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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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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莊周論 下
補前篇不足處
學者詆장주공자孔子 余觀其書하니 特有所寓而言耳
맹자孟子曰 說者 不以文害辭하며 不以辭害意
讀其文호되 而不以意原之하니 此爲장주者之所以詆也니라
孰謂장주之言 皆不可措乎君臣父子之間하고 而遭世遇主라도 終不可使有爲也
하야는 彼蓋危言以懼衰世之常人耳
夫以장주之才 豈迷出處之方하야 而專畏犧者哉
장주殆其人也
장주之說 其於道 旣反之하니 宜其得罪於聖人之徒也로다
夫中人之所及者 聖人 詳說而謹行之하시니 說之不詳하고 行之不謹이면 則天下弊 中人之所不及者 聖人 藏乎其心하고 而言之略하시니 不略而詳이면 則天下惑이니라
且夫諄諄而後喩하고 譊譊而後服者 豈所謂可以語上者哉리오
惜乎
장주之能言而不通乎此也로다


07. 장주에 대한 논
앞 편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한 글이다.
학자學者들은 장주莊周공자孔子를 비난했다고 비판하는데, 내가 그 글을 읽어본 바로는 다만 우언寓言에 부쳐서 말한 것이 있을 뿐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를 해설하는 사람은 글자에 얽매여서 말을 해쳐서는 안 되고, 말에 얽매여서 뜻을 해쳐서는 안 된다.
를 보는 자의 뜻으로 시를 지은 자의 의도를 추단推斷할 수 있어야, 이를 제대로 터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 글을 읽기만 하고 그 뜻의 근원을 추구해보지 않으니, 이것이 장주莊周의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이유이다.
장주莊周가 말하기를 “윗자리에 있게 되면 반드시 인위적人爲的으로 하는 것이 없어야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고, 아랫자리에 있게 되면 하는 것(有爲함)이 있어야 천하에 쓰이게 된다.” 하였고, 자신이 혼암昏暗군주君主국정國政을 어지럽히는 재상宰相 사이에 있기 때문에 곤궁하게 지내면서 그 능력을 드러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니 어느 누가 장주莊周의 이론은 모두 군신君臣부자父子 사이에 적용할 수가 없고, 그가 좋은 시대와 훌륭한 군주를 만난다 해도 끝내 어떤 일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그가 태묘太廟신귀神龜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하여 에서 보낸 사자使者을 거절한 것에 이르러서는, 그는 아마도 올바른 말을 하기를 두려워하는 쇠미한 세상의 보통 사람일 뿐이다.
대저 장주莊周의 재능으로 어찌 벼슬에 나가고 물러나는 방도에 대해 알지 못해서 오로지 신귀神龜 같은 역할을 맡기를 두려워하였겠는가.
아마도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바 은거隱居하면서 말을 거침없이 한 사람이라는 것은, 장주莊周가 아마도 그런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장주莊周의 주장이 에 이미 어그러졌으니, 성인聖人의 뜻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를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함이 마땅하다.
대저 보통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성인聖人은 자상하게 설명하고 신중하게 실천하시니, 설명을 상세하게 하지 않고 실천을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천하에 폐해를 끼치기 때문이고, 보통 사람이 깨달을 수 없는 것은 성인聖人이 그의 마음속에 간직해두고 말을 간략하게 하시니, 간략하게 하지 않고 자상하게 설명하면 천하 사람들이 미혹迷惑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실하고 친절하게 깨우쳐준 이후에야 깨닫고, 성내고 다투며 설명한 이후에야 심복心服한다면, 어찌 이른바 고상한 내용에 대하여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겠는가.
애석하도다!
장주莊周는 말은 잘하면서도 이런 이치에는 통달하지 못했던 것이로다!


역주
역주1 孟子曰……是爲得之 : 이 내용은 《孟子》 〈萬章 上〉에 보인다.
역주2 周曰……下必有爲而爲天下用 : 이 내용은 《莊子》 〈天道〉에 보인다.
역주3 又自以爲……故窮而無所見其材 : 이 내용은 《莊子》 〈山木〉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4 及其引太廟犧 以辭楚之聘使 : 이 내용은 《莊子》 〈秋水〉의 “莊子가 濮水에서 고기를 낚고 있을 때에 楚王이 大夫 두 사람을 먼저 보내어 말하기를 ‘나라의 일을 맡기는 누를 끼치고자 합니다.’ 하니, 장자가 낚싯대를 들고 돌아보지도 않으며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초나라에 죽은 지 이미 3천 년이나 된 신묘한 거북이 있었는데, 왕은 이를 비단으로 잘 감싸서 상자에 넣어 사당 위에 잘 모셔둔다고 하니, 이 거북은 차라리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고자 하였겠소? 차라리 살아서 진흙 가운데서 꼬리를 끌며 지내고자 하였겠소?’ 하니, 두 대부가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지내려 하였겠지요.’ 하였다. 이에 장자가 말하기를 ‘돌아가시오. 나도 장차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면서 사는 길을 택하고자 하오.’ 하였다.[莊子釣於濮水 楚王使大夫二人王先焉 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持竿不顧 曰 吾聞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以巾笥而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라는 내용을 援用한 것이다.
역주5 蓋孔子所謂隱居放言者 : 《論語》 〈微子〉에 “虞仲과 夷逸을 評하시되 숨어 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몸은 깨끗함에 맞았고 폐함(벼슬하지 않음)은 權道에 맞았다.[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라고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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