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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1)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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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변방의 관리에게 진취進取하지 말도록 명할 것을 청하고 또 귀장鬼章의 일에 대한 마땅한 조처를 논한 차자箚子
此乃文忠公搏虎手處 惜乎 世不能用이로다
이것은 바로 문충공文忠公(蘇軾)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솜씨가 나타나는 곳인데, 세상에서 이것을 쓰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臣聞 善用兵者 先服其心하고 次屈其力이면 則兵易解而功易成이라하니이다
이 들으니,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굴복시키고 다음에 힘을 굴복시키니, 이렇게 하면 전쟁이 해결되기 쉽고 이 이루어지기 쉽다.”라고 합니다.
若不服其心하고 惟力是恃 則戰勝而寇愈深이어든 況不勝乎
만일 마음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오직 힘만 믿는다면 싸워서 승리하더라도 적의 침입이 더욱 심해지는데, 하물며 이기지 못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功成而兵不解어든 況不成乎잇가
이 이뤄지더라도 전쟁이 해결되지 못하는데, 더구나 이 이뤄지지 못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頃者 西方用兵累年 先帝之意 全在弔伐이어시늘 而貪功生事之臣 惟務殺人爭地하야 得尺寸之土하면 不問利害하고 先築城堡하고 置州縣하야
지난번 서방西方(西夏)에서 수년 동안 전쟁이 계속된 것은 선제先帝의 뜻이 오로지 백성을 위로하고 죄 있는 자들을 토벌함에 있으셨는데, 을 탐하여 사단을 만드는 신하들이 오직 사람을 죽이고 땅을 다투기를 힘써서 한 자나 한 치 되는 땅을 얻으면 이해利害를 따지지 않고 먼저 과 보루를 쌓고 주현州縣을 설치했습니다.
使四夷爭畏中國하야 以謂朝廷專欲得地하니 非盡滅我族類 不止라하니이다
그리하여 사방四方 오랑캐들로 하여금 다투어 중국을 두려워하게 하여 ‘나라 조정朝廷이 오직 땅을 얻고자 하니, 우리 종족種族을 다 멸망시키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是以 倂力致死하야 莫有服者하니이다
이 때문에 저들이 힘을 합하여 죽기로 싸워서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今雖朝廷 好生惡殺하야 不務遠略이나 而此心未信하야 憎畏未衰하니
지금 비록 조정에서 살려주기를 좋아하고 죽이는 것을 싫어해서 멀리 경략經略하는 것을 힘쓰지 않는데도, 이 마음이 저들에게 믿겨지지 않아서 우리를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心旣不服이면 惟有鬪力이니 力屈情見하니 勝負 未可知也니이다
마음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오직 힘으로 싸울 뿐이니, 힘이 굽혀지면 실정實情이 나타나니, 승부勝負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今日 新獲鬼章하니 威震戎狄이라
오늘날 새로 귀장鬼章을 사로잡았으니, 위엄이 융적戎狄에게 떨쳐졌습니다.
邊臣賈勇하야 爭欲立功하야 以爲河南之地 指顧可得이라하니
변방을 지키는 신하들이 용맹을 자랑하여 다투어 을 세우고자 해서 말하기를 “하남河南 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돌아보는 사이에 얻을 수 있다.”라고 합니다.
正使得之 不免築城堡하고 屯兵置吏하야 積粟而守之하리니 則中國何時息肩乎잇가
정말로 이 땅을 얻는다면 과 보루를 쌓고서 군대를 주둔시키고 관리를 배치하여 양식을 저축해서 지켜야만 할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중국이 어느 때에나 편안히 쉴 수 있겠습니까?
乃者 王韶取熙河 全師獨克하니 使韶有遠慮하야 誅其叛者하고 (乃)[易]以忠順하야 卽用其豪酋而已런들 則今復何事리오
근래에 왕소王韶희하熙河를 점령할 적에 군대를 온전히 보존하고 완승完勝하였는데, 만일 왕소王韶가 원대한 생각이 있어서 배반한 자들만 죽이고는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들로 바꿔서 즉시 그 추장들을 등용했을 뿐이었다면 지금 다시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其所以兵連禍結하야罷弊中國者 以郡縣其地故也니이다
그런데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가 생겨서 중국이 피폐해진 까닭은 그 땅을 군현郡縣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往者 旣不可悔어니와 而來者 又不以爲戒
지나간 일은 이미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만 오는 일을 또 경계로 삼지 않습니다.
