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人
은 故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贈開府儀同三司
之妻
요 故
광록시승光祿寺丞力
흠신臣과 今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흠신欽臣과 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척신陟臣과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증신曾臣之繼母也
라
치평治平二年에 年五十五로 以五月初三日에 終于박주亳州其子之官舍하고 치평治平三年十月初八日에 祔葬於남경南京우성현虞城縣맹제향孟諸鄕전구리田丘里하다
及公失初妻에 諸子幼어늘 聞夫人賢行하고 求之하야 曰 是必能母吾子라하니 於是에 母兄强嫁之하다
及歸에 果能母諸子하고 聰明而仁하며 恭儉以有禮하니 闔門欣欣하야 無一異言이러라
始封문안현군縣문안현군文安이라가 又封고양군군郡고양군군高陽하고 而公卒에 卽擧家政屬之子婦하고 齋居素服하야 不御酒樂하며 以至沒齒하다
及終에 乃得五十四篇하니 其言高潔曠遠하야 非近世婦人女子之所能爲러라
又得遺令一篇하니 令薄葬하고 其言死生之故甚有理러라
제씨齊氏는 기주祁州포음인蒲陰人이니 夫포음인人曾祖諱某니 故不仕하고 祖諱안安이니 故不仕하고 考諱영청永淸이니 막주莫州방어추관防禦방어추관推官이라
公四男一女니 女嫁상서직방원외랑尙書職方員外郞진안도陳安道하다
夫人旣善撫諸子하고 而諸子亦多賢하며 能致孝러니 於葬에 來求銘하다
부인의 행실을 순서대로 기술한 것이 법도에 맞는다.
부인夫人은 고故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증개봉부의동삼사贈開封府儀同三司 왕공王公 휘諱 수洙의 아내이고, 고故 광록시승光祿寺丞 역신力臣과 현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 흠신欽臣과 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 척신陟臣과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 증신曾臣의 계모繼母이다.
제씨齊氏는 글 읽기를 좋아하고, 문장文章을 잘 지었으며, 고절高節과 미행美行이 있었다.
치평治平 2년 향년享年 55세로 5월 초3일에 그 아들이 근무하는 박주亳州의 관사官舍에서 사망하였고, 치평治平 3년 10월 초8일에 남경南京 우성현虞城縣 맹제향孟諸鄕 전구리田丘里 전前 부인夫人의 묘역墓域에 합장合葬하였다.
처음 부인夫人이 어렸을 때에 부친을 여의고는, 출가하지 않고 모친을 봉양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공公이 첫 부인을 잃게 됨에 이르러, 여러 아들들이 아직 어렸는데, 부인의 현숙賢淑한 행실行實에 대한 소문을 듣고, 청혼을 하면서 말하기를 “이 여인이 반드시 내 자식들의 어머니 노릇을 잘할 것이다.” 하니, 이에 어머니와 오라버니가 억지로 출가出嫁를 시킨 것이다.
출가하게 되자 과연 여러 아들들의 어머니 노릇을 훌륭하게 하였고,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공손하고 검소하면서 예禮에 맞게 처신하니, 온 집안 사람들이 기뻐하며, 한마디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 문안현군文安縣君에 책봉冊封되었다가, 다시 고양군군高陽郡君에 책봉되었고, 공公이 졸卒하자 집안의 모든 일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소복素服을 입고 재계齋戒하고 지내면서, 술과 음악을 멀리하고, 사망할 때까지 이렇게 지냈다.
비록 때때로 시詩를 짓기도 하였으나, 이를 남에게 보여준 일이 없었다.
사망함에 이르러 남겨놓은 시詩 54편篇을 찾았는데, 그 시어詩語가 고상高尙하고 깨끗하며 원대遠大하여, 근세近世의 다른 부인이나 여자들이 지은 것과는 달랐다.
또 〈유령遺令〉 한 편篇을 남겼는데, 그 〈유령遺令〉에 장례葬禮를 소박하게 치르도록 명하였고, 죽고 사는 이치에 대하여 말한 것이 매우 조리가 있었다.
제씨齊氏는 기주祁州 포음인蒲陰人으로, 부인夫人의 증조曾祖 휘諱 모某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벼슬하지 않았고, 조부祖父 휘諱 안安도 이유가 있어서 벼슬을 하지 않았으며, 부친父親 휘諱 영청永淸은 막주莫州의 방어추관防御推官을 지냈다.
오라버니 회恢와 아우 운惲은 모두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이다.
공公은 4남男 1여女를 두었는데, 딸은 상서직방원외랑尙書職方員外郞 진안도陳安道에게 출가하였다.
부인夫人이 이미 여러 아들들을 잘 감싸 길렀고, 여러 아들들 또한 대부분 현명賢明하며 부인夫人에게 효성을 다했는데, 장례를 치르면서 내게 와서 묘지명墓誌銘을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중산국中山國이었던 기주冀州에, 제씨齊氏 집안 막내 딸 효성이 지극하여,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모시면서, 슬퍼하며 차마 출가를 못하고,
절의節義에 맞는 행실行實을 하며, 끝까지 자애로운 모친을 모시고 따르려 하였네.
뛰어난 덕德을 지닌 왕공王公께서, 학문學問과 문장文章을 잘 닦았고,
대가족을 거느리고, 벼슬과 봉록俸祿과 총애寵愛가 빛났었네.
시집와 계모繼母가 되어 잘 도와서, 그 현숙賢淑함이 칭예稱譽를 받았으므로,
유택幽宅에 명시銘詩를 새겨놓아서, 훌륭하게 살다가 생을 마쳤음을 알리게 되었네.
완정完整하게 마친 일생一生은 후손에게 좋은 시작이 있을 것이니, 그 자손들부터 창성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