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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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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婉曲多波瀾이라
段君足下
某在京師時 嘗爲足下道曾鞏善屬文이나 未嘗及其爲人也러니
還江南하야 始熟而慕焉友之하고 又作文粗道其行호라
惠書以所聞으로 詆鞏行無纖完하니
其居家 親友惴畏焉하야 怪某無文字規鞏하고 見謂有黨하니
果哉 足下之言也
鞏固不然하다
文學論議 在某交游中 不見可敵하니
其心勇於適道하야 殆不可以刑禍利祿으로 動也
할새 左右就養 無虧行하고 家事銖髮以上 皆親之하니
父亦愛之甚하야 嘗曰 吾宗敝로되 所賴者 此兒耳라하니 此某之所見也 若足下所聞 非某之所見也니라
鞏在京師 避兄而舍 此雖某라도 亦辠之也 宜足下深攻之也로다
於辠之中 有足矜者로되 顧不可以書傳也
事固有迹이나 然而情不至是者하니 如不循其情而誅焉이면 則誰不可誅邪
鞏之迹 固然邪
然鞏爲人弟하야 於此不得無過
但在京師時 未深接之하고 還江南하야 又旣往 不可咎 未嘗以此 規之也니라
鞏果於從事하고 少許可하야 時時出於中道하니 此則還江南時 嘗規之矣 鞏聞之하고 輒瞿然하니라
嘗謂友朋過差라도 未可以絶이요 固且規之
規之하야 從則已 固且爲文字하야 自著見然後已邪 則未嘗也로라
凡鞏之行 如前之云이요 其旣往之過 亦如前之云而已 豈不得爲賢者哉
天下 愚者衆하고 而賢者希하야 愚者固忌賢者하고 賢者又自守하야 不與愚者合하니 愚者加怨焉이라
挾忌怨之心이면 則無之焉而不謗하나니 君子之過於聽者 又傳而廣之
故賢者嘗多謗하니 其困於下者尤甚하야 勢不足以動俗하고 名實未加於民하며 愚者易以謗하고 謗易以傳也
凡道鞏之云云者 固忌固怨固過於聽者也
어늘 足下乃欲引忌者怨者過於聽者之言하야 縣斷賢者之是非하니 甚不然也로다
孔孟所以爲孔孟者 爲其善自守하고 不惑於衆人也
如惑於衆人이면 亦衆人耳 烏在其爲孔孟也리오
足下姑自重하야 毋輕議鞏하라


16. 단봉段縫에게 보낸 답서
글이 완곡하면서도 곡절이 많다.
단군족하段君足下에게 올립니다.
경사京師에 있을 때에 일찍이 족하足下에게 증공曾鞏이 글을 잘 짓는다고 말한 일이 있으나,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하여는 언급한 일이 없습니다.
강남江南으로 돌아와 비로소 친숙해져서 연모戀慕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고, 또한 글을 지어서 그의 행실行實에 대하여 대충 말한 일이 있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 소문 들은 것을 가지고 증공曾鞏의 행실에 세밀하고 완숙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비난하셨습니다.
그가 집에 거처할 때에 친우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 가 증공에게 편지를 보내어 잘못을 고치도록 말하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기고 편당한다는 말을 듣기까지 하였습니다.
족하足下의 말씀이 참으로 과감果敢함이 있으시군요!
은 본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문학文學의론議論가 교유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의 마음은 도통道統을 따르기에 용감하여, 아마도 형화刑禍이록利祿으로는 동요하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친父親곤액困厄을 당하고 계실 때에 모시고 봉양하는데 흠결欠缺이 될 만한 행위가 없었고, 집안일을 하면서 일수一銖일발一髮 이상을 모두 직접 처리하였습니다.
부친父親 또한 그를 매우 아끼셔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종족宗族이 피폐해졌으니 의뢰할 사람은 오직 이 아이뿐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가 직접 본 일이고, 족하足下께서 들으신 일 같은 것은 가 본 바와는 다릅니다.
경사京師에 있을 때에 형을 피하여 머물렀다 하는데, 이 일은 비록 라도 또한 그를 꾸짖어야 할 것이니, 족하足下께서 심히 공격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꾸짖는 가운데에도 동정同情하고 애긍哀矜히 여기기에 족한 것이 있으니, 다만 이를 글로 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일이 본시 증거가 있다 해도, 그런데도 마음이 족하足下께서 지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니, 만약 그 마음을 따져보지 아니하고 꾸짖는다면 누구인들 꾸짖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행한 자취가 본시 그러했던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 남의 아우가 되어서 이렇게 한 일에 대하여는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다만 경사京師에 있을 때에는 깊이 접촉한 일은 없고, 강남江南으로 돌아와서는 또 이미 지나간 일을 꾸짖는 것이 옳지 않으므로, 일찍이 이를 사리를 따져 말리지 않은 것입니다.
은 일처리에 과단성이 있고 남의 의견에 동의하는 일이 드물어 때때로 중도中道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으므로, 이에 대하여는 강남으로 돌아왔을 때에 사리를 따져 충고한 일이 있으니, 이 듣고는 즉시 두려워하며 반성하였습니다.
