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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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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재용材用을 비축해야 한다
欲募天下之將材하야 而歸之於治兵하니 治兵 固一說이나 然其本 尤在君相之一心與一氣하니라
천하天下장재將材(장수의 재목)를 모집하려 하면서 치병治兵(군대의 체계적인 통솔)에 돌리고자 하였으니, 치병治兵도 진실로 한 이론이나, 그 근본은 더더욱 군주와 정승이 한 마음이 되고 한 기운이 되는 데에 달려 있다.
夫今之所患兵弱而不振者 豈士卒寡少而不足使歟 器械鈍弊而不足用歟잇가
지금 군대가 약하여 떨치지 못함을 걱정하는 이유가 어찌 병졸의 숫자가 적어서 충분히 부릴 만하지 못해서이며, 병기가 무디고 낡아서 충분히 쓸 만하지 못해서이겠습니까?
抑爲城郭不足守歟 廩食不足給歟잇가
아니면 성곽이 충분히 지킬 만하지 못해서이며, 창고의 곡식이 충분히 공급할 만하지 못해서이겠습니까?
此數者 皆非也
이 몇 가지는 모두 절대로 아닙니다.
이나 所以弱而不振 則是無材用也일새니이다
그러나 군대가 약하여 떨치지 못하는 까닭은 쓸 만한 장재將材가 없기 때문입니다.
夫國之有材 譬如山澤之有猛獸하고 江河之有蛟龍하야 伏乎其中이로되 而威乎其外하야 悚然有所不可狎者하니이다
나라에 인재가 있는 것은 비유하면 산과 못에 맹수가 있고 강하江河에 교룡이 있어, 그 가운데 엎드려 숨어 있지만 밖으로 위엄이 나타나 사람들이 송연悚然하여 가까이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至於鰍蚖之所蟠䍧豚之所伏하야는 雖千仞之山 百尋之溪라도 而人易之하나니 何則 其見於外者 不可欺也일새니이다
그러나 미꾸라지나 도롱뇽이 서려 있는 곳과 암양과 돼지가 엎드려 있는 곳으로 말하면 비록 천 길의 높은 산과 백 길의 깊은 계곡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깔보니, 왜냐하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天下之大 不可謂無人이요 朝廷之尊 百官之富 不可謂無才
이 넓은 천하天下에 훌륭한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높은 조정과 많은 백관 중에 인재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나 以區區之 擧數州之衆하야 以臨中國하야 抗天子之威하고 犯天下之怒하야 而其氣未嘗少衰하고 其詞未嘗少挫하니 則是其心 無所畏也니이다
그런데도 구구한 두 오랑캐가 몇 의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 중국中國에 처들어 와서 천자天子의 위엄에 항거하고 천하天下의 노여움을 범해서 기세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말씨가 조금도 꺾이지 않으니, 이는 오랑캐의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어늘 今朝廷之(士)[上] 不能無憂로되 而大臣恬然하야 未有拒絶之議하니이다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가 욕을 당해야 하고 군주가 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어야 하는데, 지금 조정의 위에 근심이 없지 못한데도 대신들이 태연하여 오랑캐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의논이 있지 못합니다.
非不欲絶也 而未有以待之하니 則是朝廷無所恃也니이다
거절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대처할 방법이 있지 못해서이니, 이는 조정에 믿고 의지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沿邊之民 西顧而戰慄하고 牧馬之士 不敢彎弓而北嚮하고 吏士未戰而先期於敗하니 則是民輕其上也니이다
변방의 백성들은 서쪽(서하西夏)을 돌아보면서 전율을 느끼고, 말을 먹이는 군사들은 감히 활을 당겨서 북쪽에 있는 거란契丹을 향하지 못하고, 관리와 군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패전할 것을 미리 점치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는 백성들이 윗사람을 깔보는 것입니다.
外之蠻夷 無所畏하고 內之朝廷 無所恃하고 而民又自輕其上하니 此猶足以爲有人乎잇가
밖의 오랑캐들은 두려워하는 바가 없고 안의 조정에는 믿고 의지할 바가 없고 백성들은 또 스스로 윗사람을 깔보고 있으니, 이런 데도 훌륭한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天下未嘗無才하니 患所以求才之道不至니이다
천하天下에는 일찍이 인재가 없었던 적이 없으니, 인재를 구하는 방도가 지극하지 않음을 걱정할 뿐입니다.
