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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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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湛深之識 幽渺之思 大較竝本之古六藝之旨로되 而於其中別自爲調하야 鑱刻萬物하고 鼓鑄群情하야 以成一家之言者也
其尤最者 上仁宗皇帝書與神宗本朝百年無事諸 可謂王佐之才
此所以於之鎭靜博大로도 猶未能入이러니 而至於之間하야 劫主上而固魚水之交하니 譬則武丁之於 之於昭烈 不是過已로다
惜也
公之學問 本之好古者多로되 而其措注 當時 亦狃於泥古爲患이온 況以矯拂之行而兼之以獨見하며 以執拗之資而恣之以私臆
所以以下 紛紛附會하야 熒惑天子하야 流毒四海하니라
旣壞 并其文學 知而好之者半이요 而厭而訾之者亦半矣
以予觀之컨대 荊公之雄不如하고 逸不如하며 飄宕疏爽 不如로되 而匠心所注 意在言外하고 神在象先하야 如入幽林邃谷而杳然洞天하니 恐亦古來所罕者
予每讀其碑誌墓銘 及他書所指次世之名臣碩卿賢人志士호니 一言之予 一字之奪 竝從神解中點綴風刺하야 翩翩乎凌風之翮矣 別爲三昧也
予首錄其上仁宗皇帝書一首하고 次及箚子疏狀七首 表啓三十六首 與友人書三十五首 序十二首 記二十二首 論原說解雜著二十五首 碑狀墓誌銘表及祭文七十三首하고 釐爲一十六卷하노라
歸安鹿門하노라


王文公文抄引
왕형공王荊公의 해박한 식견과 깊고 오묘한 사상은 대체로 모두가 육경六經의 취지에 근본을 두고 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독자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사물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여러 학설을 도야陶冶하고 포괄하여, 이로써 대가大家로서의 독자적인 논리를 형성하였다.
그의 글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것으로는 〈상인종황제서上仁宗皇帝書〉와 신종神宗에게 올린 〈본조백년무사차자本朝百年無事箚子〉가 있으니, 왕을 보필할 훌륭한 인재라고 이를 수 있다.
이 글들은 인종仁宗의 침착하고 넓고 큰 도량으로도 채납採納되지 않았는데, 희령熙寧원풍元豐 연간에 이르러서는 주상主上의 신임을 받아서 군신君臣 사이가 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서로 가깝게 되었으니, 이를 옛 일에 비유하자면 나라 무정武丁에 있어서의 부열傅說촉한蜀漢 소열제昭烈帝에 있어서의 제갈량諸葛亮도 이들의 관계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애석하도다!
공의 학문은 옛 성인聖人의 뜻을 계승한 것이 많아서 그가 조처하고 시행한 것을 당시에도 고지식하게 옛 제도制度만을 고수하려 한다고 근심하였는데, 더구나 상규常規에 어긋난 행동을 독특한 견해로 포장하고 고집스러운 자질을 가지고 사사로운 억견臆見자행恣行한데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등을 비롯한 많은 무리들이 신법新法을 표방하면서 이를 왜곡하고 분분하게 영합하여 천자天子를 현혹시켜 해독이 온 천하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
이에 신법新法이 폐지되었고 아울러 그의 문장文章에 대하여도 인정認定해 주고 좋아하는 사람이 반쯤 되고 싫어하고 비난非難하는 사람이 반쯤 되게 되었다.
