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文之格이 不入西漢處가 正在此요 而宋人之所自以爲得도 亦在此라
天子諸侯를 謂之君이요 卿大夫를 謂之子라 古之爲此名也는 所以命天下之有德이라
有天子諸侯卿大夫之位하고 而無其德이로되 可以謂之君子면 蓋稱其位也요 有天子諸侯卿大夫之德하고 而無其位로되 可以謂之君子면 蓋稱其德也니라
位는 在外也니 遇而有之면 則人以其名予之하야 而以貌事之하고 德은 在我也니 求而有之면 則人以其實予之하야 而心服之하나니라
夫人服之以貌而不以心하고 與之以名而不以實이로되 能以其位終身而無謫者는 蓋亦幸而已矣라
故古之人은 以名爲羞하고 以實爲慊하며 不務服人之貌하고 而思有以服人之心하니라
故雖窮困屈辱이라도 樂之而弗去하니 非以夫窮困屈辱으로 爲人之樂者在是也요 以夫困窮屈辱이 不足以槪吾心爲可樂也已니라
河南裴君이 主簿於洛陽할새 治齋於其官하고 而命之曰君子라하니
由前則失己요 由後則失人이니 吾知裴君은 不爲是也니 亦曰 勉於德而已라하노라
蓋所以牓於其前은 朝夕出入觀焉이니 思古之人所以爲君子하야 而務及之也라
仁足以盡性하고 智足以窮理하며 而又通乎命이라야 此古之人所以爲君子也니라
然則裴君之爲君子也를 孰禦焉이리오 故余嘉其志하야 而樂爲道之하노라
송宋나라 문장의 풍격風格이 서한西漢 시대의 풍격에 들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문장에 있고, 송대宋代의 문장가文章家가 스스로 터득한 경지境地도 또한 이 문장에 들어 있다.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를 ‘군君’이라 이르고, 경卿과 대부大夫를 ‘자子’라 이르는데, 옛날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천하天下에 덕德이 있는 사람에게 하늘이 그 일을 맡도록 명命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에 덕德이 있는 사람을 통칭通稱하여 ‘군자君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천자天子나 제후諸侯나 경卿 대부大夫의 지위에 있으면서 그에 걸맞는 덕德이 없는데도 이를 군자君子라고 말한다면 이는 대체로 그 지위地位만을 말하는 것이고, 천자天子나 제후諸侯나 경卿 대부大夫가 될 만한 덕德을 지녔으면서 그에 걸맞는 지위를 얻지 못하였는데도 이를 군자君子라고 말한다면 이는 대체로 그 덕德을 말하는 것이다.
지위는 내 밖에 있는 것이므로 이를 요행히 만나면 차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 지위의 명칭에 맞게 대하고 외면적外面的으로 섬기게 되며, 덕德은 내 안에 있는 것이므로 이를 추구하면 간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대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복종하게 된다.
대체로 사람들이 외면으로만 복종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복종하지 않으며 직명職名에 맞게 대할 뿐이요 진심으로 받들지 않는데도 그 지위를 종신토록 누리면서 쫓겨나지 않는다면, 이는 아마도 요행일 뿐이리라.
그 때문에 옛사람들은 덕德이 없으면서 지위地位를 얻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마음속에 덕德을 채우는 것을 만족하게 여겼으며, 사람들을 외면적으로 복종하게 하는데 힘쓰지 않고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할 수 있게 되도록 유념하였다.
이와 같이 할 뿐만이 아니라 내 몸 밖에 있는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힘을 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비록 곤궁困窮해지고 굴욕屈辱을 겪어도 덕德을 닦는 즐거움에서 떠나지를 않았으니, 곤궁困窮과 굴욕屈辱 자체에 사람이 즐거워할 것이 있어서가 아니요, 곤궁과 굴욕이 내 마음이 즐거워할 만한 일에 제약을 가할 수가 없다고 여겨서였던 것이다.
하남河南의 배군裵君이 낙양洛陽의 주부主簿로 있을 때에, 그 관부官府에 건물을 짓고 명명하기를, ‘군자재君子齋’라 하였다.
배군裵君이 어찌 내 몸 밖에 있는 것, 즉 지위를 연모하여 이를 갖고자 해서였겠는가.
어쩌면 소인들만 많은 세상에서 군자다운 행실을 몸소 닦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여겨서였는가.
전자前者 때문이라면 자기의 내심에 간직할 것, 즉 덕을 잃은 것이요, 후자後者 때문이라면 심복心服할 사람들을 잃은 것이 될 것이니, 나는 배군裵君이 이런 일 때문에 재齋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님을 아나니, 또한 “덕德을 닦기에 힘쓰고자 할 따름이었다.” 할 것이니라.
대체로 그 건물 앞에 편액扁額을 달아 놓는 소이所以는, 아침저녁으로 출입하며 이를 보고 옛사람들이 군자君子답게 된 연유를 생각하며, 그런 경지境地에 도달하고자 노력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인자仁慈하게 되는 것만으로는 군자가 되기에 부족하고, 지혜智慧롭게 되는 것만으로도 군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인仁은 성性을 극진히 하기에 충분하고 지智는 이치를 궁구하기에 충분하게 되었다 해도, 이에 더하여 또한 천명天命에 통通하게 되어야 하나니, 이것이 옛사람이 군자君子가 된 경지境地이니라.
“덕德을 행하는 것은 가벼운 털을 드는 것처럼 쉬운데도 이를 행하는 사람이 드물고, 하찮은 터럭에도 비교하여 헤아릴 만한 차서가 있는데 이에 유념하지 않는도다.”라고!
이로 보아 하고자 하지 않아서 얻지 못할 뿐인 것이니라.
그렇다면 배군裵君이 군자君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누군가가 드러내야 할 것이기에, 그 때문에 내가 그의 뜻을 가상하게 여겨서 기쁘게 그를 위해 이 말을 기록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