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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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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中多名言하고 行文處순경荀卿이라
氣之所稟命者 心也
視之能必見하고 聽之能必聞하고 行之能必至하고 思之能必得 是誠之所至也
不聽而聰하고 不視而明하고 不思而得하고 不行而至 是性之所固有 而神之所自生也 盡心盡誠者之所至也
故誠之所以能不測者 性也니라
賢者 盡誠以立性者也 聖人 盡性以至誠者也
神生於性하고 性生於誠하고 誠生於心하고 心生於氣하고 氣生於形하나니 形者 有生之本이라
故養生 在於保形하고 充形 在於育氣하고 養氣 在於寧心하고 寧心 在於致誠하고 養誠 在於盡性하니 不盡性이면 不足以養生이니라
能盡性者 至誠者也 能至誠者 寧心者也 能寧心者 養氣者也 能養氣者 保形者也 能保形者 養生者也 不養生이면 不足以盡性也니라
生與性之相因循하고 志之與氣相爲表裏也
生渾則蔽性하고 性渾則蔽生 猶志一則動氣하고 氣一則動志也니라
禮樂者 先王所以養人之神하고 正人氣하야 而歸正性也
是故 大禮之極 簡而無文하고 大樂之極 易而希聲하니 簡易者 先王建禮樂之本意也니라
世之所重 聖人之所輕이요 世之所樂 聖人之所悲 非聖人之情 與世人相反이라 聖人 內求하고 世人 外求니라
內求者 樂得其性하고 外求者 樂得其欲하나니
欲易發하고 而性難知 此情性之所以正反也니라
衣食 所以養人之形氣 禮樂 所以養人之性也
禮反其所自始 樂反其所自生이니 吾於禮樂 見聖人所貴其生也至矣로다
世俗之言 曰 養生 非君子之事라하니 未知先王建禮樂之意也니라
養生以爲하고 保氣以爲義하며 去情却欲하야 以盡天下之性하고 修神致明하야 以趨聖人之域이니라
聖人之言 莫大안연顔淵之問하니
이라하시니之道亦不遠也니라
耳非取人而後聰이요 目非取人而後視 口非取諸人而後言也 身非取諸人而後動也
其守至約하고 其取至近하야 有心有形者 皆有之也
然而안자顔子且猶病之 何也
蓋人之道 莫大於此하니
非禮勿聽 非謂掩耳而避之 天下之物 不足以干吾之聰也 非禮勿視 非謂掩目而避之 天下之物 不足以亂吾之明也 非禮勿言 非謂止口而無言也 天下之物 不足以易吾之辭也 非禮勿動 非謂止其躬而不動이라 天下之物 不足以干吾之氣也니라
天下之物 豈特形骸自爲哉
其所由來 蓋微矣
不聽之時 有先聰焉하고 不視之時 有先明焉하고 不言之時 有先言焉하고 不動之時 有先動焉이니
聖人之門안연子可以當斯語矣니라
是故 非耳以爲聰이니 而不知所以聰者 不足以盡天下之聽이요 非目以爲明이니 而不知所以明者 不足以盡天下之視니라
聰明者 耳目之所能爲 而所以聰明者 非耳目之所能爲也
是故 待鐘鼓而後樂者 非深於樂者也 待玉帛而後恭者 非深於禮者也니라
然大裘無文하고 大輅無飾이어늘 聖人獨以其事之所貴者 何也
所以明禮樂之本也
曰 禮之近人情이요 非其至者也라하노라
증자曾子맹경자孟敬子호대증자之所貴乎道者三이니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이라하니 觀此言也하면 증자曾子而不知道也則可하니 使증자曾子而爲知道 則道不違乎言貌辭氣之間이니 何待於外哉
是故 古之人 目擊而道已存하고 不言而意已傳하며 不賞而人自勸하고 不罰而人自畏 莫不由此也
是故 先王之道 可以傳諸言 效諸行者 皆其法度刑政이요 而非神明之用也니라
이라하니 去情却欲이면 而神明生矣 修神致明이면 而物自成矣
是故 君子之道鮮矣니라
齊明其心하고 淸明其德이면 則天地之間 所有之物 皆自至矣 君子之守至約이나 而其至也廣하고 其取至近이나 而其應也遠이니라
是以 서경言天人之道 莫大於하니
大哉
聖人獨見之理 傳心之言乎
儲精晦息하야 而通神明이니라
不失色者 容貌精也 不失口者 語黙精也 不失足者 行止精也
