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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1)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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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군직郡職을 맡을 것을 청한 차자箚子
覽此而不爲嗚咽流涕者 非人情也니라
이 글을 보고서도 오열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인정人情이 없는 것이다.
臣近以左臂不仁하고 兩目昏暗하야 有失儀曠職之憂일새 堅乞一郡이러니 伏蒙聖慈降詔不允하시고 遣使存問하며 賜告養疾하시니 恩禮之重 萬死莫酬니이다
이 근래에 왼쪽 팔이 마비되고 두 눈이 어두워서 위의威儀를 잃고 직책을 수행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에 굳이 한 고을을 맡을 것을 청원하였는데, 스럽고 자애로우신 폐하께서 조칙詔勅을 내려 윤허하지 않으시고, 사자를 보내어 존문存問(위문)하고 휴가를 주어 질병을 요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은혜와 예우의 중함이 만 번 죽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以臣子大義言之하면 病未及死 皆當勉强이니 雖有失儀曠職之罰이나 亦不當辭니이다
신하의 큰 의리를 가지고 말한다면 병이 들어 죽기 전까지는 모두 마땅히 힘써 일해야 하니, 비록 위의威儀를 잃고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벌이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사양해서는 안 됩니다.
이나 臣終未敢起就職事者 實亦有故하니 言之則觸忤權要하여 得罪不輕이요 不言則欺罔君父하야 誅罰尤大
그러나 이 끝내 감히 일어나 직책과 일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실로 또한 이유가 있으니, 이것을 말씀드린다면 권력을 쥐고 요로要路를 담당한 자에게 저촉되어 죄를 얻는 것이 가볍지 않을 것이요, 그렇다고 해서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군부君父를 속여서 주벌이 더욱 클 것입니다.
卒言之하노이다
그러므로 끝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들으니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군자君子가 그 몸을 편안히 한 뒤에 한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군주가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몸을 잃는다.”라고 하였습니다.
以此 知事君之義 雖以報國爲先이나 而報國之道 當以安身爲本이니
이 때문에 군주를 섬기는 의리는 비록 보국報國을 우선으로 하나 보국報國하는 방도는 마땅히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若上下相忌하야 身自不安이면 則危亡是憂 國何由報리잇고
만약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꺼려서 자신이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다면 위태로움과 멸망을 근심해야 할 것이니, 무슨 방법으로 나라에 보답하겠습니까?
恭惟陛下踐祚之始 收臣於하고 半年之間 擢臣爲하시니 方將致命이니 豈敢告勞리오마는
공손히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아홉 번이나 죽을 뻔한 의 목숨을 거두어주시고 반년 뒤에 을 발탁하여 양제兩制수장首長을 삼으셨으니, 은 장차 목숨을 바쳐야 할 터인데 어찌 감히 수고로움을 말씀드리겠습니까?
特以臣拙於謀身하고 銳於報國하야 致使臺諫으로 列爲怨仇하니이다
다만 은 자신을 도모하는 데에 졸렬하고 보국報國하려는 데 예의銳意해서 대간臺諫들로 하여금 줄지어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與故相司馬光으로 雖賢愚不同이나 而交契最厚
은 별세한 정승 사마광司馬光과는 비록 어질고 어리석음은 똑같지 않았으나 교분은 매우 두터웠습니다.
光旣大用 臣亦驟遷하니 在於人情 豈肯異論이리오
사마광司馬光이 크게 등용되고 난 뒤에 또한 갑자기 승진하였으니, 인정상 어찌 그와 의논을 달리하고자 하였겠습니까?
但以光所建一事 臣實以爲未便이라하야 不免力爭이러니 皆希合光意하야 以求進用하니이다
다만 사마광司馬光이 건의한 차역差役 한 가지 일을 은 실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어쩔 수 없이 강력하게 간쟁하였는데, 여러 대간臺諫들은 모두 사마광司馬光의 뜻에 영합해서 등용되기를 바랐습니다.
