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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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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比蒙以銘文見屬하니 足下 於世爲聞人이라 力足以得顯者銘父母어늘 以屬於不腆之文 似其意非苟然이라 故輒爲之而不辭호라
不圖乃猶未副所欲하야 欲有所增損하니 鄙文自有意義하야 不可改也 宜以見還하고 而求能如足下意者爲之耳니라
足下雖多聞이나 要與識者講之하라
如得甲科爲通判하고 通判之署 有池臺竹林之勝이나 此何足以爲太夫人之榮이완대 而必欲書之乎
貴爲天子하고 富有天下라도 苟不能行道 適足以爲父母之羞 況一甲科通判이리오
苟粗知爲 雖市井小人이라도 皆可以得之 何足道哉
何足道哉리오
故銘以謂閭巷之士 以爲太夫人榮
明天下有識者 不以置悲歡榮辱於其心也어늘
太夫人能異於閭巷之士하야 而與天下有識同하니 此其所以爲賢而宜銘者也
至於諸孫하야는 亦不足列이니 孰有五子而無七孫者乎
七孫業之有可道 固不宜略이나 若皆兒童이라 賢不肖 未可知어늘 列之 於義何當也
諸不具道하노니 計足下當與有識者講之하라
南去愈遠하니 君子 惟順愛自重이니라


19. 학사學士 전공보錢公輔에게 보낸 답서
근자에 명문銘文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는데, 족하足下께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이시니 현달顯達한 사람이 지은 부모父母 묘비墓碑명문銘文을 얻을 능력이 충분하신데도, 글솜씨가 시원치 않은 사람에게 부탁하신 것은 그 뜻이 되는 대로 건성건성하지 않고자 하는데 있는 듯하여, 그 때문에 즉시 지어 드리고 사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히려 드러내고자 하는 뜻에 부합하지 못해서 증손增損하기를 원하고 계시니, 못난 사람의 비루한 글이지만 나름대로의 의의意義를 지니고 있어서 고치는 일은 불가하므로 되돌려 보내고 족하의 뜻에 맞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짓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가묘家廟에 대하여 지금 시행되고 있는 을 기준으로 하여 형량衡量해 본다면, 아마도 족하足下께서는 가묘를 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족하足下께서 비록 아는 것이 많으시지만, 식자識者들과 이에 대해 토론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진사시進士試갑과甲科로 합격하여 통판通判이 되셨고, 통판께서 근무하던 관서官署에 경치가 좋은 지대池臺죽림竹林이 있다 해도, 이것이 어찌 족히 태부인太夫人의 영예가 될 것이 있기에 기필코 명문銘文에 수록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하기는 천자天子가 되고 하기는 천하天下를 소유했다 해도 진실로 를 실천할 수 없다면 바로 부모의 부끄러움이 되기에 족한데, 하물며 갑과甲科에 합격했던 일개一個 통판通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진실로 를 대강 지을 줄 알게 되면 비록 시정市井소인배小人輩들도 모두 갑과甲科에 합격하여 통판通判이 될 수는 있는 것이니,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명문銘文에 “여항지사閭巷之士들이 태부인太夫人의 영예로 여겼다.”라고 말한 것은,
천하天下유식자有識者들은 여항지사閭巷之士와는 달리 통판通判 정도의 소리小吏직을 얻고 잃음으로 인하여 그 마음속에 비환悲歡영욕榮辱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태부인께서도 여항지사들의 생각에 동의하시지 않으시고 천하의 유식자들과 뜻을 같이하셨으니, 이것이 현명하신 소이所以이고 명문銘文에 수록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여러 손자孫子들에 이르러서는 또한 명문銘文에 나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누구인들 아들 다섯에 일곱 손자를 두지 않은 이가 있겠습니까.
일곱 손자들이 하는 일에 칭찬할 만한 것이 있으면 명문에 생략하는 것이 본시 마땅하지 않겠지만, 만약 모두가 어려서 현명한지 못났는지를 알 수가 없는데도 이를 나열해 놓는다면 이것이 어찌 의리상 합당한 일이겠습니까.
다른 모든 일은 다 말씀드리지 않겠으니, 족하께서 마땅히 유식자有識者들과 상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남쪽으로 더욱 멀리 떠나 있으니, 군자君子께서는 오직 신중愼重하게 자애自愛하시고 자중自重하시기를 빌 뿐입니다.


역주
역주1 答錢公輔學士書 : 왕안석이 錢公輔의 請을 받고 그 父母의 墓誌銘을 지어 주자, 전공보는 그 내용의 일부에 불만을 품고 일부를 增損해 주도록 청하는 편지를 보내었다. 왕안석은 이를 거절하면서 增損이 不可한 이유를 설명한 答信이 이 편지로, 皇祐 6년(1054)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2 家廟……恐足下未得立也 : 당시의 제도에 의하면 正一品 平章事 以上은 四廟(4代祖까지 사당에 모심)이고, 樞密使 節度使 등은 모두 三廟를 세울 수 있으나, 그 외의 관리들은 廟보다 한 등급 낮은 寢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어 있었다.
역주3 辭賦 : 文體名으로, 모두 楚辭에서 發源하였으나 辭는 一種의 詩이고 賦는 韻이 있는 文이다. 辭와 賦 모두 聲調와 排比鋪陳을 講究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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