君子之道也 語其大 則天地不足容也 語其小 則不見秋毫之末이요 語其强이면 則天下莫能敵也 語其約이면 則莫能致傳記니라
大禮 性之中이요 大樂 性之和 中和之情 通乎神明이라
故聖人 儲精九重而儀鳳凰하고而關陰陽하니 是天地位而이요 四時行而萬物和니라
嗚呼
禮樂之意不傳 久矣로다
天下之言養生修性者 歸於浮屠노자老子而已 浮屠노자老子之說行이면 而天下爲禮樂者 獨以順流俗而已니라
然而世非知之也者 何耶
特禮樂之意 大而難知하고 노자老子之言 近而易일새라
聖人之道 得諸己하야 從容人事之間而不離其類焉이요 浮圖 直空虛窮苦하야 絶山林之間하고 然後足以善其身而已
由是觀之컨대 聖人之於釋老 其遠近難易 可知也
是故 賞與古人同이나 而勸不同하고 罰與古人同이나 而威不同하며 仁與古人同이나 而愛不同하고 智與古人同이나 而識不同하며 言與古人同이나 而信不同하니
同者 道也 不同者 心也니라
今王公大人이윤伊尹之勢어늘 而無복자천子賤一邑之功者 得非學術素淺而道未明歟
夫天下之人 非不勇爲聖人之道 爲聖人之道者 時務速售諸人하야 以爲進取之階
今夫進取之道 譬諸鉤索物耳 幸而多得其數 則行爲王公大人하고 若不幸而少得其數 則裂逢掖之衣하고 爲商賈矣
由是觀之하면 王公大人 同商賈之得志者也 此之謂學術淺而道不明이라
由此觀之컨대 得志而居人之上하야 復治聖人之道而不捨焉 幾人矣
內而好愛之容하야 蠱其欲하고 外有便嬖之諛하야 驕其志하니 向之所能者 日已忘矣 今之所好者 日已至矣니라
안회子之所學者 非世人之所學이니 不遷怒者 求諸己 不貳過者 見不善之端而止之也
世之人所謂退 안자顔子之所謂進也 人之所謂益 안자顔子之所謂損也
이라하니 안자顔子之謂也로다
耳損於聲하며 目損於色하며 口損於言하며 身損於動 非先難歟
及其至也하야는 耳無不聞하며 目無不見하며 言無不信하며 動無不服이니 非後得歟
是故 君子之學 始如愚人焉하며 如童蒙焉이나 及其至也하얀 天地不足大 人物不足多 鬼神不足爲隱이요 諸子之支離 不足惑也
是故高也 日月星辰 陰陽之氣 可端策而數也 地至大也 山川丘陵 萬物之形 人之常産 可指籍而定也
是故 星曆之數 天地之法 人物之所 皆前世致精好學 聖人者之所建也 後世之人 守其成法이나 而安能知其始焉이리오
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古之人言道者 莫先於天地하고 言天地者 莫先乎身하고 言身者 莫先乎性하고 言性者 莫先乎精하니
精者 天之所以高 地之所以厚 聖人所以配之
故御 人莫不盡能이나獨得之 非車馬不同이라 조보造父精之也 人莫不盡能이나獨得之 非弓矢之不同이라 羿精之也니라
今之人與古之人 一也 然而用之則二也하니 조보造父用之以爲御하고 羿用之以爲射하며 用之以爲賊이니라


10. 예악에 대한 논
문장文章 속에 명언名言이 많고, 써 내려간 문장文章순경荀卿의 문장과 유사하다.
을 받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이다.
시각視覺으로는 반드시 볼 수 있고, 청각聽覺으로는 반드시 들을 수 있고, 가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고, 사고思考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 이것은 이 도달한 지극한 경지境地이다.
청각聽覺을 동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시각視覺을 동원하지 않아도 볼 수 있으며, 사고思考하지 않고도 얻고, 가지 않고도 도달하는 것, 이것은 에 본시 존재하는 것이고 정신精神근원根源에서 나온 것이니, 을 극진히 하고 을 극진히 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그러므로 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이다.
현자賢者을 극진히 하여 을 확립한 사람이고, 성인聖人을 극진히 하여 에 도달한 사람이다.