及光旣歿하야는 則又妄意陛下以爲主光之言이라하야 結黨橫身하야 以排異議하야 有言不便이면 約共攻之하니이다
그러다가 사마광司馬光이 별세하자, 또 망령되이 폐하께서 사마광司馬光의 말을 주장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을 지어 멋대로 행동하고 이론異論을 배척하여, 온당치 못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약속하여 함께 공격하고 있습니다.
曾不知
참으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光至誠爲民하야 本不求人希合하고 而陛下虛心無我하시니 亦豈有所主哉잇가
사마광司馬光은 지극한 정성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영합하기를 본래 바라지 않았고, 폐하께서는 마음을 비우시고 아집我執이 없으시니, 또한 어찌 고집하여 주장하는 바가 있으시겠습니까?
其後 又因 爭議하야 欲守하야 不敢以疑法殺人하고 又論維專權用事하니이다
그 뒤에 또 형부시랑刑部侍郞 범백록范百祿문하시랑門下侍郞 한유韓維와 함께 형명刑名을 가지고 논쟁해서 조종祖宗의 고사를 지켜 감히 의심스러운 법으로써 사람을 죽이지 않고자 하였고, 간관諫官 여도呂陶는 또 한유韓維가 권력을 독단하여 용사用事한다고 논죄하였습니다.
臣本蜀人이라 與此兩人으로 實是知舊 因此 韓氏之黨 一例疾臣하야 指爲하니이다
은 본래 지방 사람이라서 이 두 사람(범백록范百祿, 여도呂陶)과 실로 친구간인데, 이로 인하여 한씨韓氏의 무리들이 한결같이 을 미워하여 천당川黨이라고 지목하였습니다.
在元豊末 通判德州할새 而著作 方監本州德安鎭하니이다
어사御史 조정지趙挺之원풍元豐 말년에 덕주통판德州通判으로 있을 적에 저작著作 황정견黃庭堅이 막 본주本州덕안진德安鎭을 맡고 있었는데,
挺之希合提擧官楊景棻하야 意欲於本鎭한대
조정지趙挺之제거관提擧官 양경분楊景棻에게 영합하여 본진本鎭에다가 시역법市易法을 시행하려고 하자,
而庭堅以謂鎭小民貧하야 不堪誅求하니 若行市易이면 必致星散이라하야 公文往來하야 士人傳笑하니이다
황정견黃庭堅이 말하기를 “은 작고 백성은 가난하여 가렴주구苛斂誅求를 감당하지 못하니, 만약 시역법市易法을 시행하게 되면 반드시 백성들이 별처럼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하여, 공문이 여러 번 오고 가서 선비들에게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其後 挺之以大臣薦으로 召試館職이어늘 臣嘗對衆言호되 挺之 聚斂小人이라
그 뒤에 조정지趙挺之가 대신의 천거로 부름을 받아 관각館閣의 직책에 시용試用되자, 이 일찍이 여러 사람들을 대하여 “조정지趙挺之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소인小人이다.
學行無取하니 豈堪此選이리오하니이다
학식과 행실을 취할 것이 없으니, 어찌 이 선발選拔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又挺之妻父郭槩 爲西蜀提刑時 本路提擧官韓玠 違法虐民이어늘 朝旨委槩體量이러니 而槩附會隱庇한대 臣弟轍 爲諫官하야 劾奏其事하야 玠槩竝行黜責하니이다
그리고 또 조정지趙挺之처부妻父 곽개郭槩서촉西蜀제형提刑이 되었을 때에 본로本路제거관提擧官 한개韓玠가 법을 어기고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대하였으므로 조정에서 명령을 내려 곽개郭槩에게 체량體量(조사)을 맡겼는데, 곽개郭槩한개韓玠에게 붙어 죄를 숨기고 비호하니, 의 아우 소철蘇轍간관諫官이 되어 이 일을 탄핵해서 한개韓玠곽개郭槩가 모두 쫓겨나는 벌을 받았습니다.