古之聖人 以無益之名으로 而致天下之實하고 以可見之實 而較天下之虛名하야
옛날 성인聖人은 유익함이 없는 허명虛名을 가지고 천하天下의 실제를 이루었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실제를 가지고 천하天下허명虛名을 비교하였습니다.
二者相爲用而不可廢
그리하여 이 두 가지가 서로 쓰임이 되어 폐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是故 其始也 天下莫不紛然奔走하야 從事於其間하고 而要之以其終하야는 不肖者無以欺其上하니 此無他
이 때문에 처음에는 천하天下 사람들이 분분하게 달려가서 그 사이에 종사하지 않는 이가 없고, 종말에 이르러서는 불초한 자가 윗사람을 속일 수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딴 이유가 없습니다.
先名而後實也니이다
(명분 또는 명성)을 먼저 하고 (실제)을 뒤에 하였기 때문입니다.
不先其名하고 而唯實之求하면 則來者寡하고 來者寡하면 則不可以有所擇이니 以一旦之急으로 而用不擇之人 則是不先名之過也니이다
을 먼저 하지 않고 오직 만 추구하면 오는 자가 적고, 오는 자가 적으면 사람을 가려 뽑을 수 없으니, 하루아침 위급한 상황을 당하여 가려 뽑지 않은 사람을 쓰는 것은 을 먼저 하지 않은 잘못입니다.
天子之所嚮 天下之所奔也
천자天子가 지향하는 바에는 천하天下 사람들이 향해 달려갑니다.
今夫 其讀之者 未必能戰也 多言之士 喜論兵者 未必能用也 進之以武擧하고 試之以騎射라도 天下之奇才 未必至也
이제 손오孫吳병서兵書를 읽은 자들이 반드시 잘 싸우지는 못하고, 말을 많이 하는 선비로서 병사兵事를 논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반드시 쓸 만하지는 못하고, 무과武科로 인물을 등용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로써 무사들을 시험하더라도 천하天下의 기이한 인재가 반드시 몰려오지는 않습니다.
이나 將以求天下之實인댄 則非此三者 不可以致 以爲未必然而棄之 則是其必然者 恐不可得而見也니이다
그러나 장차 천하天下의 실제를 구하려고 한다면 이 세 가지가 아니고는 오게 할 수 없으니, 반드시 그렇지는 못하다 하여 버린다면 ‘반드시 그러한 자’를 끝내 얻어 볼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往者 其先也 惟不以虛名으로 多致天下之才而擇之하야 以待一旦之用이라
지난번 서쪽에서 군대를 출동했을 적에 그 이전에 허명虛名으로 인재를 많이 오게 해서 가려 뽑아 하루아침의 위급한 상황에 쓸 것을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其兵興之際 四顧惶惑하야 而不知所措하니이다
그러므로 군대를 일으켰을 적에 사람들이 사방을 돌아보고는 두려워하고 의혹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於是 設武擧하고 購方略하야 收勇悍之士하고 而開猖狂之言하야 不愛高爵重賞하야 以求强兵之術하니 當此之時하야 天下囂然하야 莫不自以爲知兵也
이에 무과武科를 설치하고 훌륭한 방책을 현상懸賞하여 용감한 군사를 거두고, 창광猖狂한 말을 올리도록 언로言路를 크게 개방하여, 높은 관작과 큰 을 아끼지 않고 군대를 강성하게 하는 방책을 강구하니, 이때를 당하여 천하天下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스스로 병사兵事를 안다고 말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來者日多로되 而其言 益以無據하야 至於臨事 終不可用하고 執事之臣 亦遂厭之하고 而知其無益이라
그리하여 찾아오는 자가 날로 많아졌으나 그 말이 더욱 근거가 없어서 일을 당했을 적에 끝내 쓸 수 없었고, 국사를 담당한 신하들 또한 마침내 이들을 싫어하고 그 무익함을 알았습니다.
