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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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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余觀하니 皆天下之奇材也로되 一爲왕숙문叔文所誘하야 遂陷於不義하니 至今士大夫欲爲君子者 皆羞道而喜攻之
然此八人者 旣困矣 無所用於世어늘 往往能自强以求列於後世하야 而其名卒不廢焉하니라
而所謂欲爲君子者 吾多見其初而已 要其終하면 能無與世俯仰하야 以自別於小人者 少耳
復何議彼哉리오


14. 〈유종원전〉을 읽고
내가 팔사마八司馬를 관찰해보니, 이들은 모두 천하의 뛰어난 인재人材들이었지만, 한결같이 왕숙문王叔文의 꾐에 넘어가서, 마침내 불의不義에 빠졌으니, 현재에 이르도록 사대부士大夫로서 군자君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처신했던 방도를 부끄럽게 여기고 그들을 즐겨 공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여덟 사람은 이미 궁곤窮困에 처한 뒤에 세상에 쓰이는 바가 없었지만, 왕왕往往 스스로 굳건하게 노력해서 후세에 그 이름이 나열되기를 구하여, 그 이름이 끝내 버려져서 없어지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군자君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그 시작을 잘하는 사람만 많이 보았을 뿐이요, 그 끝마침을 살펴보면 세속世俗에 영합하지 않고, 스스로 소인小人과 구별되게 행동한 사람은 적었다.
그러니 어찌 다시 저들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讀柳宗元傳 : 本文은 八司馬들이 王叔文의 革新政治에 同調하였던 것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몰락한 후에도 自强不息하였던 奮鬪精神은 肯定하고, 이를 통하여 시작은 잘하지만 잘 끝마치지 못하는 사람을 그들과 비교하여 批判한 글이다.
柳宗元(773~819)은 唐代의 정치가요 문학가로서, 특히 古文의 暢達에 韓愈와 雙璧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역주2 八司馬 : 唐 顺宗이 즉위하자 王叔文과 王伾 등을 발탁하여 개혁을 시행하였으나 永貞 元年(805) 개혁이 실패하면서 王叔文의 당에 참여했던 柳宗元‧韓泰‧韓曅‧劉禹錫‧陳諫‧凌準‧程异‧韋執誼 등은 모두 먼 지방으로 좌천되었는데, 韦执谊는 崖州司马로, 韩泰는 虔州司马로, 陈谏은 台州司马로, 柳宗元은 永州司马로, 刘禹锡은 朗州司马로, 韩晔은 饶州司马로, 凌準은 连州司马로, 程异는 郴州司马로 나가니, 당시 이들을 八司马라고 칭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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