載주공周公之言하야 曰 吾所執贄而見者 十人이요 還贄而相見者 三十人이요
夫聖人爲政於天下也
에 初若
於天下
나 而天下卒以無所不治者
는 其法誠修也
라
故
하야 而盡其道
하야 以爲養賢敎士之法
하니 是士之賢
이 雖未及用
이나 而固無不見尊養者矣
니
誠若
순경荀卿之言
이면 則
亂世之事也
라 豈足爲
주공周公乎
아
且聖世之
는 各有其業
하야 講道習藝
에 患日之不足
이어늘 豈暇遊公卿之門哉
아
彼遊公卿之門
하야 求公卿之禮者
는 皆戰國之奸民
이니 而
니라
순경荀卿이 生於亂世
하야 不能考論先王之法
하야 著之天下
하고 而惑於亂世之俗
하야 遂以爲聖世之
도 亦若是而已
라하니 亦已過也
로다
且주공周公之所禮者 大賢與인댄 則주공周公이 豈唯執贄見之而已리오
固當薦之天子
하야 而共天位也
요 如其不賢
하야 不足與共
인댄 則周公
이 如何其與之爲禮也
리오
이 聽
정鄭國之政
할새 以其乘輿
로 濟人於
진수溱유수洧한대 맹자孟子曰 惠而不知爲政
이라하시니
蓋君子之爲政에 立善法於天下면 則天下治요 立善法於一國이면 則一國治어니와
如其不能立法하고 而欲人人悅之면 則日亦不足矣리라
使주공周公이 知爲政이면 則宜立學校之法於天下矣니 不知立學校하고 而徒能勞身하야 以待天下之士면 則不唯力有所不足이라 而勢亦有所不得也리라
曰 仰祿之士
는 猶可驕
나 正身之士
는 不可驕也
라하니
夫君子之不驕는 雖闇室이라도 不敢自慢이니 豈爲其人之仰祿而可以驕乎아
所謂君子者는 貴其能不易乎世也라 순경荀卿이 生於亂世하야 而遂以亂世之事로 量聖人이로다
後世之士 尊순경荀卿以爲大儒하고 而繼맹자孟子者라하나 吾不信矣로라
논지論旨가 정확하고 사리를 명확하게 분변分辨하였으며, 문의文意의 전개展開가 지극히 원만圓滿하다.
순경荀卿이 이치理致에 어긋난 것을 좋아하였음이여!
주공周公의 말씀이라 하면서 수록해놓기를 “나에게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기에 만나본 사람이 10인이고, 예물을 돌려보내고 대등한 예를 갖추어 만나본 사람이 30인이며,
내가 예를 갖추고서 뵌 분이 백여 인이고, 말하려는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다 마치도록 요청한 사람이 천여 인이었다.” 하였는데,
이것이 진실로 주공께서 하셨던 일이라면, 주공이 어찌 그다지도 자질구레하였단 말인가!
대저 성인聖人이 천하天下를 다스리게 되면, 처음에는 마치 천하를 위해 하는 일이 없는 듯한데도 천하가 마침내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그 법法이 진실로 완미完美하게 시행되어서이다.
그러므로 삼대三代의 제도는 교육기관으로 당黨에는 상庠을 설립하고, 수遂에는 서序를 세우고, 국도國都에는 학學을 세워서, 이로써 그 도道를 극진히 하여 현자賢者를 양성하고 사士를 가르치는 법法을 정하니, 이렇게 양성된 사士들의 현명함이 비록 벼슬에 임용하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진실로 높이 우대받고 봉양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주공周公께서 선비들을 대우하는 방법이었다.
주공周公이 정말로 순경荀卿이 한 말처럼 하셨다면 이는 춘신군春申君이나 맹상군孟嘗君이 난세亂世에 한 일처럼 행한 것이니, 어찌 족히 주공周公다운 행위였다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성인聖人이 다스리는 시대의 사士는 각기 그들이 맡은 일이 있어서 도道를 강구講究하고 기예技藝를 익히는 데도 시간이 부족한 것을 근심하는데, 어찌 공경公卿의 집 문을 드나들 겨를이 있었겠는가.
공경의 집 문을 드나들면서 공경으로부터 예우받기를 추구한 사람들은 모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간사奸邪한 백성들로서, 모수毛遂나 후영侯嬴 같은 무리들이었다.
순경荀卿은 난세亂世에 살았으므로 선왕先王이 세운 법도法度를 고찰하고 논증論證하여 이를 천하에 드러낼 수가 없었고, 난세亂世의 말속末俗에 현혹되어 드디어 성인聖人이 다스리던 시대의 사士도 이와 같았을 뿐이라고 여긴 것이니, 이 또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또한 주공周公께서 예禮를 갖추어 대한 사람들이 크게 어진 사람들이었다면, 주공께서 어찌 예물을 받고 그들을 만나보는 데 그쳤겠는가.
진실로 마땅히 그들을 천자께 천거하여 하늘이 내려준 관직官職을 함께 맡았을 것이고, 만약 그들이 현명하지 못하여 관직을 함께 맡기에 부족하였다면, 주공께서 어찌 그들과 예를 갖추어 대하였겠는가.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政事를 주관할 때에, 겨울에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자기가 타는 수레로 사람들을 건네준 일이 있었는데, 맹자孟子께서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 마음은 가졌으나 정치를 제대로 할 줄은 모르는 행위이다.” 하셨다.
대체로 군자君子가 정사政事를 주재하게 되어 천하에 좋은 법法을 세우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일국一國에 선善한 법法을 세우면 일국一國이 잘 다스려지게 된다.
만약 좋은 법을 세워놓지 못하고서, 사람마다 그를 좋아하게 하려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가령 주공周公께서 정사政事의 요체要諦를 아는 분이었다면 마땅히 어진 사람을 양성하는 학교의 제도를 천하에 세웠을 것이고, 학교를 세울 줄을 모르면서 다만 천하의 선비들을 접대하는 데 몸을 수고롭게 하였다면 다만 능력이 부족할 뿐만이 아니라 형편 또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였다면 주공도 어리석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순경荀卿이 또 말하기를 “벼슬을 추구하는 선비는 교만驕慢한 경우가 있으나, 몸을 바르게 닦은 선비는 교만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였다.
대저 군자君子가 교만하지 않음은, 비록 어두운 방 속에 혼자 있을 때에도 감히 스스로 방자한 행위를 하지 않는데, 어찌 그런 사람이 벼슬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교만한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군자君子는 세상 풍조風潮에 따라서 자신의 주견主見을 바꾸지 않을 수 있음을 귀하게 여기는데, 순경荀卿은 난세亂世에 생生을 영위하면서 드디어 난세의 일을 기준으로 하여 성인聖人을 헤아려본 것이로다.
그러나 후세의 선비들 가운데 순경荀卿을 대유大儒라고 존경尊敬하며 맹자孟子를 계승한 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이를 믿지 못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