某常以今之仕進은 爲皆詘道而信身者러니 顧有不得已焉者하니 捨爲仕進이면 則無以自生이라
捨爲仕進而求其所以自生이면 其詘道有甚焉하니 此固某之亦不得已焉者라
獨嘗爲
하야 以勸得已之士焉
하니 得已而已焉者
를 未見其人也
로라
足下恥爲進士하고 貴其身而以自娛於文하야 而貧無以自存하니 此尤所以爲難者로다
凡今於此에 不可毋進謁也니 況如某少知義道之所存乎아
今者足下乃先貶損而存之하고 賜之書하야 詞盛指過하니 不敢受而有也로라
惟是不敏之罪에 不知所以辭하야 敢布左右하노니 惟幸察之而已니라
이 글에도 또한 깊은 사상思想이 내함內含되어 있다.
모某는 항상 지금 벼슬자리에 진출한 사람들은 모두 도의道義를 굽히고 자신의 생계나 도모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는데, 돌이켜보건대 이를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은, 벼슬살이를 중단하면 스스로 생계를 도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벼슬살이를 그만두고서 자신의 생계를 도모하게 되면 도의道義를 굽힘이 더욱 심하게 되기도 하므로, 이것이 모某가 또한 그만둘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에 특히 과거에 〈진설進說〉을 지어서 이로써 도의道義를 고수固守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을 수 있는 선비를 격려하기도 하였으나, 도의를 고수함이 벼슬에 나가지 않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나가지 않는 사람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제 이런 소신을 실천하는 족하足下를 보게 되었습니다.
족하께서는 벼슬에 나감을 부끄럽게 여기시고, 그 몸을 바르게 지킴을 귀하게 여기며 스스로 글짓기를 즐기시지만, 가난함은 자신의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이시니, 이런 처신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는 바입니다.
무릇 이제 이런 소신을 실천하시는 분은 당연히 찾아가 뵙지 않을 수 없는데, 하물며 모某처럼 의義와 도道의 존재를 알기에 부족한 사람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이제 족하께서 먼저 자신을 낮추고 존문存問을 하시며 편지를 보내셔서 성대한 말씀으로 지나치게 찬미해 주시니, 감히 받아들여 간직할 수가 없나이다.
오직 민첩하게 예를 올리지 못했던 죄 때문에 변명할 바를 알지 못하여 감히 좌우에 아뢰오니, 이를 살펴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