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介乎天地之間하니 則固不能無過나 卒不害聖且賢者는 何오
人則曰 是向之從事云爾러니 今從事與向之從事로 弗類하니 非其性也요 飾表以疑世也라하니 夫豈知言哉아
一日咎前之非하고 沛然思而行之면 是失而復得하고 廢而復擧也라
且如人有財를 見簒於盜라가 已而得之하고 曰非夫人之財요 向簒於盜矣라하면 可歟아
財之在己는 固不若性之爲己有也니 財失復得하고 曰非其財라하면 且不可어늘 性失復得하고 曰非其性이라하면 可乎아
글이 300자를 넘지 않으면서도 전절轉折과 변화變化가 무궁無窮하다.
천도天道의 운행運行에도 잘못되는 일이 있는가? 있으니,
성신星辰이 본래의 궤도軌道를 벗어나 운행하고 별들이 서로 막고 가리는 현상이 이런 예이다.
지도地道의 운행에도 잘못되는 일이 있는가? 있으니,
땅이 무너지고 물이 마르고 막히는 현상이 이런 예이다.
하늘과 땅도 모두 과오過誤가 있지만 끝내 하늘이 만물을 덮고 땅이 만물을 싣는 데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람은 천지天地 사이에서 살고 있으니 본시 과오가 없을 수 없지만, 끝내 성인聖人이 되고 현인賢人이 되는 데 해害가 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그러므로 태갑太甲이 허물을 뉘우치고 상도常道로 돌아오기를 생각하였고, 공자孔子께서는 “과오가 있으면 이를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양웅揚雄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을 귀貴하게 여겼으니, 이들은 모두 이런 방법을 잘 쓴 것이었다.
나의 친구 중에 과오를 범함이 있으면 뉘우칠 줄 알고, 뉘우치면 바르게 고치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전에는 일 처리를 이러이러하게 하더니, 지금은 일 처리하는 것이 전의 일 처리와 같지 않으니, 그의 본성本性이 아니고 겉으로 꾸며서 세인世人을 미혹迷惑시키는 것이다.”라고 하니, 어찌 남의 말을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모든 생령生靈을 오행五行의 원리原理로 화육化育하니, 사람도 본시 이를 갖추어 구유具有하고 있다.
구유具有하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게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면 피폐疲廢해진다.
하루라도 전일前日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 깊이 사려思慮하고 바르게 실천하면, 이는 잃었던 것을 다시 얻게 되고 피폐해진 것을 다시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말하기를 “그 본성本性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천하 사람들을 본성本性을 해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소유했던 재물을 도둑에게 빼앗겼다가, 그 후에 이를 되찾고는, 말하기를 “저 사람의 재물이 아니라 지난번에 도둑에게서 빼앗은 것이다.”라고 한다면 옳겠는가?
재물이 자기에게 있는 것은 본시 본성本性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재물을 잃었다가 다시 찾고는 “아무개의 재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데, 본성本性을 잃었다가 다시 찾고는 “그 사람의 본성本性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