정신精神에서 생기고, 에서 생기며, 에서 생기고, 에서 생기며, 육체肉體에서 생기니, 육체肉體라는 것이 생명生命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기르는 것은 육체를 보존함에 있고, 육체를 충실하게 하는 것은 를 기름에 있으며, 를 기르는 것은 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고, 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을 극진하게 하는 데 있고, 을 기르는 것은 을 극진히 하는 데 있으니, 을 극진히 하지 않으면 생명을 기르기에 부족하게 된다.
을 극진하게 하는 것이 에 도달하는 것이요, 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를 기르는 것이요, 를 잘 기르는 것이 육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요, 육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생명을 기르는 것이니, 생명을 기르지 못하면 을 극진히 하기에 부족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生命이 서로 이어받아 따르고, 에서 일어난 와 서로 표리表裏가 되는 것이다.
생명生命혼탁混濁해지면 피폐疲弊해지고, 이 혼탁하면 생명이 피폐해지는 것이, 순일純一하면 하게 하고 순일純一하면 하게 하는 것과 같다.
선왕先王들이 그렇게 된 원리原理를 알아서,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의 천성天性을 근본으로 하여 를 제정하고, 천하 사람들의 천성天性조화調和시키고자 하여 을 제정하였으니, 는 천하 사람들이 행할 알맞는 법도가 되는 것이고, 은 천하 사람들이 심중心中희로애락喜怒哀樂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은 선왕이 사람의 정신精神을 기르고 사람의 를 바르게 하여 올바른 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례大禮의 지극한 경지는 간결簡潔하여 꾸밈이 없게 되고, 대악大樂의 지극한 경지는 평이平易하고 소리가 완만하게 되나니, 간결簡潔하고 평이平易하게 한 것이 선왕先王을 세운 근본 뜻이다.
세속世俗에서 하게 여기는 것을 성인聖人은 가볍게 여기고, 세속世俗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성인聖人은 슬프게 여기니, 성인聖人의 마음이 세속世俗 사람들과 서로 반대가 되어서가 아니라, 성인聖人내심內心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고 세속 사람들은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어서이다.
내심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천성天性에 합당한 것을 얻는 것을 즐거워하고,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그 욕망慾望을 이루는 것을 즐거워한다.
욕망慾望은 쉽게 드러나지만 은 알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성인聖人속인俗人정성情性정반대正反對가 되는 근본 원인이다.
옷과 음식은 사람의 육체와 를 기르는 근원이고, 은 사람의 을 기르는 근원이다.
는 그 의 시초가 된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생명生命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니, 우리는 을 통하여 성인聖人이 그 생명生命하게 여김이 지극하였음을 보게 된다.
세속의 말에 이르기를 “생명生命을 기르는 것은 군자君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는 선왕先王제정制定한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생명生命을 기르는 것으로 을 삼고, 를 보존하는 것으로 를 삼으며, 을 제거하고 물리쳐서 천하 사람들의 천성天性을 극진하게 하고, 정신精神을 수양하여 밝게 터득해서, 이로써 성인聖人이 이룩한 경지境地를 뒤따르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말씀은 안연顔淵과의 문답에 드러난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다.
에 맞지 않으면 보지 말고, 에 맞지 않으면 듣지 말고, 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말며, 에 맞지 않으면 행동하지 말라.” 하였으니, 을 행하는 도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귀는 타인他人의 말이 있은 이후에야 듣는 것이 아니고, 눈은 타인의 행위가 있은 이후에야 보는 것이 아니며, 입은 타인의 반응이 있은 이후에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몸은 타인의 반응이 있은 이후에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지키기를 지극히 간략하게 하고, 취하기를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하여, 마음과 육체를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자顔子도 오히려 이것을 실천하는 일을 근심하였으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대체로 사람이 행할 가운데 이보다 중대한 것이 없어서이다.
에 맞지 않으면 듣지 말라는 것은 귀를 막고 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만물이 나의 총명을 막기에 부족하다는 것이고, 에 맞지 않으면 보지 말라는 것은 눈을 가리고 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만물이 나의 밝음을 어지럽히기에 부족하다는 것이고, 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는 것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만물이 내 바른 말을 바꾸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며, 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그 몸을 정지시키고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만물이 나의 정기正氣를 어지럽히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천하의 만물이 어찌 유독 육신肉身에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겠는가.
