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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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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簡而有法하고 周而能解
諸侯宮室臺榭하야 講軍實하고 容俎豆 各有制度
古今大都 方伯所治處어늘
制度狹庳하야 軍實不講하고 俎豆無以容하니 不以偪諸侯哉
宋公 至自丞相府하야 化淸事省하고 喟然有意其圖之也러라
今太常刁君 實集其意하니 會公去鎭鄆하니라 君卽而考之하고 占府乾隅하야 夷茀而基하고 因城而垣하고 竝垣而溝하니 周六百步 竹萬箇覆其上이라
故高亭 在垣東南하니 循而西三十軏 作堂하고 曰愛思라하니 道僚吏之不忘宋公也 堂南北鄕 袤八筵이요 廣六筵이라
直北爲射埒하고 列樹八百本하야 以翼其旁하니 賓至而享 吏休而宴 於是乎在
又循而西十有二軏 作亭하고 曰隷武라하니
南北鄕 袤四筵이요 廣如之하야 埒如堂하고 列樹以鄕하야 歲時敎士戰射坐作之法 於是乎在
始慶曆二年十二月某日하야 凡若干日 卒功云하니라
宋公之政務不煩其民하니 是役也 力出於兵하고 材資於官之饒하며 地瞰於公宮之隙하니 成公志也
揚之物與監 東南所規仰이요 天子宰相所垂意
而選繼乎宜有若宋公者하고 丞乎宜有若刁君者하니 金石可弊 此無廢已리라
慶曆三年四月某日 臨川王某하노라


01. 양주揚州 원정園亭 신축기新築記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법도法度가 있고, 두루 언급하면서도 설명을 잘하였다.
제후諸侯궁실宮室을 짓고 대사臺榭를 세워서, 이곳에서 무예武藝를 익히고, 이곳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각기 정해진 제도制度가 있다.
양주揚州 땅은 옛날이나 이제나 큰 도시이고 지방의 장관이 다스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들 건물의 규모가 협소狹小하고 낮아서 무예武藝를 익힐 수가 없고 제기祭器도 제대로 갖추어 보관할 수가 없으니, 이 때문에 제후가 곤핍困乏함을 겪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송공宋公께서 승상부丞相府에서 이 고을로 부임하시자, 청명淸明하게 교화敎化를 이루고 행정行政간소화簡素化하고서, 크게 탄식하며 궁실宮室대사臺榭수축修築할 뜻을 품게 되었다.
지금 태상박사太常博士로 있는 조역군刁繹君로 그 뜻을 받들어 이루어 놓았으니, 그때 마침 송공宋公운주鄆州 땅을 진무鎭撫하기 위하여 이 고을을 떠났으므로, 조역군刁繹君이 나서서 이를 따져보고 길흉을 점쳐서, 치소治所의 서북 모퉁이에 잡초를 제거하고 기초를 다지고, 을 근거로 하여 담장을 쌓고 담장과 나란히 도랑을 둘러 놓으니, 둘레가 600였고 대나무를 그 위에 빽빽하게 심었다.
고정高亭이 담장 동남쪽에 있고, 이를 따라서 30되는 곳에 건물을 세우고 이름을 ‘애사당愛思堂’이라 하였으니, 속관屬官들이 송공宋公은덕恩德을 잊지 않는 뜻을 따른 것이며, 의 규모는 남북향南北向으로 세로가 8이고 가로가 6이다.
정북正北쪽에 사장射場을 세우고 800의 나무를 나열해 심어서 그 주변을 가렸고, 빈객賓客이 방문하면 접대할 수 있고, 관리들이 쉬면서 편안히 지내려 할 때에는 이곳에서 머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곳에서 또 담장을 따라 42 되는 곳에 정자亭子를 세우고 이름을 ‘예무정隷武亭’이라 하였는데,
그 규모는 남북향으로 세로가 4이고 가로도 그와 같았으며, 규모가 ‘애사당愛思堂’과 대등하였고, 정자를 향해 나무를 심고, 매년 일정한 시기마다 군사軍士들에게 전투훈련, 활쏘기, 각종 동작규정動作規定 등을 가르치는 일을 이곳에서 할 수 있게 하였다.
경력慶曆 2년 12월 모일某日착공着工하여 약간의 날짜가 지나자 모두 완공完工하게 되었다.
처음 송공宋公께서 정무政務를 보실 때에 그 백성들을 번거롭게 괴롭히지 않으셨고, 이 일을 진행할 때에 노역勞役은 군사를 동원하여 시키고, 자재資材는 관청의 잉여금으로 충당하고, 대지垈地관부官府공지空地를 이용하였으니, 의 뜻을 받들어서 이룬 것이다.
아아!
이렇게 되자 양주揚州 땅의 인물人物관리官吏들을 동남방東南方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본받고자 하게 되었고, 천자天子재상宰相께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도다.
그러니 마땅히 송공宋公 같은 사람을 선발하여 이를 계승하게 하고, 마땅히 조역군刁繹君 같은 사람을 얻어서 이어받게 해야 할 것이니, 쇠와 돌은 문드러지는 일이 있겠지만 이 업적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라.
경력慶曆 3년(1043) 4월 모일某日임천臨川 왕모王某를 지었노라.


역주
역주1 揚州新園亭記 : 本 記는 慶曆 3년(1043) 4월에 揚州 通判 刁繹의 主管으로 揚州에 신축한 園亭이 竣工되자, 王安石이 記를 지어 이를 讚揚 祝賀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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