내가 살펴보건대 왕형공王荊公의 문장은 웅장함이 한유韓愈만 못하고, 넉넉하고 빼어남이 구양수歐陽脩만 못하며, 표탕飄蕩하고 자유분방함이 소씨蘇氏 부자형제父子兄弟들만 못하지만, 절묘한 창의력과 함축성 및 오묘한 정신세계가 문장 밖에 드러나고, 근본정신이 외물外物의 표현에 앞서는 것이 마치 깊은 숲 으슥한 골짜기에 들어간 듯하고 아득한 신선세계에 있는 듯하니, 이런 점은 아마도 또한 옛날 이래로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가 지은 비지碑誌묘명墓銘 및 기타의 글을 통하여 명신名臣, 석경碩卿, 현인賢人, 지사志士들에 대하여 지적한 것을 읽을 때마다, 한마디 말로 찬양하거나 비난한 것들이 모두 오묘한 깨달음으로 지적하고 풍자한 것들이어서 바람을 타고 훨훨 나는 듯하니 《사기史記》나 《한서漢書》 외에 특별한 맛을 느끼게 된다.
나는 〈상인종황제서上仁宗皇帝書〉 한 편을 맨 앞 권에 수록하고, 다음에 차자箚子, , 등 7편을, 다음에는 36편을, 다음에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35편, 다음에는 12편, 다음에는 22편, 다음에는 , , , , 잡저雜著 등 25편을, 다음에는 , , 묘지명墓誌銘, 제문祭文 73편을 수록하고, 이를 정리하여 16권을 만들었다.
귀안歸安 사람 녹문鹿門 모곤茅坤은 쓰노라.


역주
역주1 王文公文抄引 : 文公은 王安石의 諡號이다. 引은 책의 첫머리에 붙여서 그 개황을 설명하는 글로서 文體上으로는 序跋類에 속한다.
역주2 王荊公 : 왕안석이 荊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荊公이라 칭한 것이다.
역주3 箚子 : 奏議類의 一種으로 臣下가 王에게 올린 글이며, 表나 狀보다 비교적 짧은 것이 특징이다.
역주4 仁廟 : 宋의 皇帝로 仁宗(재위 1022~1063)을 지칭한다.
역주5 熙寧元豐 : 熙寧과 元豐은 宋 神宗의 年號로, 熙寧은 1068~1077년 사이의 年號이고, 元豐은 1078~1085년 사이의 年號이다.
역주6 傅說 : 殷의 國君인 武丁(廟號는 高宗임)이 傅說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殷을 부흥시켰다.
역주7 孔明 : 諸葛亮(181~234)의 字로 중국 삼국시대의 정치가, 군략가이다. 丞相이 되어 蜀漢 昭烈帝 劉備(161~223)를 보필하였다.
역주8 呂章邢蔡 : 呂는 呂惠卿(1032~1111), 章은 章惇(1035~1105), 邢은 邢恕, 蔡는 蔡確과 蔡京을 지칭한다. 이들은 모두 표면상으로는 왕안석의 新法을 지지하는 듯이 행동하면서, 자신들의 私益만 추구하고 많은 惡行을 恣行하여 舊法黨이 新法黨을 공격하고 왕안석을 파직하게 한 빌미를 제공한 奸臣들이다.
역주9 新法 : 王安石이 制度를 개혁할 때에 제정된 各項의 法令들로서 均輸法, 靑苗法, 置將法, 保甲法, 保馬法 등이며, 본래 있던 법들을 새롭게 개혁한 것이므로 新法이라 칭한다.
역주10 : 唐代의 古文家 韓愈를 칭한다.
역주11 : 宋代의 古文家 歐陽脩를 지칭한다.
역주12 蘇氏父子兄弟 : 宋代의 古文家 蘇洵과 그의 아들인 蘇軾, 蘇轍 형제를 칭한다.
역주13 史漢 : 史는 司馬遷이 지은 《史記》를 칭하고, 漢은 班固가 지은 《漢書》를 칭한다.
역주14 茅坤 : 茅坤(1512~1601)은 明代의 散文家로 字는 順甫이고 號는 鹿門이며 歸安人이다. 明 後七子들이 古文은 반드시 秦漢代의 것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文必秦漢’說을 배격하고 唐宋八家의 古文을 익힐 것을 주장하며 《唐宋八家文抄》를 편찬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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