그 근원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대체로 매우 은미隱微하다.
귀로 듣지 않을 때에 먼저 밝게 들을 능력을 보유하였고, 눈으로 보지 않을 때에 먼저 밝게 볼 능력을 보유하였고, 말을 하지 않을 때에 먼저 말할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에 먼저 움직일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인聖人제자弟子들 가운데 오직 안연顔淵만이 이 말에 합당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귀로 듣는 것으로 총명함을 삼지 않는 것이니 총명함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자는 천하의 말을 극진하게 듣기에 부족하기 때문이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밝음을 삼지 않는 것이니 밝게 보는 근원을 알지 못하는 자는 천하의 볼 것을 극진하게 보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밝게 듣고 밝게 보는 것은 귀와 눈이 잘할 수 있는 것이나, 밝게 듣고 밝게 볼 수 있게 하는 근본은 육체의 일부인 귀와 눈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종소리와 북소리를 기다린 이후에야 즐거워하는 사람은 음악音樂의 원리를 깊이 터득한 사람이 아니고, 구슬과 비단(폐백)을 바치는 의식을 기다린 이후에야 공경恭敬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의 원리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풀을 묶어 만든 북채와 흙으로 만든 북 같은 원시적인 악기에 음악音樂는 갖추어져 있고, 곡식을 돌 위에서 익히고 고기를 손으로 뜯어 먹으며 구덩이를 술그릇으로 삼고 손으로 움켜 마시는 원시적인 의식에도 의 근본은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에 입는 옷에는 무늬가 없고, 천자가 타는 수레에는 장식이 없었으니, 성인聖人이 오로지 그 일에서 귀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의 근본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정人情에 가깝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지, 극진하게 꾸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증자曾子맹경자孟敬子에게 이르기를 “군자君子가 귀하게 여기는 가 세 가지 있으니, 용모容貌근엄謹嚴 신중愼重하게 움직이면 이로써 나에게 포만暴慢하게 함을 멀리할 수 있고, 안색顔色엄정嚴正하게 하면 이로써 나에게 신의信義에 가깝게 대하게 할 수 있고, 온공溫恭하게 말을 하면 이로써 나에게 천루賤陋하고 사나운 말을 하는 것을 멀리할 수 있다.
제사 음식을 차리는 일은 해당 관원이 있으니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하였는데, 이 말을 관찰해보면, 증자曾子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으니, 가령 증자曾子를 알았다면 는 언어와 용모와 대화의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니, 어찌 가 외물에 의지하는 것이겠는가.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눈으로 보게 되면 이미 의 소재를 알게 되고, 말하지 않아도 뜻이 이미 전해지며, 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분발하고, 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된 것은 이 를 근거로 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이다.
이 때문에 선왕先王가 말로 전해지고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법도法度형정刑政을 통해서 된 것이지 고차적인 정신精神을 동원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정신精神신묘神妙해져서 밝게 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고, 소리 없이 이루고 말을 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것은 덕행德行에 달려 있다.” 하였으니, 인정人情기욕嗜慾을 제거하면 신명神明함이 드러나고, 정신精神을 수양하여 밝음을 극진히 하면 만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를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정리하여 밝게 하고 그 을 맑고 밝게 하면, 천지天地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이 모두 저절로 지극하게 되니, 군자君子고수固守하는 것이 지극히 간략하면서도 도달한 경지는 지극히 광범하고, 지극히 가까운데서 취하였는데도 멀리서도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헤아려본 이후에 말하고, 따져본 이후에 행동하여, 헤아리고 따져서 그 변화의 를 이룰 수 있게 된다.” 하였으니, 변화에 적응함이 천리天理인도人道의 극치에 이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경書經》에서 하늘과 사람의 도에 대하여 말한 것은 〈홍범洪範〉의 기록보다 중대한 것이 없으니, 〈홍범洪範〉에서 천리天理인도人道를 따르는 에 대하여 말한 것은 “공손한 모습[貌], 순종하는 말[言], 분명하게 살핌[視], 총명하게 들음[聽], 지혜롭게 생각함[思]보다 중대한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위대하도다!
성인聖人께서 홀로 깨달은 이치와 마음을 전하신 말씀이여!
정신精神함축含蓄되어 길러지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를 잘 길러서 신명神明과 통하게 된 것이로다!