以此 挺之疾臣 尤出死力하니이다
이 때문에 조정지趙挺之을 미워함에 더욱 죽을 힘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臣二年之中 四遭口語하고 發策草麻 皆謂之誹謗하고 先言其失士하며
그러므로 은 2년 사이에 네 번 구설口舌을 만났고, 책문策問을 출제하고 마지麻紙초안草案한 것을 저들은 모두 “이 조정을 비방했다.”고 비판하였으며, 성방省榜을 내기도 전에 먼저 “〈선발이 공정하지 않아〉 선비를 잃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이 천거한 선비들에게 의례히 모함을 가하고 이해利害를 논한 것들을 서로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까지 하였습니다.
근일에 왕적王覿은 “호종유胡宗愈왕적王覿으로 지목한다.” 하였고, 손각孫覺은 “정즐丁隲손각孫覺의 친한 집안이라고 말했다.” 하니,
臣與此兩人으로 有何干涉이완대 而於意外 巧構曲成하야 以積臣罪하야
이 이 두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뜻밖에 교묘하게 얽고 거짓으로 만들어내 의 죄를 쌓았습니다.
欲使臣하고 而使陛下之言하니이다
그리하여 으로 하여금 열 사람의 손으로 방망이를 휘어 굽게 만들고, 폐하로 하여금 터무니없는 말이 세 번 이름에 베 짜던 북을 던지시게 하였습니다.
中外之人 具曉此意하야 謂臣若不早去 必致傾危라하니이다
중외中外의 사람들은 모두 이 뜻을 깨닫고 이 만약 일찍 조정을 떠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臣非不知聖主天縱聰明하사 察臣無罪 但以臺諫氣焰 震動朝廷하야 上自執政大臣으로 次及侍從百官하고 外至監司守令하야 皆畏避其鋒하야
성주聖主께서는 하늘이 내신 총명聰明이시니, 의 무죄함을 살피실 줄을 이 모르는 것은 아니오나, 다만 대간臺諫들의 기염이 조정을 진동해서 위로는 집정대신執政大臣으로부터 다음으로는 시종侍從하는 신하와 백관百官에 미치고 밖으로는 감사監司수령守令에까지 이르러 모두 그 예봉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있습니다.
奉行其意하야 意所欲去 勢無復全하니 天下知之로되 獨陛下深居法宮之中하사 無由知耳니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뜻을 받들어 행해서, 그들 마음에 제거하고자 하는 바이면 형세상 다시 온전할 사람이 없으니,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알고 있으나 오직 폐하만이 법궁法宮의 가운데에 깊이 거처하셔서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臣竊觀三代以下 號稱明主 莫如漢宣帝, 唐太宗이니이다
이 엎드려 살펴보건대 삼대三代 이하로 현명한 군주라고 일컬어지는 분으로는 나라 선제宣帝나라 태종太宗만 한 이가 없습니다.
然宣帝하고 太宗 殺劉洎하니 皆信用讒言하야 死非其罪하야
그러나 선제宣帝합관요蓋寬饒를 죽였고 태종太宗유계劉洎를 죽였는데, 이것은 모두 참소하는 말을 믿어 그의 죄가 아닌 것으로 죽였습니다.
至今哀之하니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있습니다.
宣帝初知蓋寬饒忠直하야 不畏强禦하야 自候司馬 擢爲太中大夫, 司隷校尉하니 不可謂不知之深矣러니
선제宣帝는 처음에 합관요蓋寬饒가 충직하여 강하고 포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후사마候司馬로부터 발탁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사례교위司隷校尉로 삼았으니, 그를 깊이 알지 않았다고 이를 수가 없습니다.
而蓋寬饒上書 有云라한대
그런데 합관요蓋寬饒의 상소문에 “오제五帝는 천하를 공적公的인 관청으로 삼아 선양禪讓하였고, 삼왕三王은 천하를 자기 집으로 삼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라고 하자,
而當時讒人 乃謂寬饒欲求禪位라하니 宣帝不察하여 致使寬饒自剄北闕下하니이다
당시 참소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합관요蓋寬饒가 천자의 지위를 선양禪讓받고자 한다.’고 모함하니, 선제宣帝가 이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서 합관요蓋寬饒로 하여금 북쪽 대궐 아래에서 스스로 목 찔러 죽게 하였습니다.
