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聖人者 各持其所見하야 以自盡名天下나 而非以矯也라하니 而其行문장文이 自可觀이라
賢者之事如此면 則可謂備矣나 而猶未足以鑽聖人之堅과 仰聖人之高니라
以聖人觀之하면 猶太태산山之於岡陵이요 河海之於陂澤이니 然則聖人之事를 可知其大矣로다
德苟不足以合於天地하고 明苟不足以合於日月하고 吉凶苟不足以合於鬼神이면 則非所謂聖人矣니라
夫動言視聽이 苟有不合於禮者면 則不足以爲大賢人이어늘 而聖人之名은 非大賢人之所得擬也니 豈隘與不恭者 所得僭哉아
昔者에 이윤伊尹이 制其行於天下하야 曰 何事非君이며 何使非民이리오
而後世之士 多不能求이윤伊尹之心者하야 由是多進而寡退하고 苟得而害義하니 此其流風末俗之弊也니라
聖人
이 患其弊
하사 於是
에 백이伯夷出而矯之
하고 制其行於天下
하야 曰
라하시니
而後世之士 多不能求백이伯夷之心者하야 由是多退而寡進하고 過廉而復刻하니 此其流風末世之弊也니라
聖人
이 又患其弊
하사 於是
에 유하혜柳下惠出而矯之
하야 制其行於天
유하혜下하야 曰
이라하시니
而後世之士 多不能求柳下惠之心者하야 由是多汚而寡潔하고 惡異而尙同하니 此其流風末世之弊也니라
然後에 聖人之道大具하야 而無一偏之弊矣니 其所以大具而無弊者는 豈공자孔子一人之力哉리오
故백이伯夷不淸이면 不足以救이윤伊尹之弊요 유하혜柳下惠不화순和면 不足以救백이伯夷之弊니라
聖人之所以能大過人者는 蓋能以身으로 救弊於天下耳니
如皆欲爲공자孔子之行하야 而忘天下之弊면 則惡在其爲聖人哉아
是故로 使三人者로 當공자孔子之時면 則皆足以爲공자孔子也리라
然其所以爲之淸과 爲之任과 爲之和者는 時耳니 豈滯於此一端而已乎아
苟在於一端而已면 則不足以爲賢人也니 豈맹자孟子所謂聖人哉아
孟子之所謂隘與不恭은 君子不由者도 亦言其時爾니라
且하夏之道 豈不美哉리오마는 而은殷주인人以爲野하고 은殷之道 豈不美哉리오마는 而주인周人以爲鬼하니 所謂隘與不恭者 何以異於是乎아
當
맹자孟子之時
하야 하고 하니 蓋其俗
이 有似於
이윤伊尹之弊時也
라
是以맹자孟子論是三人者할새 必先백이伯夷하시니 亦所以矯天下之弊耳니라
세 성인聖人이 각기 자신의 소견을 지켜서 스스로 천하에 이름을 극진하게 떨쳤으나 천하의 폐단을 바로잡은 것은 아니라 하였으니, 써 내려간 문장文章이 자연히 볼 만하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이르고, 이런 선심善心을 몸에 간직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르고, 선善과 신信을 알차게 채운 것을 미美라 이르고, 알차게 채워서 빛남이 있는 것을 대大라 이르고, 이를 크게 행하여 천하 사람들을 화육化育시킴을 성聖이라 이른다.” 하셨으니, 성聖이라는 명칭은 도道와 덕德의 지극至極한 경지境地이다.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않는 것, 이것은 대현大賢(顔淵)의 일이다.
현자賢者의 일이 이와 같다면 제대로 갖추었다고 이를 만하지만, 성인聖人(孔子)의 굳건함을 깊이 천착穿鑿하고 성인聖人의 드높음을 우러러보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저 대현大賢의 일을 성인聖人의 경지에서 살펴본다면 태산泰山을 작은 산의 언덕과 비교하는 것과 같고, 하해河海를 작은 소택沼澤과 비교하는 것과 같을 뿐이니, 그런즉 성인聖人의 일이 얼마나 큰지를 알 만하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천지天地와 더불어 그 덕德이 합치되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그 밝음이 합치되며, 귀신鬼神과 더불어 그 길흉吉凶의 판단이 합치된다.” 하였으니, 이런 경지가 성인聖人의 일인 것이다.
덕德이 진실로 천지天地와 합치되기에 부족하고, 밝음이 진실로 일월日月과 합치되기에 부족하며, 길흉吉凶의 판단이 진실로 귀신鬼神과 합치되기에 부족하다면, 이른바 성인聖人이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백이伯夷‧이윤伊尹‧유하혜柳下惠 등을 평評하시면서 모두 “성인聖人이다.” 하시고, 또 “백이伯夷는 마음이 좁고 유하혜柳下惠는 공손恭遜하지 못했는데, 마음씀이 좁은 것과 공손하지 않은 것을 군자君子는 따르지 않는다.” 하셨다.
대저 움직이고, 말하고, 보고, 듣는 것이 진실로 예禮에 합치되지 않으면 대현인大賢人이 되기에도 부족한데, 성인聖人이라는 명칭은 대현인大賢人도 이와 비견할 수가 없으니, 어찌 마음이 좁은 사람과 공손하지 못한 사람이 참람僭濫되게 그 칭호를 얻을 수 있겠는가.
듣건대, 성인聖人의 언행言行은 구차苟且함이 없고, 장차 이로써 천하天下의 법도法度가 되게 하고자 해야 한다.
