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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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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論出處 亦有根據
頓首逢原足下하노라
比得足下於客食中하야 窘窘相造謝 不能取一日之閑하야 以與足下極所欲語者어늘 而舟卽東矣
間閱足下之詩라가 竊有疑焉하니 不敢不以告로다
足下詩 하니 夫君子之於學也 固有志於天下矣
然先吾身而後吾人이니 吾身治矣 而人之治不治 係吾得志與否耳
身猶屬於命이어니 天下之治 其可以不屬於命乎
孔子之說 如此어늘 而或以爲君子之學 汲汲以憂世者 惑也
惑於此하야 而進退之行 不得於孔子者有之矣이니라
吾獨以聖人之心 未始有憂니라
有難予者曰 然則聖人 忘天下矣오하야늘 曰 是不忘天下也라하니라
初六曰 拔茅茹 以其彙 貞吉이라하니
象曰 拔茅貞吉 志在君也라하니 在君者 不忘天下者也 不可榮以祿者 知命也니라
吾雖不忘天下 而命不可必合이니 憂之인들 其能合乎
易曰 遯世無悶
是也
然仕於其時하야 而不得其志하니 不得以不憂也어니와
仕不在於天下國家 與夫不仕者 未始有憂 之類是也니라
借有憂者 不能奪聖人不憂之說이니
라하니 豈如彼所謂憂天下者 僕僕自枉而幸售其道哉리오
今窮於下하야 而曰 我憂天下라하고 至於慟哭者 無乃近救鄕隣之事乎
孔子所以極其說於知命不憂者 欲人知治亂有命하야 而進不可以苟 則先王之道得伸也니라
世有能諭知命之說이로되 而不能重進退者有矣 由知及之오도 仁不能守之也니라
始得足下文하고 特愛足下之才耳러니 旣而見足下衣刓屨缺호되 坐而語 未嘗及己之窮하고 退而詢足下하니 終歲食不葷호되 不以絲忽妄售於人하니
世之自立如足下者有幾
吾以謂 故以某之所學으로 報足下하노라


02. 왕봉원王逢原에게 보낸 편지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에 대하여 논한 부분에 또한 근거가 있다.
봉원逢原 족하足下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 편지를 올립니다.
근자에 족하足下께서 여사旅舍기거寄居하시는 중에 만나 급박하게 서로 인사를 올리기는 하였으나, 하루 동안의 시간도 낼 수가 없어서 족하와 나누고자 하는 말을 다 하지 못하였는데, 제가 탄 배는 이미 동쪽으로 떠나버렸소.
근간에 족하의 를 열람해보고, 내심內心에 의문이 생겼으므로 감히 알려주지 않을 수가 없소.
족하의 에 ‘창생蒼生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됨을 탄식한다.’는 말이 있는데, 대저 군자君子가 학문을 함에 있어서 본시 목표가 천하天下제도濟度에 있는 것이오.
그리고 먼저 내 몸을 수양한 이후에 우리 백성을 다스릴 수 있으므로, 내 몸이 수양되었다 해도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을 수도 있고 다스릴 수 없을 수도 있는 것은, 내가 뜻을 실현할 기회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오.
내 몸도 오히려 에 매어있는 것이니, 천하를 다스림이 에 달려 있지 않을 수 있겠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군자君子라 할 수가 없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가 장차 행해지게 되는 것도 이고, 가 장차 행해지지 않게 되는 것도 이다.” 하셨소.
공자孔子의 주장이 이와 같은데, 혹 군자君子가 닦는 학문이 세상의 근심에 급급汲汲해한다면 이는 미혹된 것이라고 생각하오.
이런 일에 미혹되어 벼슬에 나가고 물러나는 행위가 공자孔子의 주장과 합치되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공자께서는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었다.[孔不可暖席]”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오.
나는 홀로 성인聖人의 마음에는 애당초 근심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오.
나의 이런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이, “그렇다면 성인聖人은 천하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고 지내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이렇게 하는 것이 천하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은 것이오.” 하였소.