太宗 信用劉洎하야 言無不從하야 嘗比之하니 亦不可謂不知之深矣러니
나라 태종太宗유계劉洎를 신용하여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어 일찍이 위문정공魏文貞公(魏徵)에 견주기까지 했으니, 또한 깊이 알지 않았다고 이를 수가 없습니다.
而太宗征遼患癰이어늘 洎泣曰 聖體不康 甚可憂懼라한대
그런데 태종太宗이 요동을 정벌하다가 종기를 앓자 유계劉洎가 눈물을 떨구며 말하기를 “성체聖體가 편안하지 못함이 매우 근심스럽고 두려울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而當時讒人 乃謂洎欲行라하니 太宗不察하고 賜洎自盡하니이다
당시의 참소하는 사람들이 “유계劉洎이윤伊尹곽광霍光의 일을 행하고자 한다.”라고 모함하니, 태종太宗이 살피지 못하고 유계劉洎에게 자진自盡을 명하였습니다.
二主非不明也 二臣之受知 非不深也로되 恃明主之深知하고 不避讒人積毁하야 以至하야 爲天下笑하니이다
두 임금이 현명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두 신하가 군주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깊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들은 현명한 군주가 깊이 알아줌을 믿고 참소하는 사람들이 훼방하는 것을 피하지 아니하여, 몸과 머리가 다른 곳에 처하여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今臣自컨대 受知於陛下 不過如蓋寬饒之於漢宣帝 劉洎之於唐太宗也 而讒臣者 乃十倍於當時하니 雖陛下明哲寬仁 度(渡)越二主 然臣亦豈敢恃此不去하야 以卒蹈二臣之覆轍哉잇가
지금 이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폐하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합관요蓋寬饒나라 선제宣帝에 있어서와 유계劉洎나라 태종太宗에 있어서와 같음에 지나지 않고, 을 참소하는 자들은 도리어 당시의 열 배나 되니, 비록 폐하께서 명철하고 너그럽고 인자하심이 두 군주보다 월등히 나으시나 이 어찌 감히 이것을 믿고 떠나가지 않아서 끝내 두 신하의 전철을 밟겠습니까?
且二臣之死 天下後世皆言 二主信讒邪而害忠良이라하야 以爲聖德之累하니
그리고 두 신하가 죽자 천하와 후세 사람들은 모두 두 군주가 참소하는 자와 사악한 자들을 믿고서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을 살해하였다고 비판하여 성덕聖德로 삼고 있습니다.
使此二臣者 識幾畏漸하야 先事求去런들 豈不身名俱泰하고 臣主兩全哉잇가
만일 이 두 신하가 기미를 알고 조짐을 두려워하여 일에 앞서서 미리 떠나갔더라면 어찌 몸과 명예가 모두 편안하고 신하와 군주가 모두 온전하지 않았겠습니까?
臣縱不自愛 獨不念一旦得罪之後 使天下後世 有以議吾君乎잇가
이 비록 스스로 제 몸을 아끼지는 않으나 어찌 하루아침에 죄를 얻은 뒤에 천하와 후세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우리 임금님을 비난하게 될 것을 홀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先帝召臣上殿하야 訪問古今하시고 勅臣今後遇事卽言하시니이다
옛날 선제先帝(神宗)께서 을 불러 대궐에 오르게 해서 고금古今의 일을 물으시고 에게 지금 이후로 일(政事)을 만나거든 즉시 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후 이 여러 번 일을 논했으나 시행되지 못했기에 마침내 다시 시문詩文을 지어 사물事物에 의탁해서 풍자하였으니, 이것은 행여 널리 퍼져 임금님께 도달해서 성상聖上의 마음을 감동시켜 깨닫기를 바란 것이었는데, 이정李定서단舒亶, 하정신何正臣 세 사람이 이로 인해 이 조정을 비방한다고 말해서 이 마침내 죄를 얻었습니다.
