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許州장사현주부長社縣主簿葛허군君의 諱양사良嗣요 자字흥조興祖라
其先처주處州之여수인麗水人이러니 而흥조興祖之父徙居명주明州之은현鄞하고 흥조興祖葬其父윤주潤州之단도현丹徒라 故今又爲단도인丹徒人矣라
曾大父諱우遇니 不仕하고 大父諱우旴니 贈尙書都官郞中이요 父諱원源이니 以尙書度支郞中終인종仁宗時하다
탁지군度支君三子 當
之間
에 以
문장文有聲
하야 赫然
진사進士中
하니 하야 閱之終篇
하시고 而屢歎
갈씨葛氏之多子也
러니
旣而오 三子者 伯仲皆蚤死하고 獨其季在하니 卽흥조興祖라
흥조興祖博知多能하야 數擧진사進士하야 角出其上호되
而刻勵修潔하고 篤於親友하야 慨然欲有所爲하야 以效於世者也라
年四十餘에 始以진사進士出仕州縣하야 餘十年而卒窮於無所遇以死하니
然흥조興祖於仕未嘗苟하고 聞人疾苦에 欲去之如在己러라 其臨視雖細故로 人不以屬耳目者라도 必皆致其心하니
論者多怪之曰 흥조興祖且老矣어늘 弊於州縣하야 而服勤如此라하다
夫大仕之則奮하고 小仕之則怠忽以不治는 非知德者也라하니 흥조興祖聞之하고 以余之言爲然하다
其葬에 以호씨胡氏祔하야 在단도丹徒之장악향長樂鄕현양촌顯揚村하니 卽其年十一月某甲子也라
흥조興祖三男子니 번蘩온蘊은 皆有文學하니 번蘩은 허주許州임영현주부臨潁임영현주부縣主簿요 온蘊은 등주鄧州양현주부穰縣主簿요 빈蘋은 尙幼也라
갈흥조葛興祖가 벼슬살이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근본하여 순서대로 서술한 문장에 정이 많이 들어 있다.
허주許州 장사현주부長社縣主簿 허군許君은 휘諱가 양사良嗣이고 자字는 흥조興祖이다.
그의 선조先祖는 처주處州의 여수인麗水人이었는데, 흥조興祖의 부친父親이 명주明州의 은현鄞縣으로 옮겼고, 흥조興祖가 그의 선친先親을 윤주潤州의 단도현丹徒縣에 안장安葬하였으므로 지금은 다시 단도인丹徒人이 되었다.
증조曾祖 휘諱 우遇는 벼슬한 일이 없고, 조부祖父 휘諱 우旴는 상서도관낭중尙書都官郎中에 추증追贈되었으며, 부친父親 휘諱 원源은 상서탁지낭중尙書度支郎中으로 인종仁宗 연간年間에 사망하였다.
탁지군度支君의 세 아들이 천성天聖‧경우景祐 연간年間에 문장文章으로 명성이 나서 진사進士들 가운데 뛰어났으니, 나의 선친先親께서 일찍이 그들이 지어 올린 글을 받아서 마지막 편까지 열람해보시고, 갈씨葛氏 집안에 훌륭한 자손이 많음에 여러 차례 감탄하셨다.
그 후 세 아들 가운데 맏이와 둘째는 모두 일찍 사망하였고 그 막내만이 남아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흥조興祖이다.
흥조興祖는 박식하고 재능이 많았으며, 여러 차례 진사進士들과 겨루어서 뛰어난 성적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맑게 수양하며, 친우들과 돈독하게 지내면서, 개연慨然히 업적을 성취하여 세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던 사람이다.
나이 40여 세가 되어 비로소 진사進士로 주현州縣의 벼슬을 얻어 나아갔다가, 10여 년간 끝내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궁곤窮困하게 지내다가 사망하였다.
수명壽命은 억지로 연장할 수가 없고, 재능은 스스로 드러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 오래되었도다.
그러나 흥조興祖는 일찍이 벼슬을 구차하게 추구한 일이 없고, 남의 질고疾苦에 대하여 듣게 되면 자신이 겪는 질고疾苦처럼 여기며 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자 하였고, 그가 처리하는 일 가운데 비록 하찮은 일이어서 다른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반드시 모두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처리하였다.
이렇게 되니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기며 “흥조興祖는 늙어가면서 주현州縣에서 곤궁하게 지내면서도 지성至誠으로 근무하기를 이와 같이 하고 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내가 흥조興祖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대저 큰 벼슬을 하게 되면 분발하여 노력하고, 낮은 벼슬을 하게 되면 게으르고 소홀하게 처리하여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 사람은 덕德을 아는 자가 아니다.” 하니, 흥조興祖가 듣고서 나의 말을 옳다고 여겼다.
흥조興祖의 초취初娶는 호씨胡氏이고, 재취再娶는 정씨鄭氏이다.
졸卒한 해에 53세였으니, 치평治平 2년(1065) 3월 신사일辛巳日이었다.
그를 하장下葬할 때에 호씨胡氏를 합장하여 단도丹徒의 장락향長樂鄕 현양촌顯揚村에 안장安葬하였으니, 바로 그해 11월 모갑자일某甲子日이었다.
흥조興祖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번蘩과 온蘊은 모두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으니, 번蘩은 허주許州 임영현주부臨穎縣主簿이고, 온蘊은 등주鄧州 양현주부穰縣主簿이며, 빈蘋은 아직 어리다.
벼슬이 순탄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원통해하고 괴이하게 여겼네.
하늘이 장수長壽를 내려주지 않았으니, 이는 누가 도모하고 누가 주재한 것인가.
덕德을 베풂에는 크게 유감遺憾이 없었으니, 다시 장차 무엇을 더 추구할 게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