원淸遠하다고 이름났고, 이 지역 백성들은 물고기와 벼, 부들과 연꽃의 이익이 풍족해서 바라는 것이 적어 서로 다투지 않았으며, 특별히 이 지역에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빈객賓客이 찾아오지 않았다.
凡守郡者 率以風流嘯咏飮酒爲事하니라
그러므로 무릇 이 고을을 맡은 자들은 대체로 풍류風流 읊기와 투호投壺음주飮酒를 일삼았다.
自莘老之至 而歲適大水하야 上田皆不登하니 湖人大飢하야 將相率亡去
손신로孫莘老가 부임한 뒤로 그해에 마침 큰 홍수가 나서 상등전上等田이 모두 곡식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하니, 호주湖州 사람들이 크게 굶주려서 장차 서로 이끌고 도망가려 하였다.
莘老大振廩勸分하야 躬自撫循하야 出於至誠하니 富有餘者 皆爭出穀以佐官하야 所活 至不可勝計하니라
이에 손신로孫莘老는 창고를 크게 열어 진휼賑恤하고 부자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줄 것을 권하여, 몸소 백성들을 어루만져 위로함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오니, 집안이 부유하여 재물이 유여有餘한 자들이 모두 다투어 곡식을 내어 관청을 도와서, 살려준 사람이 이루 계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當是時하야 朝廷 하야 하니 以爲莘老當日夜治文書하고 赴期會하야 不能復雍容自得 如故事러니
이때를 당하여 조정이 개혁을 단행하고 새로운 법을 확립해서 〈이를 독책하는〉 사자使者들이 사방에 다니니, 사람들은 손신로孫莘老가 마땅히 밤낮으로 문서를 다스리고 규정된 기한에 맞추느라 다시는 예전처럼 여유롭게 지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而莘老益喜賓客하야 賦詩飮酒爲樂하고 又以其餘暇 網羅遺逸하야 得前人賦詠數百篇하야 爲吳興新集하고 其刻畫尙存이로되 而僵仆斷缺於荒陂野草之間者 又皆集於此亭하니라
그런데 손신로孫莘老는 더욱 빈객賓客을 좋아하여 를 읊고 술을 마시는 것을 으로 삼았으며, 또 그 여가에 버려져 있던 문적文籍들을 망라하여 옛사람이 읊은 수백 편의 글을 얻어서 《오흥신집吳興新集》을 만들었고, 돌에 새긴 글씨가 아직 남아 있는데도 황폐한 밭두둑과 들풀 사이에 쓰러지고 잘리고 부서진 채로 있는 것들을 또 모두 이 정자에 모아놓았다.
是歲十二月 余以事至湖하야 周覽歎息한대 而莘老求文爲記하니라
이해 12월에 내가 일 때문에 호주湖州에 이르렀다가 둘러보고 감탄하자, 손신로孫莘老가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或以謂余호되
혹자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凡有物 必歸於盡이요 而恃形以爲固者 尤不可長이라
“모든 물건은 반드시 다 없어지고, 형체를 의지하여 견고함으로 삼는 것은 더더욱 오래갈 수 없다.
雖金石之堅이라도 俄而變壞 至於功名文章하야는 其傳世垂後 猶爲差久어늘 今乃以此 託於彼하니 是久存者 反求助於速壞
비록 단단한 쇠와 돌이라도 오래지 않아 변하고 파괴되며, 공명功名문장文章에 이르러서는 그래도 비교적 오랫동안 세상에 전해지고 후세에 남겨지는데, 지금 이 문장을 저 책과 금석金石에 의탁하니, 이는 오래 보존되는 것이 도리어 빨리 파괴되는 것에게 도움을 구하는 셈이다.
此旣昔人之惑이어늘 而莘老又將深簷大屋하야 以錮留之하니 推是意也하면 其無乃幾於不知命也夫인저
이것은 이미 옛사람의 미혹된 짓인데, 손신로孫莘老가 또 장차 처마를 깊숙이 하고 집을 크게 지어서 이것을 독차지하여 보관하려 하니, 그 뜻을 미루어 넓혀보면 천명天命을 알지 못함에 가깝지 않은가?”