然猶有近似者 以諷諫爲誹謗也니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근사近似한 점이 있으니, 풍간諷諫을 비방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라한대 而趙挺之以爲誹謗先帝라하니 則是以白爲黑하고 以西爲東하야 殊無近似者하니이다
그런데 지금 마사麻詞(任命詞)에 이르기를 “백성들 또한 수고롭다.”고 하자, 조정지趙挺之가 “선제先帝를 비방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것은 흰 것을 검다고 하고 서쪽을 동쪽이라 하여 전혀 근사近似한 것이 없습니다.
臣以此 知挺之嶮毒 甚於李定, 舒亶, 何正臣이요 而臣之被讒 甚於蓋寬饒, 劉洎也니이다
그러므로 은 이로써 조정지趙挺之의 험하고 독함이 이정李定서단舒亶, 하정신何正臣보다 더 심하고, 이 참소를 당하는 것이 합관요蓋寬饒유계劉洎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古人有言曰 爲君難이요 爲臣不易라하니
옛사람이 말하기를 “임금 노릇하기가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하였으니,
臣欲依違苟且하야 雷同衆人이면 則內愧本心하고 上負明主
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구차히 지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부화뇌동하고자 한다면 안으로는 본심에 부끄럽고 위로는 현명한 군주를 저버리는 것이요,
若不改其操하야 知無不言이면 則怨仇交攻하야 不死卽廢하리이다
만약 지조를 변치 않고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린다면 의 원수들이 서로 공격하여, 죽지 않으면 폐출될 것입니다.
伏望聖慈 念爲臣之不易하고 哀臣處此之至難하사 始終保全하야 措之不爭之地하시고 特賜指揮하야 檢會前奏하야 早賜施行하소서
엎드려 바라건대 성스럽고 자애로우신 폐하께서는 신하 노릇하기가 쉽지 않음을 생각하시고 이 이에 대처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움을 가엾이 여기셔서 끝까지 보전하여 다투지 않을 자리에 놓아주시고, 또 특별히 지휘(지시)를 내리셔서 이 예전에 아뢴 것들을 조사하여 조속히 시행하게 하소서.
臣無任感恩知罪하야 祈天請命하야 激切戰恐之至로소이다
은 은혜에 감사하고 지은 죄를 알아서 하늘에 기원하여 명을 청하면서 격절激切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取進止하소서
재량裁量하소서.
역주
역주1 乞郡箚子 :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元祐三年十月十七日 翰林學士 朝奉郞 知制誥 兼侍讀 蘇軾札子奏’라는 27字가 있다. 이로써 이 글이 元祐 3년(1088)에 쓰여졌으며, 이때 蘇軾이 翰林學士 知制誥 兼侍讀으로 在任 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주2 易曰……臣不密則失身 : 이 내용은 모두 《周易》 〈繫辭傳〉에 보인다.
역주3 九死之餘 : 九死는 九死一生과 같은 뜻으로 매우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을 이른다.
역주4 兩制之首 : 兩制는 翰林學士와 知制誥를 이른다. 蘇軾이 元祐 元年(1086)에 中書舍人에 제수되었다가 얼마 후 翰林學士와 知制誥로 승진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5 差役 : 백성들을 차출하여 부역시키는 제도이다. 宋나라는 差役法을 시행해 오다가 神宗 때 王安石의 新法을 받아들여 免役法으로 바꾸었다. 免役은 일반 백성들의 부역을 면제하는 대신 돈을 내게 하고 그 돈으로 사람을 고용하여 부역하게 하는 제도인데, 초기에는 蘇軾도 司馬光과 함께 免役法의 시행을 반대하였으나 뒤에는 생각을 바꾸어 免役法을 찬성하였다. 神宗이 승하하고 哲宗이 즉위하여 新法을 모두 폐지하고 다시 옛 제도를 사용하였는데, 이때 蘇軾은 司馬光과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역주6 臺諫諸人 : 臺諫은 御史臺와 諫院이다. ‘여러 臺諫들’이란, 李定, 何正臣, 楊康國, 趙挺之 등을 가리킨다.
역주7 刑部侍郞范百祿 : 范百祿은 字가 子功으로 成都 華陽 사람인데 蘇軾과 고향이 같아 친하게 지냈다.