주역周易비괘否卦상사象辭에 이르기를, “군자君子폐색閉塞시기時期에는 절검節儉하는 덕행德行으로 위난危難을 피하고, 영화로운 지위에 올라 祿을 받는 것을 옳지 않게 여긴다.” 하였고,
초육初六 효사爻辭에, “띠풀의 뿌리가 서로 당기며 지하에 어려 있듯이, 나아가지 않고 정도正道만을 지키기를 동류同類들과 함께 한다면 바르고 하게 된다.” 하였으며,
상사象辭에, “나아가지 않고 정도正道고수固守함이 바르고 한 것은, 뜻이 군주君主에게 있어서이다.” 하였으니, 뜻이 군주에게 있다는 것은 천하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은 것이며, 영화로운 지위에 올라 후록을 받는 것을 불가하게 여기는 것은 을 아는 것이오.
내가 비록 천하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고 있다 해도 이 반드시 그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니, 이를 근심한다고 해서 부합하게 되겠소?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속세를 떠나 은둔하여 지내면서 번민함이 없다.”
천도天道의 운행을 즐기고 성명性命자연自然에 맡기므로 근심함이 없다.” 한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오.
시경詩經 삼백편三百篇 가운데 〈백주柏舟〉, 〈북문北門〉 같은 에는 근심함이 있소.
그러나 그 당시에는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근심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을 뿐이오.
벼슬을 함이 천하 국가를 위함에 있지 않거나 아예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애당초 근심할 일이 없었으니, 〈군자양양君子陽陽〉, 〈고반考槃〉 등이 이런 들이오.
설령 근심함이 있는 들도 성인聖人은 근심함이 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는 될 수가 없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윤伊尹천하天下의 뭇 서민庶民들 가운데 그 은택恩澤을 입지 못한 사람을 보게 되면, 마치 자기가 떠밀어서 도랑 가운데 빠지게 한 것처럼 여겼다.” 하였으니, 천하天下에 대하여 근심하였다고 말할 만하오.
그러나 탕왕湯王이윤伊尹을 초빙하였을 때에 오히려 안한安閒 무욕無慾한 태도로 말하기를, “나는 농토 사이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요순堯舜를 즐기고 있노라.” 하였으니, 어찌 저 이른바 천하를 근심하는 자라 하고, 자신은 분주하게 그릇된 일을 행하면서 그 를 실현하기를 희구하는 자와 같을 수 있겠소?
또한 안회顔回가 같았음을 주장하면서, “이웃 마을에 싸우는 사람이 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갓끈을 늘어뜨리고 가서 구해 주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다.” 하셨으니,
이제 아랫자리에서 궁곤하게 지내면서, “나는 천하의 일을 근심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통곡을 하는 자가 있다면, 이웃 마을의 일에 참견하려는 사람과 유사하지 않겠소?
공자께서 천명을 알아서 근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극진하게 하신 소이所以가 사람들로 하여금 천하天下치란治亂이 있으므로 벼슬에 나아감을 구차하게 추구해서는 안 됨을 알게 하고자 해서였으니, 그렇게 한다면 선왕先王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오.
세상에는 지명知命에 대한 이론은 명료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진퇴進退를 신중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지혜智慧는 이에 미치면서도 으로 이를 지킬 수 없는 사람도 있소.
처음 족하足下의 편지를 받고는 특별히 족하의 재능을 아꼈을 뿐이었는데, 그런 후에 족하가 해진 옷을 입고 찢어진 신을 신고 있으면서도 앉아서 대화를 할 때에 일찍이 자신의 궁곤窮困에 대하여 언급한 일이 없음을 보았고, 물러나서 족하를 살펴보니 일 년 내내 소박한 음식을 먹되 털끝만큼도 남에게 함부로 잘 보이려 아첨하거나 자랑하지 않았소.
세상에 스스로 굳건한 뜻을 세운 분으로 족하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나는 그 때문에, 지혜로운 경지에 도달하였고 인덕仁德은 또한 이 신조信條를 지킬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여, 가 배워 알고 있는 바를 족하足下께 알려드리는 것이오.


역주
역주1 與王逢原書 : 이 편지는 《臨川集》에 수록된 王令(1032~1059)에게 보낸 7편의 편지 중 첫 번째의 것으로, 嘉佑 2년(1057) 5월 왕안석이 知常州가 되어 王令이 머물고 있던 潤州를 지나면서 보낸 것이다. 왕령의 詩에, ‘蒼生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됨을 탄식한다.[歎蒼生垂淚]’라 한 것을 비판하며 君子는 자신을 수양하여 그 뜻을 蒼生에게 펼치되 그것의 실현 여부는 命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歎息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역주2 有歎蒼生淚垂之說 : 王令의 〈贈王平甫〉 詩의 末聯에, “丈夫의 나가고 물러남을 어디에 비교하랴, 蒼生의 곤고를 아파하며 그들 위해 눈물 흘리네.[丈夫出處誠何較 却痛蒼生爲淚垂]”라 하였다. 王平甫는 왕안석의 동생 王安國을 이른다.
