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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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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嗚呼
善之不必福 其已久矣 豈今於 始悼歎其如此리오
喪除 知必顧予러니 怪久不至하니 豈其病歟
今也君弟 哭而來赴하니 天不姑釋一士하야 以爲予助
何生之艱하고 而死之遽
君始從我 與吾兒游하니
言動視聽 正而不偸
樂於饑寒하야 惟道之謀
하야 議爭讞失하고
再爲君屈이라
遂升宰屬하야 能撓彊倔하고
辨正獄訟 又常精出이라
豈君刑名 爲獨窮深이리오
直諒明淸하야 靡所不任이라
人恌莫知하니 乃惻我心이라
君仁至矣하야 勇施而忘己하고
君孝至矣하야 孺慕以至死
能人所難하니 可謂君子로다
嗚呼
吾兒逝矣 又隨之어늘
我留在世하니 其與幾時
酒食之哀하고 侑以言辭하노라


14. 검정 장안국의 제문
아아!
착한 일을 행했다 해서 반드시 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이미 오래되었으니, 어찌 이제 이 이와 같음을 비로소 애도하고 탄식할 것이 있으리오?
상기喪期를 마치고는 반드시 나를 찾아올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오지 않아 괴이하게 여겼었는데, 아마도 병이 심해서 그러하였던 것이로다!
이제 의 아우가 울면서 와서 부음訃音을 전하니, 하늘이 어찌하여 한 선비를 잠시 남겨놓아서 나를 돕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쩌면 그다지도 살아서는 간난艱難을 겪게 하고, 그다지도 급하게 사망死亡하게 하였단 말인가?
군이 처음 나를 따라 배울 때에, 내 자식과 친구로 지냈으니,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는 것이 올바르고 소홀하지 않았었네.
굶주림과 추위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오직 인의도덕仁義道德만을 추구하였었네.
사법참군司法參軍이 되어서는 그릇된 판결에 항쟁하고 따졌으며,
중서성中書省 대리시大理寺의 주장에 거듭 굴복하였었네.
승진하여 현령縣令이 되자 불법을 자행하는 억센 무리들을 굴복시켰고,
쟁송爭訟을 바르게 판결함은 또한 항상 정밀하게 살핌에서 나왔었네.
어찌 의 형법에 관한 명성이 다만 깊이 궁구함에서만 나왔겠는가?
정직正直하고 성실誠實하며 맑아서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었도다.
사람들이 야속하게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내 마음이 슬프도다.
은 어짊이 지극하여, 용기 있게 은덕을 베풀면서 자신의 안위를 잊었으며,
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릴 때부터 공경하여 죽을 때까지 이르렀네.
남들이 어렵게 여기는 것을 잘 처리하였으니, 군자君子였다고 이를 만하네.
아아!
내 자식이 세상을 떠났고, 또한 따라갔는데,
나만이 이 세상에 남아 있으니, 장차 떠나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
술과 음식을 차려 애도하고, 이 제문祭文으로 흠향歆饗하기를 권하노라.


역주
역주1 祭張安國檢正文 : 張安國은 王安石의 아들 王䨦의 친구로, 王䨦이 熙寧 9년(1076)에 33세로 卒하였고 張安國도 그 직후에 卒했다 한 것으로 보아, 本 祭文은 그 즈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檢正은 中書門下省의 文書處理를 담당한 官職이다.
역주2 掾司法 : 各 州에 설치되었던 司法參軍의 簡稱으로, 法律을 檢定하고 罪囚를 審議 判決하는 職任이다. 掾司法이라 한 것은 司法參軍이 掾吏(下級官吏)에 屬하였기 때문이다.
역주3 中書大理 : 中書省 大理寺의 簡稱으로, 각 지방에서 올라온 判決을 다시 審議하여 합당하지 않은 것은 審刑院에서 再審하도록 送付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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