군자君子가 실수를 범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남에게 낯빛을 변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하고, 남에게 말을 잘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하고, 남에게 거동을 장중하게 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낯빛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모가 순일純一한 것이고, 말을 잘못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고 침묵함이 순일純一한 것이며, 처신을 장중하게 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고 그침을 순일純一하게 하는 것이다.
군자君子는 그 큰 것을 말한다면 천지天地로도 포용하기에 부족하고, 그 작은 것을 말한다면 가을 터럭의 끝보다도 작아서 보이지 않으며, 그 굳셈을 말한다면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고, 그 간략함을 말한다면 문자文字로 표현하여 전할 수가 없다.
성인聖人이 남기신 말씀에 “대례大禮천지天地와 더불어 그 법도法度를 함께하고, 대악大樂은 천지와 더불어 그 조화調和를 함께한다.” 하였으니, 이는 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대례大禮중도中道에 맞는 것이고 대악大樂이 조화롭게 발현發現된 것이니, 중용中庸에 맞고 조화롭게 발현된 인정人情천지天地신명神明에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대례大禮 대악大樂정수精髓를 간직하여 이에 맞게 연주하자 봉황鳳凰이 내려와 춤을 추었고, 오사五事를 잘 닦자 음양陰陽형통亨通하게 되었으며, 이에 천지天地가 바르게 자리를 잡고 삼광三光이 밝게 빛났으며, 네 계절이 순조롭게 운행되어 만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이 굽이굽이 펼쳐진 깊숙한 소택沼澤에서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렸노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니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되었다.”라고 한 것이며, 양자揚子가 이르기를 “천성天性으로 소유所有한 것이다.”라고 하고, “하늘에 마음을 기울이면 하늘의 이치를 알고, 땅에 마음을 기울이면 땅의 이치를 안다.” 한 것이다.
아아!
예악禮樂본의本意가 전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도다.
천하天下 사람들 가운데 양생養生수성修性을 말하는 자들은 불교佛敎노장老莊으로 돌아갈 뿐이니, 불교佛敎노자老子의 학설이 행해지면 천하의 예악禮樂을 행하는 자들은 저속한 유행流行만을 따르게 될 뿐이다.
대저 천하 사람들을 예악禮樂형식形式만을 준수하는 쪽으로 몰아가서, 이로써 저속한 유행을 따르는 것만을 일삼게 하면서 국가國家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라와 나라의 군주君主패망敗亡에 이르게 되었던 방법方法하여 그대로 따르는 것이로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다만 예악禮樂의의意義는 커서 이해하기가 어렵고, 노자老子의 말은 친근하여 이해하기가 쉬워서일 뿐이다.
성인聖人를 자기 몸에 체득體得하고, 인사지간人事之間에서 안온安穩하게 조화調和를 이루어 그것이 사람들 무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불도佛徒들은 세계世界를 다만 공허空虛한 것으로 보아 고행苦行유도誘導하고, 인사人事를 피하여 산림 속으로 은둔한 연후에야 그 몸을 하게 보존하기에 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관찰해본다면, 성인聖人불교佛敎노장老莊과는 그 원근遠近난이難易차원次元이 다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주기를 옛사람들이 한 것과 같게 하여도 분발奮發하는 것은 같지 않게 되었고, 주기를 옛사람과 같게 하여도 두려워하는 것은 같지 않게 되었고, 인덕仁德을 옛사람과 같게 베풀어도 사랑을 느낌은 같지 않게 되었고, 지혜智慧가 옛사람과 같아도 식견識見은 같지 않게 되었고, 말을 옛사람과 같게 하여도 신의信義는 같지 않게 되었다.
는 예나 이제나 동일한데 이 동일하지 않아서인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진실로 도통道通성인聖人이 아니라면, 공허空虛하게 되어 행할 수 없게 된다.” 하였다.
옛적 복자천宓子賤선보單父 고을의 읍재邑宰가 되자 선보單父 고을 사람들이 교화敎化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왕공王公대인大人들은 이윤伊尹과 같은 권세權勢를 가지고 있는데도 복자천宓子賤이 한 고을에서 세웠던 업적만큼의 도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이 배운 치국治國학문學問이 본시 천박淺薄하여 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대저 천하 사람들이 성인聖人를 실천하기에 용맹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성인聖人를 행하는 사람이, 왕왕往往 사람들에게 재간을 부려서 빨리 인정받기만을 추구하여, 이렇게 하는 것으로써 벼슬에 나아가는 단계로 삼고 있다.