은 본시 교도敎導한 일이 있으니, 그가 지은 〈회우서懷友書〉 두 통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간직하고 하나는 의 집으로 보내 주어서, 간절하게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이로써 뉘우칠 일에서 벗어날 것을 추구하려는 뜻을 대략 드러내었습니다.
일찍이 이르기를 붕우朋友에게 과실이 있다 하여 절교絶交해서는 안 되고, 진실로 또한 사리를 따져 충고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충고를 따르면 그만이고, 따르지 않으면 진실로 자신의 뜻을 글로 드러내어 보내 준 이후에야 그만둔다고 한 것은 아직 실천하지를 못하였습니다.
무릇 의 행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고, 이미 지난날에 있었던 과실도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을 뿐이니, 이 정도의 일로 어찌 현자賢者가 될 수 없겠습니까.
천하에 어리석은 사람은 많고 현명한 사람은 드물며, 우자愚者는 본시 현자賢者를 기피하고, 현자賢者는 또 자신의 신조信條고수固守하여 우자愚者영합迎合하려 하지 않으므로, 우자愚者들이 더욱 원망하게 됩니다.
꺼리고 원망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비방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되니, 군자君子 중에 소문을 잘못 들은 자가 또 그것을 전하여 확대시킵니다.
그러므로 현자賢者들은 늘 비방을 받음이 많고, 아랫자리에 있으면 더욱 심하게 곤고困苦를 겪게 되므로, 형세形勢가 풍속을 변화시키기에 부족하게 되고, 명분과 실제에 있어 백성들을 감화시킬 수가 없게 되며, 우자愚者들은 이를 비방하기가 쉽고, 비방은 전파되기가 쉽습니다.
무릇 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자들은 본시 그를 꺼리고 원망하며 소문을 잘못 들은 사람들입니다.
가형家兄을 친애한 일이 없다는 것도 돌이켜보건대 또한 잘못 들은 것일 뿐인데, 족하足下께서 곧 꺼리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잘 못 들은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현자賢者의 옳고 그름을 그릇되게 판단하시니,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중大衆이 그를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보고, 대중이 그를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하셨고,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해도 죽이는 것이 옳지 않고, 죽여야 할 죄상罪狀을 직접 본 연후에 그를 처형해야 한다.” 하셨으며,
광장匡章에 대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불효不孝하다 하였으나, 맹자께서 홀로 예로써 대한 것은 효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공자孔子맹자孟子공자孔子맹자孟子가 된 근본 원인은, 그들이 을 스스로 고수固守하고, 중인衆人의 주장에 미혹迷惑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인衆人의 주장에 미혹迷惑당했다면 그 또한 중인衆人의 한 사람일 뿐이니, 어찌 공자孔子맹자孟子 같은 성인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족하足下께서는 먼저 자중自重하시고 을 함부로 비판批判하지 마십시오!


역주
역주1 答段縫書 : 段縫으로부터 당시 古文의 大家인 曾鞏을 비난하는 편지를 받고, 이를 반박하는 답서로 보낸 것이 이 편지이다. 段縫이 어떤 인물인지는 未詳이다.
역주2 父在困厄中 : 왕안석이 撰한 〈太常博士曾公(卽 曾鞏의 父인 易占)墓誌銘〉에, “信州의 知事인 錢仙芝란 자가 玉山縣(信州의 관할이고 曾鞏의 父親이 知事로 있던 縣임)에 부당한 요구를 하자 曾公이 들어주지 않으니 곧 公을 誣告하였다. 관리가 公을 誣告한 이유를 알아내니 錢仙芝는 어사의 출동을 청하였다. 이때에 전선지는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비록 공을 무고한 무고죄가 성립되어 죄를 받게 되었지만, 공도 또한 끝내 博士의 벼슬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을 하지 못한 것이 12년이었다.[知信州錢仙芝者 有所丐於玉山 公不與 卽誣公 吏治之 得所以誣公者 仙芝則請出御史 當是時 仙芝盖有所挾 故雖坐誣公抵罪 而公亦卒失博士 歸不仕者十二年]” 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역주3 鞏固有以敎某也……略見矣 : 이에 대한 내용은 曾鞏이 王安石에게 보낸 〈懷友一首寄介卿〉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4 家兄未嘗親鞏也 顧亦過于聽耳 : 이 두 구는 저본에 없는 것을 《臨川集》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孔子曰…… 必察焉 : 《論語》 〈衛靈公〉에 보인다.
역주6 孟子曰……然後殺之 : 《孟子》 〈梁惠王 下〉에 보인다.
역주7 匡章……孟子獨禮貌之 : 《孟子》 〈離婁 下〉에, “公都子가 묻기를, ‘匡章을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불효한 사람이라 하는데 선생께서는 그와 교유하시고 또 예를 갖추어 대해 주시니 무엇 때문인지 감히 묻겠습니다.’[公都子曰 匡章 通國皆稱不孝焉 夫子與之遊 又從而禮貌之 敢問何也]” 한 것을 축약하여 인용한 것이다.
역주8 以爲孝 : 이 3자는 저본에 없는 것을 《臨川集》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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