역주8 門下侍郞韓維 : 門下侍郞은 門下省의 副貳인데 당시 首長인 門下侍中을 잘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門下省의 首長이 되어 知樞密院, 同知樞密院, 中書侍郞, 尙書左丞, 尙書右丞과 함께 執政大臣이 되었다. 韓維는 字가 持國으로 可封 雍丘 사람인데, 元祐 元年(1086) 5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門下侍郞으로 재직하였다.
역주9 刑名 : 刑法을 가리킨다.
역주10 祖宗故事 : 祖宗은 神宗을 가리킨 것으로 熙寧 연간에 만든 刑法을 가리킨 것이다. 이때 조정에서는 싸우다가 사람을 죽였을 경우 정상을 참작할 만하면 살인자를 죽이지 않고 딴 형벌로 감형할 것을 논의하였는데, 刑部侍郞 范百祿은 熙寧 연간의 고사를 따라 죽이지 말 것을 주장하였으나 門下侍郞 韓維는 그 살인자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논쟁을 벌였었다.
역주11 諫官呂陶 : 呂陶는 字가 元鈞으로 成都 사람이다. 元祐 초년 殿中侍御史로 발탁되었다가 左諫議로 옮겨, ‘韓維가 권력을 독단하고 친구들을 끌어들인다.’고 탄핵하였다.
역주12 川黨 : 川은 四川으로 蜀 지방을 가리키는데, 蘇軾이 蜀 지방 출신이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이때 또 洛陽 출신의 伊川 程頤를 중심으로 한 洛黨과 朔方 출신을 중심으로 한 朔黨이 있었는데, 洛黨에는 朱光庭, 賈易가 羽翼이었고, 朔黨은 劉摯, 王巖叟, 劉安世를 영수로 하고 羽翼이 매우 많았는데, 이들은 高宗의 紹聖 연간에 이르러 모두 元祐黨으로 몰렸다.
역주13 御史趙挺之 : 趙挺之는 字가 正夫로 密州 諸城 사람이다. 元豐 말년 德州通判으로 있다가 徽宗 때 재상이 되자 앞장서서 元祐黨人을 공격한 소인이다.
역주14 黃庭堅 : 字는 魯直이고 號는 山谷이며 江西 分寧 사람으로 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이다.
역주15 市易法 : 王安石의 新法 가운데 하나이다. 熙寧 5년(1072)에 실시하여 元豐 8년(1085)에 폐지되었다. 豪商들로부터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중요한 도시에 市易務를 설치하여 영세상인이 팔지 못한 상품을 사주거나 또는 이를 저당으로 하여 연 2割의 이자로 자금을 융통해주었는데, 이 또한 관리들의 농간이 많아 영세상인들이 오히려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역주16 未出省榜 : 省榜은 進士科의 급제자 명단을 이른다. 宋나라는 禮部에서 선비를 선발하였는데, 禮部는 尙書省에 소속되었으므로 省榜이라 칭한 것이다. 中國은 進士科가 바로 朝鮮朝의 文科이다.
역주17 臣所薦士를 例加誣衊 : 蘇軾이 元祐 3년(1088) 3월, 知貢擧가 되어 廖正一, 黃庭堅 등을 선발하였는데, 반대파에서 蘇軾이 부정하게 이들을 뽑았다고 비판하였다.
