游談之士 依以成聲
이어늘 今之少年
이 喜謗前輩
하야 或譏評
성효장孝章하니 성효장孝章은 要爲有天下重名
하야 이라하니라
雖然이나 自今觀之하면 공북해孔北海, 성효장盛孝章은 猶在世로되 而向之譏評者는 與草木同腐 久矣니라
昔
에 吾擧進士
하야 試於禮部
할새 이 見吾
구양문충공文하고 曰 此
는 我輩人也
니 吾當避之
라하시니라
러니 曾未數年
에 忽焉若潦水之歸壑
하야 無復見一人者
하니 此豈復待後世哉
리오
今吾衰老廢學하야 自視缺然이로되 而天下之士 不吾棄하고 以爲可以與於斯문충공文者는 猶以문충공文忠公之故也니라
此兩人者
는 士之超逸絶塵者也
니 非獨吾云爾
요 二三子亦自以爲莫及也
라
士如良金美玉하야 市有定價하니 豈可以愛憎口舌로 貴賤之歟리오
진소유少游之弟소장少章이 復從吾진소유游러니 不及期年에 而論議日新하야 若將施于用者하니 欲歸省其親호되 且不忍去라
作태식太息一篇하야 以餞其行하노니 使藏于家라가 三年然後出之하라
공북해孔北海(공융孔融)가 조공曹公(조조曹操)에게 준 편지에 성효장盛孝章(성헌盛憲)을 논하여 말하기를 “효장孝章은 실로 뛰어난 장부이다.
유세遊說하는 선비들이 그를 의지하여 명성을 이루었는데, 지금 연소年少한 자들이 선배를 비방하기 좋아하여 혹 성효장盛孝章을 비방하니, 성효장盛孝章은 요컨대 천하에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어서 구목九牧의 사람들이 함께 칭찬하고 감탄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글을 읽다가 이 부분에 이르면 일찍이 책을 덮고 크게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특하고 거룩하고 기이한 선비들이 세속世俗에 용납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지금 살펴보면 공북해孔北海와 성효장盛孝章은 아직도 명성이 세상에 남아 있는데, 지난번에 이들을 비난하던 자들은 초목草木과 함께 썩은 지 오래되었다.
옛날 내가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예부禮部에서 시험볼 적에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구양수歐陽脩)이 내 글을 보고 말씀하기를 “이 사람은 〈그 문장과 학문의 수준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니, 내 마땅히 그에게 양보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이때에 선비들이 표절하고 베끼는 것을 작문作文하는 일로 여겨 모여서 나를 비방하였고, 또 곳곳마다 공公을 비방하는 자들이 시장을 이룰 정도로 많았는데, 일찍이 몇 년이 못 되어 장맛물이 갑자기 도랑으로 빠진 것과 같아서 다시는 한 사람도 볼 수 없었으니, 이 어찌 다시 후대를 기다리겠는가?
지금 내가 노쇠하여 학문을 버려두고 하지 않아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부족한데, 천하天下의 선비들이 나를 버리지 않고 아직도 내가 사문斯文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문충공文忠公의 칭찬 때문이다.
장문잠張文潛(장뢰張耒)과 진소유秦少游(진관秦觀), 이 두 사람은 선비 중에 초일超逸하여 세속을 뛰어넘은 자이니, 이것은 비단 나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요, 저 사람들도 스스로 남들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비들은 듣지 못한 바에 놀라서 이동異同의 논의가 없지 못하다.
그러므로 분분紛紛하게 비방하는 말이 항상 나와 두 사람에게 미치니, 내 이것을 분명하게 깨우쳐주겠다.
선비는 좋은 금과 아름다운 옥과 같아서 시장에 정해진 값이 있으니, 어찌 사랑하고 미워하는 말로 귀하게 하고 천하게 할 수 있겠는가?
진소유秦少游의 아우 소장少章(진구秦覯)이 다시 나를 따라 교유交游하였는데, 1년年이 못 되어 그의 의논이 날로 새로워져서 장차 쓰일 듯하니, 돌아가서 어버이에게 문안하고자 하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
그대는 떠나가서 돌아가 형兄에게서 찾는다면 내 어찌 그대 형보다 낫겠는가?
〈태식太息〉 한 편을 지어서 떠나는 길을 전송하니, 이 글을 집에 간직해두었다가 3년 후에 꺼내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