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善其所見하고 以爲敎於天下하야 而傳之後世라 後世學者는 或徇乎身之所然하고 或誘乎世之所趨하고 或得乎心之所好하니 於是에 聖人之大體가 分裂而爲八九라
博聞該見有志之士 補苴調胹하야 冀以就完이나 而力不足하고 又無可爲之地라 故終不得하니라
蓋有見於無思無爲하고 退藏於密하야 寂然不動者는 中國之老莊과 西域之佛也라
旣以此로 爲敎於天下而傳後世라 故爲其徒者 多寬平而不忮하고 質靜而無求하니 不忮는 似仁이요 無求는 似義니라
當士之夸漫盜奪하야 有己而無物者 多於世면 則超然高蹈하야 其爲有似乎吾之仁義者하니 豈非所謂賢於彼하야 而可與言者邪아
若通之瑞新과 閩之懷璉은 皆今之爲佛而超然하니 吾所謂賢而與之遊者也니라
此二人者는 旣以其所學으로 自脫於世之淫濁하고 而又皆有聰明辯智之材라 故吾樂以其所得者間語焉하야 與之遊에 忘日月之多也호라
璉嘗謂余曰 吾徒有善因者하야 得屋於漣水之城中하고
而得吾所謂經者五千四十八卷於京師하야 歸市匭而藏諸屋하고
而以子之愛我也라 故使其徒來屬하리니 能爲我强記之乎아
善因者 蓋嘗爲屋於漣水之城中하고 而因瑞新하야 以求予記其歲時어늘 予辭而不許者也라
夫以二人者는 與余遊하고 而善因屬我之勤하니 豈有他哉리요
其不可以終辭하야 乃爲之書하고 而幷告之所以書之意하야 使鑱諸石하노라
13. 연수군漣水軍 순화원淳化院 장경각藏經閣 건립기
사람들이 자기의 주관적主觀的 견해見解만을 선善으로 여기고, 이를 천하에 가르쳐서 후세에 전하고자 하며, 후세의 학자들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따르면서 혹 세태世態가 지향하는 바에 유혹誘惑되기도 하고, 혹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를 이루기도 하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의 큰 강령綱領이 갈라지고 찢겨져서 여덟 아홉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널리 배우고 광범廣範한 지식知識을 가진 뜻있는 선비가 이 학설들을 절충折衷 조화調和시켜서 이를 완전하게 하기를 기도해 보았지만 그럴 만한 능력이 모자라고, 또한 이를 추진할 만한 처지에 있지도 않으므로 끝내 이를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대체로 무사無思 무위無爲를 진리眞理로 여기는 식견識見을 지니고, 산림山林에 은거隱居하며 활동을 멈추고 고요히 지낸 사람은 중국中國의 노자老子, 장자莊子와 서역西域의 불타佛陀이다.
이미 이런 사상을 천하天下에 가르쳐서 후세後世에 전하였으므로, 그 신도信徒가 된 사람들이 너그럽고 평안하게 지내고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질박하고 고요하게 지내며 사적私的으로 희구希求하는 것이 없게 되었으니, 미워하고 원망함이 없는 것은 유가儒家의 인仁과 같고 사사로이 희구希求함이 없는 것은 유가儒家의 의義와 같다.
벼슬아치들인 사士 계층 가운데 오만자대傲慢自大하고 사익私益을 위해 훔치고 빼앗아 자기 이익利益만 추구하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세상에 넘쳐나는 때를 당하여, 이들은 초연超然하게 고매高邁한 뜻을 지니고 은둔생활隱遁生活을 하고 있고, 그 행위가 우리 유가儒家들이 추구하는 인仁과 의義에 유사類似함이 있는 사람들이니 어찌 이른바 저들보다 현명賢明하여 더불어 대화를 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통주通州의 스님 서신瑞信과 민주閩州의 스님 회련懷璉이 모두 이 시대의 스님들로서 세속世俗에 초연超然한 분들이어서, 이들이 바로 내가 이른바 함께 노닐 만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 두 분은 그들이 지금까지 배운 것으로써 어지럽고 혼탁混濁한 속세俗世에서 스스로 초탈超脫하였고, 또한 모두 총명聰明하며 지혜智慧롭게 설법說法을 잘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그들이 터득한 진리眞理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일이 즐거워서, 그들과 교유交遊하는 동안은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러갔는지를 잊을 정도였다.
회련懷璉이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 불도佛徒 가운데 선업善業을 닦아 선과善果를 얻은 사람이 있어서 연수漣水의 성중城中에 건물을 얻었고,
우리 불도佛徒들이 말하는 경經(즉 불경佛經) 5048권卷을 수도首都에서 구하여 얻은 후 시장에서 구입한 책상자에 수장收藏하여 그 건물에 보관하고,
장차 글 잘 짓는 사람을 구하여 불경佛經을 수장收藏하게 된 경위經緯와 시기時期를 기록해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나를 아껴주고 계시니, 그 무리로 하여금 찾아가 부탁하게 하고자 하는데, 우리들을 위해 힘써 기술記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선인선과善因善果를 얻은 사람이 이미 연수漣水의 성중城中에 건물을 지었고, 서신瑞信 스님을 통하여 나에게 그 경위經緯와 세시歲時를 기록한 기記를 지어 주도록 청하기에, 내가 사양했지만 사양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에 그 경전經傳을 수장收藏한 시기를 물어보니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이라 하였다.
대저 두 스님은 나와 교유하는 분들이고, 선인선과善因善果를 얻은 분이 나에게 부지런히 부탁을 하고 있으니 어찌 다른 방도가 있으리오!
이에 끝까지 사절할 수가 없어서 그들을 위해 글을 지으면서 아울러 이를 기록하게 된 의의意義까지 알려주어 이를 돌에 새기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