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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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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通篇無事蹟하고 獨以虛景相感慨
嗚呼
道之不明邪
豈特敎之不至也리오
士亦有罪焉이니라
嗚呼
道之不行邪
豈特化之不至也리오
士亦有罪焉이니라
蓋無常産而有常心者 古之所謂士也
士誠有常心하야 以操聖人之說而力行之 則道雖不明乎天下 必明於己 道雖不行於天下 必行於妻子
內有以明於己하고 外有以行於妻공자 則其言行 必不孤立於天유하혜공자孔子맹자孟子백이伯夷유하혜柳下惠양웅揚雄之徒 所以有功於世也니라
嗚呼
以予之昏弱不肖 固亦士之有罪者로되 而得友焉하니 余友봉원逢原이요이요왕씨王氏 광릉인廣陵人
始予愛其文章하야 而得其所以言하고 中予愛其節行하야 而得其所以行호라
卒予得其所以言이나 浩浩乎其將沿而不窮也하고 得其所以行이나 超超乎其將追而不至也
於是 慨然歎하고 以爲可以任世之重하야 而有功於天下者 將在於此라하야 余將友之而不得也러니
嗚呼
今棄予而死矣하니 悲夫로다
봉원逢原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봉인奉諲之曾孫이요 대리평사大理評事之孫이요정주鄭州관성현주부管城縣主簿세륜世倫之子
五歲而孤하야 二十八而卒하니 卒之九十三日 가우嘉祐四年丙申 葬于상주常州무진현武進縣남향南鄕설촌薛村之原하다
夫人오씨吳氏 亦有賢行하고 於是方娠也하니 未知其子之男女
銘曰
壽胡不多
天實爾嗇이라
曰天不相이어늘 胡厚爾德
厚也培之하고 嗇也推之하며
樂以不罷하야 不怨以疑로다
嗚呼天民이여
將在于玆로다


10. 왕봉원의 묘지명
글 전체에 묘주墓主사적事蹟을 기술한 것은 없고, 다만 허경虛景으로 자신의 감개感慨만을 드러냈을 뿐이다.
아아!
가 밝혀지지 않으려는가.
어찌 단지 교화敎化만 이르지 않을 뿐이겠는가.
선비들에게도 죄가 있도다.
아아!
해지지 않으려는가.
어찌 단지 교화敎化만 이르지 않을 뿐이겠는가.
선비들에게도 죄가 있도다.
대저 상산常産이 없으면서도 상심常心을 지닌 사람이 옛날의 이른바 선비였다.
선비가 진실로 상심常心을 지니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지키면서 힘써 이를 실천한다면, 가 비록 천하에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는 밝혀질 것이고, 가 비록 천하에 행해지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처자妻子에게는 행해질 것이다.
안으로 가 자기 자신에게 밝혀지고, 밖으로 처자妻子에게 행해진다면, 그의 언행言行이 반드시 천하에서 고립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것이 공자孔子맹자孟子백이伯夷유하혜柳下惠양웅揚雄 같은 분들이 세상에 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이다.
아아!
나는 어둡고 나약하고 못나서, 본시 또한 선비 가운데 죄가 있는 사람인데도, 훌륭한 친구를 얻게 되었으니, 내 친구의 봉원逢原이고, 이며, 왕씨王氏이니, 광릉인廣陵人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의 문장文章을 사랑하여 그가 말하는 소이所以를 이해하게 되었고, 중간에는 내가 그의 절행節行을 사랑하여 그가 행하는 소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끝내는 내가 그의 말하는 소이를 이해했다 하나, 넓디넓어서 장차 이를 준행遵行함을 끝까지 궁구窮究할 수가 없었고, 내가 그의 행하는 소이를 이해했다 하나 높고도 높아서 좇으려 해도 이를 수가 없었다.
이에 개연慨然히 탄복하고, 이로써 세상의 중임重任을 맡겨서 천하에 공로가 있게 할 만한 사람이어서, 장차 이런 지위에 있게 되면 내가 벗으로 삼고자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었다.
아아!
그런데 이제 나를 버리고 서거逝去하였으니, 슬픈 일이로다.
봉원逢原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봉인奉諲증손曾孫이고, 대리평사大理評事 손자孫子이며, 정주鄭州 관성현주부管城縣主簿 세륜世倫의 아들이다.
5세에 고아孤兒가 되어 28세에 하니, 한 지 93일 되는 가우嘉祐 4년(1059) 9월 병신일丙申日상주常州 무진현武進縣 남향南鄕 설촌薛村의 언덕에 안장安葬하였다.
부인夫人 오씨吳氏 또한 어진 행실이 있고, 지금 임신姙娠 중인데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알 수가 없다.
이에 다음과 같이 을 지었다.
수명壽命이 어찌 이다지도 짧았는가?
하늘이 실로 그대에게 인색하였도다.
하늘이 살펴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 그대는 이와 같이 을 지녔었는가?
히 준 배양培養하였고, 인색히 준 수명壽命을 따랐으며,
즐겁게 배양培養하여 중단하지 않으면서,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않았구려.
아아! 하늘이 낸 현인賢人이여.
장차 이곳에 머물러 있겠지.


역주
역주1 王逢原墓誌銘 : 本文에 墓主를 嘉祐 4년(1059) 9월 丙申日에 安葬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本 墓誌銘도 그 즈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九月 : 저본에는 없는데, 《臨川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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