余以爲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知命者 必盡人事하니 然後 理足而無憾이라
천명天命을 아는 자는 반드시 사람의 일을 극진하게 하니, 그런 뒤에야 이치가 충족되어 유감이 없는 것이다.
物之有成이면 必有壞 譬如人之有生이면 必有死하고 而國之有興이면 必有亡也
물건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파괴되는 것은, 비유하면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나라가 일어나면 반드시 망하는 것과 같다.
雖知其然이나 而君子之養身也 凡可以久生而緩死者 無不用하고 其治國也 凡可以存存而救亡者 無不爲하야 至於不可奈何而後已하니 此之謂이라
비록 이런 줄은 알지만, 군자君子가 몸을 수양할 적에 오래 살고 죽음을 늦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이 없고, 나라를 다스릴 적에 보존되는 것들을 보존하고 망하는 것들을 구원하는 모든 방법을 하지 않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에야 그만두니, 이것을 일러 천명天命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是亭之作否 無足爭者어니와 而其理則不可以不辨이라
이 정자를 짓고 안 짓고는 굳이 다툴 것이 없지만, 이치는 논변하지 않을 수 없다.
具載其說하고 而列其名物於左云하노라
그러므로 그 말을 자세히 기재하고 물명物名을 아래에 나열하는 바이다.
역주
역주1 墨妙亭記 : 이 글은 熙寧 5년(1072) 12월에 지어졌다. 知湖州事 孫覺이 동헌의 북쪽에 墨妙亭을 짓고 湖州 경내에 있는 고대의 古文과 遺刻을 모아 이곳에 수장하였는데, 마침 杭州의 通判으로 있던 東坡가 公務로 湖州에 왔다가 孫覺의 요청을 받고 이 글을 지었다. 墨妙亭은 지금 浙江省 吳興縣의 옛 湖州 官署 안에 있다.
역주2 風雅 : 《詩經》의 〈國風〉․〈大雅〉․〈小雅〉를 이른 것이다.
역주3 高郵 : 宋나라 때 지방행정 조직인 軍의 하나로 지금의 江蘇省 高郵縣이다.
역주4 孫莘老 : 1028~1090. 이름이 覺이고 莘老는 그의 字로 高郵 사람이다. 進士로 출사하여 神宗 때에 右正言으로 발탁되었는데 諫言으로 인해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뒤에는 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주로 지방의 知事를 역임하였다. 《宋史》에 傳이 있다.
역주5 自廣德移守吳興 : 廣德은 지금의 安徽省 廣德縣이고, 吳興은 湖州로 지금의 浙江省 湖州市이다.
역주6 投壺 : 옛날 잔치할 적에 벌이던 유희의 일종으로, 投壺用으로 제작된 커다란 병[壺]을 세워놓고 여기에 화살을 던져 집어넣어 승부를 겨루는 놀이인데, 진 사람에게 술잔을 내려 마시게 하였다.
역주7 勞來 : ‘勞之來之’의 줄임말로 수고로운 일을 하는 자들을 위로해주고, 먼 곳에서 온 자들을 위로해줌을 이른다.
역주8 方更化立法 : 更化는 敎化를 다시 편다는 뜻으로 王安石의 新法이 시행됨을 이른다. 熙寧 2년(1069)에 神宗은 王安石을 參知政事에 임명하고 靑苗法, 均輸法, 免役法, 市易法 등 새로운 법을 시행하였다.
역주9 使者旁午 : 旁午는 종횡이란 말과 같은바, 新法을 독책하는 使者들이 종횡으로 왕래함을 이른다.
역주10 知命 : 天命을 알아 지나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 말은 《周易》 〈繫辭傳 上〉에 “天地와 더불어 서로 같으므로 어기지 않으니, 지혜가 萬物에 두루 하고 道가 天下를 구제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으며, 사방으로 행하되 흐르지 아니하여 天理를 즐거워하고 天命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며, 자리에 편안하여 仁을 돈독히 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與天地相似 故不違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 故不過 旁行而不流 樂天知命 故不憂 安土敦乎仁 故能愛]”라고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