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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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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古之時 士之在下者 無求於上하고 上之人 日汲汲惟恐一士之失也
古者士之進 有以德하고 有以才하고 有以言하고 有以曲藝러니라
今徒不然하야으로 而下之至于 其進退之 皆有法度
古之所謂德者才者 無以爲也 古之所謂言者 又未必應今之法度也
유사豪傑不世出之士라도 不自進乎此 上之人弗擧也 誠進乎此 而不應今之法度 유사有司弗取也하니 夫自進乎此 皆所謂枉己者也니라
然而今之士 不自進乎此者 未見也하니 豈皆不如古之士自重以有恥乎
古者 하고 士之未命也하니 其父母妻子裕如也
하야 觀游止處 師師友友하야 絃歌요순堯舜之道하야 自樂也
磨礱鐫切하고 沈浸灌養하야 行完而才備 則曰 上之人其舍我哉아하며 上之人 其亦莫之能舍也하니라
今也 地不井하고 國不學하고 黨不庠하고 遂不序하고 家不塾이라
士之未命也 則或無以裕父母妻子하고 無以處하며 行完而才備호되 上之人 亦莫之擧也하니 士安得而不自進이리오
嗚呼
使今之士 不若古 非人則然이라 勢也 勢之異 聖賢之所以不得同也니라
하시고 夫不以勢乎哉
士之進退 不惟其德與才 而惟今之法度 而有司之好惡 未必今之法度也
是士之進 不惟今之法度 而幾在有司之好惡耳
今之有司 非昔之有司也 後之有司 又非今之有司也 有司之好惡 豈常哉
是士之進退 果卒無所必而已矣니라
以言取人이면 未免失也로되 取焉而又不得其所謂言하니 是失之失也어든 況又重以有司好惡之不可常哉
古之道 其卒不可以見乎인저
士也有得已之勢어늘 其得不已乎
得已而不已 未見其爲有道也니라
양숙명楊叔明之兄弟 以父任京官하니 其勢非吾所謂無以處 無以裕父母妻子로되 而有不得已焉者也
自枉而爲진사進士하고 而又枉於有司하니 而又若不釋然이라
二君 固常自任以道하고 而且朋友我矣
懼其猶未寤也하야진설進說與之하노라


06. 인재의 등용에 대한 설
옛날에는 로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윗사람에게 벼슬 얻기를 청하는 일이 없었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날마다 한 사람의 유능한 라도 잃을까 염려하여 분주히 노력하였다.
옛날에 가 벼슬에 나아감은, 덕행德行으로 벼슬에 나아가거나, 재능才能으로 벼슬에 나아가거나, 좋은 말이 채납採納되어 벼슬에 나아가거나, 자질구레한 기예로 벼슬에 나아가는 일 등이 있었다.
지금은 한갓 그렇지가 않아서, 수재과秀才科로부터 아래로 내려와 명법과明法科에 이르기까지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에 모두 으로 정한 제도制度가 있다.
그렇게 되니 옛날의 이른바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이나 재능才能이 있는 사람은 진출할 수가 없고, 옛날의 이른바 좋은 건의建議를 한 사람도 반드시 지금의 법도法度에 맞아 등용되지는 않게 되었다.
진실로 세상에 흔히 나올 수 없는 호매豪邁하고 걸출傑出가 있다 해도 스스로 벼슬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찾아서 등용하지 않고, 진실로 벼슬에 진출하려 해도 지금의 법도法度에 알맞지 않으면 유사有司하지 않으니, 이에 스스로 진출하려 하는 사람은 모두 이른바 자기를 굽힌 자들이다.
맹자孟子께서는 “자기를 굽히고서 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의 들은 이렇게 자기를 굽히고서 스스로 벼슬에 나아가고자 하지 않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모두 옛날의 자중自重하면서 부끄러워함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되었는가?
옛날에는 천하天下토지土地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임용任用되기 전에는 일정한 농토와 택지를 주어서 백성이 되게 하니, 그 부모와 처자가 넉넉하게 생활할 수가 있었다.
로부터 (國都)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인 이 있어서, 관유觀遊하는 사람이나 집안에 거처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스승을 받들고 벗과 우애롭게 지내어, 요순堯舜금슬琴瑟에 맞추어 노래하며 스스로 즐겁게 지내었다.
그리하여 절차탁마切磋琢磨하고 침잠沈潛하여 수양修養을 쌓아서 덕행德行완미完美해지고 재능才能이 갖추어지면, 말하기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를 버리는 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도 그런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천하天下토지土地정전법井田法을 행하지 않고, 국도國都에는 을 두지 않고, 에는 을 두지 않고, 에는 를 두지 않고, 에는 을 두지 않고 있다.
가 임용되기 전에는 혹 부모와 처자를 넉넉하게 살게 할 수가 없고 거처할 곳도 없으며, 덕행德行완비完備하고 재능才能을 갖추었어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또한 등용하지를 않으니, 들이 어떻게 스스로 벼슬에 나아가고자 힘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아!
지금의 들로 하여금 옛날의 와 같지 않게 한 것은,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시대의 추세이니, 시대의 추세가 바뀌면 성현聖賢도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왕공王公을 만나지 않은 것이나, 공자孔子께서 계씨季氏의 하급관리 노릇을 한 것을, 이를 시대의 추세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가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그 덕행德行재능才能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법도法度 때문이지만, 담당자가 좋아하고 싫어함은 지금의 법도法度와도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에 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이 지금의 법도法度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담당자가 좋아하고 싫어함에 달려 있게 되었다.