지금의 벼슬에 나아가는 는 갈고리로 물건을 낚아 올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니, 요행히 낚은 숫자가 많으면 왕공王公대인大人이 되고, 만약 불행하게도 낚은 숫자가 적으면 선비가 입는 옷을 찢어버리고 장사꾼이 된다.
이를 근거로 관찰해본다면 왕공王公대인大人이 된 방법이 장사꾼이 돈을 많이 벌어서 뜻을 이룬 것과 같으니, 이를 학문이 천박하여 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관찰해본다면 뜻을 얻어 남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성인聖人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를 중단함이 없이 행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안에는 애교를 띤 모습의 여인이 있어서 그 정욕情欲을 유혹하고, 밖에는 총애寵愛하는 간신奸臣이 있어서 그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니, 지난날 도를 지녀 능력이 있던 사람은 날로 잊게 되고, 오늘날 아첨하여 좋아하는 사람은 날마다 가까이 오게 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회顔回라는 사람이 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아니하고 같은 과오를 거듭 범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가 점차 발전해가는 것은 보았고, 중지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하셨다.
안회顔回가 배운 학문은 세속 사람들이 배운 것이 아니니, 노여워할 일이 있어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은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것이고, 같은 과오를 거듭 범하지 않는 것은 불선不善한 단서를 보면 바로 그치는 것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이른바 퇴보退步한다고 여기는 것은 안자顔子의 이른바 발전發展한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이른바 이익利益이 된다고 여긴 것은 안자의 이른바 손실損失이라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손괘損卦의의意義는 어려운 일을 먼저 행한 후에 얻기를 도모함에 있다.” 하였으니, 이는 바로 안자顔子의 행위를 이른 것이로다!
귀는 들리는 소리를 줄이고, 눈은 보이는 대상을 줄이고, 입은 말을 줄이고, 몸은 행동을 줄이는 것이 어려운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행위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없으며, 말은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행위는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이 뒤에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군자君子학문學問은 처음에는 어리석은 사람 같고 어린아이 같지만 그것이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천지天地도 그보다 더 클 수가 없고, 천하天下 모든 사람과 만물萬物도 그보다 더 많을 수가 없고, 귀신도 그보다 더 은미할 수가 없고,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번다繁多한 모든 이론理論들이 그를 미혹迷惑시킬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지극히 높은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음양陰陽의 기운을 기록하여 두 손으로 간책簡策을 들고 헤아릴 수 있게 하고, 지극히 웅대한 땅의 산천구릉山川丘陵만물萬物형상形象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생산한 것을 전적典籍에 수록하여 해놓을 수 있게 하였다.
이 때문에 성신星辰천지天地인물人物도리道理는 모두 전세前世에 지극히 순일純一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였던 성인聖人이 세워놓은 것이니, 후세後世 사람이 성인聖人이 이루어놓은 법도法度를 지킬 수는 있지만 어찌 그 근원根源을 알 수가 있겠는가?
에 이르기를 “온갖 기술자들의 일은 모두 성인이 이루어놓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으로 에 관하여 말한 사람 가운데 먼저 천지天地에 관하여 말하지 않은 이가 없고, 천지天地에 대하여 말한 사람 가운데 먼저 육신肉身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이가 없으며, 육신肉身에 관하여 말한 사람 가운데 먼저 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에 관하여 말한 사람 가운데 먼저 순일純一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로 순일純一이 하늘이 높게 된 소이所以이고, 땅이 두터워진 소이所以이며, 성인聖人이 그 천지天地와 짝을 이루게 된 소이所以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레를 모는 일은 사람들이 다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조보造父만이 홀로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의 수레와 말이 다른 사람의 수레나 말과 달랐던 것이 아니라, 조보造父만이 그 정묘精妙함을 극진히 하였기 때문인 것이요, 활쏘기는 사람들이 다 잘할 수 있는 것이지만 羿만이 홀로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의 활과 화살이 다른 사람의 활이나 화살과 달랐던 것이 아니라, 羿만이 그 정묘精妙함을 극진히 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옛사람들과 사람은 같지만 이 를 쓰는 방법은 다르니, 조보造父는 이를 써서 훌륭한 마부馬夫가 되었고, 羿는 이를 써서 훌륭한 사수射手가 되었으며, 도척盜跖은 이를 써서 도적盜賊의 두목이 되었던 것이다.


