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誠有常心하야 以操聖人之說而力行之면 則道雖不明乎天下나 必明於己요 道雖不行於天下나 必行於妻子라
內有以明於己하고 外有以行於妻공자子면 則其言行이 必不孤立於天유하혜下矣니 此공자孔子맹자孟子백이伯夷유하혜柳下惠양웅揚雄之徒 所以有功於世也니라
以予之昏弱不肖는 固亦士之有罪者로되 而得友焉하니 余友자字봉원逢原이요 諱영令이요 姓왕씨王氏니 광릉인廣陵人也라
始予愛其文章하야 而得其所以言하고 中予愛其節行하야 而得其所以行호라
卒予得其所以言이나 浩浩乎其將沿而不窮也하고 得其所以行이나 超超乎其將追而不至也라
於是에 慨然歎하고 以爲可以任世之重하야 而有功於天下者 將在於此라하야 余將友之而不得也러니
봉원逢原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諱봉인奉諲之曾孫이요 대리평사大理評事諱공珙之孫이요 而정주鄭州관성현주부管城縣主簿諱세륜世倫之子라
五歲而孤
하야 二十八而卒
하니 卒之九十三日
의 가우嘉祐四年
丙申
에 葬于
상주常州무진현武進縣남향南鄕설촌薛村之原
하다
夫人오씨吳氏니 亦有賢行하고 於是方娠也하니 未知其子之男女라
글 전체에 묘주墓主의 사적事蹟을 기술한 것은 없고, 다만 허경虛景으로 자신의 감개感慨만을 드러냈을 뿐이다.
어찌 단지 교화敎化만 이르지 않을 뿐이겠는가.
어찌 단지 교화敎化만 이르지 않을 뿐이겠는가.
대저 상산常産이 없으면서도 상심常心을 지닌 사람이 옛날의 이른바 선비였다.
선비가 진실로 상심常心을 지니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지키면서 힘써 이를 실천한다면, 도道가 비록 천하에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는 밝혀질 것이고, 도道가 비록 천하에 행해지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처자妻子에게는 행해질 것이다.
안으로 도道가 자기 자신에게 밝혀지고, 밖으로 도道가 처자妻子에게 행해진다면, 그의 언행言行이 반드시 천하에서 고립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것이 공자孔子‧맹자孟子‧백이伯夷‧유하혜柳下惠‧양웅揚雄 같은 분들이 세상에 공功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이다.
나는 어둡고 나약하고 못나서, 본시 또한 선비 가운데 죄가 있는 사람인데도, 훌륭한 친구를 얻게 되었으니, 내 친구의 자字는 봉원逢原이고, 휘諱는 영令이며, 성姓은 왕씨王氏이니, 광릉인廣陵人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의 문장文章을 사랑하여 그가 말하는 소이所以를 이해하게 되었고, 중간에는 내가 그의 절행節行을 사랑하여 그가 행하는 소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끝내는 내가 그의 말하는 소이를 이해했다 하나, 넓디넓어서 장차 이를 준행遵行함을 끝까지 궁구窮究할 수가 없었고, 내가 그의 행하는 소이를 이해했다 하나 높고도 높아서 좇으려 해도 이를 수가 없었다.
이에 개연慨然히 탄복하고, 이로써 세상의 중임重任을 맡겨서 천하에 공로가 있게 할 만한 사람이어서, 장차 이런 지위에 있게 되면 내가 벗으로 삼고자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나를 버리고 서거逝去하였으니, 슬픈 일이로다.
봉원逢原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휘諱 봉인奉諲의 증손曾孫이고, 대리평사大理評事 휘諱 공珙의 손자孫子이며, 정주鄭州 관성현주부管城縣主簿 휘諱 세륜世倫의 아들이다.
5세에 고아孤兒가 되어 28세에 졸卒하니, 졸卒한 지 93일 되는 가우嘉祐 4년(1059) 9월 병신일丙申日에 상주常州 무진현武進縣 남향南鄕 설촌薛村의 언덕에 안장安葬하였다.
부인夫人 오씨吳氏 또한 어진 행실이 있고, 지금 임신姙娠 중인데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알 수가 없다.
하늘이 살펴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 그대는 이와 같이 후厚한 덕德을 지녔었는가?
후厚히 준 덕德은 배양培養하였고, 인색히 준 수명壽命을 따랐으며,
즐겁게 배양培養하여 중단하지 않으면서,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않았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