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양讓誠國士也
면 曾不能逆策
하야 救
지백智伯之亡
하고 一死區區
로 尙足校哉
아
此兩人者
는 汚隱困約之時
에 自
其身
하고 不妄願知
하니 亦曰有待焉
이로다
조말曹沫이 장수가 되어 인군人君의 성城을 빼앗겼다가 다시 천하天下의 맹주盟主를 겁박劫迫하여 이를 되찾은 것과, 관중管仲이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으로 당대에 신뢰를 얻고자 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나는 유독 지백智伯이 국사國士로 예우해주었던 예양豫讓이 어찌 그 친구가 일러준 계책을 쓰지 않았는가를 괴이하게 여긴다.
예양豫讓이 진실로 국사國士였다면, 일찍이 삼진三晉의 야욕을 미리 계책을 세워 막아서 지백智伯이 망亡하는 것을 구제하지 못하고, 구구하게 한 몸이 죽는 것으로 오히려 충분히 계교計較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마음을 속이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섭정聶政은 엄중자嚴仲子에게 팔려가서 원수를 제거해주고 죽었고, 형가荊軻는 연燕나라 태자太子 단丹에게 예우禮遇를 받고서 진왕秦王 정政을 살해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 두 사람은 천민들 속에 은둔해 있으면서 곤궁하게 지낼 때에 스스로 그 몸을 귀중하게 보존하고 함부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또한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저 도道와 덕德을 간직하고 시대의 추이를 기다리는 자에 비하여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