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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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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多淘洗하고 字字琳琅이라
初我見君 皆童而幘이라
意氣豪悍하야 崩山決澤이라
貌則侔年이나 心頹如翁이라
俛仰悲歡하야 超然一世러니
皓髮黧馘 分當先弊
孰知君子 赴我稱孤리오
發封涕洟하고 擧屋驚呼
行與世乖 惟君繾綣하고
弔禍問疾하야 書猶在眼이라
序銘於石하야 以報德音하니
設辭雖褊이나 義不愧心이라
君實愛我하니 祭其知歆호라


08. 주기도의 제문
문장文章이 씻은 듯이 말쑥하고, 글자마다 정교精巧옥석玉石과 같다.
처음 내가 을 만났을 때에는, 모두 어린이들로 두건頭巾을 쓰고 있었지.
뜻과 기상氣象호매豪邁하여, 을 무너뜨리고 강물을 터놓을 만 하였었지.
약관弱冠 시절에 만나보니, 부친父親을 잃고 곤궁困窮해져서 깊은 근심에 쌓였었지.
모습은 나이만큼 젊었으나, 마음은 늙은이처럼 쇠미하였었네.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며 비탄悲嘆에 잠겨서, 한 시대時代초연超然하게 지내었는데
머리는 백발이 되고 얼굴은 검게 초췌憔悴하여, 스스로 일찍 사망死亡할 것을 예측하였네.
누가 알았으랴, 그대의 아들이 고자孤子라 칭하면서 내게 부고訃告를 보낼 줄을!
부고訃告봉투 펼쳐보고 눈물 흘렸고, 온 집안이 놀라 울부짖었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배척당했을 때에, 오직 만이 마음 깊이 이해해 주었고,
내가 를 당하자 위로해주고 병들자 문병했던 편지가 아직도 내 눈앞에 그대로 있네.
비석碑石을 기술하여, 이로써 그대의 좋은 말씀에 보답하고자 하니,
제문에 말한 내용이 좁고 비루하지만, 의리義理는 마음을 부끄럽게 함이 없다네.
그대가 진실로 나를 아껴주었으니, 이 제사를 흠향歆饗할 것임을 알겠노라.


역주
역주1 祭周幾道文 : 周濤(字 幾道)는 王安石과 어려서부터의 친구로 靑壯年期까지 왕래와 서신이 끊이지 않았던 사이였고, 兩家는 姻戚間으로, 王安石의 姑母가 周濤 父親의 첫 夫人이었고, 周濤의 姑母는 王安石의 兄嫂가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周濤의 祖父와 叔父의 墓誌銘도 모두 王安石이 지었다. 周濤는 簽書梓州判官으로 있던 44歲時인 治平 3년(1066)에 卒하였으므로, 本 祭文도 그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弱冠相視 隱憂困窮 : 周濤의 父 周彦先이 42세에 卒하였고, 그때에 周濤가 20세 전후였음을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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