昨日蒙敎하고 竊以爲與君實로 游處相好之日久로되 而議事每不合하니 所操之術이 多異故也라
重念蒙君實視遇厚하고 於反覆不宜鹵莽이라 故今具道所以하야 冀君實或見恕也하노라
蓋儒者所爭이 尤在於名實하니 名實已明이면 而天下之理得矣라
某則以謂受命於人主하야 議法度而修之於朝廷하고 以授之於有司는 不爲侵官이요 擧先王之政하야 以興利除弊는 不爲生事요
爲天下理財는 不爲征利요 闢邪說하고 難壬人은 不爲拒諫이며
人習於苟且 非一日이니 士大夫多以不恤國事하고 同俗自媚於衆爲善이로되
上乃欲變此어시늘 而某不量敵之衆寡하고 欲出力助上以抗之하니 則衆何爲而不洶洶然이리오
如君實責我以在位久하야 未能助上大有爲하야 以膏澤斯民은 則某知罪矣나 如曰 今日當一切不事事하고 守前所爲而已라하면 則非某之所敢知로라
형공荊公의 강퍅强愎함과 자기 고집을 꺾지 않은 것이, 자신을 그르친 근본 원인이다.
지난날 깨우쳐주시는 편지를 받고, 삼가 군실君實과 교유하고 지내면서 서로 가까이 지낸 날이 오래되었지만 의론議論하는 일이 번번이 서로 합치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었으니, 신조信操로 삼는 학술學術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귀가 따갑도록 힘껏 주장하였으나, 끝내 전혀 살펴주시는 은혜를 입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간략하게 답장을 올리고, 일일이 다시 스스로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군실君實께 후厚한 예우禮遇를 받았음을 유념하고, 반복하는 서신에 노둔魯鈍하고 거친 말씀을 올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므로, 이제 그 근본이 되는 핵심核心만을 자세히 말씀드리면서, 군실君實께 혹여나 용납됨이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대체로 유자儒者들이 다투는 바는, 가장 중요한 것이 명분名分과 실제實際에 관한 것이니, 명분과 실제가 이미 분명해졌다면 천하天下의 공리公理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군실君實께 지적을 받은 것은 해당관서의 고유업무를 침범한 것[侵官], 모든 생민들에게 예부터 내려오는 상법常法을 따르지 않게 하여 끊임없는 분란을 조성한 것[生事], 재정財政을 삼사三司에 맡기지 않고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를 별도로 세워 각기 간교奸巧한 지혜로 사리私利를 다투면서 조종祖宗의 구법舊法을 바꾸게 한 것[征利], 비판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내어 꾸짖고 축출한 것[拒諫] 때문에 천하의 원망과 비방을 초래하였다는 것입니다.
모某는 군주君主에게서 명命을 받아 법도法度를 의론議論하고 이를 조정朝廷에서 수정修正하여 담당관서에 내려 보내 시행하게 하는 것은 해당관서의 고유업무를 침범하는 침관侵官이 아니고, 선왕先王이 시행하였던 정사政事를 다시 일으켜서 이로써 이익을 늘리고 폐단을 제거하는 것은 상법常法을 따르지 않게 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생사生事가 아닙니다.
천하天下를 위하여 재화財貨를 관리하는 것은 간교한 지혜를 다투며 사리私利만을 추구하는 정리征利가 아니고, 사악邪惡한 주장을 물리치고 간사奸邪한 사람을 내보낸 것은 비판하는 사람을 꾸짖고 축출한 거간拒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망과 비방이 많이 일어난 데 이른 것에 대하여서는 진실로 먼저 이와 같을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그릇된 일에 익숙해진 것이 어제 오늘에 일어난 것이 아니니, 사대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국사國事를 염려하지 않고 세속적 견해에 동화되어 스스로 대중에 영합하는 것을 선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군주君主께서 이를 변혁하고자 하시어 모某는 반대파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않고 힘을 다해 군주를 도와 이들과 맞서고자 하고 있으니, 대중들이 어찌 떠들썩하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경盤庚이 천도遷都하려 할 때에 서로 모여서 원망한 자들이 백성들이었고, 유독 조정朝廷의 사대부士大夫에 그칠 뿐이 아니었지만, 반경盤庚은 원망하는 사람 때문에 기정旣定 계획計劃을 바꾸지는 않았고, 의리義理에 맞는가를 헤아린 이후에 실천하였으니, 이 때문에 후회할 만한 일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군실君實께서 내가 재상의 지위에 오래 있으면서 군주께서 크게 도모하시는 일을 제대로 보좌하여 이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고 꾸짖으신다면 모某가 그 잘못을 인정하겠지만, 만약 이제 일체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일을 하지 않고 전부터 해오던 일만을 묵수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이런 비판은 모某가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
서로 만날 기회가 없으므로, 지난날의 지극하셨던 보살핌을 감내하지 못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