역주
역주1 禮樂論 : 이 글은 禮樂과 性善論과의 관계를 밝히고, 禮樂이 內含하고 있는 深奧한 意義 및 禮樂을 닦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아울러 당시 사람들이 禮樂의 精髓를 익히지 않고 形式만을 추구함을 비판한 것이다.
文中에 제시한 先王의 말은 《禮記》 〈樂記〉를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고, 佛敎와 老莊에 대한 비판은 그가 晩年에 佛敎에 귀의했을 때의 심경과는 相反되는 부분이 있다.
역주2 先王……而爲之樂 : 이는 《禮記》 〈樂記〉의 “이 때문에 先王이 이들을 감화시키는 데에 신중하여, 이 때문에 禮로써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고, 樂으로써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하며, 政敎로써 그들의 행위를 통일시키고, 刑罰로써 그들의 간사함을 막았다. 禮와 樂과 政과 刑이 그 궁극의 경지는 같은 것이니, 민심을 하나로 귀일시키고 정치의 근본 道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是故 先王愼所以感之者 故禮以道其志 樂以和其聲 政以一其行 刑以防其奸 禮樂刑政 其極一也 所以同民心而出治道也]”라는 내용을 요약하여 援用한 것이다.
역주3 中和 : 儒家에서 말하는 中庸之道의 核心을 내포한 用語로 《中庸》에 “喜怒哀樂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 이르고,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和라 이르니, 中이라는 것은 天下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天下에 공통된 道이다. 中과 和를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게 되고 만물이 잘 자라게 된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다.
역주4 聖人之言……非禮勿動 : 《論語》 〈顔淵〉에 顔淵이 仁을 행하는 방법을 묻자, 孔子는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방법이다.[克己復禮 爲仁]”라고 하였으며, 克己復禮의 조목으로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하였다. 이후로 이것을 四勿이라 하여 배우는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손꼽혀왔다.
역주5 蕢桴土鼓……禮卽備矣 : 蕢桴는 풀을 묶어서 만든 북채이고, 土鼓는 흙을 다져서 만든 북이며, 汚尊은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어서 물을 담은 것이고, 抔飲은 손으로써 움켜 마시는 것이다.
《禮記》 〈禮運〉에 “禮의 처음은 음식에서 시작되니 기장 쌀을 굽고 돼지를 가르며, 웅덩이를 술동이로 삼고 손으로 움켜 마시며, 진흙으로 북채를 만들고 진흙으로 북을 만들었어도, 오히려 그 공경을 귀신에게 지극히 할 수 있었다.[夫禮之初 始諸飲食 其燔黍捭豚 汙尊而抔飲 蕢桴而土鼔 猶若可以致其敬於鬼神]”라고 보인다.
역주6 曾子謂孟敬子……則有司存 : 이 내용은 《論語》 〈泰伯〉에 보인다. 程子는 위의 經文을 해석함에 있어 “容貌를 엄숙히 동하면 거칠고 태만함이 저절로 멀어지며, 얼굴빛을 바르게 하면 성실함에 저절로 가까우며, 말소리를 잘 내면 비루하고 도리에 위배되는 말이 저절로 멀어진다.” 하여, 앞의 세 句를 공부로, 뒤의 세 句를 功效로 보았다.
이에 반하여 朱子는 “용모를 동할 적에는 거칠고 태만함을 멀리해야 하며, 얼굴빛을 바르게 할 적에는 성실함에 가깝게 해야 하며, 말소리를 낼 적에는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말을 멀리 해야 한다.”로 풀이하여, 뒤의 세 句를 공부로 보았다.
역주7 易曰……存乎德行 : 이 내용은 《周易》 〈繫辭 上〉에 보인다.
역주8 易曰……以成其變化 : 이 내용은 《周易》 〈繫辭 上〉에 보인다.