今又欲取講武城하야 曰 此要害地 不可不取라하니이다
그리하여 이제 다시 강무성講武城을 점령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이곳은 요해지라서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합니다.
方唐盛時하야 安西都護 去長安萬里하니 若論要害하면 自此以西 無不可取者
나라의 전성기에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장안長安과의 거리가 만 리였으니, 만약 요해지를 논한다면 강무성講武城으로부터 서쪽은 취할 만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使諸羌으로 知中國有進取不已之意하면 則寇愈深而兵不解하리니 其禍 豈可量哉잇가
이리하여 여러 강족羌族들로 하여금 중국이 끊임없이 진취進取할 뜻이 있음을 알게 한다면 적의 침략이 더욱 심해지고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 그 를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臣願陛下深詔邊吏하사 叛則討之하고 服則安之하야 自今以往으로 無取尺寸之地하고 無焚廬舍하고 無殺老弱하라하시면
은 원컨대 폐하께서 변방의 관리에게 엄중히 명하시기를 “오랑캐들이 배반하면 토벌하고 굴복하면 편안히 해주어 지금 이후로는 한 자나 한 치의 땅도 점령하지 말고 저들의 여사廬舍를 불태우지 말고 노약자들을 죽이지 말라.”라고 하신다면
未及朞年 諸羌 可傳檄而定하리이다
1년이 못되어서 여러 강족羌族들을 격문檄文만 돌리고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나 朝廷至意 亦自難喩하야 將帥未必從也리니 雖日行文書라도 終恐無益이라
그러나 조정의 지극한 뜻은 또한 본래 깨우쳐주기가 어려워서 장수들이 반드시 따르지는 않을 것이니, 비록 날마다 문서를 보낸다 하더라도 끝내 무익할까 염려스럽습니다.
宜驛召陝西轉運使一員赴闕하야 面勅戒之하야 使歸以安將帥하고 而察其不如詔者하소서
마땅히 파발마로 섬서전운사陝西轉運使 한 명을 대궐로 불러들여 대면하여 신칙하고 경계하시어, 그로 하여금 돌아가 여러 장수들을 타이르고 조서詔書대로 하지 않는 자를 살피게 하소서.
臣又竊聞朝論호니 謂鬼章犯順하니 罪當誅死
이 또 조정朝廷의 의논을 들어보니, “귀장鬼章이 순종하는 도리를 범했으니, 죄가 마땅히 죽어야 한다.
이나 譬之鳥獸하야 不足深責이라
그러나 오랑캐들은 비유하면 새와 짐승과 같으니, 굳이 심하게 책망責望할 것이 못 된다.
其子孫部族 猶足以陸梁於邊하니 全其首領하야 以累其心하야 以爲重質이면 庶獲其用이라하니 此實當今之良策이니이다
그 자손과 부족들이 아직도 변방에서 날뛰고 있으니, 그의 목을 온전히 보존하여 그 마음을 옭매어서 중요한 인질人質로 삼으면 거의 활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지금의 좋은 계책입니다.
然臣竊料컨대 鬼章 兇豪素貴하야 老病垂死하니 必不能甘於困辱하야 爲久生之計
그러나 이 엎드려 헤아려보건대, 귀장鬼章은 흉포하고 호걸스럽고 평소 신분이 귀한 자인데 지금 늙고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반드시 곤욕을 달게 여기면서까지 오래 살 계책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自知生存終不得歸하고 徒使其臣子 首䑕顧忌하야 不敢復讐하면 必將不食求死하야 以發其衆之怒 就使不然이라도 老病愁憤 自非久生之道
귀장鬼章이 ‘생존한다 해도 끝내 돌아갈 수 없고, 다만 신자臣子들로 하여금 구멍 속의 쥐처럼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게 해서 감히 복수하지 못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면 반드시 먹지 않고 죽어 그 무리들의 분노를 유발誘發시키려 할 것이요, 또 만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늙고 병든 몸으로 근심하고 분노하고 있으니, 이는 본래 오래 살 수 있는 방도가 아닙니다.
