數日前에 辱示樂安公詩石本과 及足下所撰復鑑湖記하니 啓封緩讀에 心目開滌이라 詞簡而精하고 義深而明하니
不候按圖
로되 而盡越絶之形勝
이요 不候入國
이로되 而熟賢牧之愛民
하니 非夫誠發乎文
하고 하야 이 表裏相濟者
면 其孰能至於此哉
리오
因環列書室하고 且欣且慶하니 非有厚也요 公義之然也라
某嘗患近世之文이 辭弗顧於理하고 理弗顧於事하야 以襞積故實爲有學하고 以雕繪語句爲精新하니 譬之擷奇花之英하야 積而玩之면 雖光華馨采하야 鮮縟可愛라도 求其根柢濟用이면 則蔑如也라
某幸觀樂安足下之所著
하니 譬由
之音
과 之器
가 有節奏焉
하고 有法度焉
하야 雖庸耳
라도 必知雅正之可貴
하고 溫潤之可寶也
로다
昔昌黎爲唐儒宗이로되 得子壻李漢하고 然後其文益振하며 其道益大라
今樂安公
의 懿文茂行
은 어늘 復得足下以宏識淸議
하야 相須光潤
이라
苟力而不已하야 使後之議者로 必曰 樂安公은 聖宋之儒宗也니 猶唐之昌黎나 而勳業過之라하고
又曰 邵公은 樂安公之壻也니 猶昌黎之李漢이나 而器略過之라하면
則韓李蒋邵之名이 各齊驅竝驟하야 與此金石之刻으로 不朽矣리니
郡庠拘率
에 하야 未獲親交談議
일새 聊因手書
하야 以道欽謝之意
하고 且賀樂安公之得人也
하노라
수일數日 전前에 《악안공시樂安公詩》의 석인각본石印刻本 및 족하足下께서 편찬하신 《복감호기復鑑湖記》를 보내주셨는데, 봉투를 열고 천천히 읽어보니 마음과 눈이 시원하게 열리는 듯하였으며, 문장은 간략하면서도 정밀하고 뜻은 심오하면서도 명쾌하였습니다.
지도로 그린 것을 살피지 않았는데도 월越 땅 변방의 중요한 지세地勢와 우미優美한 풍경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 성城 안에 들어가 살피지 않았는데도 현명賢明한 목사牧使가 백성들을 사랑함을 숙지熟知하게 되었으니, 정성精誠이 문장으로 발현되고 문장文章이 도道와 관통貫通하고 있으며,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사상思想과 표현表現의 겉과 속이 서로 보완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서실書室에 빙 둘러 나열해놓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경하慶賀하고 있으니, 후한 은혜 때문이 아니라 공의상公義上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모某는 일찍이 근심하기를, 근세近世의 문장文章이 문사文辭는 논리論理를 고려하지 않고 논리는 실제적인 사실事實을 고려하지 않아 문장을 복잡複雜하고 중복重複되게 구성하고 전고典故의 출처出處나 따지는 것을 학식學識이 풍부한 것으로 여기고, 어구語句를 아로새기고 교묘하게 꾸며놓은 것을 정교精巧하고 청신淸新하다고 여기니, 이는 비유譬喩하건대 기이한 꽃나무의 꽃을 꺾어다가 쌓아놓고 완상玩賞하게 되면, 비록 빛나고 화려하게 향기를 풍겨서 어여쁜 모습이 사랑할 만하겠지만, 그 근저를 탐구하고 활용하는 데는 쓸모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某는 다행하게도 악안공樂安公과 족하足下께서 저술著述하신 것을 열람할 수 있었으니, 이는 비유譬喩하건대 생황笙簧과 석경石磬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절주節奏에 합당함이 있고, 규圭와 장璋 등 미옥美玉으로 만든 그릇이 법도法度에 맞음이 있어서, 비록 어리석은 사람의 귀이지만 반드시 아정雅正한 음악만이 존귀한 것이고 온윤한 옥玉그릇만이 보배가 됨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중니仲尼께서 말씀하시기를, “덕德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덕을 말로 드러냄이 있다.” 하셨고, “덕德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동지同志가 있게 된다.” 하셨으니, 이를 이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옛적 창려昌黎(韓愈)는 당대唐代 유학儒學의 종사宗師였지만, 사위인 이한李漢이 그의 문집을 편찬해 광포廣布하자, 그런 연후에야 그의 문장은 더욱 떨쳐지고 그의 도道는 더욱 광대하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악안공樂安公의 우미優美한 문장文章과 성덕盛德에 맞는 행실行實은 조정의 고관들을 초월하게 되었으며, 이에 다시 족하足下의 광범한 학식과 분명한 정론正論을 얻게 되어, 서로 어울려서 휘황한 광채를 발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이와 같은 노력을 중단하지 않으신다면, 후세의 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악안공樂安公은 성聖스러운 송宋나라 유학儒學의 종사宗師로서 당唐나라의 창려昌黎와 같지만 그 공적功績은 그보다도 뛰어나다.”라고 평評하게 할 것이고,
또 평評하기를, “소공邵公은 악안공樂安公의 서랑壻郞으로서 창려昌黎의 서랑壻郞 이한李漢과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그 재능과 방략은 그보다도 뛰어났다.” 할 것이니,
한韓, 이李, 장蔣(蔣堂), 소邵(邵必)의 명성이 각기 나란하여 함께 널리 퍼지고, 이 금석金石에 새겨놓은 글과 함께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某가 한편으로는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경하慶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 상서庠序의 교육에 얽매어 있는 견문이 좁은 사람으로서, 경성京城에서 활용할 족하足下의 큰 계책은 접하게 되었으나, 직접 사귀면서 담소하고 의론할 기회를 얻지 못하여, 손수 써서 올린 편지를 통하여 존경과 감사의 뜻을 말씀드리고 아울러 악안공樂安公께서 훌륭한 인물을 얻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