兵休之日 擧從而廢之하니이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나는 날에 따라서 모두 폐지하였습니다.
今之論者 以爲武擧方略之類 適足以開僥倖之門이요 而天下之實才 終不可以求得이라하니 此二者 皆過也니이다
지금에 의논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무과武科 급제와 훌륭한 방책을 현상하는 따위는 다만 요행의 문을 열어줄 뿐이요, 천하天下의 진실한 인재는 끝내 구하여 얻을 수 없다.”라고 하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지나칩니다.
夫旣已用天下之虛名하야 而不較之以實하고 至其弊也 又擧而廢其名하야 使天下之士 不復以兵術進 亦已過矣니이다
이미 천하天下허명虛名을 써서 실제로써 비교하지 않고, 폐단이 생기자 또 들어서 그 을 폐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들로 하여금 다시는 용병술을 가지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또한 너무 지나칩니다.
天下之實才 不可以求之於言語 又不可以較之於武力이요 獨見之於戰耳 不可得而試也 是故 見之於이니이다
천하天下에 진실로 쓸 만한 인재는 언어言語로 구할 수 없고 또 무력(무예武藝)으로 비교할 수 없고 오직 전쟁에서 나타날 뿐인데, 전쟁은 시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치병治兵에서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자옥子玉 땅에서 치병治兵할 적에 하루 만에 끝마쳤는데 형벌로 일곱 사람을 채찍질하고 세 사람의 귀를 꿰자, 위가蔿賈가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하기만 하고 가 없으니 반드시 패할 것을 알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손무孫武가 처음 오왕 합려吳王 闔閭를 뵈었을 적에 부인婦人들을 데리고 치병治兵하는 모습을 시험하게 하였으나 손무孫武는 충분히 합려闔閭에게 신뢰를 얻어서 자신이 쓸 만한 인물임을 합려闔閭로 하여금 알게 하였습니다.
凡欲觀將帥之才否인댄 莫如治兵之不可欺也니이다
그러므로 무릇 장수가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자 한다면 속일 수 없는 치병治兵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今夫新募之兵 驕而難令하고 勇悍而不知戰하니 眞足以觀天下之才也니이다
지금 새로 모집한 병사들이 교만하여 명령하기 어렵고, 용맹하고 사납기만 하여 전투할 줄을 모르니, 이들을 가지고 참으로 천하天下장재將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武擧方略之類以來之하고 新兵以試之호되 觀其顔色和易 則足以見其氣 約束堅明이면 則足以見其威 坐作進退 各得其所 則足以見其能이니 凡此者 皆不可彊也
무과급제武科及第와 훌륭한 방책으로 유도하여 장재將材를 오게 하고 신병新兵으로 시험해보되 그 사람의 안색이 화평함을 보면 충분히 그의 기운을 알 수 있고, 규약이 견고하고 분명하면 충분히 그의 위엄을 볼 수 있고, 군사들이 앉고 일어나고 나아가고 물러감이 각각 제자리를 얻으면 충분히 그의 재능을 볼 수 있으니, 무릇 이것들은 다 하루아침에 억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曰 先之以無益之虛名하고 而較之以可見之實이면 庶乎可得而用也라하노이다
그러므로 은 말하기를 “유익함이 없는 허명虛名으로써 먼저 하고 볼 수 있는 실제로써 비교한다면, 거의 훌륭한 장재將材를 얻어 쓸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주
역주1 蓄材用 : 이 글은 〈策別 訓兵旅〉의 세 편 중에 첫 번째 편으로 본래의 제목은 〈策別 訓兵旅 一〉이다. 本集에는 편 머리에 ‘訓兵旅者 其別有三 一曰蓄材用’의 13字가 있다.
역주2 二虜 : 두 오랑캐로, 당시 宋나라를 압박하고 있던 북쪽의 遼나라(契丹)와 서쪽의 西夏를 말한다. 宋나라는 건국 이래로 두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몇 차례의 전쟁을 벌였으나 대부분의 싸움에서 패전하여 거액의 歲幣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講和하였다.
