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之論장자莊子者不一이로되 而學儒者曰 장자莊子之書는 務詆공자孔子以信(伸)其邪說하니 要焚其書하고 廢其徒而後可니
學儒者之言이 如此나 而好장자莊子之道者는 曰 장자莊子之德은 不以萬物干其慮하야 而能信其道者也라
彼非不知仁義也나 以爲仁義小而不足行已요 彼非不知禮樂也나 以爲禮樂薄而不足化天下라
是知장자莊子非不達於仁義禮樂之意也니 彼以爲仁義禮樂者는 道之末也라 故薄之云爾라하니라
夫儒者之言이 善也나 然未嘗求장자莊子之意也요 好장자莊子之言者는 固知讀장자莊子之書也나 然亦未嘗求장자莊子之意也니라
昔先王之澤이 至장자莊子之時하야 竭矣라 天下之俗이 譎詐대부大作하고 質朴竝散하니 雖世之學士대부大夫라도 未有知貴己賤物之道者也라
於是에 棄絶乎禮義之緖하고 奪攘乎利害之際하야 趨利而不以爲辱하고 殞身而不以爲怨이라
장자莊子病之하야 思其說로 以矯天下之弊하야 而歸之於正也로되 其心過慮하야 以爲仁義禮樂은 皆不足以正之라
故同是非하고 齊彼我하며 一利害면 則以足乎心爲得하야 此其所以矯天下之弊者也하니라
旣以其說로 矯弊矣나 又懼來世之遂實吾說호되 而不見天地之純과 古人之大體也라 於是에 又傷其心하야 於卒篇以自解라
故其篇에 曰 시경詩以道志하고 서경書以道事하고 예기禮以道行하고 악경樂以道和하고 역경易以道陰陽하고 춘추春秋以道名分이라하니라
又曰 譬如耳目鼻口 皆有所明하야 不能相通하야 猶百家衆技도 皆有所長하야 時有所用이라하니
用是以明聖人之道 其全在彼而不在此하고 而亦自列其書於송견宋鈃신도愼到묵적墨翟노담老聃之徒하야 俱爲不該不徧一曲之士라하니 蓋欲明吾之言하야 有爲而作은 非大道之全云爾라
백이伯夷之淸과 유하혜柳下惠之화순和는 皆有矯於天유하혜下者也요 장자莊子用其心도 亦二聖人之徒矣니라
然而장자莊子之言을 不得不爲邪說比者는 蓋其矯之過矣라
장자莊子亦曰 묵자墨子之心則是也나 묵자墨子之行則非也라하니 推장자莊子之心하야 以求其行이면 則獨何異於묵자墨子哉아
後之讀장자莊子者 善其爲書之心하고 非其爲書之說이면 則可謂善讀矣요 此亦장자莊子之所願於後世之讀其書者也리라
非儒之所能及知也라하야 不知求其意하고 而以異於儒者로 爲貴하니 悲夫인저
세상 사람들이 장자莊子에 대하여 평론評論하는 것이 동일하지 않은데, 유학儒學을 배운 사람들은 말하기를 “장자莊子의 글은 공자孔子를 헐뜯는 데 힘쓰면서 그 사악邪惡한 학설學說을 폈으니, 요컨대 그 책을 불태우고 그 무리들을 없앤 이후에야 바로잡힐 것이다.
그 글의 옳고 그름은 따질 필요조차 없다.”라고 한다.
유학儒學을 배운 사람들의 말은 이와 같지만, 장자莊子의 도道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장자莊子의 덕德은 만물萬物 때문에 그의 사려思慮가 영향을 받지 않아서 그 도道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이 인의仁義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인의仁義는 하찮은 문제여서 천하天下를 바로잡기에 충분하지 못할 따름이라고 여기는 것이며, 저 사람이 예악禮樂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예악禮樂은 얄팍한 것이어서 천하를 교화敎化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도道를 잃은 후에 덕德이 나왔고, 덕德을 잃은 후에 인仁이 나왔고, 인仁을 잃은 후에 의義가 나왔고, 의義를 잃은 후에 예禮가 나왔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장자莊子가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의 의의意義에 대하여 통달通達하지 못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 다만 저 사람은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이라는 것이 도道의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여겨서, 그 때문에 얄팍하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라고 한다.
저 유자儒者들의 말이 좋기는 하나, 그러나 일찍이 장자莊子의 뜻을 고구考究해보지 않고서 하는 말이고, 장자莊子의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시 장자莊子의 글을 읽을 줄은 알았지만, 그러나 그들도 일찍이 장자의 뜻을 고구考究해본 일은 없었던 것이다.