지금의 담당자가 옛날의 담당자와 다르고, 뒷날의 담당자는 또 지금의 담당자와 다를 것이니, 담당자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어찌 일정한 기준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가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틀림없이 끝내 기필할 규범規範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아!
하는 말만을 살펴보고 사람을 등용하면 실수를 면할 수가 없는데, 등용하고서 또 이른바 그가 말한 것을 시행할 수도 없게 하니, 이는 실책失策 중의 실책失策인데, 더구나 또 이에 더하여 담당자가 좋아하고 싫어함이 일정한 기준이 없음에랴!
옛날의 는 끝내 볼 수가 없게 되었도다!
는 그만둘 수 있는 형세가 있는데, 그만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만두지 않는다면 가 있음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양숙명楊叔明의 형제는 아버지 때문에 모두 서울의 벼슬자리를 맡았으니, 그 형세가 내가 이른바 거처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모처자를 넉넉히 살게 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자신을 굽혀서 진사進士가 되고, 또 담당자에게 몸을 굽히니 이를 또 즐겁게 여기지 않는 듯하였다.
두 사람은 본시 늘 를 실천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고, 또한 나와는 붕우朋友로 사귀는 사이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깨닫지 못함이 있을까 두려워서 〈진설進說〉을 지어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역주
역주1 進說 : 進說의 ‘進’은 人才의 推薦과 登用을 의미한다. 本文은 당시 국가의 인재 배양과 선발에 잘못된 점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德行과 才能을 무시하고 考試에만 의거하고, 무엇을 잘하는가를 참조하지 않고 法度에만 의거하며, 有司의 好惡에 따라 선발기준이 달라지는 등, 옛 제도에 위배되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역주2 茂才 : 秀才이다. 後漢 光武帝 劉秀의 名을 諱하여 秀를 茂로 바꾼 것으로, 漢代 이후 人才를 천거하는 科擧 종목의 하나였다.
역주3 明法 : 漢代 이후 法律에 達通한 人才를 가려 뽑는 科擧의 한 가지로 常設했던 것은 아니다.
역주4 孟子曰……能正人者也 : 이 내용은 《孟子》 〈萬章 上〉에 보인다.
역주5 井天下之地 而授之氓 : 사방 1里의 농지를 井字 모양으로 100畝씩 9등분한 다음, 그 중앙의 한 구역을 公田이라 하고, 둘레의 여덟 구역을 私田이라 하여 여덟 농가에게 맡기고 여덟 집에서 공동으로 공전을 부쳐 그 수확을 나라에 바치게 하였다. 이에 대한 내용은 《孟子》 〈滕文公 上〉에 보인다.
역주6 授一廛而爲氓 : 《孟子》 〈滕文公 上〉에 “遠方에 사는 사람이 君主가 仁政을 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一廛을 받아서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遠方之人聞君行仁政 願受一廛而爲氓]”라고 보이는데, 廛은 古代의 平民 1가호가 井田 중에서 분배받은 宅地를 지칭한다.
역주7 自家達國 有塾有序有庠有學 : 《禮記》 〈學記〉에 “옛날의 교육기관으로는 家에는 塾이 있고 黨에는 庠이 있고 術에는 序가 있고 國都에는 學이 있었다.[古之敎者 家有塾 黨有庠 術有序 國有學]” 하였다.
《孟子》 〈滕文公 上〉에는 “庠‧序‧學‧校를 설치하여 백성들을 가르쳤으니, 庠은 봉양한다는 뜻이요, 校는 가르친다는 뜻이요, 序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뜻이다. 夏나라에서는 校라 하였고 殷나라에서는 序라 하였고 周나라에서는 庠이라 하였으며, 學(太學)은 三代가 이름을 함께하였으니, 이는 모두 人倫을 밝히는 것이다.[設爲庠序學校以敎之 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 皆所以明人倫也]”라고 보인다.
역주8 孟子不見王公 : 《孟子》 〈滕文公 下〉에 “公孫丑가 묻기를 ‘諸侯를 만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맹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옛적부터 신하가 아니면 뵙지 않는 법이다.’ 했다.” 하였고, 《孟子》 〈萬章 下〉에는 “萬章이 말하기를 ‘감히 묻겠습니다. 제후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맹자께서 대답하시기를 ‘都城에 있으면 市井之臣이라 하고 시골에 있으면 草莽之臣이라 하는데 모두 平民을 일컫는 것이다. 平民은 幣帛을 바치고 臣下가 되지 않았으면 감히 제후를 보려 하지 않는 것이 禮에 맞는 일이다.’ 했다.” 하였다.
역주9 孔子爲季氏吏 : 季氏吏는 《史記索隱》에 “一本에 委吏로 되어 있으니, 《孟子》와 부합한다.”라고 하였는데,《孟子》 〈萬章 下〉에 “孔子께서 일찍이 委吏(창고관리자)가 되시어 말씀하시기를 ‘會計를 마땅하게 할 뿐이다.’ 하셨고, 일찍이 乘田(축산담당자)이 되시어 ‘소와 양을 잘 키울 뿐이다.’ 하셨다.[孔子嘗爲委吏矣曰 會計當而已矣 嘗爲乘田矣曰 牛羊茁(촬)壯長而已矣]”라고 보인다.
역주10 : 저본에는 ‘在’로 되어 있는데, 《臨川集》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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