역주3 主憂則臣辱 主辱則臣死 : 이 내용은 《史記》 〈范睢列傳〉에 “昭王이 조정에 임하여 탄식하자, 應侯 范睢가 나아가 아뢰기를 ‘臣이 들으니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가 욕을 당해야 하고 군주가 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음으로써 그 죄를 받아야 한다 하였는데, 오늘 대왕께서 조정에서 근심하시니, 臣은 감히 죄를 청하옵니다.’ 하였다.[昭王臨朝歎息 應侯進曰 臣聞 主憂臣辱 主辱臣死 今大王中朝而憂 臣敢請其罪]”라고 보인다.
역주4 孫吳之書 : 孫吳兵法을 이른다.
孫은 孫武(B.C. 535~?)로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인데 자가 長卿이다. 뛰어난 병법가로 吳王 闔閭의 軍師가 되어 楚나라를 격파하고 齊나라와 晉나라를 위협하여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으며, 후세에 兵法의 시조로 불린다. 저서에는 병법서 《孫子兵法》 13편이 있다.
吳는 吳起(B.C. 440~B.C. 381)로 戰國時代의 저명한 병법가인데 衛나라 사람이다. 孔子의 제자인 曾參에게 배우고 魯나라에서 戰功을 세웠으나 모함을 받자, 魏나라로 가서 文侯를 섬겨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文侯의 아들 武侯 때에 신임을 잃자 다시 楚나라에 가서 悼王의 신임을 얻어 재상이 되고 개혁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으나 悼王이 죽자 평소 원망을 샀던 楚나라의 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저서에 병법서인 《吳子》가 있는데, 《孫子兵法》과 함께 ‘孫吳兵書’로 일컬어지고 있다.
역주5 西師之興 : 西師는 서북 지방에 출동한 군대로, 仁宗 寶元(1038~1039)과 慶曆(1041~1048) 연간에 걸쳐 진행된 西夏와의 전쟁을 이른다. 寶元 원년에 西夏의 元昊가 처음 황제를 칭하자 宋나라가 먼저 공격하여 西夏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전쟁은 慶曆 4년에 宋나라가 매년 歲幣를 바치는 조건으로 講和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역주6 治兵 : 군대를 체계적으로 지휘하여 훈련시킴을 이른다.
역주7 子玉治兵於蔿……知其必敗 : 子玉은 楚 成王 때의 令尹인 成得臣의 字이다. 若敖氏의 后裔로 성질이 사납고 고집스러웠다. 子玉은 僖公 28년(B.C. 632) 城濮의 싸움에서 楚나라 군대를 지휘하였는데, 晉 文公에게 패하자 자결하였다. 蔿는 楚나라의 邑名이며, 蔿賈는 당시 楚나라 대부로 字가 伯嬴인데,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僖公 27년에 보인다.
역주8 孫武始見……使知其可用 : 闔閭(B.C. 514~B.C. 496)는 춘추시대 吳나라의 왕으로 이름은 光이다. 孫武와 伍子胥를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어 楚나라를 공격하는 등 국위를 떨쳤으나 越王 句踐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부상을 당하여 죽었다.
孫武가 자신의 병법서 13편을 가지고 吳王 闔閭를 만나 설득하였는데, 闔閭가 병법의 실효성을 의심하여 시험하고자 하였다. 이에 孫武는 당장 宮女들을 데리고 治兵하는 방법을 시험으로 보여주되 宮女들이 명령을 듣지 않을 경우 軍法을 시행하여 즉시 처형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을 청하자, 闔閭가 이를 허락하였다.
孫武는 宮女 180명을 2隊로 나누고 闔閭의 寵姬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아 훈련을 시켰는데, 宮女들이 깔깔대고 웃으며 장난하여 기강이 잡히지 않아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에 孫武는 다시 훈련을 시키면서 만일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대장을 처형하겠다고 몇 번이고 경고하였다. 그런데도 隊員들이 따르지 않자, 즉시 軍律대로 대장 두 사람을 참수하고 다시 두 사람을 대장으로 뽑아 훈련을 시키자 일사분란하게 훈련이 진행되었다. 이에 闔閭는 孫武의 治兵하는 능력을 인정하여 장수로 임명하였다. 《史記 孫子吳起列傳》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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