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공荊公短文字나 轉折有絶은 似태사공太史公處니라
태사공太史公敍帝王 則曰本紀라하고 태사공公侯열전傳國則曰世家라하고 태사공公卿特起則曰열전列傳이라하니 此其例也어늘
공자孔子旅人也니 棲棲衰季之世하야 無尺土之柄하니 此열전列之以열전傳宜矣어늘 曷爲世家哉아
豈以
중니仲尼躬
로 其敎化之盛
이 舃奕萬世
라 故爲之世家以抗之
아
處之世家
라도 중니仲尼之道
는 不從而大
요 置之
열전列傳이라도 중니仲尼之道
는 不從而小
어늘 而
니라
형공荊公의 글이 문장은 단문短文이지만 전절轉折에 뛰어남이 있음은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와 유사함이 있다.
태사공太史公이 《사기史記》를 저술할 때에 제왕帝王에 대하여 서술한 것을 본기本紀라 하고, 공후公侯가 나라를 세우고 대대로 승습承襲한 것에 대하여 서술한 것을 세가世家라 하고, 공경公卿 등 특출한 인물의 행적에 대하여 서술한 것을 열전列傳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역사歷史를 기술記述하는 체례體例이다.
그런데 공자孔子의 행적行蹟을 세가世家에 나열해놓았으니, 어찌하여 근거도 없이 올리고 내렸는가?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떠돌아다닌 사람으로, 쇠망해가는 말세에 분주하게 떠돌며, 한 척尺의 땅을 다스리는 권력도 가져본 일이 없었으니, 이 체례體例에 의거한다면 열전列傳에 넣어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세가世家에 넣었는가?
어쩌면 중니仲尼가 대성大聖의 자품資稟을 몸에 지니고 있어서, 그 교화敎化의 성盛함이 만세萬世가 지나도록 면면綿綿히 이어갈 것이므로, 그를 세가世家에 수록된 인물들과 대등하다고 여긴 것인가?
이는 또한 최상最上으로 높여 논論한 것이 아니로다!
대저 중니仲尼의 재능은 제왕帝王이 되는 것이 옳으니, 어찌 다만 공후公侯에 그칠 뿐이겠는가?
중니仲尼의 도道는 천하天下를 계승하는 것이 옳으니, 어찌 다만 공후公侯의 가家를 잇는 데 그칠 뿐이겠는가?
중니仲尼를 세가世家에 편입시켰다 해도 중니仲尼의 도道가 이 때문에 더 커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열전列傳에 두었다 해서 중니仲尼의 도道가 이 때문에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닌데, 사마천司馬遷이 이처럼 스스로 《사기史記》의 체례體例를 어지럽혔으니, 이른바 서로 모순되게 서술한 것이 많다는 평評을 듣게 되었던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