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吾於人也에 聽其言而觀其行하고 言不可獨信이 久矣로라
雖然이나 彼재상宰相은 名實固有辨하니 彼誠小人也라
世之淺者는 固好以其利心으로 量君子하야 以爲觸재상宰相以近禍하고 非以其私면 則莫爲也니라
方其不信於天下어늘 更以推賢進善爲急하야 一士之不顯이면 至寢食爲之不甘하니 蓋奔走有力하야 成其名而後已라
士之廢興은 彼各有命이니 身非王公大人之位어늘 取其任而私之하고 又自以爲賢하야 僕僕然忘其身之勞也하니 豈所謂知命者耶아
왕공의 글을 읽을 때에는 모름지기 그의 문장력이 생득적인 우수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문공李文公(李翶)은 동자董子(董仲舒)가 〈사불우부仕不遇賦〉를 지은 것을 비난하여 그가 자기 자신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의 시詩 삼백편三百篇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낸 것이 매우 많고, 공자孔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봉황鳳凰이 날아오지 않고 하수河水에서 도圖가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 하셨으니, 이는 모두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탄식한 것이다.
문공文公이 주장한 차원의 드높기가 이와 같은데, 역사에 기록된 것을 관찰해보니, 〈그렇게 남을 준열하게 비판하였던 문공文公 자신도〉 한 번 맡고 싶은 직임職任을 얻지 못하면, 재상宰相을 비판하여 스스로 분풀이를 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나는 사람에 대하여 그 말을 듣고는 그 행실을 살피게 되었고, 말만 듣고는 믿지 못하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비록 그러하나 저 재상宰相은 명분名分과 실제實際가 본시 같지 않음이 있으니, 그 재상은 진실로 소인小人이다.
그렇다면 문공文公이 발분發憤하여 비판한 것이 소인小人의 행위를 참을 수가 없어서였던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런데 역사를 기록한 사람이 어찌하여 유독 그가 맡고 싶은 직임職任을 얻지 못하여 성을 낸 부분만 취하여 쓴 것일까?
세상의 천박淺薄한 사람들은 본시 자신의 이기심利己心을 기준으로 집정자執政者를 헤아리기를 좋아하여, 재상宰相의 노여움을 범犯하는 것은 화禍를 가까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사욕私慾을 채우는 데 적합하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
대저 문공文公이 좋아하고 싫어한 것은 이른바 모두 그의 분수分守에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때는 그가 천하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였는데도, 현인賢人을 추천하고 선인善人을 등용함을 더욱 급선무로 여겨, 한 사람의 사士라도 드러나지 않으면 근심하여 자고 먹는 것이 달지 않음에 이르렀으니, 힘 있는 자에게 분주하게 추천하여 그 명성을 이루게 한 후에야 그쳤다.
사士가 벼슬에 나아가느냐 물러나 있느냐는 저마다 각기 운명運命이 있는데, 자신自身이 왕공王公이나 대인大人의 지위에 있지도 않으면서, 그 임무를 맡아서 자신의 일로 삼고, 또한 자신이 현인賢人이라고 여겨, 분주히 애쓰며 자신의 수고로움을 잊었으니, 어찌 이른바 운명運命을 아는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전적典籍에 이르기를 “도道가 행行해지지 않으니, 현자賢者는 지나친 행위를 하고 불초자不肖者는 미치지 못하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저 문공의 지나친 행위도 현인賢人이었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