鬼章若死하면 則其臣子專意復讐하야 必與阿里骨合하고 而北交於夏人하리니 此正(胡)[吳]越同舟하야 遇順風之勢 其交必堅이요
귀장鬼章이 만약 죽는다면 그 신하들이 온 마음으로 복수하고자 하여 반드시 아리골阿里骨과 연합하고 북쪽으로는 서하西夏수교修交할 것이니, 이것은 바로 나라와 나라가 한 배를 타고서 풍랑을 만나게 되면 서로 구원해주는 형세이니, 그 수교가 반드시 견고해질 것입니다.
而溫溪心 介於阿里骨夏人之間하야 地狹力弱하야 其勢必危하니 若見幷而吾不能救하야 使二寇合三面하야 以窺熙河하면 則其患 未可以一二數也니이다
그리고 또 온계심溫溪心아리골阿里骨서하西夏의 중간에 끼어 있으면서 영토가 좁고 국력이 약하여 그 형세가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니, 만약 온계심溫溪心이 저들에게 합병을 당하는데도 우리가 구원하지 못해서 두 적으로 하여금 3을 합하여 희하熙河를 엿보게 한다면 그 우환을 한두 가지로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如臣愚計 可詔邊臣하야 與鬼章約호되
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변방의 신하에게 명해서 귀장鬼章과 약속하기를
若能使其部族으로 討阿里骨하고 而納 當放汝生還이라하고
“만약 너의 부족部族으로 하여금 아리골阿里骨을 토벌하고 조순충趙純忠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마땅히 너를 석방하여 살려 보내주겠다.”라고 하고,
質之天地하야 示以必信하소서
이것을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맹서해서 반드시 믿도록 보여주소서.
鬼章若從이면 則稍富貴之하고 使招其信臣而喩至意焉이니이다
그리하여 만일 귀장鬼章이 이것을 따르면 차츰차츰 그를 부귀富貴하게 해주고 그가 신임하는 신하를 불러 지극한 뜻을 깨우쳐주도록 해야 합니다.
鬼章 旣有生還之望하야 不爲求死之計하면 其衆必從하리이다
귀장鬼章이 살아 돌아갈 희망을 가져 죽으려는 계책을 쓰지 않는다면 그 무리들이 반드시 따르게 될 것입니다.
以鬼章之衆으로 與溫溪心合하야 而討阿里骨하면 其勢必克이니
귀장鬼章의 병력으로 온계심溫溪心과 연합해서 아리골阿里骨을 토벌하게 된다면 그 형세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旣克而納純忠이면 雖放還鬼章이라도 可以無患하리니 此必然之勢也니이다
아리골阿里骨을 이기고 난 다음 조순충趙純忠을 들여보낸다면 비록 귀장鬼章을 석방하여 돌려보낸다 하더라도 걱정이 없을 것이니, 이것은 필연적인 형세입니다.
西羌 本與夏人世仇 而鬼章 本與阿里骨不協하니
서강西羌은 본래 서하西夏와 대대로 원수지간이고, 귀장鬼章은 본래 아리골阿里骨과 화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若許以生還하면 其衆必相攻이니 縱未能誅阿里骨이라도 亦足以使二盜相疑而不合也리이다
우리가 만약 귀장鬼章을 살려 돌려보낼 것을 허락한다면 그 무리들이 서로 공격할 것이니, 비록 아리골阿里骨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두 적으로 하여금 서로 의심해서 연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야 幾殺策이러니 策後得慈 釋不誅하고 放還豫章하야 卒立奇功하며 하야 解縛用之하야 與同臥起라가 卒擒元濟하니 非豪傑名將이면 不能行此度外事也니이다
옛날에 태사자太史慈손책孫策과 싸워 거의 손책孫策을 죽일 뻔하였는데, 손책孫策이 뒤에 태사자太史慈를 사로잡자 죽이지 않고 석방하여 예장豫章으로 돌려보내어, 끝내 태사자太史慈손책孫策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이소李愬오원제吳元濟의 장수 이우李祐를 사로잡자 포박을 풀고 그를 등용해서 기거起居를 함께하다가 끝내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았으니, 호걸과 명장名將이 아니면 이처럼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을 실행하지 못합니다.
