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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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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情婉而正이라
叔才 으로 世以貲名이라
子弟豪者 馳騁漁弋爲己事하고 謹者 務多闢田以殖其家하니라
獨叔才之父母不然하야 於叔才之幼 捐重幣하야 逆良先生敎之하고 旣壯하야 可以遊 資而遣之 無所靳하니라
居數年 朋試於有司라가 不合而歸하니 邑人之訾者半이요 竊笑者半이로되 其父母愈篤不悔하고 復資而遣之하다
叔才 純孝人也 悱然感父母所以敎己之篤하야 追四方材賢하고 學作文章하야 思顯其身以及其親이라
不數年하야 遂能하야 復朋試於有司라가 不幸復詘於不己知하다
不予愚而從之遊하야 嘗謂予言호대 父母之思而慙其邑人하야 不能歸라하야늘
予曰 歸也어다
夫祿與位 庸者所待以爲榮者也로되 彼賢者 道弸於中하야 而襮之以藝 雖無祿與位 其榮者固在也
子之親 矯群庸而置子於聖賢之途하시니 可謂不賢乎
或訾或笑로되 而終不悔하시니 不賢者 能之乎
今而舍道德而榮祿與位 殆不其然이니라
然則子之所以榮親而釋慙者 亦多矣
昔之訾者竊笑者 固庸者爾 豈子所宜慙哉리오
姑持予言以歸하야 爲父母壽 其亦喜無量이리니
於子 何如
因釋然寤하야 治裝而歸어늘 予卽書其所以爲父母壽者하야 送之云이라


11. 호숙재胡叔才전송餞送하는 송서送序
내용이 아름다우면서도 정도를 드러내고 있다.
숙재叔才동릉현銅陵縣벌족閥族으로 대대代代부유富裕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자제子弟들 가운데 호탕豪宕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내달으며 고기잡이와 사냥을 일삼았고, 성실한 사람은 농토를 많이 개간하는데 힘써서 그 가산家産을 증식시켰다.
과거 고을 호족豪族의 자제 가운데 유자儒者라는 칭호를 얻은 자가 있었는데, 천금千金의 재산만 축내었을 뿐 끝내 성취한 것이 없었으므로, 고을의 호족들이 이를 비속鄙俗하게 여겨서 유자儒者라는 칭호를 바라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며, 유관儒冠을 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두 손가락질하고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가까이하지를 않고 마치 자기를 그릇된 풍조에 물들게 하려는 것처럼 여기니, 비록 호씨胡氏 집안이라 해도 또한 그러하였다.
유독 숙재叔才의 부모만은 그렇지를 않아서 숙재가 어릴 때부터 많은 폐백幣帛을 아낌없이 써서 훌륭한 스승을 맞아들여 그를 가르쳤고 성년成年이 되어서 유력遊歷할 만하게 되자 자금資金을 마련해 주어 떠나 보내면서 재물을 아끼는 바가 없었다.
몇 년 지나서 동학同學들과 서로 무리를 이루어 담당관서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급제及第하지 못하고 돌아오니, 고을 사람들 가운데 비방하는 사람이 반쯤 되고 몰래 비웃는 사람이 반쯤 되었지만, 그의 부모는 더욱 독실하게 보살피며 후회하지 않고 다시 공부를 하도록 재물을 주어서 보냈다.
숙재叔才는 지극히 효성스러운 사람인지라 비감하게 부모가 자신을 가르치기를 독실하게 하심에 감동되어, 사방의 재사才士 현인賢人을 찾아다니며 문장文章 짓기를 배워서, 자신이 현달顯達하여 명성이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서 크게 성장하여 예부禮部에서 시행하는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얻어서 다시 무리들과 함께 담당관서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응시하였지만, 불행不幸하게도 자기 실력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가로막혀 합격되지 못하였다.
숙재는 나를 우매하다고 여기지 않고 나와 종유從遊하였는데,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을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돌아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고향으로 돌아가시게.
대저 봉록俸祿과 벼슬자리라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서 대우하는 것이지만, 저 어진 사람들은 가 마음속에 충만하고 이것이 문장으로 드러나게 되면 비록 봉록과 벼슬자리를 얻지 못했다 해도 그들이 영예로 여기는 것이 진실로 여기에 있는 것일세.
그대의 양친께서는 뭇 어리석은 사람들을 바로잡아서 그대를 성현聖賢의 길을 밟도록 하셨으니 어진 분들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방하는 사람도 있고 비웃는 사람도 있는데도 끝내 후회하지 않으셨으니 어진 분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실 수 있겠는가?
이제 도덕道德을 팽개치고 봉록俸祿관위官位를 영예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그분들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일세.
그런즉 자식으로서 어버이를 영예롭게 하고 자신이 부끄럽게 여겼던 마음을 없애는 것도 또한 훌륭한 일일세.
전에 비방했던 사람들, 뒤에서 비웃었던 사람들은 본시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이니, 어찌 그대가 마땅히 부끄러워할 바이겠는가?
우선 내 말을 믿고 돌아가서 부모님을 위해 장수長壽를 축원하며 산다면 그 또한 한없이 기쁜 일일 것일세.
그대는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였다.
그랬더니 환하게 깨닫고 행장行裝을 꾸려 가지고 돌아갔으므로, 나는 즉시 그가 부모님의 장수를 축원하며 살 수 있는 소이所以를 적어주면서 그를 전송하였다.


역주
역주1 送胡叔才序 : 胡叔才의 名은 舜元이고, 叔才는 그의 字이다. 호순원이 두 차례 進士試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여 귀향하게 되었을 때에 지어 준 것이다. 호순원이 嘉祐 4년(1059)에 禮部에서 시행한 進士試에 합격하여 宦路에 올랐으므로, 본 送序는 嘉祐 4년 이전에 지어 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주2 銅陵大宗 : 銅陵縣의 世家大族이라는 의미이다. 銅陵은 現 安徽省에 속한다.
역주3 邑之豪子弟……若將浼己然 : 《禮記》 〈儒行〉에 “지금 뭇사람들이 儒者라고 命名하는 것은 거짓이어서 항상 儒者라고 서로 헐뜯는다.[今衆人之命儒也妄 常以儒相詬病]”라고 한 세태를 말한 것으로, 儒者의 행실은 없으면서 儒者의 복장을 입고 있는 자, 儒者의 실상은 없으면서 儒者의 이름을 도둑질한 자들이 儒者로 행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儒者라고 손가락질한다는 말이다. 命은 命名한다는 뜻이다.
역주4 褎然 : 가지와 잎이 차츰 자라나는 모습을 칭하므로 成長하였음을 의미한다.
역주5 爲材進士 : 사람의 재목이 이루어져서 禮部에서 시행하는 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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