옛적에 이윤伊尹이 그 도덕道德과 행위行爲의 준칙準則을 천하天下에 제정制定하며 말하기를 “뜻에 맞지 않는 군주를 섬긴들 어떠며, 뜻에 맞지 않는 백성을 부린들 어떠랴.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에도 나아가 벼슬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도 나아가 벼슬하였노라.” 하였다.
그런데 후세의 사士들 가운데 이윤伊尹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던 이들이 많아서, 이 때문에 벼슬에 나가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많고 물러나려는 사람은 드물게 되었으며, 구차한 방법으로라도 벼슬을 얻고자 하여 의리義理를 해치는 일이 있게 되었으니, 이런 기풍이 전해 내려와 말세末世의 폐습弊習이 되었다.
성인聖人이 그 폐단을 근심하시어, 이에 백이伯夷를 드러내어 이를 바로잡아 도덕과 행위의 준칙을 천하에 제정하며 말하기를 “치세治世에는 나아가 벼슬하고, 난세亂世에는 물러나 있으며, 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바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는다.” 하였다.
그런데 후세의 사士들 가운데 백이伯夷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던 이들이 많아서, 이 때문에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아지고, 벼슬에 진출하려는 사람은 드물게 되었으며, 지나치게 청렴淸廉을 강조하고 또한 각박刻薄하게 따지게 되었으며, 이런 기풍이 유전流傳되어 말세적末世的 폐습弊習이 되었다.
성인聖人이 다시 그 폐단을 근심하시어, 이에 유하혜柳下惠를 드러내어 이를 바로잡아 도덕과 행위의 준칙을 천하에 제정하며 말하기를 “혼암昏暗한 군주를 섬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낮은 벼슬도 거절하지 않았으며,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어도 원망하지 않고, 곤액困厄을 겪게 되어도 번민煩悶하지 않았다.” 하였다.
그런데 후세의 사士들 가운데 유하혜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던 사람이 많아서, 이 때문에 부정不正한 관리가 많아지고 청렴淸廉한 관리가 드물게 되었고,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미워하고 같은 사람은 숭상하게 되었으니, 이런 기풍이 유전流傳되어 말세末世의 폐습弊習이 되었다.
이 세 사람은 자기가 처處한 시대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폐단을 근거로 하여 이를 바로잡은 것이고, 천하天下의 중정中正한 도道를 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런 방책을 오래 시행하게 되면 반드시 폐단이 생겼던 것이다.
공자孔子 때에 이르자 세 성인聖人이 행했던 도道의 폐단이 각각 천하에 지극한 해를 끼치게 되었으므로,
공자께서 그들의 행실의 장점長點을 집대성集大成하여 천하 사람들이 행할 행위의 준칙을 제정하고 말씀하시기를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나고, 오래 할 만하면 오래 하고,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물러나 은거할 만하면 물러나 은거한다.” 하셨다.
그런 이후에야 성인聖人의 도道가 크게 갖추어져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이 없어졌으니, 크게 갖추어져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이 없어진 것이 어찌 공자孔子 한 분의 힘으로 된 것이겠는가.
네 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원인과 결과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백이伯夷가 청렴하지 않았다면 이윤伊尹이 남긴 폐단을 구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유하혜柳下惠가 화순和順하지 않았다면 백이伯夷가 남긴 폐단을 구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인聖人이 보통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자신의 몸을 던져서 천하의 폐단을 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만약 모두가 공자孔子께서 행하신 행실을 행하려 하면서 천하의 폐단을 구제할 뜻을 망각한다면, 성인聖人이 된 까닭이 어디에 남아 있게 되겠는가.
이 때문에 세 분으로 하여금 공자孔子님이 사시던 시대에 살게 하였다면, 모두 충분히 공자孔子께서 행한 것과 같이 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분들이 청렴하게 행동하고, 대임을 맡고, 화순하였던 것은 시대상황에 적합하게 한 것일 뿐이지, 어찌 이러한 한쪽에 편중되게 고착되어서일 뿐이었겠는가.
구차하게 한쪽에 치우쳐서 고착固着된 것일 뿐이라면 현인賢人이 되기에도 부족할 것이니, 어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신 성인聖人이 될 수 있었겠는가.
맹자께서 말씀하신 편협한 것과 공손히 삼가지 않은 것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 바라고 하신 것도, 그 시대 상황에 맞게 조처한 것을 말한 것일 따름이다.
또한 하夏나라의 도道가 어찌 아름답지 않았겠는가마는 은인殷人들은 이를 조야粗野하다 비판하였고, 은殷나라의 도道가 어찌 아름답지 않았겠는가마는 주인周人들은 이를 귀신鬼神 섬김을 우선으로 하고 예禮를 뒤로 미루었다고 비판하였으니, 이른바 편협했다는 것과 공손히 삼가지 않았다는 것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었겠는가.
맹자孟子가 사시던 때를 당하여, 맹자께 일척一尺을 굽혀서 팔척八尺을 곧게 펴듯이 작은 잘못을 감수하면서 큰 것을 바로잡으라고 권하는 자도 있었고, 정도正道가 아닌 임시방편臨時方便을 써서라도 천하를 구제하라고 하는 자도 있었으니, 대체로 그 습속이 이윤伊尹이 남긴 폐단이 있었던 시대와 유사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맹자孟子께서 이 세 성인聖人을 논論하면서 반드시 백이伯夷를 맨 앞에 언급한 것이니, 이 또한 천하에 만연蔓延한 폐단弊端을 바로잡고자 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의 언행言行이 어찌 구차한 데 그칠 뿐이겠는가.
장차 이로써 천하天下가 행할 행위行爲의 준칙準則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