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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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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遒勁이라
君之才 搢紳多聞之
君眡金陵酒政하니 人皆惜君不試於劇하고 而淪於卑冗이어늘
旣而又得調高郵關吏하니 人復惜君不試於劇하고 而淪於卑冗이어늘 君言如初하야 色滋蔓喜러니라
於戲
今之公卿大夫 據徼乘機하고 鑽隙抵巇하야 僅不盈志 則戚戚以悲어늘 乃皦然反之하니 此蒙所以高君也니라
抑有猜焉하니 古之柄國家者 有戢景藏采하고 恬處下列이면 拔而致之朝하야 使相謨謀하니 今豈不若古邪
奚遂君請而弗拔也


08. 저작랑著作郞고우高郵로 벼슬하러 가는 것을 전송餞送하는 송서送序
문장이 꿋꿋하다.
이군李君의 재능은 관리와 선비들에게 널리 소문이 났다.
처음 금릉金陵주정酒政을 담당하게 되니, 사람들은 모두 에게 요직要職을 맡겨서 그 능력을 시험해 보지 않고 낮은 한직閒職에 매몰되어 지내게 한 것을 애석하게 여겼으나,
은 오히려 이를 편안하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공자孔子께서도 과거에 가축을 사육하거나 창고를 관리하는 낮은 벼슬을 하신 일이 있는데, 회계의 출납을 정확하게 할 뿐이었고, 소와 양을 번식하고 살찌게 하는데 진력하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였다.
그 후에 또 고우高郵관시關市를 담당하는 관리로 나가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에게 요직을 맡겨서 능력을 시험해 보지 않고 하찮은 한직에 매몰되어 지내게 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으나, 은 처음에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하면서 낯빛은 더욱 기쁜 기색을 띠었다.
아아!
지금의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은 소도小道를 근거로 하여 책략을 꾸미고 자질구레한 책임이나 메꾸면서,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근심하며 이를 슬퍼하는데, 은 곧 청백淸白하게 지내면서 그들과는 반대로 행동을 하니, 이 점이 어리석은 내가 을 높이 존경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옛날에 국가의 권력을 잡았던 사람들은, 빛나는 재능을 감추고 숨어 살면서 낮은 지위에 머물음을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발탁拔擢하여 조정朝廷에 불러들여서 계책計策의 수립을 돕도록 하였는데, 지금 국권國權을 잡은 사람들은 어찌하여 옛날에 국권國權을 잡았던 사람들과 같게 하지 않는 것인가.
어찌하여 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어서 발탁하지 않는단 말인가.


역주
역주1 送李著作之官高郵序 : 李 著作은 어떤 인물인지 未詳이며, 著作은 著作郞이라는 官職의 略稱이다. 이 글은 李 著作郞이 高郵의 關市와 關門 出入을 管理하는 小吏로 나가게 되었을 때에 위로하기 위하여 지어 준 送序이다.
역주2 子嘗爲乘田委吏矣……牛羊蕃而已矣 : 《孟子》 〈萬章 下〉에, “공자께서 과거에 창고 관리의 벼슬을 담당하신 일이 있는데, 말씀하시기를, ‘회계의 출납을 합당하게 할 뿐이다.’ 하셨고, 가축을 사육하는 벼슬을 담당하신 일이 있는데 말씀하시기를, ‘소와 양을 잘 번식시키고 살찌게 할 뿐이다.’ 하셨다.[孔子嘗爲委吏矣 曰 會計當而已矣 嘗爲乘田矣 曰 牛羊茁壯長而已矣]”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3 : 저본에는 ‘吾’로 되어 있는데, 《臨川集》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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