議者或謂 鬼章之獲 兼用近界酋豪하야 力戰而得之하야
의논하는 자가 혹 말하기를 “귀장鬼章을 사로잡을 적에 귀장鬼章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지역의 추호酋豪(酋長)들을 함께 이용하여 힘써 싸우게 해서 귀장鬼章을 사로잡았다.
仇怨已深하니 若放生還이면 此等 必無全理라하니 臣以謂不然이라하노이다
이 때문에 귀장鬼章이 이들과 맺은 원한이 이미 깊으니, 만약 귀장鬼章을 살려 돌려보낸다면 이들이 반드시 온전할 리가 없다.”라고 하는데, 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若鬼章 死於中國이면 其衆 讐此等必深이요 若其生還이면 其讐之亦淺하리니 此等 依中國爲援이면 足以自全하리이다
만약 귀장鬼章중국中國에서 죽는다면 귀장鬼章의 무리가 이들을 원수로 여김이 반드시 깊을 것이요, 만약 살아서 돌아간다면 원수로 여김이 또한 얕을 것이니, 이들이 중국中國을 의지한다면 충분히 스스로 온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自古 西羌之患 惟恐解仇結盟하니 若所在爲讐敵이면 正中國之利 無可疑者니이다
예로부터 서강西羌에 대한 염려는 행여 자기들끼리 원한을 풀고 맹약을 맺을까 두려워하였으니, 만약 있는 곳마다 저희들끼리 서로 원수와 적이 된다면, 이것은 바로 중국中國의 이익임을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臣出位言事하오니 不勝恐悚待罪之至로소이다
은 지위를 벗어나 일을 말씀드리니, 송구하여 죄를 기다리는 지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取進止하소서
재량裁量하소서.
역주
역주1 乞詔邊吏無進取及論鬼章事宜箚子 :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元祐二年九月二十七日 翰林學士 朝奉郞 知制誥 兼侍讀 蘇軾札子奏’라는 28字가 있다. 이로써 이 글이 元祐 2년(1087)에 쓰여졌으며, 이때 蘇軾이 翰林學士 知制誥 兼侍讀으로 在任 中이었음을 알 수 있다. 進取하지 말라는 것은 불필요하게 서둘러 西夏를 공격하여 그 땅을 점령하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역주2 趙純忠 : 《宋史》 〈外國傳〉에는 ‘趙存忠’으로 표기되어 있다. 본명은 巴毡抹인데 宋나라에서 國姓을 하사하고 이름을 고쳐주었다. 阿里骨은 董毡의 양자이고 趙純忠은 董毡의 손자인데, 이때 阿里骨은 宋나라를 배반하였고 趙純忠은 宋나라에 歸附하였으므로 阿里骨을 토벌하고 趙純忠을 들여보내려 한 것이다.
역주3 太史慈與孫策戰 : 孫策(175~200)은 後漢 말기 三國의 정립시기에 吳나라를 창업한 군주이다. 孫堅의 장자로 孫堅이 죽은 다음 袁術에게 병력을 빌어 江東에 기반을 잡고 마침내 吳나라를 세웠다. 太史慈는 자가 子義이고 東萊 사람으로 吳나라 창업에 큰 공을 세운 맹장이다. 그가 劉繇의 막하에 있을 적에 孫策과 백중세로 싸우다가 뒤에 사로잡히자, 孫策이 간곡히 회유하여 孫策의 장수가 되었다. 劉繇가 豫章에서 죽자, 太史慈는 劉繇의 남은 병력들을 귀순시키겠다며 豫章으로 갈 것을 청하였다. 이에 孫策의 부하들이 모두 그가 가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하였으나, 孫策만은 그를 믿고 허락하였는데, 과연 太史慈는 劉繇의 병력 1만 명을 거느리고 돌아와 孫策의 군대를 강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후 많은 전공을 세웠다.
역주4 李愬得吳元濟將李祐 : 李愬는 字가 元直으로 唐나라 憲宗 때의 명장이다. 元和 연간에 淮西에서 節度使 吳元濟가 반기를 들자, 唐鄧節度使로 임명되어 吳元濟를 사로잡고 난을 평정하였다. 李祐는 본래 吳元濟의 장수였는데, 李愬에게 사로잡힌 다음 그의 정성에 감복하여 귀순하였다가 그가 蔡州城을 공격할 적에 선봉이 되어 吳元濟를 사로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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