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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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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類昌黎書
疾毉之良者也
其足之所經 耳目之所接 有人於此하야 狼疾焉而不治 則必欿然以爲己病也
雖人也라도 不以病兪跗焉則少矣니이다
隱而虞兪跗之心컨대 其族婣舊故有狼疾焉이면 則何如也잇가
末如之何하야 其已잇가
未有可以治焉而忽者也니이다
今有人於此하니 弱而孤하고 壯而屯蹶困塞하야 先大父棄館舍于前하고 而先人從之로되 兩世之柩 窶而不能葬也니이다
嘗觀傳記라가 至春秋 하야는 則戚然不知涕之流落也하니이다
竊悲夫古之孝子慈孫 嚴親之終 如此其甚也로소이다
今也乃獨以窶故 犯春秋之義하고 拂子思之說이면 鬱其爲子孫之心而不得伸 猶人之狼疾也 奚有間哉리잇가
伏惟執事 性仁而躬義하사 憫艱而悼厄하시니 窮人之兪跗也 而又有先人一日之雅 某之疾 庶幾可以治焉者也니이다
是敢不謀於龜하고 不介於人하야 跋千里之途하고하야 而造執事之門하니 自以爲得所歸也니이다
執事其忽之歟잇가


10. 둔전屯田에게 올린 편지(남을 대신하여 짓다)
창려昌黎(韓愈)의 문장과 유사하다.
유부兪跗는 병 치료를 잘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발이 경유한 곳과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 가운데, 치명적인 중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근심하면서 자신이 그 병에 걸리게 한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비록 유부가 병을 치료하였으나 낫지 않은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유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유부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그 친인척이나 친구 가운데 치명적인 병에 걸린 이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조처해야 하겠습니까.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여 그치고 말겠습니까.
치료할 수 있는데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여기에 있는 사람은 어려서 고아孤兒가 되었고, 장년이 되어서는 온갖 시련을 겪고 군색하게 지내며, 할아버지가 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이어 돌아가셨는데, 가난 때문에 두 분의 관을 매장埋葬할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전해오는 기록을 살펴보다가 《춘추春秋》에 ‘장례葬禮를 지낼 때가 지났는데도 장례를 치루지 못하였다.’는 내용과, 자사子思한 바 ‘장례를 치루지 못하였으므로 상복喪服을 바꿀 수 없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척연戚然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옛날의 효자孝子자손慈孫엄친嚴親의 사망을 슬퍼하며, 이와 같이 심히 중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독 가난 때문에 《춘추春秋》에 기록된 의리를 범하고 자사子思의 주장에 위배되는 짓을 한다면, 자손의 마음에 이 맺혀서 풀지 못하는 것이 마치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이 든 것과 같을 것이니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집사執事께서는 성품性品이 인자하시고 몸소 의리를 실천하시어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을 애긍히 여기시고 재앙에 빠진 사람을 가련하게 여기고 계시니, 곤궁한 사람에게는 유부兪跗와 같은 분인데다가, 저의 선친先親과는 친분이 있었던 사이이시니, 곤고困苦를 다행히 해결해 주실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에 감히 거북에게 길흉吉凶을 물어보지도 않고 남의 소개도 받지 않고, 천리 먼 길과 위험한 물을 무릅쓰고 달려와 집사의 문 앞에 당도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도와주심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집사께서는 이를 소홀하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역주
역주1 上凌屯田書 代人作 : 이 글은, 어떤 사람이 凌屯田에게 조부와 부친의 장례비용을 도와 달라고 청하는 편지를 대신 써준 것으로, 凌屯田은 屯田員外郞 凌景陽을 지칭한다.
역주2 兪跗 : 전설에 등장하는 黃帝시대의 良醫이다. 《史記》 〈扁鵲列傳〉에 의하면, 湯藥으로 병을 치료하지 않고 手術의 방법으로 치료하였다고 전해진다.
역주3 過時而不葬 : 《春秋公羊傳》 隱公 2年條에, “장례기간이 지났는데도 기간에 맞추어 장례를 지내지 않았으면 장례를 지낼 수 없다고 이른다.[過時而不日 謂之不能葬也]”라 하였다. 고대에는 신분에 따라 殯을 하고 장례를 기다리는 기간을 天子는 七月, 諸侯는 五月, 大夫는 三月, 士는 兪月 등으로 엄격하게 규정하여, 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절차를 행할 수가 없었다.
역주4 與子思所論未葬不變服 : 孔子의 8세손인 孔駙가 지은 《孔叢子》 〈抗志第十〉에, “文子가 묻기를, ‘상을 당하여 옷을 바꾸어 입은 연후에 下葬을 한다고 하였으니, 그 옷은 어떤 옷입니까?’ 하니, 子思가 대답하기를, ‘삼년상에 아직 下葬을 하지 못하였으면 옷을 바꾸어 입을 수가 없으니, 바꾸어 입는 일이 어찌 있겠는가?’ 하였다.[文子曰 喪服旣除 然後 乃葬 則其服 何服 (子思)答曰 三年之喪 未葬 服不變 除何有焉]”라고 보인다. 子思는 孔子의 孫으로 名은 伋이다. 일찍이 《子思》 23篇을 지었다 하나 현재는 傳하지 않는다.
역주5 不測之川 : 《戰國策》 〈魏三策〉에, “이제 어떤 사람이 臣에 대하여 말하기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못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하였습니다.[今有人謂臣曰 入不測之淵而必出]”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深淵을 指稱하며 위험한 곳을 뜻하기도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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