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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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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按二序하니 皆公應詔爲之者
其辭簡호되 而其法度 自典則이라
熙寧二年 臣某하야 遂與政하고러니 有旨하야 爲之說以獻하고 이라
이라가 遭漢而僅存하니 賴學士大夫誦說하야 以故不泯이나 而世主莫或知其可用이라
天縱皇帝大知하사 實始操之以驗物하시고 考之以決事러시니
又命訓其義하야 兼明天下後世하실새 而臣父子以區區所聞으로 承乏與榮焉이라
然言之淵懿어늘 而釋以淺陋하고 命之重大어늘 而承以輕眇하니 玆榮也 祗所以爲愧也歟인저
謹序하노이다


02. 《서의書義》의 서문序文
두 편의 를 고찰해보니, 모두 공이 황상皇上의 명에 응하여 지은 것들이다.
문장文章이 간략하면서도 그 법도는 스스로 모범이 될 만하다.
희령熙寧 2년(1069)에 는 《상서尙書》를 시강侍講한 것이 계기가 되어 궐내闕內에서 황상皇上을 모시면서 정사政事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의 자식 경연經筵에서 강술講述하는 일을 이어받았으며, 황상의 지시가 계시면 강론講論학설學說을 글로 정리하여 올리기도 하였는데, 8년(1075)에는 그 글을 태학太學으로 내려 보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 , , 시대에 남긴 글인 《상서尙書》가 나라의 분서焚書를 겪으면서 거의 없어졌다가 나라에 이르러서야 겨우 남아있게 된 것은, 학사學士 대부大夫들 가운데 그 글을 암송하는 사람이 있었던 데에 힘입어서 그 때문에 민멸泯滅하지 않게 되었으나, 그 시대의 군주君主 가운데는 그 학문의 효용을 알지 못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하늘이 황상皇上께 큰 지혜를 부여하사, 진실로 비로소 이 학설을 근거로 하여 사물을 궁구하시고, 이 학설을 참고하여 사안事案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훈석訓釋하고 겸하여 천하 후세에 밝힐 것을 명하셔서, 부자父子가 변변히 아는 것도 없으면서 빈 자리를 이어받아 영예로운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이 심오深奧하고 아름다운데도 이를 천박淺薄하고 고루固陋하게 훈석訓釋하였고, 명하신 일이 중대한 것인데도 가볍고 하찮은 식견 때문에 받들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영예로운 일이 다만 부끄러움만 될 뿐이옵니다.
삼가 이로써 에 대하나이다.


역주
역주1 書義序 : 《書義》는 《三經新義》의 하나로서, 《新經尙書》, 《新經書義》라고도 칭한다. 이를 실제로 撰한 사람은 王安石의 아들 王雱이며, 총 13권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역주2 以尙書入侍 : 왕안석이 神宗을 위하여 《尙書》를 侍講했던 것을 지칭한다.
역주3 子雱實嗣講事 : 이 句는 왕안석의 아들 王雱이 부친을 이어서 侍講을 담당하였던 것을 지칭한다.
역주4 八年……班焉 : 《宋史》 〈選擧志 三〉에, 황제께서 일찍이 왕안석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經傳에 대한 설명이 사람마다 다르니 어찌 道德을 통일시킬 수가 있겠는가. 卿이 註釋한 經傳을 반포하여 배우는 사람들이 하나의 학설로 귀일하게 하라.[帝嘗謂王安石曰 今談經者人人殊 何以一道德 卿所著經 其以頒行 使學者歸一]” 하였으므로 熙寧 8년에 왕안석의 《書義》, 《詩義》, 《周禮義》를 《三經新義》라 命名하여 學館에 반포하였다 하였다.
역주5 惟虞夏商周之遺文 : 이는 《尙書》에 수록된 〈虞書〉, 〈夏書〉, 〈商書〉, 〈周書〉를 지칭한다.
역주6 更秦而幾亡 : 秦始皇의 焚書로 儒家 經傳이 거의 없어졌던 것을 지칭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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