옛 선왕先王의 은택恩澤이 장자莊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갈枯渴되었고, 천하天下의 습속習俗이 간사奸邪하게 남을 속이는 풍조가 만연하고, 질박 순후한 기풍은 모두 흩어져 없어지니, 비록 그 시대의 학사學士 대부大夫들이라 해도 자기自己의 본성本性은 귀貴한 것이고 외물外物은 천賤한 것이라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에 예의禮義의 전통이 끊어지고 이해利害의 사이에서 따져서 빼앗고 훔쳐, 재리財利를 추구하면서도 욕된 일로 여기지 않고, 이 때문에 생명을 잃으면서도 이를 분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런 풍조에 차츰 젖어들고 빠져버려서,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장자莊子가 이를 병으로 여겨 자기의 학설을 세워서, 이로써 천하의 폐단을 바로잡아 바른 도리道理로 되돌려놓을 생각을 하였으나, 마음의 사려思慮가 지나쳐서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은 모두 이를 바로잡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시是와 비非를 동일시同一視하고, 피彼와 아我를 동등하게 보며, 이利와 해害를 하나로 보게 되면, 이로써 마음에 얻는 것이 충분하게 되어 이렇게 하는 것이 천하天下의 폐단弊端을 바로잡는 근본이 된다고 여겼다.
이미 그의 학설로 폐단을 바로잡아 놓으려 하였으나 다시 후대 사람들이 자기 학설의 진실함을 믿으면서도 천지天地 이치理致의 정수精髓와 고인古人이 전해준 중요한 의리義理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 이에 또 이를 마음 아파하면서 《장자莊子》의 맨 마지막 편篇에 스스로 이를 풀이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편篇에 이르기를 “《시경詩經》으로 뜻[志]을 말하고, 《서경書經》으로 일의 업적[事]을 말하고, 《예기禮記》로 행실[行]을 말하고, 《악경樂經》으로 조화[和]를 말하고, 《역경易經》으로 음양陰陽을 말하고, 《춘추春秋》로 명분名分을 말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하여 살펴본다면, 장자莊子가 어찌 성인聖人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말하기를 “비유하건대 귀와 눈과 코와 입이 모두 각기 맡은 일이 있어서 서로 융통해 빌려 쓸 수 없는 것처럼, 백가百家들의 여러 학설學說도 모두 특별한 장점이 있어서 때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이로써 성인聖人의 도道를 밝히는 것이 전적으로 저쪽에 있고 이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또한 스스로 그의 글을 송견宋銒과 신도愼到와 묵적墨翟과 노담老聃의 무리들 대열에 넣어서, 이들이 모두 진리를 보편적으로 두루 갖추지는 못하고 한 부분에 치우친 선비들이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자신의 학설을 밝히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 지은 것은 대도大道의 전체全體를 포괄包括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런즉 장자莊子가 어찌 천하의 폐단을 바로잡을 뜻을 가지고 성인聖人의 도道를 보존하려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백이伯夷의 청렴함과 유하혜柳下惠의 화순和順함은 모두 천하를 바로잡음이 있었고, 장자莊子가 마음을 쓴 것도 이 두 성인聖人의 학통學統을 이은 무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자莊子의 말을 올바르지 못한 주장에 비의比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대체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중도中道를 잃어 지나친 점이 있어서이다.
대저 굽은 것을 바로잡는 것은 곧게 하고자 하는 것인데, 바로잡기를 과도하게 하면 반대편으로 굽어지는 데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장자莊子도 “묵자墨子의 뜻은 옳지만, 묵자墨子의 실천實踐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한 것이니, 장자莊子의 뜻을 추단推斷해보고 이로써 그의 실천實踐을 추구推究해본다면, 묵자墨子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뒷날에 《장자莊子》를 읽는 사람이 그가 책을 지은 뜻은 좋게 보면서 그 책에서 주장한 학설의 그릇된 점을 비판한다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또한 장자莊子가 후세後世에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독자들이 장자莊子의 주장을 근거로 우리 유자儒者들을 경멸하여 “장자莊子의 도道가 매우 크도다!
유가儒家들의 지식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로다.”라고 말하면서, 장자莊子의 뜻을 고구考究할 줄은 알지 못하고 유자儒者와 다른 점만을 귀貴하게 여기니, 이 또한 슬픈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