역주3 孔子曰……無以爲君子 : 《論語》 〈堯曰〉에 보인다.
역주4 又曰……命也 : 《論語》 〈憲問〉에 보인다.
역주5 有孔不暇暖席之說 : 班固의 〈答賓戱〉에 ‘孔席不暖’이라 하였다.
역주6 否之象曰……不可榮以祿 : 否之象은 《周易》 否卦의 徵兆, 象徵을 말하며, 이 두 句는 否卦에 대한 孔穎達의 疏에, “君子는 이렇게 否塞한 때에는 節儉으로 德을 삼아서 危難을 피해야 하고, 그 몸을 영화롭게 하여 幸位에 머물러서는 안된다.[君子於此否塞之時 以節儉爲德 辟其危難 不可榮華其身 以居幸位]”라 한 말을 축약한 것이다.
역주7 易曰……樂天知命 : 遯世無悶은 《周易》 乾卦 卦辭에, 樂天知命은 《周易》 〈繫辭 上〉에 있는 말이다.
역주8 詩三百 如栢舟北門之類 : 詩三百은 《詩經》을 지칭한다. 《詩經》에 수록된 詩가 305首이므로 그 成數만을 들어서 三百이라 칭한 것이다. 〈柏舟〉와 〈北門〉은 《詩經》 〈國風 邶風〉에 수록된 篇名이다. 〈柏舟〉는 여인이 가족의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 없음을 슬퍼한 詩이고, 〈北門〉은 忠臣이 그 뜻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음을 노래한 시이다.
역주9 君子陽陽考槃 : 〈君子陽陽〉은 《詩經》 〈國風 王風〉의 篇名이고, 〈考槃〉은 《詩經》 〈國風 衛風〉의 篇名이다.
역주10 孟子曰……若己推而納之溝中 : 《孟子》 〈萬章 上〉에 “생각하기를 천하의 백성들이 匹夫와 匹婦라도 堯舜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를 밀어 도랑 가운데로 들어가게 한 것같이 여겼다.[思天下之民 匹夫匹婦 有不被堯舜之澤者 若己推而內之溝中]”라고 보인다.
역주11 然湯聘之……以樂堯舜之道 : 이 내용은 《孟子》 〈萬章 上〉에, “湯王이 사람을 보내어 예물을 바치며 초빙하자, 안한한 모습으로 말하기를, ‘내가 어찌 탕왕의 예물 때문에 움직이겠는가. 내가 어찌 농촌에 은둔하려 해서였겠는가. 이렇게 하여 堯舜의 道를 즐겼을 뿐이다.’ 하였다.[湯使人以幣聘之 囂囂然曰 我何以湯之聘幣爲哉 我豈若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哉]”라고 한 말을 縮約한 것이다.
역주12 又論禹……則惑也 : 이 내용은 《孟子》 〈離婁 下〉에, “맹자께서 말씀하기를, ‘禹와 稷과 顔回는 같은 道를 지녔던 분들이다. 禹는 천하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빠지게 한 것처럼 생각했고, 稷은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처럼 생각하였다. 이 때문이 이와 같이 급하게 그들을 구제하려 하였으니, 禹와 稷과 顔子가 입장이 서로 바뀌었으면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이제 같은 방안에 있는 사람이 싸운다면 그를 구하고자 비록 머리를 풀고 갓끈을 매지 않고 구해도 좋지만, 자기가 사는 고장 사람이 싸운다고 머리를 풀고 갓끈을 매지 않고 찾아가 말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이런 경우에는 문을 닫고 집안에 있으면서 못본체 해도 좋은 것이다.’ 하였다.[禹稷顔回同道 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飢者 由己飢之也 是以如是其急也 禹稷顔子 易地則皆然 今有同室之人鬪者 救之 雖被髮纓冠而救之 可也 鄕隣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 可也]”라고 한 말을 축약한 것이다.
역주13 知及之 仁又能守之 : 이 내용은 《論語》 〈衛靈公〉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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