역주9 洪範 : 《書經》의 篇名으로, 殷周의 交遞期에 箕子가 周 武王에게 天地의 大法을 전해주기 위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역주10 洪範之言天人之道 莫大於貌言視聽思 : 이는 《書經》 〈洪範〉에 “五事는 첫째가 외모요, 둘째가 말씨요, 셋째가 보는 것이요, 넷째가 듣는 것이요, 다섯째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외모는 공손해야 하고, 말씨는 이치를 따라야 하며, 보는 것은 밝게 보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하게 들어야 하며, 생각은 슬기롭게 해야 합니다. 공손하면 엄숙해지고, 이치를 따르면 조리가 있게 되고, 밝게 보면 명석해지고, 분명하게 들으면 지혜가 있게 되고, 슬기로우면 성인처럼 통달하게 됩니다.[五事 一曰貌 二曰言 三曰視 四曰聽 五曰思. 貌曰恭 言曰從 視曰明 聽曰聰 思曰睿 恭作肅 從作義 明作晳 聰作謀 睿作聖]”라는 내용을 요약하여 援用한 것이다.
역주11 君子之所不至者三……不失足於人 : 이 내용은 《禮記》 〈表記〉에 보인다.
역주12 聖人之遺言曰……與天地同和 : 이 내용은 《禮記》 〈樂記〉에 보인다.
역주13 五事 : 《書經》 〈洪範〉에 武王이 箕子를 방문하여 治國의 大道를 묻자, 箕子는 “하늘이 禹王에게 洪範九疇를 내려주었다.”라고 보이는데, 洪範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이고 九疇는 아홉 가지이다. 九疇 중 두 번째가 五事로 貌‧言‧視‧聽‧思을 가리킨다.
역주14 三光 : 세 가지 빛나는 것으로, 곧 日‧月‧星辰을 가리킨다.
역주15 詩曰……聲聞於天 : 이 내용은 《詩經》 〈小雅 鶴鳴〉에 보인다.
역주16 孟子曰……充塞乎天地之間 : 이 내용은 《孟子》 〈公孫丑 上〉에 보인다.
역주17 揚子曰……潛地而地也 : 이 내용은 揚雄의 《法言》 〈學行〉과 〈問神〉에 보인다.
역주18 夫使天下之人……此梁晉之君所以取敗之禍也 : 兩晉(西晉과 東晉)時代에는 玄學이 성행하여, 老莊학설을 숭상하고 淸談을 즐기는 것이 시대 풍조가 되었으며, 南朝時代 梁 武帝는 佛敎를 숭상하여 국교로 정하였다. 왕안석은 이 두 왕조가 儒家的 禮樂을 버리고 이러한 流俗에 빠진 것이 나라를 패망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역주19 : 저본에는 ‘輕’으로 되어 있는데, 龍舒本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20 易曰……道不虛行 : 이 내용은 《周易》 〈繫辭 下〉에 보인다.
역주21 昔宓子賤爲單父(선보)宰……化焉 : 宓子賤은 孔子의 제자로, 名이 不齊이고, 字가 子賤이다. 그가 單父의 邑宰로 있을 때에 거문고를 타면서 堂 아래로 내려온 일도 없는데도 單父가 잘 다스려졌다 한다. 즉 儒家의 無爲而治를 몸소 실현한 사람이 宓子賤이라는 것이다. 單父는 現 山東省 單縣이다.
역주22 孔子曰……不貳過 : 이 내용은 《論語》 〈雍也〉에 보인다.
역주23 又曰……未見其止也 : 이 내용은 《論語》 〈子罕〉에 보인다.
역주24 易曰 損先難而後獲 : 이 내용은 《周易》 〈繫辭 下〉에 보인다. ‘獲’이 《周易》에는 ‘易’로 되어 있다.
역주25 : 저본에는 ‘之’로 되어 있는데, 繆氏本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26 傳曰……皆聖人作 : 이 내용은 《周禮》 〈冬官〉에 보인다.
역주27 造父 : 《史記》 〈趙世家〉에 의하면, 造父는 周 穆王의 車夫였으며 趙나라의 始祖였다 한다. 八駿馬를 얻어 穆王에게 바쳤고, 徐偃王의 亂을 평정하였으며, 穆王이 女神仙인 西王母와 만날 때에도 穆王의 御者였다 한다.
역주28 羿 : 옛날 활을 잘 쏘던 사람으로, 《淮南子》 〈本經訓〉에 의하면,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오르자 羿가 활을 쏘아 그 가운데 9개를 떨어뜨려서 기상의 이변을 막았다 한다.
역주29 盜跖 : 춘추전국시대의 大盜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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