嘗謂文者
는 禮敎治政云爾
이니 其書諸策而傳之人
호되 大體
는 歸然而已
라하고 而曰
어늘
徒謂辭之不可以已也라하면 非聖人作文之本意也니이다
自孔子之死久
에 作
하니 望聖人於百千年中
에 卓然也
요 獨
名與韓竝
이나 子厚非韓比也
라
韓子嘗語人以文矣
하야 曰
이라하고 子厚亦曰 云云
이라하니 疑二子者
는 徒語人以其辭耳
요 作文之本意
는 不如是其已也
니이다
孟子之云爾는 非直施於文而已나 然亦可託以爲作文之本意니이다
且所謂文者는 務爲有補於世而已矣요 所謂辭者는 猶器之有刻鏤繪畫也니이다
誠使巧且華라도 不必適用이요 誠使適用이라도 亦不必巧且華니
要之컨대 以適用爲本이요 以刻鏤繪畫爲之容而已니이다
不適用이면 非所以爲器也니 不爲之容이 其亦若是乎잇가
始欲書之策而傳之人하고 其試於事者는 則有待矣하니 其爲是非邪잇가 未能自定也로소이다
執事는 正人也라 不阿其所好者일새 書雜文十篇하야 獻左右하노니 願賜之敎하사 使之是非有定焉하소서
일찍이 이르기를, “문장文章이란 예의교화禮儀敎化와 정사政事를 다스리는 것이니, 그것이 전적典籍에 기록되어 있어서 사람들에게 전해 오는데, 그 큰 근원은 여기에 귀착될 뿐이다.”라고 하였으며, “말을 문장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멀리까지 전해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문장文章은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그것이 성인聖人이 문장을 짓는 본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자孔子께서 사망하시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한자韓子(韓愈)가 일어나서 수백 수천 년 쇠미했던 가운데 성인을 본받고자 하심이 특별히 뛰어났고, 유독 유자후柳子厚만이 한자韓子와 이름이 나란하였으나, 자후子厚는 한자韓子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장文章이 끝내 한자韓子와 짝이 되어 나란히 전해졌으니, 그 또한 호걸豪傑로서 외경畏敬할 만한 사람입니다.
한자韓子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문장에 대하여 말하기를, “……云云” 하였고, 자후子厚 또한 말하기를, “……云云” 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두 분이 사람들에게 다만 그 문장의 꾸밈만을 말한 것일 뿐이요, 문장을 짓는 본의는 이와 같음에 그칠 뿐이 아닐 것입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군자君子는 도道의 본원本源을 스스로 터득하여 본성 가운데 저절로 존재하게 하려 하는데, 이런 경지를 얻게 되면 삶이 편안해지고, 삶이 편안해지면 추구하여 도달한 경지가 심오해지며, 추구하여 도달한 경지가 심오해지면 좌左에서 추구하든 우右에서 추구하든 모두 도道의 본원本源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하였는데,
맹자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문장만을 곧바로 지적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여기에 문장을 짓는 본래의 의의를 붙여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른바 문장文章이라는 것은 세상에 도움이 있게 하는데 힘쓸 뿐인 것이고, 이른바 문장의 수식修飾이라는 것은 그릇에 조각과 그림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공교롭고 화려하더라도 반드시 그릇을 사용하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고, 진실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공교롭고 화려하게 꾸며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사용하기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고, 조각과 그림을 가하는 것은 표면의 장식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적합하게 쓸 수 없는 것은 그릇의 본질本質에 위배되는 것인데, 표면 장식을 하지 않는 것도 이처럼 그릇이 되는 본질에 위배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표면의 장식 또한 아니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를 쓰임에 적합하게 하는 것보다 앞세우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某는 문장文章을 배우는 오랜 기간 동안 자주 이 주장을 근거로 하여 자신을 수양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주장을 서책에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전하려 하였고, 실제로 일을 추진하면서 시험해 보려는 것은 아직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집사執事께서는 정도正道를 걷는 분이셔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바에 사사로이 치우치지 않으실 분이므로, 잡문雜文 10편篇을 기록하여 올리오니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옳고 그름을 판정判定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당형천唐荊川(唐順之)이 말하기를, “반산半山(왕안석의 호號)의 문장은 그 장점이 굳세면서도 잘 짜여진데 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