褒禪山은 亦謂之華山하니 唐浮圖慧褒가 始舍於其址라가 而卒葬之라 以故로 其後名之曰褒禪이라하니라
距其院東五里에 所謂華山洞者는 以其乃華山之陽으로 名之也라
距洞百餘步에 有碑仆道하니 其文漫滅이나 獨其爲文猶可識은 曰花山이니
其下平曠하고 有泉側出하야 而記遊者甚衆하니 所謂前洞也라
由山以上五六里에 有穴窈然하야 入之甚寒이어늘 問其深하니 則其好遊者도 不能窮也니 謂之後洞이라
余與四人으로 擁火以入하니 入之愈深하야 其進愈難이나 而其見愈奇러라
有怠而欲出者하야 曰 不出이면 火且盡이라하야늘 遂與之俱出하니라
蓋予所至 比好遊者에 尙不能十一이나 然視其左右하고 來而記之者已少니
方是時하야 予之力이 尙足以入이요 火尙足以明也일새 旣其出하야 則或咎其欲出者하고 而予亦悔其隨之하야 而不得極夫遊之樂也호라
於是에 予有歎焉호라 古人之觀於天地山川草木蟲魚鳥獸에 往往有得하니 以其求思之深이면 而無不在也라
夫夷以近이면 則遊者衆하고 險以遠이면 則至者少하니 而世之奇偉瑰怪非常之觀은 常在於險遠하야 而人之所罕至焉이라
有志矣요 不隨以止也나 然力不足者는 亦不能至也라
有志與力하고 而又不隨以怠하야 至於幽暗昏惑이라도 而無物以相之면 亦不能至也라
盡吾志也로되 而不能至者면 可以無悔矣니 其孰能譏之乎아
予於仆碑에 又以悲夫古書之不存하니 後世之謬其傳而莫能名者를 何可勝道也哉아
四人者는 廬陵蕭君圭君玉과 長樂王回深父와 余弟安國平父와 安上純父라
절경絶景을 완상玩賞하는 빼어난 흥취興趣가 눈에 가득 들어오는 듯하여, 끊임없는 여운餘韻을 느끼게 된다.
포선산褒禪山은 화산華山이라고도 부르는데, 당唐나라 때의 스님 혜포慧褒가 그곳에 불사佛舍를 짓고 머물다가 사망하여 그곳에 장례를 지냈으므로, 그 때문에 그 이후에 포선산褒禪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 혜공선원慧空禪院이라 일컫는 곳은 혜포慧褒의 무덤을 지키는 사원寺院이다.
혜공선원慧空禪院에서 동쪽으로 5리里쯤에 이른바 화산동華山洞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곧 화산華山의 남쪽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화산동華山洞에서 100여餘 보步쯤 되는 곳에 비석碑石이 길가에 쓰러져 있으나, 문자文字는 마멸磨滅되어 모호模糊하고 오직 문장文章 가운데 식별할 수 있는 것은 ‘화산花山’이라 한 부분뿐이다.
지금 ‘화華’字를 발음할 때에 ‘화실華實(꽃과 열매)’이라 할 때와 같이 발음하는데, 아마도 음音이 같아서 잘못 전해진 듯하다.
그 아래는 평평하게 트여있고, 그 곁에서 샘이 솟아서 이곳을 유람하고 기記를 지은 사람이 매우 많으니, 이곳이 이른바 전동前洞이다.
산山을 따라서 5~6리里 정도 올라가면 동굴洞窟이 있어 깊고 어두우며 그곳으로 들어가면 오싹한 한기寒氣를 느끼게 되고, 그 굴의 깊이를 물어보면 이곳을 즐겨 유람한 사람들도 끝까지 밝힐 수가 없으며, 이곳을 후동後洞이라 이른다.
내가 네 사람과 함께 횃불을 들고 들어가 보았는데,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앞으로 나가기가 점점 어려웠고, 보이는 것들이 더욱 기이하였다.
그런데 싫증을 느끼고 나오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하기를, “지금 나가지 않으면 횃불이 꺼질 듯하다.” 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나오고 말았다.
아마도 내가 이르렀던 곳이 이곳 유람을 즐기는 사람에 비하면 오히려 10분의 1도 되지 않을 듯한데, 그러나 좌우를 살펴보고 나와서 이를 기록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대체로 더욱 깊은 곳일수록 그곳까지 이르렀던 사람은 더욱 적었다.
이때를 당하여 나의 기력氣力은 아직 더 들어가기에 충분하였고, 횃불도 이를 밝히기에 아직 여유가 있었으므로, 이미 나온 후에는 어떤 사람은 먼저 나가려 했던 사람을 원망하였고, 나 또한 그를 따라 나와서 그 유람의 즐거움을 끝까지 누릴 수 없었음을 후회하였다.
이에 나는 탄식歎息을 하였으니, 옛사람들은 천지天地와 산천山川과 초목草木과 충어蟲魚와 조수鳥獸 등을 관찰하고 왕왕 터득한 것이 있었으며, 이를 근거로 하여 사고思考를 심오深奧하게 하면 도를 간직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대체로 평탄하고 가까운 곳은 유람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험하고 먼 곳은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지만, 세상에 기이奇異하게 빼어나거나 특이하게 진귀珍貴하거나 보통보다 뛰어난 경관景觀은 언제나 험난하고 먼 곳에 있으므로, 사람들 가운데 이곳까지 이르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意志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를 수가 없다.
의지意志가 있고 또한 싫증 내어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따라서 중단하지 않는다 해도, 기력氣力이 모자란 사람은 이를 수가 없다.
의지와 기력이 있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따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여 어둡고 분별하기 어려운 곳까지 이르렀다 해도,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또한 끝까지 이를 수가 없다.
그러나 기력氣力이 이르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들을까봐 중도에 중단했다가 이를 후회하기도 한다.
내가 의도한 바대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를 수가 없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그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리오.
이 점이 동굴을 유람하고 내가 터득한 것이다.
나는 엎어져 있는 비석碑石에 대하여 옛 글이 남아있지 않음을 슬퍼하나니, 후세後世에 잘못 전해져서 이름도 온전하게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야 어찌 이루 다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학자學者들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취取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소이所以이다.
함께 갔던 네 사람은 여릉廬陵 소규蘇圭 군옥君玉과 장락長樂 왕회王回 심보深父와 내 아우 안국安國 평보平父와 안상安上 순보純父 등이었다.
지화至和 원년元年 7월月 모일某日에 임천臨川 왕모王某가 기記를 지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