역주18 所言利害를 不許相見 : 蘇軾이 건의한 사안들을 臺諫들이 반대하여 조정에서 돌려 보지 못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19 王覿(적)은 言胡宗愈指臣爲黨하고 孫覺은 言丁隲(줄)云是臣親家 : 王覿은 字가 明叟이고 泰州 如皐 사람인데 元祐 연간에 司諫으로 있으면서 蘇軾을 변호한 적이 있었고, 孫覺은 字가 莘老이고 高郵 사람인데 哲宗 초년에 右諫議大夫를 맡고 蘇軾과 친하였다. 이 때문에 胡宗愈 등의 반대파들이 “蘇軾은 王覿과 朋黨을 한다.”고 비판하였고, 또 “蘇軾은 孫覺과 친한 집안이어서 변호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역주20 撓椎於十夫之手 : 撓椎는 방망이를 휘어 굽게 한다는 뜻으로 남을 모함하는 말이 蜂起하면 시비와 곡직을 분별하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漢나라 武帝 建元 3년(B.C. 138) 中山靖王 劉勝이 조회 오자, 武帝가 술자리를 베풀어주었는데, 劉勝은 음악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武帝가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여러 사람의 입김은 산을 표류시키고 모기소리가 모이면 우레소리를 이루며, 또 朋黨이 떼지어 일어나면 호랑이도 잡고 남자 열 명이면 방망이도 굽게 만들 수 있다 합니다.” 하였다. 이는 그가 남의 모함을 두려워하여 한 말이었다.
역주21 投杼於三至 : 동명이인의 曾參이 살인을 하자, 曾子의 어머니에게 사람이 찾아가 “당신 아들이 살인을 하였으니, 빨리 도망하라.”고 하였다. 曾子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연달아 세 사람이 찾아와서 똑같은 말을 하자 그 말을 믿고는 베 짜던 북을 던지고 도망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이 고사는 터무니없는 말로 여러 사람이 반복하여 전하면 진실처럼 믿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史記 甘茂傳》 曾子는 孔子의 제자로 이름이 參인데, 효성스럽고 인자한 인물이다.
역주22 蓋寬饒 : 字는 次公인데 孝廉으로 뽑혀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역주23 五帝官天下하고 三王家天下 : 五帝는 黃帝와 顓頊, 帝嚳, 帝堯, 帝舜이라고도 하고 黃帝 대신에 少昊를 넣기도 하며, 三王은 夏나라의 禹王, 商나라의 湯王, 周나라의 文王과 武王을 가리키는데, 위와 비슷한 내용이 《禮記》 〈禮運〉에 보인다.
역주24 魏文貞公 : 文貞은 魏徵의 諡號이다. 魏徵은 唐나라 太宗의 名臣으로 간쟁을 잘하여 諫官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역주25 伊霍之事 : 伊霍은 伊尹과 霍光을 가리킨 것으로, 伊尹과 霍光의 일이란 바로 不肖한 후계자를 갈아치우고 새로운 사람을 군주로 옹립함을 이른다.
역주26 身首異處 : 원래 죄인을 斬刑에 처하여 몸통과 머리가 따로따로 있게 함을 이르나, 여기서는 죽임을 당한 것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다.
역주27 : 탁
역주28 作爲詩文하야 寓物託諷하니 庶幾流傳上達하야 感悟聖意러니 而李定, 舒亶, 何正臣三人이 因此言臣誹謗이라하야 遂得罪 : 神宗 元豐 2년(1079) 8월에 御史인 李定, 舒亶, 何正臣은 蘇軾이 지은 詩를 ‘조정을 비방했다.’고 트집 잡아 체포해서 御史臺에 下獄시켰다가 黃州로 좌천시켰는데, 이를 ‘烏臺詩案’이라고 칭한다. 烏臺는 御史臺를 가리키고, 詩案은 詩로 인하여 罪案이 되었음을 이른다.
역주29 今臣草麻詞에 有云民亦勞止 : 草麻詞는 黃麻紙에 군주의 임명장을 적은 글을 초안함을 이른다. 이때 蘇軾은 知制誥가 되어 呂大防을 左揆(左相)로 임명하는 黃麻紙에 任命詞를 草하였는데, 여기에 “하늘이 밝게 드러나시어 장차 태평성대의 시운을 열 것이요, 백성들 또한 수고로우니 편안히 쉴 날을 듣기 원한다.[天維顯思 將啓承平之運 民亦勞之 願聞休息之期]”라고 하였다. ‘民亦勞之’는 원래 《詩經》 〈大雅 民勞〉에 보이는 내용으로, 〈民勞〉는 厲王이 포악한 정사를 하여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이에 蘇軾의 반대파들은 이것을 트집 잡아 “승하한 神宗을 厲王에 빗대어 비방했다.”고 비난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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